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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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전애인과 같이 왔던 그 장소였고 아래로는 파도가 요란히 치고 있었다.
딱 좋은... 날씨
그 순간에도 신발은 벗어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도 간단한 것을 너무 움켜쥐었지...
한참이 지나고 정신이 들었던 건
내 몸이 해변가에 내동댕이 쳐진 뒤였지만
여전히 내 정신은 비몽사몽이었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술이 거칠게 숨을 몰아주고 가슴팍의 압박이 느껴졌다.
난 너무 괴롭고 힘이 들었다. 그냥 놔줘...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또 한 번의 입술이 다가왔다. 거칠었지만 촉촉했다. 눈을 떠 보려 했지만
떠지지도 않았고 떴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깊이 입속으로 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따뜻한 숨결...
순간 눈물이 또로록 흘러내렸다. 그건 아주 짠 바닷물이었을 수도 있었고
내 안의 짠 기억들이 빠져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가슴의 심한 통증이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심한 기침이 절로 나오면서
안에 있던 액체들이 쏟아져 내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신이 들었고
눈앞에 사물들과 민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은 물 범벅에다가 모래알들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었고
숨을 거칠게 쉬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그의 향기가 느껴졌다.
여태 맡을 수 없었던 사람의 냄새였다. 투박하고 묘하지만
순수하며 귀여웠다. 정신 차려 일어나려고 하니 머리 끝에서부터
목까지 피가 쫘악 빠지는 느낌이 들면서 기절했다.
숨은 쉬어진다는 것을 알았고... 죽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샤워기 물이 타닥타닥 몸을 때렸다. 슬플 것도 없었고 기쁠 것도 없었다.
민석에게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불필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샤워가 길어지다 보니 생각도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니깐 씻어낼 기억도 많았다.
밖에서도 타닥타닥 빗소리가 들리고 점점 소리가 요란해져서 샤워기에서 나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바닷가 섬마을을 씻기고 있었다.
모든 걸 지우기 위해 왔던 것인데 또 다른 기억이 안겨진 느낌이 들었다.
밖에서 문소리가 벌컹 들렸다.
바람 소리였는지 누가 들어온 소리였는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밖에는 빗소리 천지였다.
거실 쪽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민석이 일찍 들어온 모양이다.
샤워실 문이 벌컥 열렸다.
너무 급히 일어난 일이라 뭔가 방어할 틈이 없이 내 온 몸이 노출되었다.
민석은 빤히 내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내 온몸을 훑는 시선을 목격했다.
죽음의 경계에 갔다온 사람이라 이런 것도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놀란 건 민석이였던 것 같다.
당황해서 어리바리 서지도 걷지도 달리지도 않는 자세로 있었고
몇 초 동안 우왕좌왕만 하다가 이내 생각이 들었는지 문을 쾅 닫으면서
문 뒤로 미안해요. 라고 작게 이야기를 남겼다.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타월을 두른 뒤에 태연히 밖으로 나가서 민석이를 봤다.
민석은 여전히 당황한 모습이며 비에 젖였는지 휴지를 뜯어서 흘러내리는 물기를 닦고 있었다.
난 작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말했다.
"우린 입맞춘 사인데 뭘 놀래요?"
순간 깜놀하는 동글한 민석의 눈이 귀여웠다.
"그건... 그건... 살리려...."
"아무튼 미안해요. 빗소리 때문에 샤워하는 줄 몰랐어요. 다 썼죠? 이젠 제가 들어갈게요."
가슴이 콩닥콩닥하는 모습이 귀에 갖다대지 않아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귀엽다.
샤워소리인지 빗소리인지 뒤셖인 소리가 들렸다.
난 머리를 말리고 있었고 갑자기 몰래 샤워실 문을 열어 볼까 생각도 들었다.
자업자득.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핸드폰 알람이 진동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시하려고 했지만 무언가 느낌이 왔다.
열어 보니 석현이었다.
[톡 읽는 대로 연락 줘.]
상단 대화창만 보고 읽지는 않았다.
지금의 일상에서 과거는 지우고 싶었다. 없었던 일처럼.
전화기를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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