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중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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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경찬 



민재의 람보르**는 그다음 날에도 재은이 일하는 공업소에 나타났다. 시각은 항상 해 질 무렵이었다.


“오늘은 또 뭡니까?”


당연히 재은의 입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민재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말했다.


“부동액 좀 넣어줘.”


민재의 천연덕스런 말에 재은은 결국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강남구 사시는 분이 부동액 넣으러 강북 끝까지 옵니까?”


민재가 선글라스를 콧등 위로 살짝 내리며 재은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영광인 거 아닌가? 부동액 넣으러 강남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람, 나 말고 또 있어?”


재은은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민재가 사는 곳에서 여기까지는 차가 안 막혀도 한 시간 거리지만 민재가 오는 시각이 퇴근 시간 때라 차가 안 막힐 수가 없다. 차가 막히면 족히 두 시간도 걸리는 길을, 이런 고급 외제차를 모는 사람이 고작 공짜 부동액이나 넣겠다고 온다고? 

재은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경찬이 사무실 유리문 밖으로 람보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재은은 엔진오일이라도 가는 건지 차량 밑에 들어가 있었다.


“저 새끼 요즘 맨날 오네?”


경찬의 말에 호식이 밖을 쳐다보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벌써 4일째야. 저놈 올 때마다 재은이 등골을 빼먹고 있어. 하여튼 간에 있는 새끼들이 더 나쁘다니까.”


경찬이 호식을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저 새끼 올 때마다 공짜로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요구한다니까. 어제는 브레이크오일을 갈아 달라더니 오늘은 엔진오일을 갈아 달라고 했대. 다음 주에는 또 뭘 해달라고 올지….”


호식의 말에 경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그걸 여태 다 공짜로 해줬단 말이야?”


호식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1,678만원 짜리 청구서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뭐. 소소한 비용이긴 하지만 그것도 쌓이면 제법 될 텐데. 그걸 저 순둥이 자식이 자기 월급에서 까면서 해주고 있다니까.”


호식의 말에 경찬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재은 저 녀석, 아직 옷 한번 제대로 사 입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월급을 받으면 다들 휴대폰을 바꾸네, 클럽을 가네, 술을 마시네 하며 기분을 내었지만 재은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이 하도 답답해서 한번은 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냐고 물었다. 젊음도 한때인데 자신을 혹사하는 재은이 안타까워서였다. 

그때 재은은 겸연쩍게 웃으며 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입학금, 등록금을 다 모으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며….


지금도 그때 재은이 짓던 어색한 미소만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아렸다. 재은이 생활력 강한 녀석이라는 건 진즉부터 알고 있었으나 그토록 아등바등 사는지는 몰랐다. 녀석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는 있지만 약값이 더 들어간다는 사실도 그때야 알았다. 


그날 이후로 경찬은 눈치껏 재은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호식이 재은에게 술을 사라고 하거나 돈을 빌리려고 하면 경찬이 알아서 미리 차단하고, 월급이 밀린다 싶으면 사장에게 자신은 나중에 받아도 되니 재은부터 주라고 부탁했다. 


명절에는 과일 상자도 보내고, 여자친구 생일은 못 챙겨도 재은네 식구들 생일은 잊지 않고 꼭 챙겼다. 그 바람에 여자친구와 길거리에서 대판 싸우고 결국 헤어지기까지 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재은이 부담스러워하면 공짜로 생긴 것이라며 거짓말을 둘러댔다. 재은을 누르는 생활의 무게를 할 수만 있다면 대신 져주고 싶었다.


그런 재은의 피 같은 월급을 외제차 새끼가 야금야금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니 경찬은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저 새끼 밑으로 들어간 비용이 얼마야?”


경찬의 물음에 호식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어제오늘 비용이 제법 나왔을 테니 못 나와도 벌써 한 5-60은 될걸?” 


“그 비용 내 앞으로 달아놔.”


경찬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야, 그걸 왜 네 앞으로 달아? 그게 무슨 소리야?”


호식이 경찬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질렀으나 경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나온 경찬이 성큼성큼 민재에게 다가갔다. 민재는 차량 밑에서 작업 중인 재은을 지켜보고 있었다. 

경찬이 손가락으로 민재를 톡톡 건드렸다.


“잠깐 나 좀 봅시다.”


민재는 경찬이 보자는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보았다.


“뭐야, 당신?”


경찬이 다짜고짜 민재의 팔을 잡아끌었다.


“오래 안 걸릴 테니 잠시만 좀 봅시다.”


“알았으니 이 팔 좀 놓지?”


민재가 경찬에게 붙잡힌 팔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경찬의 억센 손가락은 민재의 팔에 박히기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경찬은 공업소 옆 으슥한 골목길 안으로 민재를 끌고 들어갔다.


“이봐.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갈 셈이야?”


그제야 경찬이 민재의 팔을 놓아 주었다. 


“당신 그 청구서, 진심이야? 정말 그 돈 다 받을 거야?”


경찬이 눈빛을 번뜩였다. 민재는 그제야 무슨 얘기인지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난 또 뭐라고.”


민재의 웃음에 꼭지가 돈 경찬이 싸움이라도 걸듯 민재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신 그거 장난이잖아. 제정신 박힌 놈치고 외제차 끌고 우리 공업소로 오는 놈은 없다고.”


“후후, 그거야 내 마음 아닌가? 내가 내 차 가지고 무슨 공업소로 가든 당신이 상관할 일은 아닐 텐데?”


민재가 싸늘하게 비웃었다.


“씨벌, 웃어? 웃음이 나와? 1,678만원이 누구 애 이름이야?”


경찬이 어깨로 민재를 밀쳤다.

 

“누가 당신보고 내라고 했어? 왜 당신이 난리야?”


민재도 지지 않고 경찬을 밀었다.


“네놈같이 부모 잘 만나서 편하게 사는 놈에게는 그 돈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우리같이 하루 벌어 사는 사람들에게는 피 같은 돈이라고! 여러 말 할 것 없고 이제부터 우리 공업소에 나타나지 마. 청구서 따위는 찢어 버리고.”


경찬이 민재의 멱살을 잡았다. 민재보다 키는 작지만 한 때 격투기에 몸담았던 경찬은 온몸이 돌덩이 같았다. 


“또다시 내 눈에 띈다면 그때는 말로 끝나지 않을 테니 내 말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눈이 한번 뒤집히면 보이는 게 없으니까.”


경찬이 야수 같은 눈빛을 번뜩이며 민재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경찬이 몸을 돌리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이것 봐. 당신 이러는 거, 그 녀석도 알아?”


뒤에서 들려오는 민재의 말에 경찬은 걸음을 멈추었다.


“후후후, 보기보다 순정파시군. 혼자 보기 아까워서 어떡하나?”


경찬이 홱 몸을 돌리더니 대뜸 민재의 멱살을 붙잡고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너 이 새끼, 그게 무슨 소리야?”


경찬이 민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당신, 그 녀석 좋아하지?”


민재는 멱살이 붙잡힌 채 지지 않고 경찬을 쏘아보았다. 

민재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허를 찔린 경찬이 할 말을 못 찾고 눈빛만 바르르 떨었다.


“이 새끼가...!”


“역시 대답을 못 하는군.”


민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난 며칠 동안 당신, 그 녀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더군.”


경찬이 움찔했다.

 

“이것 봐. 좀 솔직해지지그래? 하긴 그래 봐야 이제는 소용없겠군.”


“뭐야 인마?”


경찬이 민재의 멱살을 잡고 땅바닥에 번개같이 내다 꽂았다. 민재도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었으나 전직 격투기 선수에게 당할 수는 없었다.


민재가 그대로 골목길 바닥을 나뒹굴었다. 넘어지면서 얼굴에 생채기가 났다. 

민재가 담벼락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유가 궁금해? 그 녀석, 이제 내가 찍었거든.”


어느새 해가 진 골목길에 어둠이 드리웠다. 민재는 경찬을 향해 코웃음을 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골목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경찬은 거친 숨을 내쉬며 멀어지는 민재의 뒷모습만 노려볼 뿐이었다.


**


“어디 갔었어요? 여기가 주차장인 줄 알아요?”


아까 분명히 있는 걸 봤는데 민재가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져서 재은은 한바탕 쏘아붙일 작정이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다음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민재의 모습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셔츠 단추는 뜯긴 데다 얼굴에는 생채기까지 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재은이 놀란 눈빛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다 끝났어?”


민재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왠지 안 될 것만 같아서 재은이 고개만 끄덕였다. 

민재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자 재은이 갑자기 소리쳤다.


“잠깐만 기다려요.”


재은이 잽싸게 사무실로 달려갔다가 나오더니 며칠 전 민재가 주었던 손수건을 돌려주었다.

민재가 빤히 재은을 올려다봤다. 손수건을 왜 돌려주는지 묻는 눈빛이었다. 


“어, 얼굴에 상처가 났어요. 닦아요.”


민재가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괜찮으니 신경 쓸 것 없어.”


민재는 손수건을 받지 않았다. 그때 차량 뒤로 경찬이 걸어왔다. 경찬은 두 사람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딘지 모르게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설마 민재와 경찬이 싸웠을까? 

하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 재은은 고개를 내저었다. 


경찬이 공업소에 온 고객과 왜 싸운단 말인가? 그랬다면 왕재수 민재가 이렇게 순순히 갈 리도 없다. 진료비 청구만 몇천만 원 할 위인이다.


“나, 간다.”


민재가 사이드미러로 경찬을 힐끗 보며 운전석 창문을 올렸다. 금방이라도 출발할 것처럼 굴더니 마음이 바뀌었는지 창문을 다시 반쯤 내렸다.

 

민재가 잠시 재은을 응시했다. 민재의 눈빛이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나 내일 또 올 거야.”


그 말을 하고 창문을 다시 올렸다. 


민재가 남긴 말에 재은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뭐지? 젠장, 내가 왜 저 새끼한테 이런 감정이 드는 거지? 

저 새끼는 사기꾼, 양아치라고! 좋은 뜻으로 말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애써 부인해 봐도 심장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재은이 손수건을 움켜쥐고 공업소 밖으로 나가는 차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민재가 룸미러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


그날 저녁, 경찬은 간만에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몸을 담갔다. 아까 외제차 새끼가 했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 당신, 그 녀석 좋아하지?

- 역시 대답을 못 하는군.


“후-!”


경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다. 창피하게도 그 녀석은 자신의 마음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다. 그동안 자신은 그렇게 외면하려고 했던 마음을.


내가, 어떡하다,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경찬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활짝 웃는 재은의 모습이 떠올랐다. 

뜨거운 욕조 속에 있는데도 가슴이 얼음으로 가득 찬 것처럼 시큰시큰 아렸다. 

그 웃음, 나를 위해 지어준다면 좋을 텐데. 

나만을 위한 웃음이라면 좋을 텐데….


“재은아….”


경찬이 눈을 감은 채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더듬었다. 

재은을 안는 상상을 했다. 그 말간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탐스러운 녀석의 입술에 입 맞추는 자신을 떠올렸다. 

손끝에 닿은 유두가 금세 딱딱해졌다. 

잉크가 물에 번지듯 몸속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기 시작했다. 

 

경찬의 손이 가슴을 지나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복근과 옆구리를 어루만지다가 다시 아래로 향했다. 웅크리고 세운 무릎 사이, 수초처럼 퍼진 체모 한가운데 잔뜩 흥분한 자신의 페니스가 아프도록 발기한 채 끄덕여 댔다. 


경찬은 재은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의 물건을 손아귀에 움켜쥐었다. 물 온도보다 훨씬 뜨거운 자신의 체온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물속에서도 프리컴이 나오는지 귀두 끝이 미끈거렸다. 

경찬이 엄지손가락 끝으로 그 부분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아읏!”


말초적인 자극이 온몸을 관통하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손을 움직일 때마다 미약한 물의 저항이 느껴졌다. 조금씩 숨이 가빠왔다. 아랫배 끝부분을 중심으로 짜릿한 쾌락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재은아, 재은아.”


경찬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졌다. 첨벙, 첨벙. 물이 욕조 밖으로 거칠게 튀었다. 

경찬이 눈을 감은 채 머리를 뒤로 젖혔다. 선명하게 드러난 굵은 목울대가 꿈틀거릴 때마다 입 밖으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읏-!”


마침내 머릿속이 새하얘지더니 발가락 끝까지 힘이 잔뜩 들어갔다.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귀두가 움찔거리더니 더는 참기 힘들다는 듯 허연 백탁액을 세찬 기세로 뿜어냈다.


“하-.”


경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현실로 돌아왔다. 욕조 물에는 자신이 분출한 정액이 지저분하게 둥둥 떠 있었다. 물과 함께 출렁이는 희멀건 한 흔적이 자신의 신세 같았다. 


허무하다. 하지만 자신으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다. 

아직도 물속인 듯 가슴이 답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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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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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추석 연휴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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