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지구 최후의 날, 그를 만나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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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허억... 허억..."


좀 짧게 끝났던 첫번째 섹스와 달리 서로 조금씩 여유가 생긴 두번째 섹스는 시간이 얼마나 흐른지도

모를만큼 충분히 서로를 만지고 서로를 탐하고 서로를 흥분시키는 짜릿한 경험이었다.

주로 몸을 움직이는 역할이었던 호웅이가 가쁜 숨을 내쉬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고 나는 그의 옆에

팔베개를 한 채 누워 손가락으로 두툼한 근육덩어리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한다.


"남자랑 하는거... 생각만큼 어색하거나 이상하진 않죠?"


"헤헤... 그게... 아무래도 저한테는 낯설고 색다른 경험이다 보니 훨씬 더 짜릿했던것 같아요~"


몸을 섞으면 아무래도 서로에 대한 경계심이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게 마련인가 보다.

그가 전에 볼 수 없었던 나른하고 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답을 건넨다.


"고마워요... 형. 이전의 나였다면 감히 상상도 못했을 경험을 하게 해줘서요..."

"고마운건 오히려 나에요. 나한테도 이건 상상속에서나 가능할줄 알았던, 로망 같은 일이거든요~"

"그러고보니...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으면 저랑 형이랑 만날 일도 없었겠네요~"

"그러게요... 다른건 몰라도 그점 하나만큼은 이 특수한 상황에 감사하고 싶네요~"

"형... 우리 일단 조금만 쉬는게 어때요? 뭐... 살 날이 며칠 안남았어도 에너지를 좀 비축해놔야

다음 일들을 또 활기차게 준비하죠~"

"그래요. 그건 호웅씨 말이 맞네. 그럼 우리 잠깐 눈이라도 붙이자구요~"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쌔근쌔근 깊은 잠에 빠진 그와는 달리 나는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다.


지금 이 상황이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쟁취해 낸 듯 한 뿌듯한 기분.  내 옆에서 잠들어 있는 내 완벽한 이상형인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손을 뻗어 그의 단단한 가슴을 만져본다. 내 손길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듯, 그의 호흡소리는

여전히 규칙적이다.

내 손바닥 아래에 그의 툭 튀어나온 젖꼭지가 만져진다. 이 남자는 어떻게 젖꼭지까지도 완벽하게

내 식인지...

내 손가락질에 딱딱해지는 그의 젖꼭지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 버린다.


5.


"현수 형님~ 저녁 드세요!"


누군가 나를 깨우는 기척에 눈을 떠본다.

어느새 면티에 반바지로 옷을 갖춰 입은 그가 내 어깨를 흔들며 빙그레 웃고 있다.


"내가... 몇시간이나 잔거에요?"

"아까 잠든게 오후 네시였으니까 세시간 쯤 지났네요~"

그가 스위치를 눌러 방 안의 불을 켠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식탁에는 뚝배기 하나와 밥공기 두개, 반찬 그릇 몇개가 놓여 있다.


"형~ 부대찌게 좋아하시죠? 그나마 제일 무난한 음식으로 골랐는데~"

"나 부대찌게 킬러에요. 어떻게 알았어요? 부대찌게가 내 최애 음식인줄..."


내 대답에 그의 환한 미소가 한층 더 밝아진다.


"헤헤... 역시 그럴 줄 알았어요! 현수형이랑 저랑 은근 통하는게 많나봐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앉는다. 부대찌개의 달큰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후각세포를 자극한다.


"와... 진짜 맛있게 잘 끓였네요~ 혹시 호웅씨 직업이 셰프 아니에요?"

"흐흐... 셰프까지는 아니구요... 그냥 작은 분식집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아... 분식집 사장님이셨구나! 어쩐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그의 직업에 속으로 많이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는다.

적어도 경호원이나 보안업체 같은데 근무할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은 겉보기나 외모로만

판단하면 안되는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된다.


"학교앞 분식집이라 6시까지만 운영하구요, 저녁에는 나이트클럽 기도 알바도 하고 있습니다~"

"기... 기도요? 문 지키는 사람?"

"헤헤... 이건 제 외모랑 좀 어울리는 일이죠?"


그가 거대한 덩치로 나이트 클럽 앞을 든든하게 막아 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의 우락부락한 외모와 너무나 잘 맞는 일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다.


"호웅씨는 참 부지런하게 살았네요... 그 성실함 하나는 내가 높이 살게요~"

"다 부질없는 짓이었죠. 분식집 내면서 진 빛 갚으려고 노가다부터 시작해 별의별 알바는 다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의 종말이 오다니.... 그동안 내가 뭔 지랄을 했나 싶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살짝 울분이 배어 있다.


"그러네요... 그치만 이렇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잖아요. 우리는 그저 현실에 적응하고 충실하게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게 없죠. 우리는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니까..."


내 말을 듣던 그가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형 말이 맞네요.... 저는 그동안 제가 돈이 없을 뿐이지 나약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한치앞의 미래도 내다볼 수 없는 주제에 제가 너무 건방졌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현실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한 거구요~"

"저 그동안 부지런히 살았으니까... 그 시간이 억울해서라도 이젠 좀 화끈하게 놀아봐야 겠어요!!"


그가 자신에게 다짐이라도 하듯이 주먹을 꽉 쥔채 말한다. 그때 나에게 한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음... 그럼 오늘 하루 화끈하게 한 번 놀아 볼래요? 호웅씨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이랑 함께?"


내 말에 놀란 듯 그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네? 저 같은 놈한테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이 있다구요?"


6.


내가 그를 데리고 방문한 곳은 이태원의 유명한 게이 클럽이었다.

사전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둠스데이 페스티벌이라고 내일 밤까지 특별 이벤트 파티가

진행중이라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보통 이곳이 입장료만 10만원을 받을 정도로 손님을 가려 받는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세상의

종말이 온 만큼 클럽 주인이 통크게 무료로 바꾼 바람에 입구에서 50미터 가량 입장객의 줄이

늘어져 있다.

다만 무료 입장 조건에는 최소 2명과 그 중 한명은 뉴페이스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클럽 주인도 단골 보다는 이 기회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방문하기를 바라는 욕심을 은근슬쩍

내비친 것이겠지.


호웅이는 내 제안에 따라 회색 면티에서 소매 부분을 거칠게 뜯어낸 나시 티에 단단한 엉덩이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반바지를 입고 있다.

나시티 밖으로 드러난 호웅의 근육덩어리 굵은 팔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쏠리기 시작하자

그가 민망한 듯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형님... 생각보다 사람들이 대놓고 쳐다봐서 좀 그런데요..."

"내가 말했죠? 호웅씨라면 사족 못쓰는 사람들 천지라고... 게다가 지금처럼 종말 분위기에

괜히 점잖빼고 그러는 것도 웃기잖아요~"

"하하... 허긴 그렇네요... 휴... 그럼 뭐... 저도 어쩔 수 없이 즐기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네요~"


10분쯤 기다려 마침내 클럽에 입장한 그와 나.


클럽 안은 가슴을 때릴 듯한 드럼 비트의 일렉트릭 뮤직이 스피커를 찢을 듯한 기새로 흘러나오고

있고 천장에 매달린 다양한 색깔의 조명 장치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나는 그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리드해 바에 가서 앉는다.

우리를 바라보는 웨이터의 시선이 나에게 잠깐 머물렀다가 그에게 한참동안 머문다.


"여긴 처음 오셨나봐요? 손님처럼 듬직하고 남자다운 분이면 제가 기억하지 못할리가 없는데..."

"버드와이져 두병 부탁해요~"


우물쭈물거리는 그 대신 내가 바텐더 앞에 만원짜리 한장을 내놓으며 말한다.

여전히 시선을 그에게 고정한 바텐더가 익숙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맥주 두병을 꺼내 내 앞에

하나, 호웅이 앞에 하나 내려 놓으며 말한다.


"공지 보셨죠? 오늘 처음 오신 분은 무료입니다. 물론 데려오신 분도 무료구요~ 재밌게들 노세요~"


바텐터가 호웅에게 윙크를 날리며 다음 손님을 받기 위해 자리를 옮긴다.


"어때요? 이런 분위기?"


시끄러운 음악 탓에 그의 귀에 대고 소리친다.


"와... 이거 적응 참 안되네요... 그런데... 뭐.... 나쁘진 않습니다. 나름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라..."


그가 내 귀에 대고 소리친다. 그의 표정이 들어오기 전보다 한결 더 밝아 보인다.

가볍게 그와 건배를 한 후 클럽안을 스캔해본다.

남자들로만 가득한 플로어...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 미친듯 몸을 흔들며 현재를 즐기고 있는 게이들을 바라보니 게이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짓게 된다.

게이라는 영어 단어가 형용사로는 생기넘치는, 유쾌한이라는 뜻도 있으니까 말 그대로 여기 모인

사람들은 너무나도 게이스러운 거다.

   
"호웅씨... 우리도 나가서 몸 좀 흔들어 볼까요?"


손에 든 맥주를 한모금 더 마신 후 그에게 말을 건네본다.


"뭐... 안될거 있겠습니까? 가시죠 형님!"


거절할 줄 알았던 그가 시원스럽게 대답하는 걸 보니 그도 이제 이 상황을 그저 즐기기로 마음

먹은 듯 하다.

플로어에 내려가 마주선 우리.

아직은 좀 어색하기에 몸을 조금씩 흔들며 음악에 반응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플로어 벽에 위치한 초대형 스크린이 닌텐도 스위치 게임 화면으로 바뀌면서

그 유명한 YMCA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 저 이 노래랑 율동 알아요~"


익숙한 노래에 호웅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 뿐만 아니라 플로어에 모인 사람들 모두 전설적인 노래에 웃음을 터뜨리며 단체로 군무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young man, there's no need to feel down / I said, young man, pick yourself off the ground
젊은이여, 우울해 할 필요 없다네 / 그러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게

I said young man, cause you're in a new town / There's no need to be unhappy"
젊은이여, 자네는 지금 새로운 도시에 와 있네 / 그러니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네


스크린에 나오는 네명의 캐릭터의 군무를 그대로 따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말 그대로 저마다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지은채 모든걸 잊고 춤을 추는 사람들...

그 인파 속에서 호웅과 나 역시 모든 걸 잊고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긴채 춤을 추고 있다.

그와 내 시선이 부딪힐때마다 그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함박 웃음을 터뜨렸고

나 역시 그의 사람좋게 웃는 모습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때...

망치로 한대 맞은 듯한 깨달음이 내 머릿속을 강타한다.

행복이라는거... 별거 아니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가슴이 터질것 같은 감정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바보같아... 이런 멋진 순간에 내 이상형 앞에서 질질 짜기나 하다니...

급하게 손으로 이마를 훔치는 척 하며 눈물을 털어낸다.

아마도 춤을 추느라 흐르는 땀을 닦는 모습으로 보일거라는 사실이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준다.


7.


"와... 태어나서 내 몸을 더듬는 그렇게 많은 손길을 처음 느껴봤네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클럽에서 놀던 우리는 마지막 대중교통이 끊어지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클럽에서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그의 호흡이 여전히 거칠다.


"흐... 그냥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원봉사 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은 호웅씨 몸 만지면서

오늘 계탔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러려고 쇠질한 건 아닌데... 그나마 운동한 걸 이렇게라도 쓸 데가 있다는게 다행이네요~"

"미안해요...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하게 한 것 같아서..."

"아이구... 아닙니다 형님~"


그가 정색을 하며 두 손을 흔들며 말한다.


"솔직히... 저 나름대로 좀 즐겼던것 같습니다. 제 몸을 만지는 그 손길들에서 왠지모를 부러움과

동경 같은 걸 느꼈거든요. 몇몇은 아예 옷 속으로 손이 들어와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요~"


내가 미안해하길 바라지 않는 듯, 그가 껄껄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

그의 속깊은 마음씀씀에 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그의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이 지하철이 온전한 세상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타 보는 지하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그 역시 아무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와 비슷한 상념에 빠져 있는 모양이다.

그때 갑자기 그가 입을 열기 시작한다.


"우리 내일은 뭐 할까요? 그나마 내일이 온전하게 24시간이 남아 있는 하루인데..."

"아직 생각 안해봤는데... 혹시 호웅씨가 특별히 하고 싶은거 있어요? 나는 호웅씨 만나서

이렇게 함께 있는 걸로 소원 풀었으니까 이번엔 호웅씨 하고 싶은거 해요~"

"이젠 대중교통도 운행 안하니 어디 가려면 차로 가야겠네요.... 저는 마지막 순간을 우리집에서

맞이하기는 정말 싫은데..."

"차는 나한테 있어요~ 내가 차를 평소에 잘 안타서 배터리도 완충되어 있을 거구요"

"와.... 형님 전기차 타시는 거에요?"

"내가 나름 얼리 어댑터 기질이 있어서요. 아쉽게도 돌아오는건 어렵겠지만 최소한...

목적지가 어디든 갈 수는 있을 거에요~"


내 말에 그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한다.


"그래요? 그것 참 잘됬네요. 마침 가보고 싶은 데가 있거든요. 거기라면... 담담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가 도대체 어딘데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요~"


8.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서둘러 내가 살던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향한 우리.

혹시나 누가 해꼬지를 해 놓진 않았을까라는 걱정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잔 나를 비웃듯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내 차를 보자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그가 뒷좌석에 배낭 두개를 던져 놓고 조수석에 앉자마자 천천히 차를 출발시킨다.


"성삼재 휴게소라고 했죠?"

경부고속도로에 올라 네비게이션에 그가 언급한 장소를 입력하니 거리가 278km로 나온다.

지금 비행기가 운행하지 않기에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에서 설악산이 가장 높은 곳이라 생각했던 나.

하지만 그는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상이 끝나는 마당에 고생하며 등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


"예전에 뉴스에선가 봤는데 지리산 노고단에 가장 빨리 가기 위해 들리는 휴게소라고 했어요.

해발 1090미터인가? 적어도 땅바닥에서 1km는 높이 있으니 그만큼 1초라도 더 빨리 종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호웅씨 말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왠지 모르게 좀 슬퍼지네. 사실상 묫자리 보러 가는 거잖아요~"

"현수 형님~ 나 혼자 죽는다면 좀 억울하겠지만 다 같이 죽는데 이만큼 공평한 일이 또 있겠어요?"


이제보니 마음의 정리는 나보다 그가 먼저 한 것 같다. 나 역시도 세상에 미련 같은 건 별로

안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호웅이란 이상형을 막상 만나고 나니 단 일분 일초라도 더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나는 걸 막을 수 없다.


"도로 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해지기 전에는 도착하지 않을까 싶네요~"

"영화 같은거 보면 종말이 왔을때 사람들이 차타고 도망가느라 도로가 꽉 막히고 그러던데 의외로

차가 없는게 신기하네요~"

"어딜 도망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걸 다들 아니까 그러지 않을까요?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고 싶은 사람도 없을것 같고..."

"헤헤... 그러고 보면 저란 놈은 참 지지리 복도 없는 놈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마지막이 다가오니까 받을 수 있는 복이란 복은 한꺼번에 다 받아 보는 것 같아요~"

"호웅씨가 말하는 복이라는게 대체 뭔데요?"


그가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에이...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지금 제 옆에 현수 형님이 있는게 제일 큰 복이죠~"


사실 약간의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이런 얘기를 듣게되자 내 얼굴에 피어나는

뿌듯한 표정을 감추기 어렵다. 그 역시 막상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고 나니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기 시작한다.


"헤헤... 제가 같은 남자한테 이런 말 하고 이런 감정 가지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

역시 사람 일이란게 한 치 앞을 모르는거 같아요~"

"그러게요... 나도 호웅씨처럼 일반 남자한테서 이런 말 듣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그가 내 허벅지 위에 자신의 솥뚜껑처럼 두꺼운 손을 올려 놓는다.

나 역시 운전대 위에 올려 놓은 두 손 중 한 손을 움직여 그의 손을 맞잡아 본다.

고된 노동과 운동으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그의 손...

핏줄이 솟아오른 그의 투박한 손을 잡는데 내 가슴이 너무나도 아려온다.

그가 겪어왔을 고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가되는 느낌 때문에.


그와 좀 더 일찍 만났다면...

그랬더라면, 내가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을까?

아니... 이제라도 내가 그의 짐을 약간이라도 나누어 짊어질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상념 속에 문득 쳐다본 자동차 대쉬보드의 전자 시계가 낮 12시를 지나가고 있다.

이제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24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내일이라고 부를 시간이 한번 더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게 마지막 순간이자 마지막 경험이다.

호웅과 함께 하는 마지막 순간.

사실 우리는 어제 서로에게 내어 준 숙제가 있었다.

마지막날 과연 어떤 식으로 최후를 맞이할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내일 아침 9시, 즉 종말

세시간 전에 서로에게 들려주기로 했었다.

내가 생각한 방법에 과연 호웅이 동의해 줄까? 아니면 호웅의 생각을 내가 존중하게 될까...

벌써부터 이런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걸 보니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무게감이 점점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나보다.


그와 함께 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고 싶었던걸까...

엑셀위에 올려 놓은 내 발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최종회에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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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날씨 글쓰고하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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