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기차가 없다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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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밝은 곳으로 나온 학기와 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특히 남자는 학기를 바라보며 거의 깔깔거리는 수준으로 웃었다. 남자가 학기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어색하죠?”


  학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밝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어색해서 일부러 크게 웃었어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합니다.”


  남자의 말에 학기도 처음으로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요. 어색함이 풀어져서 오히려 더 좋습니다.”


  “시간 있으시면....”


  학기는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목적 달성을 위한 말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학기의 기대와는 다른 말이 나왔다.


  “저랑 커피 한 잔 하실래요?”


  학기는 남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먼저 어색함을 달래고, 그 다음에 극장에 온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네.”


  극장이 있는 도로에는 주변에 마땅히 들어갈 만한 커피숍이 없었으므로 학기와 남자는 철길을 건너 나름 번화한 도로를 향해 걸었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 두 사람 모두 말없이 걷기만 했다. 학기는 아직 어색함이 남아 있었기에 남자의 뒤에 한 발자국 떨어져서 걸었다. 남자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잔뜩 어깨를 움츠린 채로 걸음을 재촉했다. 한 발자국 뒤에서 걷는 학기의 귀에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남자가 혼잣말을 던졌다.


  “씨.발.... 존.나 춥네.”


  그렇게 찬바람을 뚫고 들어간 커피숍은 너무나 아늑했다. 남자는 익숙한 듯 창가 자리에 앉아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먼저 풀었다. 그리고 다시 밝은 미소를 띤 얼굴로 학기에게 말했다.


  “가끔 오는 곳이에요.”


  학기도 미소를 지으며 화답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래의 젊은 남자가 쟁반을 들고 다가와 테이블에 물잔과 재떨이를 내려놓고 주문을 받으려는 듯이 가만히 서 있었다. 학기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잘생겨도 너무 잘생겨서였다.


  “조금만 있다가 주문할게요.”


  “네.”


  대답을 마치고 테이블을 벗어나는 젊은 사장에게 학기의 시선이 계속 따라갔다.


  “뭐 드실래요?”


  함께 들어온 남자의 목소리에 학기는 시선을 돌렸다. 남자의 표정이 아까와는 달리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어찌 보면 약간 비웃는 듯한 표정도 읽혔다. 학기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무 거나요.”


  “그럼 브랜드 커피 마셔요.”


  남자는 카운터를 향해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주문을 받으러 오는 것을 막기라도 하려는 듯 커피라고 외치고는 손가락으로 2잔이라고 표시했다.


  “여기 늘 혼자 오는데.... 누구랑 같이 오는 거 처음이에요.”


  “네에....”


  학기와 남자의 시선이 부딪쳤다.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이 물끄러미 학기를 바라 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말이 없어요?”


  “그건 아닌데....”


  “아직 좀 어색한가 보죠?”


  학기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음.... 이런 말부터 시작하는 거 정말 싫지만.... 커피숍 이름도 시작이니까.... 저랑 비슷해 보이는데.... 몇 살이에요? 저부터 말하면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까 스물아홉이에요.”


  “스물일곱입니다.”


  “저보다 어리네요?”


  “제가 좀.... 나이 들어보인다는 거 저도 알아요.”


  “그 뜻이 아니었는데....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아뇨. 사실인데요 뭐....”


  “그럼 학생? 직장인?”


  “다음 달에 졸업해요. 봄부터는 직장인이 되는 거구요.”


  “딱 좋은 때네요. 잠정적 백수잖아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학기의 시선이 다시 돌아갔다.


  “그럼 맛있게 드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학기의 시선이 커피숍 사장에게 따라가는 것을 보고 남자가 학기에게 말했다.


  “근데 우리 아직 이름도 모른다 그죠? 이제 어색한 것도 좀 풀렸으니까.... 저는 이용주라고 합니다. 그쪽은요?”


  “저는 학기요. 정학기....”


  “저처럼 이씨가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동성동본일까봐요?”


  “그게 아니라.... 이름이 학기라서.... 아니에요. 농담입니다. 초면에 이름가지고 장난쳐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제가 좀 뚱뚱해서 그거 가지고 별명이 많이 붙었는데, 아마 평범했으면 이름 가지고 별명이 지어졌을 거에요.”


  “하하하하 학기 씨가 제 후배라면 이름이 학기라서 늘 학기 중이니까 방학하지 말라는 얘기했을 거 같아요.”


  용주는 커피잔을 들어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을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이집 커피 맛있죠?”


  “저는 커피맛이 다 똑같아서....”


  “그럴 수 있죠. 저는 커피를 많이 좋아해서.... 저 잘생긴 사장님이 블랜딩을 잘하는 거 같아요. 이 가격에 이런 커피 못 마셔요.”


  용주는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학기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붙여주려고 했으나 이미 용주의 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학기도 용주를 따라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담배를 물었다. 용주가 학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오늘 옥보단 보러 간 건데....”


  학기가 맞장구를 쳤다.


  “저두요.”


  “생각보다 별로 재미도 없고.... 솔직히 자꾸 신경이 쓰여서 집중이 안 됐어요.”


  “뭐가요?”


  “진짜 엄청 용기 내서 불 빌려 달라고 그랬던 건데....”


  학기는 처음 용주를 봤을 때를 떠올렸다. 라이터 대신 그냥 불이 붙은 담배를 건네줬던 기억이 났다.


  “그냥 담배만 주길래 저 같은 사람 안 좋아하나 싶었어요.”


  학기는 약간 미안한 마음에 변명을 했다.


  “그때 잡지를 보느라.... 어?”


  잡지가 없었다. 옆구리에 끼고 있다가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려 흘린 것 같았다. 용주가 가방을 열고 책 하나를 꺼냈다. 씨네21이었다.


  “이거 보세요.”


  “괜찮습니다.”


  “전 다 봤어요.... 씨네21 보는 거 보고 영화 보러 왔나보다 싶었어요. 근데.... 이렇게 같이 이야기하니까 좋네요.”


  “저두요.”


  이야기는 자연스레 씨네21에 실린 기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점점 확장이 되어 어린 시절 봤던 영화부터 요즘 영화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주로 용주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고, 학기는 조금 살을 붙이는 식이었다.

  공대생인 학기로서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교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딱 정해져 있어서 대화를 나누는 것에 즐거움이 전혀 없었는데, 용주와의 대화는 그 자체에서 즐거움이 느껴졌다. 용주가 구사하는 단어는 교과서에서나 봤을 뿐 평소에 잘 듣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단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한참을 떠들던 용주가 담배를 피워 물고 시계를 봤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학기씨랑 얘기하니까 시간가는 줄 몰랐어요.”


  학기도 시계를 봤다. 지하철 막차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학기는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극장에 온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학기씨는 뭐 타고 가요? 지하철? 버스?”


  “지하철이요.”


  “아직 막차 시간 좀 남았죠? 이거 피우고 나가면 딱 되겠네요. 저는 여기서 버스 타면 금방이에요.”


  담배를 다 피우고 용주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기도 따라 일어났다. 용주가 테이블 위에 놓인 계산서를 집어 들며 말했다.


  “내가 커피 마시자고 했으니까 내가 낼게요.”


  커피숍에서 나온 학기와 용주는 서로 약속을 한 것은 아닌데 지하철역 쪽으로 걸었다. 극장에서 나와 커피숍으로 갈 때처럼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저절로 지하철역 입구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학기는 계단을 내려가기가 싫었다. 궁극적 목적인 리포트 작성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용주가 먼저 운을 떼는 것 같아 학기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잘 가요.”


  용주가 손을 내밀었다. 학기는 그 손을 잡았다. 학기의 두툼한 손에 비해 용주의 손은 얇고 손가락이 길고 가늘었다. 학기는 이대로 헤어지기가 너무나 아쉬워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저.... 삐삐번호....”


  학기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용주는 가방을 열어 볼펜을 꺼냈다. 학기는 냉큼 손을 내밀었다. 메모지가 없으니 손에 적어달라는 뜻이었다. 용주는 학기가 내민 손을 잡고 손바닥에 볼펜을 대었다가 학기에게 말했다.


  “우리 내일도 볼까요?”


  학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볼까요? 학교 앞에서 볼까요?”


  “네.”


  “그럼 네거리 은행 앞에서 봐요. 7시 괜찮죠?”


  “네.”


  “그럼 진짜 잘 가요.”


  학기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손만 바라봤다. 온기가 여전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함께 리포트 작성을 하지 못했어도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온 학기는 기대감을 안고 꿀잠을 잤다.


  다음 날, 학기는 약속 시간이 되기까지 힘들게 기다렸다. 아무 할 일도 없어서 너무나 지루했다. 오래오래 시간이 흘렀겠지 싶어 시계를 보면 겨우 30분이 지나갔을 뿐이었다. 삐삐 번호를 알고 있다면 만날 시간을 앞당길 수 없느냐고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접었다. 7시라는 시간은 의미가 있는 시간이지 싶어서였다. 그저 직장인이라고 말했던 용주가 퇴근을 하고 만나려면 7시가 딱 적당한 시간일 터였다. 어쩌면 용주에게 7시도 이른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기는 용주도 자기처럼 약속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학기는 약속 시간 30분 전에 집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은행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먼저 도착한 학기는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으며 무엇을 할까 생각을 했다. 저녁 시간이니만큼 함께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가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때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면 될 것 같았다.

  학기는 약속 시간 10분 전부터 네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은 은행 정문 앞에서 용주를 기다렸다. 전날보다 날이 풀리고 바람이 불지 않아서 전혀 춥지 않았다. 하루 온종일 이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곧 만난다는 생각에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머릿속에 가득한 그녀 모습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 하늘에 구름이 솜사탕이 아닐까 어디 한 번 뛰어 올라볼까....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가사가 너무 유치해서 뭐 이딴 노래가 인기가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는데, 용주를 기다리는 동안 올려다 본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별사탕처럼 보여서 하늘에 뛰어올라 한 움큼 따다가 용주와 함께 달콤함을 맛보고 싶었다. 학기는 스스로도 시답잖은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노래가사처럼 세 번째 만남도 아니고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남인데 학기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학기는 길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용주가 내리지 않는지 기대를 했다가 버스가 출발한 자리에 용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버스가 도착을 했기에 학기의 기대감은 다시 타올랐다. 학기는 시계를 들여다봤다. 약속 시간에서 2분이 지나 있었다. 새로 버스가 한 대 도착했다. 저기에는 분명히 용주가 타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버스가 잠시 머물렀다가 출발을 한 자리에 용주는 없었다. 다시금 실망감이 밀려왔다. 바로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어젯밤에 학기의 귀를 즐겁게 하던 목소리였다. 학기는 뒤를 돌아봤다. 용주가 해맑게 웃으며 학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기가 인사를 하기 전에 용주가 말을 이었다.


  “많이는 안 늦었죠? 지하철 안 놓쳤으면 딱 맞게 왔을 건데.... 많이 기다린 건 아니죠?”


  “네. 저도 방금 전에 왔어요. 근데.... 버스 타고 오는 거 아니었어요?”


  “지금 차 막히는 시간인데 어떻게 버스를 타요. 지하철이 빠르지.... 그나저나 저녁 먹었어요?”


  학기는 고개를 저었다.


  “잘 됐네. 같이 먹어요.... 학기씨 자취하면서 밥 해 먹어요?”


  “아뇨.”


  “그럼 달아놓고 먹는 식당 있죠? 자취하는 내 친구들은 다 그렇게 먹던데....”


  “네 있어요.”


  “그럼 거기 가요.”


  “여기서 좀 먼데....”


  “멀어봐야 10분, 15분 거리겠죠. 걷는 거 좋아하니까 거기서 먹어요.”


  학기가 이용하는 식당은 학교 후문 쪽에 있었다. 자취방도 그 근처였다. 밥을 먹고 자취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취방이 후문 쪽이에요?”


  “네.”


  용주가 먼저 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학기가 따라갔다. 주객이 전도된 듯 했지만 학기는 아무렇지 않았다. 학기는 용주의 옆에서 보조를 맞추며 함께 걸었다.


  “나랑 제일 친했던 친구도 자취방이 거기 있었거든요. 늘 공부하던 녀석이라 중도에서 개구멍으로 빠지면 가깝다고 그쪽에서 자취를 하더라구요. 그 친구 덕에 저녁은 늘 거기 식당에서 자주 먹었어요.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시는 곳이었는데, 딱 아침이랑 저녁만 했어요. 밥도 무제한 먹을 수 있고, 커다란 쟁반에 계란후라이가 수십 개 있어서 알아서 갖다 먹고....”


  “혹시 할매식당....”


  “네. 학기씨도 거기서 먹어요?”


  “네.”


  “우와 잘됐다.... 학기씨 우리 빨리 가요. 저 배 많이 고파요.”


  학기는 용주가 밥을 먹는 것을 가만히 지켜봤다. 약간 샤프한 이미지여서 밥을 깨작대지 않을까 싶었으나 오산이었다. 덩치가 큰 학기보다 많이 먹었으면 먹었지 적게 먹지도 않았다. 알아서 밥도 한 그릇 더 퍼 가지고 한 톨 남김없이 다 먹고, 국그릇도 깨끗이 비웠다. 식탁에는 남아 있는 반찬이 하나도 없었다.


  “제가 먹은 것도 달아 놓을 거죠?”


  학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트를 펼쳐 자기 이름이 적힌 칸에 작대기 두 개를 그었다. 용주는 식당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학기도 그 옆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덕분에 잘 먹었어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옛날에 제가 잘 가던 커피숍이 아직도 있던데 오랜만에 거기도 가봐야겠어요. 학기씨 덕분에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요.”


  다시 처음 만났던 은행 앞으로 걸어갔다. 학기는 자취방에서 멀어지는 것이 좀 아쉬웠으나 용주와 함께 있어서 마냥 좋았다. 용주는 은행 건너편 2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학기를 이끌었다. 커피숍 이름이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였다.


  “학교 다닐 때 자주 왔던 데에요. 이름이 좋아서....”


  용주가 커피숍에 들어와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말한 첫 마디였다. 학기도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 말을 건넸다.


  “이름이 길어서 약속 잡기가 힘들 거 같아요.”


  “하하하하 그렇죠?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 그냥 겨울나무로 불렸었어요. 황지우 알죠?”


  “누군데요?”


  “시인이에요. 저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우리과에 좋아하는 애들이 워낙 많아가지고 이름 멋지다고 자주 왔던 거에요. 이 커피숍 이름이 황지우 시 제목이거든요.”


  이야기는 자연스레 시를 비롯한 문학으로 흘렀다. 문학에는 문외한인 학기였지만 학력고사에서 국어 점수를 잘 받았기에 아는 것들을 총동원하여 용주의 달변에 보조를 맞췄다.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학기는 조금씩 다급해졌다.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용주의 작은 입에 입술을 포개고 싶었다.


  “학기씨 우리 이제 나가요.”


  용주가 계산을 치를 때 학기는 먼저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곧바로 계단을 내려온 용주가 학기에게 말했다.


  “학기씨 우리 좀 걸어요.”


  학기는 용주와 나란히 서서 늦은 밤길을 걸었다. 자취방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시간도 덧없이 흘러갔다. 학기는 용주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제가 나이도 더 어린데.... 말 편하게 하시죠?”


  용주는 걸음을 멈추고 학기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나이 많다고 함부로 말 놓는 거에요. 저 보고 그런 사람이 되라구요?”


  “그게 아니라....”


  “학기씨 말뜻 알아요. 근데 제가 그러기 싫어요. 전 이게 더 편해요.”


  그렇게 또 계속 걸었다. 시간은 밤 11시를 훌쩍 넘어섰고, 어느새 지하철역에 다다라 있었다.


  “이만 갈게요.”


  용주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학기는 아쉬움을 안고 그저 아무 말 없이 악수를 받았다. 이미 가겠다고 말을 한 사람에게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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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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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같은 …. 사랑의 글이라는… 찐득한 몸으로 만나는 허무한 시간을 조금 허물어가는 ㅜㅜ 현자타임과 동성연애는 어떤 결실을 낳는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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