동생 친구 녀석과의 동거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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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형. 너 왜 그래. 어제 안씅이랑 무슨 일 있었어? 왜 갑자기 안내던 화를 내고 그래?”


“(내가 방금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내 스스로도 너무 놀라서..) 아...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데? 갑자기 왜 정색 하는건데???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고!!!!? 어!? 아니면 내가 형한테 뭐 실수 한 거 있어?? 그런거야?? (목소리를 높이며)”


“그런거 아니야;; 괜히 소리쳐서 미안.”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희찬)”


난 그런 동생 녀석을 뒤로하고 조용히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뭔가 마음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답답했고, 분명 침대에 누워 있는데도 몸과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하아.........(길게 한숨을 내쉬며)’


내 방 안에 가만히 누워있는데 몇 분 후, 거실에서 인기척 소리가 나길래 귀를 기울였다. 


“왔어?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승현의 목소리다. 


“수업가냐?”


“어. 그리고 오늘 좀 늦을 수도 있어.”


“알았어. 근데. 안씅! 너 형이랑 어제 뭔 일 있었냐?”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근데 왜 저러는거야. 갑자기. (목소릴 낮추며)"


희찬이가 목소리를 꽤나 낮춰서 말하는데도 날 지칭하듯 갑자기 왜 저러는거냐는 말이 내 방 안까지 아주 잘 들리고 있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 바빠서 먼저 나가볼께."


승현이가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수업이 있긴 있나보네’


‘근데 아까 아무리 내가 소리를 좀 높였기로서니, 나랑 할 이야기 없다고 딱 선을 긋질 않나, 수업 없냐고 계속 물어보는데도 내 말에 아무 대답도 안 하질 않나.‘


'그리고 뭐? 나도 잘 모르겠다고??????'



‘나쁜 놈’


'안승현.. 나쁜놈'



[안승현 시점]



'형 친구가 왔으면 형에게 먼저 물어보든가 해야지. 왜 형 허락도 없이 무턱대고 문을 열어줘. 그리고 싸워도 내가 싸워. 왜 너가 희재한테 화를 내고 목소리 높이고 그러는건데? 어??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냐고!'



저번, 목요일 저녁엔 희찬이가 날 아프게 하더니 지금은 상찬이 형의 말이 자꾸만 내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귓가에 계속해서 맴도는 그 말.


‘왜 쓸데 없는 일을 해서.’


‘왜 쓸데 없는 일을 해서.’


사실 아직 수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마냥 답답하고 화가 나는 마음에 무작정 집을 그냥 나와 버렸다. 



목요일 밤 희찬이 녀석이


이따 우리 오랜만에 밖에서 둘이 술이나 한 잔 할까? 라면서 시티초등학교 앞에서 열시에 보자는 문자를 보내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보자고 하면 어떡하냐고 조금은 귀찮은 내색을 드러냈지만, 사실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 문자를 보자마자 10시까지 시간 맞춰 나가려면 바로 당장 샤워부터 해야겠다는 생각 뿐 이었으니까. 


희찬이 옆엔 지금도 그렇듯 항상 여자친구가 옆에 있었다. 


그 누구보다 의심할 여지없는 완벽한 일반이었음에도 바보 같이 그냥 고등학교 때부터, 그 녀석이 좋았다.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러냐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이유는 딱히 없었다.


남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좋아하게 돼버렸으니까. 


그냥, 윤희찬. 이름 하나만으로도 가슴 설레고, 그 녀석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희찬인 언제나 그렇듯 날 제대로 쳐다봐 주질 않았다. 사실 일반 남자에게 날 제대로 봐달라고 하는 것도 조금은 모순된 말 일수도. 


나도 몇 번이고 멈추고 싶었다. 희찬인 어디까지나 일반이니까.. 정말 이제는 그만해야지, 멈춰야지 라고 수십번씩 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 때 마다 둘이서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둘이서 드라이브나 가자며 자꾸만 날 흔드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하는데, 정말이지 머릿속으로는 자꾸만 그만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지만, 가슴이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약속시간인 열시 보다 10분 정도 먼저 나가 9시 50분부터 희찬이를 기다리는데


10시가 됐는데도 희찬이 녀석이 오질 않아


10:01 [어디야? 오고 있어?]


그리곤 10시 5분에 희찬이 에게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10:06 [야! 왜 너 전화를 안 받아! 이거 보면 바로 전화 아님 문자 줘!]


그리곤 1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빗방울이 굵어져 거센 소낙비로 바뀌기 시작했다.


슈퍼나 편의점이라도 다녀올까 싶었지만 근방에 편의점이 보이질 않았고 연락도 안되는데 혹시나 우산 사러 갔다가 그 사이에 희찬이가 오면 더더욱 안될 것 같아서 난 옆에 있는 나무 밑으로 들어가 조금이라도 비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비는 이전보다 더 거세졌고 내 옷과 몸이 점점 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10:15 [너 혹시 약속 잊은거 아니지..? 나 여기 기다리고 있는다!?]


10:20 윤희찬 발신 / 부재중 

10:35 윤희찬 발신 / 부재중


40분 가까이 그렇게 희찬이 녀석을 기다리는데 


혹시 희찬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상찬이 형에게 연락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괜히 일하는데 신경쓰이는 일 만들고 싶지 않아 휴대폰을 다시 집어 넣고는 


10시 50분.


그렇게 딱 한 시간을 기다렸더니, 


조용하기만 하던 내 휴대폰에서 전화벨소리가 울렸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찬이로부터의 연락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정말이지 걱정되는 목소리로 긴박하게 너 도대체 어디냐고,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냐며 전화기에 대고 큰 소릴 내었지만, 희찬인 생각보다 평온하게 깜빡 잠이 들었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시간이 늦었으니 그냥 집에 먼저 들어가라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희찬이와 예정에도 없던 약속이라도 생기는 날엔 정말이지 그 약속 하나 때문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었는데...


분명 아까 전 까지만 해도 그 녀석의 ‘둘이 술이나 한 잔 할까’ 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 까지만 해도 그래 내가 희찬이 너한테 얼마나 잘 해주는데 내가 이 정도 보상은 받아야지 라며 


비를 맞아가면서도 기다리는 와중에도 

내내 가슴이 두근 거렸었는데...

오지도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거였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게 한 시간이나 날 기다리게 만들고선..전화 하나로 ‘미안’ '깜빡 잠들었어' '먼저 들어가' 라고 끝내버리는 이 상황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싫었다. 


역시나 오늘도 희찬인 날 제대로 봐 주질 않았고 자꾸만 반복되는 이 상황에 점점 지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날 안 쳐다봐줘도 되니까.


희찬이 넌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평범한 일반 남자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날 그냥 무심하게만 대하지 말아달라는건데...


왜 이렇게 날 


무심하게 대하고


아프게 하고


비참하게 만드는거야.


그리고 난 왜 병.신같이 남자를 좋아해서 자꾸만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마주해야 되는거야. 도대체 왜.



돌아가는 길. 


기다리는 내내 두근거리고, 뛰고 있던 심장이 너무나 조용하기만 했다.  


아무리 희찬이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래도 심장은 줄곧 그 녀석을 향해 뛰었었는데 마치 내 가슴 속에 심장이 있긴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내 마음이 평온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희찬이 녀석과 다르게 그의 형은 참 많이 달랐다. 


비에 흠뻑 젖어서 들어온 날, 다음날 아침 내 방 안에 들어와 누워있는 내 이마에 손을 올려도 보고, 열이 조금 있다며 당장 어딜 나갔다 오더니 따뜻한 쌍화탕과 감기약을 건네고는 조심스레 방을 나가는데.. 아직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상찬이 형의 관심 하나만으로 내 감기기운이 온전히 씻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찬이 형은 도대체 왜 이렇게도 나에게 잘 해주는걸까.


사실 형을 그 날, 맥도날드에서 처음 본 건 아니였다.


안무 동선이랑 무대 구상 준비를 위해 잠시 들른 카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앉을 자리를 물색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구석에 있는 한 남자가 테이블에 혼자 앉아 반쯤 마신 유자차를 앞에 두고 잠시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거지. 꽤나 그의 눈빛이 슬프면서도 위태로워보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받아와선 내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그 사람이 계속 신경 쓰였다. 


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척 하면서 그 사람을 계속 그렇게 관찰했다. 정말이지 저런 슬픔에 찬 눈은 오랜만에 보는 듯 했다.


희찬이가 날 봐주지 않을 때, 나에게 무심할 때, 날 그렇게 아프게 대할 때 나도 저런 눈을 하고 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를 계속 주시하는데 몇 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 사람이 창문 밖을 멍하니 그렇게 계속 바라만 보다 남은 유자차는 입에도 대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안에 아주머니 5-6명이 우르르 몰려오는데 내 옆으로 다가와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선 따닥따닥 붙어앉아 어찌나 크게 수다를 떨던지.


저녁시간도 거의 다 됐고, 일은 집에 가서 해야겠다 싶어서 노트북을 접고는 카페를 나서는데 저 멀리 맥도날드 간판이 보이는 순간 오늘따라 왜 이렇게 햄버거가 먹고 싶어지던지.


그래 오늘은 베토디 세트 너로 정했다! 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맥도날드 건물로 들어서려 하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 부터 급히 들러선 용변을 보고 손을 씻는데 세면대 위에 검은색 스마트폰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뭐지?'


싶어서 스마트폰을 집어선 옆 버튼을 눌러보는데 잠금화면에 뜬 인물 사진.


아까 카페 안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그 사람이었다.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울고 있었던거지.


난 휴대폰을 집어 건물을 나와 주변을 빠르게 두리번 거리는데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아 다시 제자리에 둬야 할까 싶었지만 그러다 혹시 다른 사람이 나쁜 맘으로 가져가면 어쩌지 싶어서 다시 내 주머니 속에 넣었고 


일단 맥도날드 까지 왔으니 주문하려던 햄버거 부터 빠르게 주문하고 근처에 있는 지구대에 전해줘야 겠다 싶어서 맥도날드 매장으로 들어서는데


우연이였을까.


그 사람이 키오스크 앞에서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지금 나에게 있는데.


그렇게 휴대폰을 찾아준 값으로 그에게 햄버거를 대접받게 되었고 햄버거를 기다리는 동안 윤희찬 이라는 이름을 들먹거리며 그 사람이 통화를 하는데 내가 오랫동안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냥 흘려 들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이도 나와 동갑인 32살.


고등학교 때 부터 희찬이에게 4살 위 형이 있다고 줄곧 이야기를 듣긴 했었지만 그러나 얼굴과 느낌이 많이 달라서 그랬을까. 친 형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아서 하려던 말을 멈추고는 자리를 나서는데 


정말이지 정확히 한 달 후, 희찬이네 가족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희찬이의 형이라는 사람으로 그 사람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된 상찬이 형은 


희찬이가 막무가내로 동거 제안을 했을 때도 날 편하게 받아주었고, 처음 이사 온 거라며 편히 잘 수 있는 매트리스도 사주고, 밥도 거르지 않도록 식사도 잘 챙겨주고, 가끔 식탁에 둘이 앉아 맥주를 마실 땐, 이런저런 이야기나 내 고민도 편하게 잘 들어주었다.  


무엇보다 거실 안, 형이 바로 보는 앞에서 춤 까지 출 줄은 예상이라도 했을까. 


아프다고 하니 약도 바로 사다주고, 게다가 형과 같이 찜질방을 간 일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형의 전부 벗은 몸을 마주해야 된다는 현실에 조금은 설레면서도 속으로는 너무 긴장이 돼서 어떻게 해야하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형이 먼저 벗고 들어가라면서 화장실로 향하는데 저 형도 안 그럴것 같은데 꽤나 신경이 쓰이나 보다 싶었다. 


그리곤 상찬이 형이 언제 들어왔는지 샤워기 앞에 서 있길래 형에게 점점 다가가는데..


가까이 다가가 형의 옆에 선 순간 역시나 형의 다리사이에 있는 물건부터 눈에 들어오는데 포경을 하지 않은 건지 표피가 귀두를 살짝 덮고 있었지만 꽤나 굵은 물건에 귀두를 소유하고 있어서 그랬을까. 형의 귀두를 전부 다 감추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곤 몇 분 후 꽤나 커져있는 상찬이 형의 물건을 보고는 '저게 갑자기 왜 커진걸까?' 싶었는데


그 다음날 아침. 목욕탕 안 사우나에서 나오는 순간,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형을 보는데..형의 물건이 어제보다 완전히 서 버린채로 껄떡 거리고 있길래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형의 그 곳으로 손이 가버렸다.


그러면 안됐었는데.. ;; 한번 만 참을껄. 왜 그걸 참지 못해서. 바보같이.


갑자기 만지면 어떡하냐는 형의 말에


'형도 억울하시면 나중에 제꺼 섰을 때 한 번 만져보세요.'


라고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말을 뱉고 나서도 말 실수를 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요즘 들어 하루 종일 상찬이 형이랑 붙어 있는 상황이 많아 지면서 자꾸만 상찬이 형에게 단기간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날 발견하곤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희찬을 향한 내 마음과 진심에 대해 자꾸만 부정 당하는 것만 같아 조금은 괴로웠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상찬이 형에게 이야길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내 이야기는 아닌 것 처럼.. 


그런데, 그런 괴로움과 오랫동안 쌓여왔던 내 힘듦을 그의 형이었던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 씻겨주고 있었다. 


근데 그런 상찬이 형이, 요새들어 심적으로 좀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그 희재라는 사람을 만나면 꼭 상찬이 형의 표정이라던가, 말투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내게 크게 소리지르며 목소리를 높이던 일 하며, 


아까도 희찬이에게 소리치면서 화를 내는 걸 방 안에서 듣는데 


꼭 ‘희재’ 라는 그 사람으로 인해 복잡하고, 답답하고, 미치겠어서 터져나오는 외침 같았다. 


복잡한 꼭 내 마음처럼. 



그러고보니 저번에 형이 방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중, 


‘니 마음에 더 이상 내가 없다며!! 날 더 이상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라고 누군가에게 크게 소리치던 상찬이 형의 외침이 한번 더 떠올랐다. 


내가 안 듣고 싶어도, 차마 안 들을 수 없는 데시벨 이었다.


난 잠깐 손을 닦고는 부리나케 내 방으로 가서 에어팟을 꺼내들어 귀에 꽂고는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리곤 접시를 닦는데 


‘형도 애인이 있었구나..’


‘날 더 이상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애인한테 직접 들었다니...’


너무 깊은 생각을 하는 걸까. 왼손에 접시를 5분이나 든 채로 계속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을 나오긴 했지만 시계를 보니 5시인 수업까지 아직 두 시간이나 넘게 남아 있었다.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마음이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답답했다. 


그리고 이런 내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런 내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없었고, 


희찬이와 상찬이 형에게 관심도 받지 못하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존감이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와선 아무 상관도 없는 그 누구라도 불러서 내 욕구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도 남자만을, 남자의 몸만을 갈망하다니...


남는 시간, 빠른 번개를 원하는 글을 올렸고 어플을 통해 프로필과 몸 사진을 올리곤 초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올리지 않아 5분도 안돼서 채팅요청이 바로 오고 있었다.


[여기 근처 사시나봐요. 꽤나 가깝네요. 프로필에 올린 몸 사진은 본인 맞으신거죠]


[네.. 사진 같은걸로 거짓말 안해요. 얼굴 안보고 몸만 본다고 하셔서.. 몸 사진만 보내드린거에요. 그리고 제가 5시에 일이 있어서, 볼려면 지금 당장 좀 봤으면 좋겠는데요.]


[많이 하고 싶으셨나보다. 급하시네. ㅋㅋ 음.. 이 동네 CITY 모텔 아시죠. 그 앞에서 본 다음 같이 들어가죠. 왠만하면 제가 그냥 대실 끊고 싶은데.. 헤어지고 나면 그대로 잠수 타는 애들이 워낙 많아서...] 


[네. 현금으로 준비해서 그 쪽으로 갈게요. 저 남색 면바지에 위에는 하얀색 맨투맨 티, 검은색 점퍼 입었습니다]


[네. 전 검은색 슬랙스 바지에 회색 목 폴라티 그리고 위에는 아이보리 색 코트 입었습니다.]


약 15분 후. 


[전 지금 도착했고 모텔 앞이에요.]


[진짜 많이 급하시네. ㅋ ㅋ 저도 거의 다 와가요.]


몇 분 후.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데, 아까 문자로 주고 받았던 회색 목 폴라티에 아이보리 색 코트를 걸친 남자가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 수록


저 얼굴 어디서 분명히 봤는데..


분명히 낯이 익는데......


난 잠시 옆에 주차되어 있는 차 뒤에 숨어 그를 한번 더 쳐다보는데 


그는 아까 전, 상찬이 형 집에서 나와 실랑이를 벌였던 


'희재' 그 사람이었다. 


[아니, 앞 이라면서 어디세요? 여기 면바지에, 하얀색 맨투맨티 입은 사람 안 보이는데.]


[저 죄송한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오늘 좀 힘들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에이 왜 그래요. 멀리서 보니까 혹시 내가 그 쪽 식이 아니에요? 지금 어디서 보고 있죠? 차 안에 있어요? 어차피 서로 잠만 잘 건데.. 빡빡하게 왜 그래요. 저 오늘 진짜 기분 안 좋은데 그 쪽까지 내 기분 망치면 저 진짜 힘듭니다..ㅠ.ㅠ 그리고 나 실제로 보면 꽤 괜찮은데...]


[그런거 아니에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시발. 또 장난질이네. 아깐 니가 당장 보자매.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서둘렀는데..시발 니 같은 새끼 때문에 우리 게이들이 욕 먹는거야. 알어? 너 어디서 뭐하는 새끼인지 모르겠는데 한번만 더 이딴식으로 번개질 하다 걸리면 뒤진다 진짜.]


희재 형이 욕을 내 뱉으며 씩씩거리고는, 온 길을 다시 돌아서 가고 있었다.


희재 형이 완전히 사라지고나서야 차 뒤에서 살며시 나오는데 


‘하아..........’


다시 한 번 한 숨이 내쉬어졌다. 


뭔가 답답한 이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번개요청을 한 거 였는데 하필 번개 상대로 상찬이 형 친구라고 하는 희재 그 사람을 마주할 줄은...



그러고보니, 


왜 그렇게 상찬이 형 주위에


희재 그 사람이 그렇게 맴돌았는지


왜 그렇게 자꾸만 우연처럼 마주치게 됐는지


찜질방 3층에서 희재형이 내려오고 5분 정도 지난 후에 상찬이 형이 왜 똑같은 계단을 내려오게 됐는지 이제야 모든 퍼즐 조각이 하나 둘 씩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럼 그 때 집에 찾아왔었던 일도, 그 시간에 찜질방에 온 것도, 그리고 3층에서 희재 형이 내려온 뒤, 몇 분후에 똑같이 3층에서 상찬이 형이 내려온 것도 그게 다 우연이 아니었단거지..?’


그런 조각들이 하나 하나 맞춰지면서 


상찬이 형이 게이라는 걸 스스로 확신하는 순간, 내 맘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는데..오히려 전에 없던 불안감이 조금씩 엄습해오고 있었다. 


그냥 게이클럽이나, 어디 번개모임 같은데서 마주쳤더라면 내 마음이 오히려 더 편했을까!?


한 지붕 아래서 동거하고 있는 동거인에, 왜 하필 내 친구 희찬이의 형이란 사람이 이쪽인건지.


왠지 절대로 범접해서는 안될 것 같은 이쪽 사람을 맘에 둔 것 같아서..


바보같이.. 그렇게 병.신같이 좋아하면 안될 사람을 또 다시 좋아해버린 것 같아서


이런 나 자신이 죽을만큼 미워지고 있었다. 

 



[다시, 윤상찬 시점]



야간 근무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승현이 녀석이 밤 9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들어오질 않고 있었다.


“야. 승현이 들어올 시간 지났는데 왜 안오냐.”


“아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어디서 학원 쌤들이랑 같이 술 마시나보지.”

   

회사에 도착 후, 일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신경이 쓰였고, 벌써 시간은 열두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혹시 승현이 녀석이 집에 들어왔나 싶어서 희찬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승현이 집에 들어왔어?]


[아니 안 들어 왔는데 왜]


[뭐? 지금 시간이 12시가 넘었는데, 승현이한테 뭐 연락 온 거 없어?]


[아, 몰라 술 계속 마시나보지.]


[넌 걱정도 안되냐? 전화라도 해봐. 니 친구다 임마.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고.]


[뭐 가족?? 언제부터 가족이였다고 그래. 하 진짜. 그렇게 신경 쓰이면 형 니가 안씅한테 전화해보던가.]


[내가 승현이 한테 전화를 왜 해.]


[왜 못해! 가족이라매!!!!! 도대체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안씅 개가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술 마시다 어련히 알아서 집에 잘 들어오겠지. 그러니 신경 끄라고!!]


[넌 승현이 녀석이 널 얼마나 챙기는지 알기는 하냐? 그런데도 그 자식이 열두시가 지나도록 집에 안들어오는데도 고작 한다는 말이 ‘어련히 알아서 집에 잘 들어와??’ ‘신경을 꺼??’ 휴...됐다. 말을 말자.]


[형 너 뭐냐]


[뭐!]


[아까, 집에서도 그렇고, 안씅이랑 둘이 싸웠냐? 아니 싸웠으면 안씅이랑 직접 풀 것이지. 왜 나한테 지랄인데. 그리고 얼마나 개가 날 얼마나 챙기는지 알기나 하냐고? 내가 그 새낄 더 잘 알까. 형이 그 새낄 더 잘 알까. 개랑 한 두달 같이 살았다고, 그리고 둘이 찜질방 하루 같이 다녀왔다고 해서 개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그딴식으로 나한테 말 하지마.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형이 안씅 부모님도 아니면서 이런 걸로 진짜 오바 좀 떨지마. 진심 짜증나려고 그러니까.]



난 더 이상 답장을 하지 못했다.  


순간 정말 많이 화가 났지만 또 희찬이 문자를 보고나니, 그 녀석의 말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근데 난 승현이 자식이 왜 이렇게도 걱정되는거지.


시간이 12시 30분이 지났는데도 아직 승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희찬이의 말에 밤이 늦었는데도 집에 안들어오는 자식을 둔 부모마음이 이런 걸까.


왜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내내 신경이 쓰이는건지.


것보다 희찬이 녀석이랑 아까 문자로 한 바탕 한 것까지..


근심이 근심으로 겹겹이 쌓여 자꾸만 날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다 불현 듯, 오늘 낮에 승현이에게 느닷없이 쏘아붙이던 내가 떠올랐다.


'형 친구가 왔으면 형에게 먼저 물어보든가 해야지. 왜 형 허락도 없이 무턱대고 문을 열어줘. 그리고 싸워도 내가 싸워. 왜 너가 희재한테 화를 내고 목소리 높이고 그러는건데? 어??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냐고!'


...........


승현이 녀석도 나 신경써준답시고, 자고 있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말했을 뿐인데..


느닷없이 희재와 싸우고 있는 답답한 상황에 왜 쓸데없는 일을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드냐며 승현이에게만 너무 크게 나무라기만 한 것 같아 걱정이 앞서고 있었다. 


'많이 서운했을꺼야... 그래...많이 서운했겠지..'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연필로 서류를 체크하다 딴 생각에 좀 세게 짓눌렸는지 갑자기 연필심 끝이 ‘뚝’ 하고 부러졌다.


..


그렇게 부러진 연필심을 바라보는데 순간, 무슨 안 좋은 일이 꼭 일어날 것만 같아 뭔가 불안한 마음에 도무지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윤대리님, 휴게시간 입니더!! 마 오늘도 한 사발 때릴랍니꺼”


“오늘은 괜찮아. 너 배고픔 챙겨 먹어라. 그리고 정우야. 나 잠깐 밖에 좀 나갔다 올게”


“와예. 아니 이 시간에 어딜 가실라고 그랍니꺼”


“아.. 급한 일이 좀 있어서”


“(날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왐마. 이 새벽 시간에예? 알겠심더. 퍼뜩 다녀오이소.”


3시부터 4시까지 주어진 휴게시간.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회사를 나오긴 했는데 내가 어딜가려고 이 시간에 이렇게 무작정 나온걸까.


이 시간엔 술집도 거의 다 문 닫았을텐데. 


난 휴대폰을 집어 들어 카카오톡을 켜선 


승현이와의 톡방에 들어가서


[너 도대체 지금 어디야]


라고 문자를 썼다가 다 지우고 


[지금 새벽 3시가 넘었는데 집에는 들어온거야? 아니면, 다른데서 자고 있는거야??]


라고 문자를 또 썼다가 지워버리고.


"아니, 늦으면 늦는다, 밖에서 자기로 해서 오늘은 집에 안들어 간다. 이거 연락 한 번 하는게 그렇게 힘든건가 (화가 난 마음에 씩씩거리며)"


“하...안승현, 진짜 거 되게 신경 쓰이게 하네.”


조금이라도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고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사람도 거닐지 않는 길 위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잎들이 옅게 부는 바람에 바스락 소리를 내며 조금씩 일렁이고 있었고,


그 길 위에 홀로 서서 멍하니 그 녀석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고 


그렇게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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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써오면서 중간에 3년 정도 공백기가 있긴 했지만, 2017년도부터 시티 소설방에서 글을 올리고 있는데요.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아봤던 건, 제 연재소설 중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직속상사 김대리' 를 통해 추천 175개를 받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끼는 소설이기도 하구요. 


근데 이게 무슨 일이죠.. 친구 동생 녀석과의 동거 9화 글에 대해 추천을 189분이나 넘게 해주셨네요;; 처음 겪는 일이라; 기쁘면서도 조금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두서 없이 말이 길어지는데.. 재미있게 봐 주시고, 많은 분들이 추천 눌러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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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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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점점더 흥미진진해지네요
오늘도 읽다보니 금방끝났네요
감사합니다 샹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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