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바다... 그리고 두 사내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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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때? 해장으로 딱이지?"
진보의 수원식당이란 곳에서 고기 국수 곱배기를 한그릇씩 해치운 우리.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며 한손으로 운전을 하는 그의 여유로운 모습에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네 선배님... 국수에 고기를 넣은게 신의 한수 같습니다"
"헤헤... 아까 지웅이 너 밥먹는거 보니까 반찬도 안가리고 골고루 잘 먹던데?"
그가 내 밥먹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할 정도로 날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다.
"저 딱 봐도 뭐든 잘 먹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선배님 처럼요..."
"흐흐... 그러게... 지웅이가 나랑 비슷한 면이 많아서 난 좋다~"
그의 얼굴에 기분좋은 미소가 가득하다.
내색은 안했지만 자신과 닮은 면이 많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나 역시 가슴이 설렌다.
"그나저나... 혹시 지웅이 오늘 일정 있는데 나때문에 억지로 서울 올라가는거 아냐?"
속으로 뜨끔했다. 원래 나는 내일 울진에서 결혼하는 지인의 웨딩 사진을 찍을 예정이었으므로.
그에게 늘 솔직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아... 아닙니다 선배님. 그냥 당일치기로 바다 사진 찍으러 무작정 울진으로 간 거였는데..."
"그런데 나 만나서 발목 잡힌거네? 헤헤... 이런 걸 요즘 젊은애들 용어로 똥 밟았다고 하나?"
"네? 또... 똥요? 푸... 푸하하...!!!"
생각지도 못한 그의 단어 선택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버린다.
"어라? 우리 지웅이도 웃을줄 아네? 감정 표현 할 줄 모르는 쑥맥인 줄로만 알았는데~"
내 웃음소리가 그렇게 좋았던 걸까? 그가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뜨거운 시선에 내 얼굴이 빨개진다.
내 들뜬 기분을 들키는게 싫어서 그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지기로 한다.
"선배님...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답 대신 기분좋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모습에 용기를 내본다.
"선배님... 오늘 보니 이렇게 유쾌하시고 활달하신데 어제는 도대체 왜..."
그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내 몸이 앞으로 쏠린다.
자세를 고쳐잡고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싱글벙글하던 그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변해 있다.
"내려!"
"예? 서... 선배님..."
"내리란 말 안들려?"
차가운 그의 말투에 말문이 막힌 나.
내가 내리기 전엔 꿈쩍도 않을 기세에 눌려 안전벨트를 풀고
뒷자리에서 백팩을 꺼내 든 나를 남겨둔채 레인지로버가 굉음을 내며 달린다.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에 한동안 얼어붙은듯 꼼짝도 못하다가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다.
"뭐야? 내가 대체 뭘 어쨌다고..."
이상하게 억울했다. 뭐 저런 미친놈을 봤나라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내뱉고 싶은데
버림 받은 듯한 서러운 기분에 완전히 잠식당해 버린 나는 그럴 힘조차 없다.
고개를 푹 숙인채 터덜터덜 걷고 있다 보니 검정색 SUV 한대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설마 하는 마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철호 선배가 레인지로버 옆에 기댄채 담배를 피고 있다.
장난기 가득한 삐딱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머금은 채로.
"서... 선배...."
왠지 모를 안도감에 다리의 힘이 풀려 비틀거리는 내 어깨를 그가 잡아준다.
"우헤헤... 우리 지웅이 많이 놀랐구나! 내가 장난이 좀 심했지?"
억울한 감정이 북받쳐올라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눈물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돌린다.
그때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와 그의 넓고 두툼한 가슴에 나를 꽉 안은채 내 등을 토닥이기 시작한다.
"에고... 우리 지웅이 덩치만 컸지 마음은 여리여리하구나... 미안하다... 형이 미안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느껴진다.
괜찮다고 하고 싶지만 그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있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는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 서 있었다.
그 역시도 이런 내 행동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듯, 그저 담담하게 나를 안은채
내 등을 계속 토닥거려 준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벽 하나가 또 이렇게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8.
"담배 한대 피우고 싶어서 그랬어"
진보면을 벗어나 당진영덕 고속도로에 올라탈 때까지 한마디도 없던 우리.
긴 침묵이 부담스러웠던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선뜻 말을 건넨다.
"지웅이가 궁금해 하던거... 사실 그 얘기를 맨정신에 하기가 좀 그렇거든..."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는 그의 굵은 팔뚝에 힘이 들어간다.
"힘드시면 굳이 대답 안하셔도 되요. 전 그냥..."
"어제가 내 와이프 기일이야. 너두 알지? 여배우 백수지라고..."
"아.... 어쩐지... 그런 일이..."
"그녀가 죽은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자살한지 오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난 여전히 이해가 안돼..."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지만 그의 표정엔 감출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선명하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마다 거기로 찾아갔어..."
"그럼 그 벤치가..."
내 추측에 감탄한 듯, 그가 고개를 돌려 그윽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씁쓸히 대답한다.
"그래... 그 벤치에서 나눈 얘기가 살아 생전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어 버렸지..."
"......"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그와 나 사이의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다.
이 불편한 침묵이 그에게서 비롯되었기에,
깨뜨리는 것 역시 그가 담당할 몫이기에 나는 가만히 그의 얘기를 기다리고 있다...
"너도 알거야... 그녀가 자살하고 난 뒤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어 댔는지..."
"네... 선배... 저도 그때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개.자식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 가족의 불행을 한낱 뉴스 거리로 전락시키다니..."
그때의 분노가 생생히 되살아난 모양이다.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강하게 내리치는 바람에 심하게 비틀거리는 차.
뒤에서 따라오던 차들이 일제히 클락션을 울려댄다.
"뭐 어쩌라고! 개. 새끼...들아!"
주먹을 꽉 쥔 채 클락션을 미친 듯 눌러대는 그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본다.
내 불안한 시선을 그제서야 느낀 듯. 그가 심호흡을 하며 자세를 바로 잡는다.
"휴... 아무래도 우리 잠깐 휴게소에 들렀다 가야겠다... 그래도 되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십분쯤 지나 우리가 탄 레인지로버가 의성 휴게소 주차장에
서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차를 세운 후 말없이 문을 열고 나가 휴게소 앞 흡연실에서 멈춰 선 그가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문다.
나 역시 차문을 열고 나간 후 휴게소 매점에서 캔커피 두개를 사서 흡연실로 걸어간다..
담배를 짓이겨 끄고 있는 그를 발견한 나는 캔커피 하나를 그에게 건내며 말한다.
"여긴 원플러스원이 안되더라구요..."
내 실없는 농담이 통했던건지 몰라도 심각했던 그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게 느껴진다.
"우리 어디 좀 앉을까?"
그가 내 어깨에 두꺼운 팔을 올려 어깨 동무를 한다.
뭐지 이사람?
그의 행동에 나는 헷갈리고 있다.
이 남자는 원래 스킨십이 서스럼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편해서 그러는 건지...
혹시 만의 하나... 내가 그의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심장이 터질듯 요동치기 시작한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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