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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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있는 풍경 바람도 살살 불고 좋다.
붉은 하늘이 파도소리와 잘 어울린다.
불멍 하듯이 저물어가는 따뜻한 햇살을 바라본다.
"여기 수리 다 되었어요."
민석은 내 휴대폰을 쭈욱 내밀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옷은 여전히 작업복으로 냄새를 맡지 않아도 비린내가
줄줄 세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게 느껴지던지.
난 아무렇지 않게 내 휴대폰을 받았다.
"아니,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 되는 것 아니예요?"
난 민석의 눈을 빤히 쳐다 보며 그 동글동글 반짝이는 눈에 대고
"고마워요."라고 해줬다.
사실 휴대폰이 수리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영원히 내 이전의 삶이 지워진 채로 그냥 여기서 아무 고민 없이
살아볼 수도 있겠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민셕은 가볍게 밖에 있는 수도로 몸을 행구고
슬쩍 내 옆으로 왔다.
옆에 있던 돌 위로 털썩 앉더니 하는 말,
"휴대폰 어렵게 수리를 해줬는데 확인도 안 해 봐요?"
난 아무 말 없이 아까와 같은 자세로 불멍 하듯 지고 있는 해를 바라 봤다.
몇 십 분 안에 해는 붉은 바다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았다.
민석은 혼잣말처럼 이렇게 남겼다.
"하기야 모질게도 그런 맘을 먹었던 사람이 휴대폰이 무슨 의미겠냐만은..."
말투가 어르신 말투였다.
아마도 어릴 적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을지도 몰랐다.
"그냥 같이 지내는 건 좋은데 평생 같이 있을 수만은 없는 거 아니여요.
빨리 누구 일가친척에라도 연락해서 데꾸 가라고 하셔요."
난 순간 우울해졌다. 그 모습을 봤는지 민석은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가족은 내 걱정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없어진지도 모를 텐데...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석현이다. 그 녀석은 일 내팽개치고 나를 찾아 올 애다.
아직도 나를 찾아오지 않은 것도 어쩌면 매우 의아한 일이고 내가 그 녀석을
잘 알지 못한 부분이 있었을 수 있다고 느꼈다.
갑자기 물기로 축축한 민석의 속이 내 속 위로 포개졌다.
"다시는 그렇게 끔찍한 생각일랑 말아요. 힘내서 살아봐야지.
내쫓지는 않을 테니깐 맘 편히 있어요."
거친 손의 촉감
바닷물이 폐 깊숙히 채워지고 내 정신은 아래에서 위로 물 속에 잠기고
모든 것이 하얗게 하얗게 변해 갈 때 느꼈던 거칠고 두터운 손의 느낌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이 손의 느낌은 영원히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본능처럼 나도 그의 손을 잡았다.
뭔가 무안했는지 민석은 내 눈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란 자신의 표정을 숨기고
살짝 웃어줬다. 귀엽다.
이미 해는 지고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집안의 불빛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민석이 집안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을 동안에도
나는 밖에서 밤 바람을 맡고 있었다.
저만치에서 민박 손님들이 물놀이를 실컷하고 와서 지친 표정으로
터벅터벅 민박촌으로 걸어 들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난 휴대폰을 켜고 지문을 인식 시켰다. 쨍하니 켜지더니
습관처럼 U채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차마 사람들의 덧글들을 볼 자신이 없어서
휴대폰을 닫았다. 그리고 난 누구에게도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현실이 밀어닥치는 느낌이 들었다.
스마트폰 하나로 인생이 갈릴 수 있는 세상이다. 무서웠다.
민석은 문을 열고
"와서 밥 같이 먹어요."라고 얘기해주기 전까지
난 그 끔찍한 현실 안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 듯했다.
바닷소리는 여전했고 저만치 멀어지는 기러기 소리도 들렸다.
가족들이 떠드는 소리와 어디에서 불어오는 음식 냄새가 뒤섞였다.
여긴 아직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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