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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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자가 걷는다. 차가 쌩쌩 달리는 구평대교를.
그리고 중간쯤에 걸음을 멈춘다.
한없이 검게 출렁이는 강물에 반사된
도시의 네온 싸인과 야경들이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눈에늠 어떠한 힘도 남아있어 보이지 않는다.
얼굴엔 오래 지난 멍자국까지 보인다.
한숨을 내쉬더니, 핸드폰을 바라본다.
아빠..
엄마...
그동안 보냈던 카톡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 통화버튼위에 검지 손가락을 올려 보지만,
누르지는 않는다.
이내 핸드폰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고,
다리위로 천천히 올라선다.
바람에 여자가 휘청거릴때쯤,
강한 브레이크 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여자의 시선은 끌지는 못하고,
몸을 강물에 날리려는데,
그 순간..
급하게 현이가 차에서 내리더니 여자를 낚아챈다.
그리고 둘은 도로변에 포개져서 쓰러진다.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다.
그러나, 현이의 몸 위에서 여자는 발버둥을 친다.
... 왜 살려냈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친다.
현이는 멀뚱히 여자를 쳐다볼뿐이다.
...............
가족과의 만남은 절절한 이산가족의 상봉과 비슷했으면서도 달랐다. 반가운 마음은 있지만,
금새 서로를 적응하고 있었다.
다만 준이만 홀로 조급했다.
다들 원래 살고 있던 세상이니, 다를게 없었지만
준이만 똑하니, 동 떨어진 세상에 떨어진것이었다.
15년동안 모은 돈이었다.
미국생활중에 친형제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모든걸 다 빼앗긴 신세였다.
한국에 온지 3개월이 지났다. 취업은 그야 말로 전쟁이었다. 먹고사는 문제. 배고픔에 허덕이지는 않지만, 남들과 비교를 밥먹듯이 헤대면서, 끝없이 자기 비하에 빠지는 요즘 세상에 준이도 의도와는 상관없이 등판을 했다.
늦은 나이에, 의도치않게..
준이는 운이 좋았다. 늘 억울한 인생이라고 치부했지만 대기업 1년 비정규직 일을 얻었다. 집에서 멀지도 않은 곳이었다.
현이는 축하파티를 해야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었다. 준이는 그래봤자 비정규직이라고 난감했지만, 결국 시내 술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 띠리리리"
준이의 전화기가 울리는데, 때마침 석이가 들어온다.
전화를 받으며 손짓을 해서 석이의 주의를 끈다.
"... 어.. 현아..."
"... 어.. 형.. 나 급한 일이 생겨서...
... 좀 늦을거 같은데..."
"... 그래... 바쁘면 무리하지 말고..."
"... 미안해.. 형...."
석이가 자리에 앉는다. 술에 이미 많이 취한 상태다.
"... 현이형이야?"
"... 어... 급한 일이 생겼다네..."
"...어...."
테이블에 놓여있던 석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선명하게 나타나는 글자는 남영우. 준이의 시선도 그곳을 향한다.
그러나 석이는 전화를 바로 거절한다.
"... 영우? 꼬맹이 영우? 진짜 오랜만이다..
... 근데 왜 안받아? 너희 베프 아니야?
... 싸웠어?"
의아해 하며 준이가 묻는다.
"... 아니... 그냥..."
"... 영우는 잘 지내고?"
"... 어... 곧 결혼 한다고 하더라고..."
"....어... 그래....
... 넌 여자 친구 없어?"
".... 나? 없지... 형은 결혼 안해?"
"....어.... 혼자 오래 살아서 그런지...
... 혼자가 편하네.. 아직까진..."
"... 좋겠다 형은... 돈도 많이 벌고..
.. 유학까지 갔다오고...
... 좋은 여자 만나서 이제 결혼만 하면 되겠네.."
준이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애써 붙잡아둔다.
"... 무슨 돈을 많이 벌어.. 내가..."
석이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다. 두사람은 결국 현이없이 소주 4병을 비우고는 자리를 마무리했다. 헤어지기전에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현이가 대뜸 묻는다.
" 외국 나가서 살면 어때?
....많이 힘들어? "
안나가본 사람은 왜 외국에 대한 로망이 있을까.
로망 보다는 현실도피가 맞겠지.
준이도 그랬었다.
한국에 살면서는 늘 외국을 그리워 했고..
미국에 살면서는 늘 한국을 그리워 했다.
" 힘들다면 힘들고...그렇지 뭐...
왜 외국에서 살게? 다 때려 치우고? "
"..그러고 싶어..
...그럴수만 있다면....
. ... 갈게 형..."
준이가 그제서야 고개를 떨구면서 마음속 애써 감춰놨던 미세한 감정까지 쏟아낸다.
편할날이 없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리에는,
다분히 반박해주고 싶었다.
사기라는걸 지금 당하고 있는 중이고..
미국에서 모른 전재산이 날아가고 있는중이라고...
몇번이고 민낯을 보이고 싶었다.
쓸쓸히 모텔방으로 들어온 준이는, 문득 석이의 묘연한 표정이 떠올라서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쿵쿵쿵쿵쿵"
석이의 목소리와 함께 다급하게 현관문을 치는 소리가 난다.
".. 어.. 형.. 나 집에 왔으니까...
..... 쿵쿵쿵쿵.......
.... 걱정하지말고.. 자... 빠이..."
석이는 전화를 끊고 현관문에 기대어,
핸드폰을 품에 안고 서서히 울기 시작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여전했다.
왜 그소리가 간절하게 들리는 지는 알수 없었다.
"... 여보세요? 경찰이죠?
.... 모르는 사람이 저희 집 현관문을 계속 두드려요.."
석이는 주소까지 알려주고나서, 전화를 끊고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서러움을 토해냈다.
................
출근 첫날 지하철에서 문자를 받는다.
잘하라는 말. 현이 석이 문자.
엄마 아빠의 당부의 말.
그리고 정훈이 형의 문자.
[... 준이야 미안한데....
... 너한테 빌려준돈...
... 윤희가 알아버려서...
....다음달까지는.. 좀.. 부탁한다...]
삼총사였다.
미국에서 살면서 어쩌면 가장 의지했던,
형제처럼 모든걸 나눌수 있었던 사람.
준이와 장범 그리고 정훈이까지.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붙어버린다. 설마설마 이런일을 당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애써 웃어보이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새어나오는 한숨.
".. 휴...."
지하철에서 내리는 준이는 한참을 또각 또각 구두발 소리를 내면서 걸어간다. 인산인해. 사람들에 치인다. 출구로 빠져 나오는데, 낯익은 중년 남자가 보인다.
급하게 몸을 숨겨보다가,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서 다시 몸을 펴는데, 그 아저씨가 출구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 뭐야???"
그 아저씨였다.
꼬치꼬치 남자를 왜 좋아하냐고 물었던.
어느덧 회사에 가까워질수록, 아저씨는 계속 준이와 같은 방향으로 앞서 걷고있다. 제발 다른 방향으로 빠져주길 바라는 마음을 지긋이 밟아 버린다.
이윽고 결국 남자는 준이가 합격한 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이런 거지 같은 우연은 아니겠지 준이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 설마...'
다시 급하게 걸음을 재촉하던 준이도 곧 회사 로비로 들어서는데, 사람들이 그 남자를 보고 인사를 한다.
".. 안녕하세요.. 유부장님.."
남자는 가볍게 손을 올려 화답하더니, 이내 엘리베이터에 멈춘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준이는 어쩔바를 모른다. 가긴 가야겠는데 더이상은 못가겠는 마음이다.
"땡"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남자가 들어간다. 준이는 걸음을 최대한 늦추고 남자가 먼저 가버리기를 바란다. 어차피 같은 부서만 아니면, 최대한 덜 마주치면 그만이다 싶다.
사람들이 우르르 준이를 지나쳐서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그 바람에 엘리베이터는 지연이 되고, 준이도 엘리베이터에 도착하는데, 하필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친다.
남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눈도 꿈뻑이지도 않고 표정도 아무 변화가 없다. 몸을 돌아서서 있던 준이의 얼굴은 식은땀이 흐른다.
그리고 6층에 멈춘 엘리베이터. 준이가 빠져 나가고, 어디로 가야되는지 머뭇거리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다같이 쏟아진다.
준이는 예민하개 그 아저씨가 내리는지 감각적으로 감시했다. 아무렴 같은 회사도 불편한데, 같은 층은 더더욱 싫었다.
" 띵"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닫힌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있던 그때 그 남자의 눈빛과 순간 마주쳤던 준이는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겨우 영업2팀이 있는 곳을 찾고,
크게 몸을 내리며 인사한다.
촤대한 밝은 목소리로...
"...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이준이 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사무실에 들어선 준이는 어젯밤 몇번이고 연습했던 인사를 큰소리로 외쳤다. 얼마나 목소리가 컸는지 옆팀의시선도 끌었다.
".. 아.. 네..."
박대리는 겸언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는다. 하지만 곧 시선을 옆에 걸어 오는 사람에게 돌린다.
".. 부장님.. 오셨습니까!!"
그때 준이가 전혀 기대하고 싶지 않았던 남자가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준이는 겨우 고개를 들어서 눈을 떴는데, 그 남자는 유승만 부장이라는 푯말이 있는 책상에 앉고 있었다.
준이는 설마설마 했던 현실을 마주한다. 다시 남자와 눈을 마주치는데 어떻게 해야 반응을 해야하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머리를 재빨리 굴려본다. 그러나 귀도 안들리고, 순간 모든게 멈춰버린것 같다.
".. 준이씨.. 뭐해? 여기 우리 유승만 부장님이셔.."
멀뚱멀뚱 고장난 준이를 다그치는 박대리.
"...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이준이 입니다.."
아까와는 달리 목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비가 내리던 그날에 느꼈던.
아저씨의 숨소리. 분노와 연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
하루종일 안절부절.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온통 신경은 유부장에게 쏠려있었다.
머리를 재빨리 굴려보아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도무지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유부장은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 남자는 그때 그 모습처럼, 반쯤 넋이 나간사람처럼 보였다. 말은 하고 움직이는데, 정신은 어디 다른데 가있는 사람같았다.
".. 자.. 퇴근들 합시다..."
유부장이 나직히 말하자 분주하게 사람들이 퇴근 준비를 했다. 준이도 눈치를 보면서 유부장의 움직임을 살폈다.
아주 천천히 늦장을 부린 후에 유부장을 조심히 따라가는 준이. 또각 또각 구둣발 소리가 웬일인지 서글프게 느껴졌던 준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유달리 조심히 걸었다.
사실 무슨말을 해야하는지도 잘 몰랐다.
불안감은 커져만갔고, 무슨말이든 내뱉어야 할것 같았다. 하지만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동안 유부장의 퇴근길을 미행아닌, 미행을 했다. 그렇게 알아낸 사실은 유부장은 준이가 사는 동네에 살며, 늘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가거나, 야외 테이블에서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신다는것이었다.
그날도 준이는 유부장의 뒤를 밟았다.
동네에 들어서서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한참을 따라가던 준이가 갑자기 얼어 붙었다.
유부장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서서 숨을 틈도 없이 성큼성큼 준이 앞에 섰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지금껏 단 한번도 뒤를 본적이 없었기에 방심한 탓도 있었다.
"..... 왜 자꾸 따라다녀?"
".. 네?"
"...스토커 뭐 그런거야? "
당황한 준이는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저...도 ..이...동네 사는데요..."
진미마트...여기서 골목 돌아가면..."
유부장이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선다.
"..... 저기...."
개미만한 목소리가 다시 유부장의 발걸음을 맘춘다.
준이는 마음을 다잡고 걸어가서는 유부장 앞에 선다.
"... 정말 우연의 일치입니다..
... 부장님 뒷조사해서...
... 여기 이 회사에 들어 온게 아닙니다..."
유부장은 눈만 꿈뻑거릴뿐 아무말도 없다.
" ... 제가 물론 아저씨를 좋아하는 게이지만요...
.... 오해 하실까봐요...
... 그런거 아니니까... 안심 하셔도 된다구요..."
"... 그리고 제가 지금 이 일이 꼭 필요하거든요...
....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
.... 열심히 하겠습니다.."
"... 딱 1년만 눈감아 주시면,
...그땐 무조건 회사에서 나가겠습니다...
...그리고..부장님이 왜 그런 앱을 깔고..
... 게이를 만나고 그런말들을 물어보시는지..
...입을 안열겠습니다..."
"....그러니까... ... 제말은...."
횡설수설대는 준이는 머릿속이 하얘져서
뒤죽박죽으로 말이 흘러나온다.
정리도 되지 않은채로.
"... 부장님이 유일하세요....
... 제가 남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거 아는 사람.."
"... 그거 비밀좀... 지켜주시면....안될까요? "
"... 내가 뽑았어..."
"... 네?"
당혹스럽다.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그리고... ... 무슨 죄지었어? "
"...네?"
"...어깨나 좀 피고다녀..."
질문을 듣기나 한건지, 뚱딴지같은 물음과 대답들이 준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속시원히 말 안하겠다. 비밀을 지켜주겠다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
모텔로 들어온 준이는 빠르게 일 나갈 채비를 한다.
정훈의 돈을 갚기 위해선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배달알바 대리. 닥치는대로 퇴근을 하면 알바를 뛰었다.
알바를 마치고 소주를 사기 위해서, 집앞 편의점을 들렀는데 유부장이 테이블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얼마나 마셨는지 술병이 테이블을 꽤나 놓여있다.
눈이라도 마주칠까봐 조심스러웠던 준이는 죄지은 사람처럼 잔뜩 어깨를 움츠리는데..
갑자기 술병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려서 고개를 돌리는데, 유부장이 쓰러져있다. 그 바람에 편의점 알바도 뛰쳐나온다.
"...아.. 이 아저씨..또 이러네....
... 진짜... 진상...."
남자는 핸드폰을 들고, 경찰에 신고를 하려는데,
준이가 급하게 막아선다.
"...저기요!!!"
".... 네?"
".... 저희 부장님이세요...
... 제가 집에 모셔다 드릴게요..."
"...진짜요?"
준이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 몇년째야.. 지겨워 죽겠어...
.... 안돌아가시는게 신기하다니까요..."
"... 자주 이러시나봐요...."
"... 어휴.. 이동네 사람들... 경찰들도...
... 지긋지긋해 하죠..."
".. 다음에는.. 저한테 연락 주시면...
... 제가 오겠습니다..
... 저도 이근처에 살거든요..."
준이는 쪽지를 적어서 전화번호를 준다.
그리고 쓰러질때마다 꼭 전화를 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부장님 부장님..."
아무리 깨워봐도 일어나지 않는다. 준이가 유부장을 들쳐 업는다. 묵직한 무언가가 등에 닿는다. 꾸부정하게 그를 업고나자 어디로 가야하는지 막막해졌다.
뒤늦게 유부장의 핸드폰을 뒤져보다가, 와이프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여자는 무심하게 내뱉는다.
".. 왜?"
"...아네.. 전 부장님 밑에서 일하는 직원인데요...
지금 부장님이 많이 취하셔서,
집을 알려주시면 제가 모셔다...
여자는 아무말이 없다.
마치 유부장의 존재조차 지겹다는 사람처럼,
알수없는 기운을 마구 뿜어낸다.
그래서 준이도 말을 하다 스스로 끊었다.
"... 저희 이혼했어요..."
"... 아...네....
.... 실례가 많았습니다...."
집만 알려주면 될일인데, 여자는 무심히 전화를 끊었다. 그때 무뚝뚝하게 빗줄기가 쏟아진다. 준이는 일단 모텔로 향했다.
유부장의 서글픈 숨들이 준이의 귓가에 불어와서 흩어진다. 준이의 가슴에는 애처로움들이 솟아난다. 유부장의 엉덩이를 꽉 잡고 최대한 비를 피하며 뛰었다.
비에 많이 젖은 유부장을 침대에 눕히고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옷을 벗겨주어야 하는지 공교롭다. 이대로 놔두는것도 좀 그렇다.
이 남자는 준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급한대로 수건들를 가져와서 유부장을 덮는다. 깰까봐 불도 키지 못하는 상태다. 샤워도 못하는 상태다.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봐서다.
소주를 가져다 놓고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리고 핸드폰을 뒤적거린다.
최사장과 나눴던 톡들을 들여다 본다.
혼자 미소를 짓다가도 금새 사라지는것을 반복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준이가 보낸 문자에 눈을 가져다 놓는다.
[... 한국에 도착 잘 했습니다...]
[...잘 지내시죠?..]
1은 지워졌지만, 답은 없었다.
술이 술술 들어간다. 이문자를 보낼 당시에 상황을 곱씹어본다. 보낼까말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다가 겨우 보낸 문자였다.
15년 미국생활에 남은게 하나도 없었다.
돈도. 우정도.
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는건지 모르는
오묘한 경계의 있는 감정도.
다 떠내려 갔다.
지난날이 하염없이 수두룩하게 지나간다.
대부분은 다 궁상을 떨었던 날들.
지나가다 잘생긴 아저씨들을 보면서 가슴 설레어 하는 순간도 빠짐없이 떠오른다.
최사장과 밥을 먹고 술을 마시던 시간들.
그리고 아무생각없이 했었을 최사장의 가벼운 스킨쉽들. 준이에게는 엄청난 흥분의 순간이었었다.
그리고 최사장이 준 선물이 생각난다.
버릴까 말까. 한국에 올때까지 고민했던것이다.
하지만 결국 잃어버렸다.
전화기를 내려놓고서, 어둠속에 가려져 있던 유부장의 얼굴이 서서히 준이의 눈가에 자리잡힌다. 준이는 오랫동안 유부장을 바라본다. 새근새근 얼마나 근심이 많았는지 숨소리마저 애달프다.
그러나 준이의 눈길은 곧 천천히 내려오고,
유부장의 바지앞섬에 멈춘다.
불룩 튀어나와있다.
마음속 깊은곳에 정욕이 끓어오른다.
준이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대며 정신을 차려본다.
마음속으로 절대 안된다며 다짐을 하고 또 한다.
소주를 한잔 마시고, 준이가 일어선다.
그리고 유부장이 누워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인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유부장의 진한 냄새가 충분하게 코에 들어올때쯤,
핸드폰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 띠리리리..."
........
여자는 준이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불편하다. 이혼을 했어도 굳이 집을 안알려주는 못된년이라고 해도. 그러고 싶었다.
남편은 이기지도 못할술을 매일 마셔댔다.
처음엔 1년이면 2년이면 언젠가는 끝이 날줄 알았다.
그러나 끝날줄 모르는 방황에, 여자도 지쳐갔던것이다.
한날은 그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알아야겠다고.
그렇게 무턱대고 올라간 서울에서 남편은 전화를 했었다.
"...결혼도 한사람이야..."
울컥대는 목소리에 빗소리까지 더해져서,
한없이 서글프게 들렸다.
"... 양심도 없고...."
".. 불쌍해서 어떡해...."
"... 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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