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중설 20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본문
제20화 키스의 대가 (2)
경찬이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또 쳐다봤다.
벌써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재은이가 오늘까지 휴가던가?”
경찬이 호식에게 물었다.
“아닐걸? 하루만 휴가 냈던 거로 아는데?”
“그래? 생전 지각 한 번 안 하던 놈이 오늘은 많이 늦네?”
“어젯밤까지 신나게 놀았나 보지 뭐. 재은이가 이제야 좀 사람 같네. 그동안 맨날 나만 지각해서 사장님께 찍혔잖냐. 너도 가끔 지각 좀 하고 살아라. 사람이 되어서 어째서 맨날 지각 한 번을 안 하냐?”
지각 대장 호식은 재은이 지각을 하자 오히려 좋아했다.
호식이 말하는 중에 경찬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벌떡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야, 넌 사람 말하는 중에 어디 가냐?”
호식이 구시렁거렸지만 경찬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경찬이 재은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이상하게 전화가 꺼져 있었다.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경찬이 이번에는 지은이에게 문자를 했다.
- 지은아, 경찬이 아저씨야. 재은이가 아침에 출근을 안 했는데 집에 무슨 일 있어? 전화도 꺼져 있네.
수업 중인지 한참이 지나도 문자 확인을 하지 않았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다행히 아직 양 사장이 나오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오면 지각한 티는 내지 않아도 될 텐데.
마침 그때 차가 한 대 들어와서 경찬은 잠시 재은이 생각을 잊고 정비에 몰두했다. 간단한 수리라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고객이 가고 난 다음 사무실로 들어가니 시계가 정확히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니 지은이 문자 확인은 한 것 같은데 아직 답장은 보내오지 않았다.
경찬은 휴대전화를 보며 지은이에게 전화를 해도 될지 생각했다. 학교 수업시간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지금 열 시 정각이니 아마 쉬는 시간이지 않을까.
그런 경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때마침 지은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찬이 얼른 받았다.
“응, 지은아.”
“아저씨. 흑흑흑.”
지은이가 전화를 해 놓고 다짜고짜 울음부터 터뜨렸다. 경찬은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저씨. 오빠가, 어제,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뭐야?”
경찬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사무실에 있던 호식과 김 양이 놀라서 경찬을 쳐다보았다.
“상태가 어떤데? 많이 다쳤어?”
“몰라요. 아빠가 지금 의사 선생님이랑 얘기하는 중이에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어요. 우리 오빠 죽지는 않겠죠?”
수화기 너머로 지은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 소리는 하는 게 아니야. 어느 병원이야? 내가 지금 당장 가마.”
어쩐지 지각 한 번 안 하던 녀석이 늦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경찬이 얼른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재은이 교통사고 당했대. 나 지금 거기 가본다.”
****
지은이가 얘기해준 병원으로 경찬이 화급히 달려갔다.
‘1103호라고 했지? 1103호.’
병원 엘리베이터가 왜 이리 더딘지 모르겠다. 층 하나 오르는 데 십 분씩은 걸리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 문 옆에 표시되는 층수를 노려보던 경찬이 엘리베이터 벽면을 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아, 씨벌. 엄청 느리네.”
인상도 살벌한 경찬이 욕설까지 내뱉자 옆에 섰던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구석으로 자리를 피했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드디어 11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경찬이 잽싸게 내렸다. 그리고는 재은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서 병실 문을 벌컥 열었다.
6인실 병실의 한쪽 구석에 머리와 손, 다리에 붕대를 감은 재은이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었다.
“재은아!”
경찬이 달려가자 재은이 앞에 앉아 있던 지은이와 재은이 아버지가 일어났다.
“자네 왔는가?”
“안녕하세요, 아버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 혀… 형, 왔어요?”
다행히 재은은 의식이 있었다. 재은이 목에 한 붕대 때문에 머리를 돌릴 수 없는지 눈만 겨우 옆으로 돌려 경찬을 바라보았다. 유리 파편이라도 박혔던 것인지 얼굴과 손등, 팔 등에도 상처가 나서 치료한 흔적이 보였다.
“인마, 어떻게 된 거야?”
“아, 전…, 괜찮아요. 다행히 골절된 데도 없고….”
재은이 웃으며 얘기하려 했지만 지은이가 재은이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골절된 데가 없긴? 뼈에 금이 갔으면 골절이나 마찬가지 아니야?”
“뭐? 뼈에 금이 갔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야?”
“그게…. 여행 다녀오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났어요. 도로에서 교통사고는 흔히 나잖아요.”
뭔가 얼버무리려는 기색이었다. 재은이 말이 미심쩍은 경찬이 지은이를 바라봤다.
“친구랑 같이 여행을 다녀오다가 뒤차가 들이박았대요.”
“뭐 뒤 차가 들이박아? 그 자식 어디 있어? 그런 자식은 콩밥 좀 먹어야 해.”
“그런데 뺑소니 차량이라 찾을 수가 없대요. 목격자도 없고….”
지은이가 억울하다는 듯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경찬이 흥분하자 재은이 아버지가 오히려 경찬을 다독였다.
“그래도 차가 전복된 것 치곤 이만하길 다행이네. 너무 염려하지 말게. 뺑소니 차량은 경찰에 말해 놨으니 알아서 잡아주겠지.”
“안 그래도 한 달쯤 푹 쉬고 싶었는데 차라리 잘됐어요. 아버지 말씀처럼 형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잘생긴 얼굴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흉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싶어 경찬은 재은의 얼굴을 바라보는 내내 마음이 쓰렸다.
“아, 이제 좀 쉬어야겠어요. 다들 좀 나가주세요. 형은 사장님께 잘 좀 얘기해주세요. 본의 아니게 한 달이나 일을 빠지게 되어서 죄송하다고요. 설마 자르시지는 않겠죠?”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얘기해 놓을 테니까. 양 사장님이 잔소리가 좀 심해서 그렇지, 사람은 좋잖아.”
“하하하, 맞아요. 제가 괜한 소릴 했네요. 자, 다들 빨리 나가주세요. 어서요.”
재은이가 나가라고 하도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경찬, 지은, 아버지는 모두 병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원무과에서 수납 관련해서 말할 게 있다고 해서 아버지는 그쪽으로 가고 경찬과 지은이만 남았다.
“너 학교는 어떡하고 여기 있어?”
경찬이 자판기에서 음료수 두 개를 뽑으며 물었다.
“지금 학교가 문제예요? 오빠가 뺑소니 사고를 당했는데. 학교에는 오늘 하루 결석계 냈어요. 아 씨. 그 뺑소니 자식 잡아야 하는데 잡을 수 있을까요?”
경찬이 건네주는 음료수를 받으며 지은이가 물었다.
뺑소니라면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런데 어디서 사고가 난 거야?”
“그게 이상해요. 나한테는 분명히 전북 고창으로 꽃구경 갔다 온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사고가 난 장소는 뜻밖에 파주 세하리예요.”
“뭐? 세하리? 거기는 왜 갔는데?”
“오빠 말로는 거기 맛집이 있어서 갔다는데. 아니 맛집에서 저녁을 먹었으면 집으로 와야지 왜 밤 12시가 넘도록 거기서 어슬렁거리냐고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밤 12시가 넘도록 어슬렁거리다니?”
경찬이 의아한 기색으로 쳐다보았다.
“경찰이 그러는데 사고가 난 시각이 밤 12시 30분 경이었대요.”
“뭐야? 그럼 신고는 누가 한 거야?”
“당시 사고가 난 거리에 있던 일반인 중 한 사람이 했대요. 마침 신고를 즉시 해서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고요. 그런데 뭔가 좀 미스테리 해요.”
지은이 음료수를 홀짝거리면서 말했다.
세하리. 세하리라….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경찬이 뭔가 떠올라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러고 보니 세하리라면 폭주족들이 종종 레이싱을 벌이는 곳 아닌가?
경찬은 레이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하는 일이 차와 관련된 일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듣는 말들이 많았다.
레이싱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민재의 람보르**가 떠올랐다. 원래 그런 수퍼카들이 레이싱을 벌이니까.
“그런데 같이 갔다는 친구는 누구야? 그 사람도 다쳤을 거 아니야?”
“몰라요. 그 사람이 운전을 한 것 같은데 오빠가 얘기를 안 해줘요.”
지은이 말을 듣자 확신이 갔다. 그 외제차 새끼가 재은이를 꼬드겨 레이싱에 데려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사고가 나자 자신은 뒤로 쏙 숨어버렸겠지. 비겁한 자식. 그렇게 안 봤는데…! 그 자식 이름이 뭐였더라?
경찬은 지갑에서 현금 10만원을 꺼내 지은이 손에 쥐여주었다.
“급하게 오느라 아무것도 못 사 왔어. 이걸로 과일하고 음료수 좀 사다가 재은이랑 같이 먹어.”
“안 주셔도 돼요. 아버지나 오빠가 알면 저 혼나요.”
“너 주는 거 아니니 받아도 돼. 내가 나가서 좀 사다 주면 좋겠지만 지금 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지은이와 헤어진 뒤 경찬은 공업소에 전화를 해서 민재의 이름을 알아냈다.
하민재라…. 분명히 이 병원에 있을 텐데.
경찬이 원무과에 가서 면회 왔다면서 하민재 이름을 댔다.
“하민재씨요? 아, 여기 있네요. 6층 특3 호실이네요.”
정말 있었다. 내 이 자식을…!
경찬이 분노를 애써 삼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내렸다. 특실만 있는 층이라 그런지 11층보다 훨씬 조용하고 깔끔했다.
<특3호실. 환자명: 하민재> 라고 쓰인 명패가 보이자 경찬이 문을 벌컥 열었다.
재은이 누워있던 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고급스러운 병실에 민재가 다리와 목에 깁스를 한 채 수액을 맞으며 누워있었다. 침대 옆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부인이 앉아서 민재에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건네는 중이었다.
“너 이 새끼. 대체 재은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경찬이 다짜고짜 병실로 들어가 누워있는 민재의 환자복 멱살을 잡았다.
“어머나. 당신 누구예요? 누구기에 여기 함부로 들어온 거예요?”
민재 어머니가 놀라며 소리 질렀다.
“야 이 새끼야. 같이 사고 난 주제에 너는 특실에서 특별대우 받으면서 누워있고, 우리 재은이는 냄새나는 일반 병실에 집어넣고 모른 척하냐?”
경찬이 민재의 멱살을 거칠게 놓았다. 하지만 민재는 멱살을 잡힌 것보다 경찬의 말에 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재은이가 어디 있다고?”
민재가 다급하게 되물었다.
“하, 이 자식 봐라? 재은이가 어디 있는 줄 몰라? 네가 있는 이 병원 1103호에 누워있다. 다른 환자 5명이랑 같이.”
“그, 그럴 리가. 재은이는 다친 데가 별로 없어서 바로 퇴원했다고 했는데….”
“뭐? 네 꼴을 봐, 새끼야. 너랑 똑같이 사고가 났는데 재은이가 어떻게 무사해? 너보다 최소한 한 군데는 붕대를 더 감고 있다고.”
민재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애초에 재은이 데리고 세하리에 간 게 네놈 아니야? 폭주족들이 득실대는 세하리에, 그것도 밤12시에 재은이가 거길 왜 가? 미쳤다고 갔겠어?”
“당신, 얼른 나가지 못해요? 사람 부를 거예요!”
민재 어머니가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너는 좀 다를 줄 알았더니 너도 똑같은 놈이었어. 나쁜 새끼.”
경찬이 나가려다 문 앞에 서서 민재를 바라보았다.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면 너는 정말 내 손에 죽는다. 명심해.”
경찬이 나가며 병실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원, 저렇게 무례한 사람을 봤나. 저 사람 아는 사람이니? 어떻게 아는 사이야?”
민재 어머니가 아직도 놀란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며 민재에게 물었다. 하지만 민재는 멍하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재은이가 이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konan66" data-toggle="dropdown" title="GTman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GTman</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