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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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하게 올라온 근육이 느껴졌다.
작게 보이던 민석이 의외로 근육량인지 무거워서 부축할 수조차 들 수조차 없었다.
끙끙 대면 들춰 매려고 해도 내 힘으로는 버거웠다.
"저기 민석씨 일어나요. 일어나."
난 살살 민석의 볼을 탁탁 치면서 깨웠다.
민석의 동글은 눈이 풀려서 반만 열리더니 중얼중얼 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 들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구요."
중얼중얼 옹알이 하듯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민석은 꿈인지 생시인지도
구분 못하는 듯했다. 그의 팔을 들어서 어깨와 목에 걸치고 끌 듯이 걸었다.
민석은 순순히 따라오지 않고 발버둥 쳤다.
고래고래 뭔가 말을 하고 불만을 표하는 것 같았다.
"나 노포 좋아한다고!!"
그의 말인 즉 이렇게 말을 계속 하는 것이었다.
내가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정확히 그렇게 얘기한 것 같았다.
'그래, 나도 노포 좋아해.'
나도 모르게 살짝 이렇게 말을 한 것이다.
민석은 그 말을 술 기운에도 들었는지 언른 내 눈을 마주치며
손가락질을 하면서
"나 봤다."
라고 하는 것이다. 뭔 소리가 했는데 낮에 있던 사건이 떠올라서
갑자기 얼굴이 뜨겁게 올라왔다. 그 때 당시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부끄러움이
왜 이제서야 오는지 나도 몰랐다. 나는 못 알아 듣는 척 민석을 부축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는 데에만 집중했다.
"어어어엇"
민석은 난간에서 균형을 잃고 뭄이 내 쪽으로 쏠렸다.
난 있는 힘껏 균형을 잡으로 노력했고 넘어지면 둘이 크게 다칠 것 같았다.
민석의 반대편 손이 내 온몸을 감싸게 되었고 그대로 민석이 나를 꽈악 안아 버렸다.
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코어에 힘을 주고 버티려다가 상체가 올라가면서 민석의 안면과 내 얼굴이
맞닿았다. 잠시 뿐이었지만 입술과 입술이 부딪쳐서 떼어졌다.
아까 마신 막걸리와 복분자의 향이 짧았지만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인공호흡해줬던 짭짤한 깊은 바다 냄새도 같이 났다.
민석은 기절한 듯 눈을 감고 있었고 마네킹처럼 몸에 힘이 없이 풀썩 나에게 기대어 있었다. 
난 그런 모습으로 안고 어기적 어기적 난간을 넘어 집으로 들어갔다.
신발도 벗길 틈도 없이 민석이 너무 무거워서 두손으로 안아서 거실 안쪽으로 옮기는데
나도 힘이 딸려서 민석의 발이 난간에 계속 부딪쳤다. 손을 더 내려서 엉덩이로 갔다.
음흉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짧은 순간에 탱탱하게 힙업이 된 민석의 엉덩이가
내 손 가득 잡혔다. 난 힘을 내서 들어 올리니깐 난간을 넘길 수가 있었고 얼렁뚱땅 내 신발을
발과 발로 벗어던지고 민석을 조심스레 거실에 눕혔다.
눕는 그 순간 민석은 뭐라고 잠꼬대처럼 얘기했는데 알아듣지는 못했다.
난 한시름 놓는 한숨처럼 내 몸이 내려 앉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을 산다는 건 이렇게 가벼운 일도 무겁다.
민석의 신발을 벗겨 정리하고 물을 따라서 나 한 잔 마시고
민석에게 주려고 상체만 일으켜 세웠다.
"민석씨. 물 좀 마셔요."
민석은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정신을 차리고 물을 아기새처럼
꼴딱꼴딱 마셨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면
키갈을 날렸다.
난 순간 당황을 하기도 하고 본능적인 몸짓으로 뒤로 뺐다가
이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내가 리드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민석이 하는 대로 있을 예정이었다.
수줍은 입술
거칠고 퍼석한 느낌의 입술이었지만 동작은 어린 아이 같았다.
그래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온갖 화살들과 번개들과 빗방울들이 난무한다.
우리는 매일을 그것들과 힘겹게 싸우고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옆에 있는 어떤 이가 그렇게도 나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된다. 그의 몸짓 그의 얼굴 그의 향기 자체가
한 순간에 큰 돔처럼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안아준다.
그러면 그 순간 만큼은 외부의 어떤 고통도 잊을 수가 있게 된다.
전혀 다른 세계로 초대받는 느낌이다. 지금 이 순간이 그렇다.
난 눈을 감았지만 자연스럽게 눈물이 쪼르륵 흘렀다.
민석은 나를 살렸고 나를 살리고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미래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는 모험이다.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내 미래지만 내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냥 이 순간에
민석이 내게 있고 입술로 교감하는 이 순간 만큼은
미래가 어떻게 되든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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