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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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전화가 왔다.
' ... 여보세요? "
아무말도 없이 빗줄기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석이는 아무말 없이 그대로 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 영우냐?"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서 흘러나온다.
지금쯤이면 하와이에 도착하고도 남은 시간이었다.
석이가 걱정스레 묻는다.
"... 왜에?"
"....어떻게....."
그러나 영우는 울기만 할뿐. 석이는오랫동안 삭혀 두었던 감정을 누르려 애를 쓴다. 하지만 자꾸 마음이 머리를 앞선다.
".....왜..에... 무슨 일인데?"
"... 너 없인 안될거 같아..."
그때 영우가 그렇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
"..이석이. 나도 너를 좋아해... 많이."
석이는 전화를 바로 끊었다.
그리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린다. 얼굴에 빨간 자국이 남을정도까지. 그러자 눈물이 흐른다. 이내 무릎을 꿇고는 오열을 했다.
그리고 다시 영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너 미쳤어? 그러지마...
.. 갑자기 왜그래 너?"
"..갑자기 아니야...
..나도 너 좋아한지 오래됐어..."
"... 남영우!! 정신차려!!"
"..어떻게든 모른척하고 싶었거든..
.. 니마음.. 내마음...
.. 근데 안될것 같아.."
".. 안돼!! 하지마!!'
".. 내가 왜 몰랐겠냐? 니가 나 좋아하는거..
.. 다 알았다고.. 알았는데 모른척 했던거라고..
... 근데 이제 모른척 안할려고.. 더이상.."
".. 말했다.. 하지말라고..."
석이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디든 가야할것만 같았다.
..........
"... 아주머니.. 진정좀 하세요..."
".. 내가 진정이 되겠냐고!! 석이가 전염시켰지?
.. 그러지 않고서 신혼여행갔다와서 하는 소리가..
.. 뭐? 석이를 사랑해? 결혼을 물러?"
"..제 동생이 무슨 전엄을 시켜요?
.. 그게 전염이 되는거예요?"
때마침, 준이가 집으로 도착한다.
".. 너!! 너도 게이냐? "
멱살이 붙잡힌채로 이리저리 흔들린다.
".. 너도 게이지? 왜? 이집식구들은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왜 안하는건데? 왜 안해서 내 아들 앞길 다 망쳐 놓냐고!!!"
".. 아주머니.. 진정좀 하시구요..."
소란과 혼란이 혼재한다. 드라마 보면 어느순간 주인공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던 때가 있는데, 지금 꼭 준이가 그랬다.
".. 석이는?"
".. 연락안돼... 전화기도 꺼놓고..."
"... 영우어머님..."
이때 준이 아버지가 못참고 한마디를 한다.
".. 제 아들이 결혼을 안하는거하고,
영우가 석이를 좋아해서 결혼을 안하는게..
.. 도대체 무슨 논리입니까?"
".. 논리요? 논리? 그게 지금 중요해요?
.. 석이 지금 어디있어요? "
영우 엄마는 미친사람처럼 목놓아 소리를 질렀다. 그때 뒤늦게 영우가 나타났다. 영우는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의 어머니를 데리고 나갔다. 준이 엄마는 안방에서 조용히 울고 있었다.
영우 엄마가 떠나자, 집안은 소름끼치게 조용해졌다. 모두들 섣불리 어떤 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모두 가만히 있었다.
".. 아빠... 아직 석이 이야기를 들어 본것도 아니고.."
".. 아닌데.. 왜 숨어..."
준이아버지는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고, 답답했는지 집을 나가려는데, 영우가 어느새 문앞에 서있었다.
".. 아버님...드릴 말씀이..."
영우는 당당해보였다. 준이가 보기엔 그랬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는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준이는 순간 영우가 부러웠다.
영우는 할말을 모조리 쏟아냈다. 마치 석이를 자신에게 달라고 조르는 예비사위같이 보였다. 모든걸 이미 각오한듯 그 눈매가 다부져 보였다.
그렇게 영우가 돌아가고, 준이는 현이와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석이의 전화는 여전히 꺼져있었다. 현이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마시는데, 현이에게 연락이 온다.
".. 형... 미안.. 나 먼저.. 가봐야 될거 같아.."
".. 효진씨야?"
".어... 아 맞다!! 아버지가 형 회사에 다니신데..
.. 이름이 뭐더라? 유...."
마침 성밖에 생각이 안나는 현이를 기다리다 못해 준이가 말을 한다.
".. 그래.. 너라도 빨리 가야지..
.. 응원한다.. 이현이!!"
".. 근데... "
".. 왜?"
".. 아니야...."
".. 잘 되가고 있는거지?"
현이가 잠시 망설인다.
".. 유부녀야..."
".. 뭐?"
"... 아니.. 근데.. 이혼 할거 같아..
.. 남편이 쓰레기거든...여자를 때리더라고.."
게이둘에 이혼녀를 사랑하는놈까지. 엄마아빠를 생각하니 준이의 마음이 저린다.
"...내가 오늘 가서 죽여버릴꺼야.. 그.새.끼.."
준이는 걱정이 앞선다.
"..현아.. 일단 증거를 많이 확보해놔..
.. 감정적으로 움직이면, 나중에 소송할때..
... 불리해질수도 있으니까..."
그 말들을 들은 현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리를 떠났다.
준이는 혼자서 한참을 술을 마신다.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것이다. 절대로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에하나 자신까지 커밍아웃을 해버린다면,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 얼굴을 볼수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려는데, 영우에게 연락이 왔다. 준이가 혼자 있는걸 알자, 술 한잔 하자고 했다. 현이는 까칠해서 천천히 친해지고 싶단다.
".. 죄송합니다.. 형..이런 소란을 만들어서...
.. 저도 엄마가 석이 집까지 찾아가실줄은 몰랐어요.."
준이는 복잡한 마음이 쉽게 정리가 되지 않는다.
".. 언제 부터야? 너희들?"
".. 모르겠어요.. 그냥 어느순간 부터는...
.. 그랬던것 같아요.."
".. 대단하다.. 진짜..."
".. 근데 형은 별로 안놀라시는거 같네요.."
".. 어?"
".. 제 1호 편으로 믿어도 되는거죠?"
" 어? 어.. 그...렇...지..."
".. 감사합니다.."
영우가 굳이 테이블 옆으로 가서 넙죽 절까지 한다. 이에 준이가 부담스러워서 손사래를 쳐본다.
".. 쉽지 않을거 알고 있습니다..
석이는 저보고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 제발 그러지 말라고.. "
고개를 숙이며 무릎까지 꿇고 있던 영우가 준이를 바라보면서 비장하게 말한다.
".. 근데요.. 못하겠어요..
.. 제 마음 속이면서까지.. 사는거..
.. 저 알고 있었어요.. 석이가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거..
.. 근데 모른척 했어요.. 나만 살겠다고.."
준이는 불편하다. 얼른 일어나줬으면 좋겠다. 자꾸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있었다.
".. 저 진짜 석이 행복하게 해줄 자신 있습니다.
.. 저희도 똑같은 사람이예요..
.. 다만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인거지..."
".. 어.. 그래.. 알아.. 니마음..."
"... 네? 아세요?"
".. 아니.. 알았으니꺼..빨리 일어나..
.. 나는 니편이니까....빨리. ..제발좀.."
영우가 그제서야 일어난다. 이런 듬직한 놈을 봤나. 결심이 보통이 아니다. 갑자기 석이가 부러운 이유는 또 무엇인지. 한두마디 문장으로는 도저히 이 심정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한편, 그시각 유부장은 밥을 먹을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괜히 베란다에서 밖을 봤다가, 인기척에 현관문을 열었다가. 시간은 12시가 넘어가는데, 준이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각시가 되가지고.. 이거.. 참.."
순간 튀어나온 혼잣말에 유부장도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정신을 깨워본다. 왜 그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밥은 왜 안먹고 준이를 기다리는지. 무엇보다 왜 기다리는지. 다 큰 어른을 . 각자 자기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고 그럴텐데, 정 못참겠으면 전화나 문자라도 할일이지 그건 또 왜 못하는지.
그때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유부장은 급하게 불을 끄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자는척을 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준이는 조금 비틀거리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씻을 준비를 한다. 집안이 조용하므로 조심조심 걸으려 노력했다.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샤워를 하는데, 취하고 싶던 마음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술이 깨버린다. 샤워하고 그냥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자고 싶었는데.
그 바람에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어서 거실에서 혼자 홀짝이기 시작했다. 유부장은 방에서 준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관건은 언제 나갈지였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연스러울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고서 한참을 있다가, 겨우 밖으로 나간다.
예상대로 준이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안방을 나온 유부장과 눈이 마주치자, 준이가 급하게 멋쩍어서 어쩔줄을 모른다.
".. 안 주무셨어요?"
".. 어.. 자다가 깼네.."
".. 죄송해요... 제가 시끄럽게 했죠?"
안주도 없이 깡술을 마시고 있는 준이를 보면서 무슨일이 있구나 짐작이 갔던 유부장이 자연스레 주방으로 향한다.
".. 무슨일있어?"
".. 아니요... 그냥..."
".. 안주도 없이..."
유부장은 안주거리를 만든다. 준이는 가시방석이다. 유부장에게 했던 일들이 계속해서 머리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앞으로도 쭉 불편할것만 같았다.
잠시후, 유부장이 뜨끈한 오뎅탕을 만들어서 탁자위에 놓는다. 그리고 가져온 술잔을 내려 놓는다.
"... 우리 사모님께서.. 무슨 일이 있으셨나?"
준이가 웃는다. 그 난리를 쳤는데도 계속 농담을 하는 유부장이 고마웠다.
".. 잘 먹겠습니다..."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어떤 고민거리도 털어 놓지 않았는데,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거짓말처럼 잠시뿐겠지만, 녹아 없어지는것 같아서 신기했다.
".. 괜찮아... 나.."
".. 네?"
"..어제 니 술주정...그거.. 다.... 괜찮다고.."
"..죄송합니다.. 진짜.."
".. 그러니까.. 어깨 좀 펴라...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말해도 되고..."
유부장이 준이의 눈치를 살짝 살핀다.
".. 뭐.. 내가 너의 실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놀래서 쳐다보는 준이와 눈치를 살폈던 유부장의 눈이 마주친다.
".. 그러니까.. 편하게 하라고...
.. 너.. 마음 편할날이 많이 없었잖아..."
그렇게 유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준이의 말이 뛰따랐다.
"... 막내 동생이 게이래요..."
준이는 금새 울먹거렸다.
".. 어?"
"..제가 영향을 준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 니가 무슨 영향을 줘?
.. 전염병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 근데.. 요..
.. 한편으로는 부러웠어요..
.. 둘이 절절하게 사랑하는건 어떤 느낌일까?"
".. 어?"
"... 동생 애인이 어렷을적부터 붙어 다니던..
.. 가장 친한 친구더라구요..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터트렸어요.. 제 동생 사랑한다고.. 자기 한테 달라고.. 무릎까지 꿇더라구요.."
준이는 방금전 영우의 비장한 결심을 되새기고 있었다.
"..영우가 너무 잘컸어... 남자답게.."
".. 왜 ? 동생 애인 뺏고 싶냐?"
유부장의 농담에 준이의 진지함이 풀어진다.
".. 아니요.. 그런게 아니라..."
".. 내가 왜 이런게 괜찮은지 이상하지?
.. 왜 게이들 찾아다면서..
.. 이상한거나 묻고 말이야.."
준이는 듣고만 있다. 숨소리까지 죽인채로.
".. 너만했지... 살아있으면.."
"..나중에 아들 핸드폰을 보는데, 내 나이때쯤 되는 사람 하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은게 있더라고..
그 미소가 하도 행복해보여서, 질투까지 나더라고..
나한테는 한번도 그렇게 밝게 웃어준적이 없었거든..
왜 다 늙은 아저씨를 좋아하는지..
무슨 맘인지... 한번 알고 싶더라.."
"그래서.. 너 처음 만난날에 아들 애인이었던 놈을 찾아갔어..결혼도 했고.. 멀쩡하더라고..
근데.. 네 아들을 모른척하더라고.."
".. 우리 아들이 이런 사랑을 하고 있었구나...
.. 가슴이 찢어지더라고..."
준이는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유부장은 작정이나 한듯이 그동안 담아왔던 회한의 말들을 모두 쏟아낸다.
유부장의 고개가 푹 꺼진다. 그리고 새어나오는 진실.
"..5년전 무더운 여름날이었어...
...아들방에 갔는데.. 컴퓨터가 켜져있어서..
.. 화면을 봤는데... 죄다 아저씨들 사진이 있더라고..
..그것도 ...나체 사진들이..."
유부장이 소주를 마시더니, 괴로운지 고개를 숙인다.
".. 그래서 아들을 불러놓고.. 한 소리를 하는데..
.. 대뜸 그러더라..
.. 자기는 게이래.. 아저씨들을 좋아하는.."
이번엔 슬프게 유부장이 웃으며 말한다.
".. 그런게 가능하냐고 물었어?
... 세상에 그런게 어디 있냐고!!
.. 그랬더니, 그러고 뛰쳐 나가더라고..."
".. 사람이 살다보면, 느낌이 싸해질때가 있거든..
.. 그때가 그랬어... 막 뒤쫓아 가는데...
.. 열심히도 뛰더라...무단횡단까지 하면서...
그때를 회상하면서 눈을 작게 부릅뜬다.
."...갔어.. 그렇게.. 영영...내가 보는 앞에서..."
".. 뭐.. 내가 죽인거나 다름없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유부장의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건 기분 탓일까. 준이는 입을 더 앙 당문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던 촛점을 준이에게로 향한다.
".. 어떻게...너만.. 억울하진 않지? 인생?"
흔들리는 눈빛과 금방이라도 주저 앉아버릴듯한 유부장을 보면서 안아주고, 안기고 싶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였다.
"... 근데...말이야......
내 아들이 어떤 놈 이었는지 모르고 죽는게
더 억울할거 같더라, 그래서...많이 당황하기는 하시겠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으실꺼야..."
"... 그럴까요?"
"... 나봐...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
... 많이 좋아지지 않았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준이에게 유부장이 웃으며 말한다.
".. 사모님... 힘 좀 내시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준이도 그제서야 미소가 조금씩 번진다.
"... 서방님이 있잖습니까!! 누가 죽는것도 아니잖아요?"
............
".. 자! 인사보고에 다 들어 갑니다! 이번주 주말에 어떻게 해서든 건강검진 받으시고, 받았다고 제출하세요!!"
인사부에서, 사람이 직접 나와서 각 팀들을 돌아다니며 소리쳤다.
".. 그나저나, 우리 준이 사모님은 여자친구 있어요?"
팀내, 남주임이 와서 묻는다.
".. 아.. 네.. 아직..."
"... 부장님이 계신데... 누굴 만날 생각을 해요?"
".. 아.. 그렇지..."
".. 주임님.. 그리고 사적인 질문 좀 하지마세요.."
장난스런 말들과 농담들이 오간다. 유부장의 공식적인 오피스 와이프가 정말 되어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모두들 그렇게 믿는것 같았다.
최사장과의 인연도 비슷했다. 누군가 준이의 아버지와 나잇대가 똑같다면서, 장난으로 시작된 말이 결국 지금의 관계에 이르렀던것이다.
[ 오늘 저녁은 무엇이옵니까? 각시님?]
이내, 다시 각시란 문자를 지웠다가,
사모님으로 바꾸는데, 유부장에게 전화가 온다.
효진이다.
"... 어... 딸..."
"... 아빠..."
"... 잘 지내지?"
".. 어.. 나... 잘 지내..."
머뭇거림이 느껴져서 유부장이 말을 다시 건다.
".. 무슨 일 있어?"
효진은 다시 이혼한다는 말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그 사람과는 정말 진심이라고.
이번엔 실패 안할 자신이 있다고.
".. 아니.. 엄마가... 찾아 갈지도 몰라..."
".. 어? 왜? "
".. 아니.. 별건 아니고.. 아무튼 너무 당황하지는 말고.."
".. 어.. 그래..."
전화를 끊는데, 문자가 바로 날라온다.
[ 서방님.. 오늘 저녁메뉴는 정하셨습니까?]
준이였다.
[ 낚지 볶음 가능하겠습니까? 사모님?]
...................
말끔해진 집에 앉아있는 미자.
1년전에 왔을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분위기에 넋을 놓고 있다.
"띠리리"
그때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웃음보따리가 터지면서 유부장과 준이가 들어온다.
미자를 발견하고 경직된건 오히려 유부장이었다. 효진이 미리 귓뜸을 해줬지만 오늘일줄은 몰랐다.
"... 당신이.."
말을 쉽게 잇지 못하는 유부장. 얼떨결에 준이를 소개한다.
"...여기...는.. 우리 회사 직원인데..
... 갈때가 아직 마땅치 않아서..
..당분간... 우리집에 좀 있으라고 했어.."
구구절절 변명하는 학생처럼, 유부장이 미자앞에서 구겨진다. 잘못써서 구기고 던져진 종이조각처럼. 그 바람에 준이도 힘겹게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이..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미자가 말한다.
".. 안녕하세요.."
차디찬 기왓장 모서리에 찍히는 서늘한 목소리.
그렇지 않아도 어쩔줄을 모르는 준이의 가슴속 깊이 단숨에 꽂힌다.
".. 그럼.. 이야기 나누세요..
.. 전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확 뛰쳐나가려는데, 유부장이 준이의 소매를 붙잡는다.
"..어디가.. 이시간에.. 그냥 방에 들어가있어.."
준이는 마지 못해 방안에 갇혔다.
미자는 승만의 변화가 놀랍다. 성진이가 사고로 죽고 5년동안 그가 다시 웃기를 기다렸었다. 정당한 이유가 있었기에 술을 마시지 말란 말도 못했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이 없었다.
"... 좀 바뀐거 같다?"
"... 응? "
"... 죽을날만 받아놓은 사람처럼 굴더니.."
"...밥은 뭇나?"
어색해져서 금새 말꼬리를 다른쪽으로 틀어버린다.
"... 시간이 몇신데..."
"... 아.... 뭐 좀 마실래?"
"... 물이나 좀 줘..."
유부장은 준이가 만들어놓은 보리차를 물컵에 따라 낸다.
미자는 보리차를 한모금 마신다.
"... 효진이 이혼하고 싶데...."
".. 왜? 또?"
유부장은 효진과의 통화를 곱씹는다. 그리고 머뭇거리던 떨리는 음성을 기억해낸다.
그러나 곧바로 미자가 입을 연다.
"...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데.."
"... 뭐?"
".. 이현이라고.. 대기업 다닌데.."
"..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사람때문에 이혼을 하겠다는거야?"
그때, 미자의 감정이 급격히 흔들린다.
"... 많이 맞았더라고.. ..나도 몰랐어...
.... 진짜.. 우리딸.. 왜 그런 놈들만 만나는지.."
"..이런 개.새끼를 내가 확..."
유부장이 소리쳤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이번엔 진짜래... 정말 자기를 아껴준데.."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부실것처럼 유부장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 그 새.끼 지금 어딨어? 내가 죽여버릴꺼야.."
".. 당신 이렇게 나올까봐..말 못했데.."
유부장은 씩씩대면서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한다.
"... 그냥 좀 놔두래..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
.. 증거 사진하고 다 남겨놨데.."
".. 자기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유부장이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하고, 울분을 터트린다.
" 그 지금 만나는 남자가 옆에서 많이 도와준데..
.. 그 남자도 대기업 다니고.. 그 남자 형도 당신 회사에 다닌다던데..얼마전에 미국에서 들어왔고.."
"..대기업 다니면, 사람이 다 좋은거야?
.. 또 쓰레기 같은 놈이면 어떡해?
.. 좀 신중할수 없는건가?"
" ... 한번만 믿어달래....이번엔..."
그때 번뜩 유부장의 뇌리에 준이가 스친다.
".. 그 남자 이름이 뭔데?"
".. 이현이..."
"... 아니... 그 형 말이야.. 우리 회사에 다닌다는.."
"... 뭐라더라.. 되게 비슷했는데...
..아! 맞다! 이준이.. 왜? 당신 알아?"
그때, 준이가 방에서 뛰쳐 나왔다.
".. 죄송합니다... 저.. 급한 일이 생겨서.."
유부장은 우두커니 준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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