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릴레이 소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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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열
-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아내 희순이 맞이하며…)
- 응...? 아냐! 많이 마셨어…(평소보다 힘없는 목소리로 정열이 말을 했다)
- 왜, 둘이 분위기 별로였어요? 당신 안색이 별로 네…
- 아니야, 피곤해서 그러지… 나 서재에서 잘 거야...
- 아니, 이이가 잘 놀고 와서 왜 방을 놔두고 또 서재야...!
-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 그럼, 방에서 주무시지 왜…..
아내가 말을 하는데 정열은 서재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정열은 집에 돌아와서 아내 몰래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희순은 무슨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친한 친구랑 술을 마시고 와서 왜 저리 힘이 없나 생각했다.
그날 밤, 정열은 베갯잇이 축축할 정도로 오랜 시간 가슴 속에 담아 둔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정열에게 정구는 형제와 같은 존재였었기에 남의 일 같지 않았었다.
정열과 정구가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거의 40여 년 전의 일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같은 학교를 정구와 같이 다닌 둘은 입대 지원서를 같이 내고 운 좋게도 같은 군부대에 입소했었다. 넓게 보면 같은 부대지만 근무하는 반이 달랐다.
정열은 행정반, 정구는 보급반에 배치받았다. 그러나 업무상으로 완전히 배제되지 않고 연결이 되어 있었다. 정구는 또래보다 무척 동안이고 인물이 좋아서 어디 서나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것이 군에서도 통하고 있었다.
정열은 행정반이라 다행히 육체적인 힘듦은 없었으나 정구는 보급반이라 운전을 직접 하고 있었다. 무거운 것도 때로는 들고 옮겨야 하곤 했다. 일병 때의 일이었다. 정열은 일을 마치고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고참 몇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군기가 바짝 든 이병이라 궁금해도 뭔 일인지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뚫려 있는 귀로 무슨 말인지는 다 들렸다. 정열은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된다. 다름 아닌 정구의 이야기였다. 내용인 즉, 최고참 배정명 병장이 같은 내무반에 있는 정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최고참인 배 병장과 같이 당직을 서면서 강제로 덮쳤다는 데 이병이, 최고참을 덮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그러나 그 일에 대해서 누구도 바깥으로 오픈 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후에 그 일은 소문만 무성하다가 조용히 사라졌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남자가 남자를 덮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예전에 대학 MT 가서 본 게 사실이란 건가...? 정열은 사실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일이 새삼 떠 오른다.
2박 3일의 MT! 대학생이 되어 제일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MT였다. 며칠 전부터 가슴이 떨리고 설레었던 풋풋한 그 시절… 단짝인 정열과 정구는 가운데 이름까지 같아서 더욱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MT 첫날 밤, 선배 몇 이서 남. 녀 신입생들을 모아 놓고 신입 환영식을 치를 때의 일이었다.
남자 신입생들은 의무적으로 큰 냉면 그릇에 소주를 가득 채워 마시게 하였다. 여자는 작은 막걸리 잔이었는데 당시 정열은 술을 잘 마시지 못할 때였다. 그러나 정구는 어릴 때부터 술을 잘 마셨다. 정구는 자진해서 혼자 한 그릇을 더 마셨다.
- 오! 이정구, 너 술 좀 하는데! 한 잔 더 마실래...? (다른 선배가 권했다. 아니, 거의 명령 같았다)
- 네. 좋습니다! (정구가 씩씩하게 냉면 그릇을 내밀었다)
- 야, 석 잔은 무리야! 냉면 그릇 치우고 막걸리 잔으로 바꿔! (옆에서 진영 선배가 한마디 했다)
- 아, 그냥 둬! 자기가 마시고 싶다잖아! (결국 다른 선배가 마시게 했다)
- 정구야, 다 마시지 말고 남겨도 돼! 내가 마실게!...! (진영 선배가 정구를 바라보는 눈빛은 왠지 남 달라 보였다)
결국 정구는 냉면 그릇으로 소주 3그릇을 마셔 버렸다. 정열은 한 그릇으로 이미 넘어가 그 자리에서 뻗어 버리고 말았다.
- 야, 누구 이놈 좀 챙겨라! 덩치는 정구랑 비슷한 게 뭐야! (다른 선배가 말했다)
- 네, 선~배님! 정열이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걱~정 마~시시오...! (정구는 그새 혀가 약간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 둘이 잘 알아...? (진영 선배가 물었다)
- 네,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입니다!
- 그래, 그럼 네가 정열이 잘 챙겨라! 그리고 빨리 와! 한 잔 더 하게…(다른 선배가 말했다)
- 네, 선배님!
한참 후, 정열은 머리가 아파 눈을 뜨니 눈앞이 새까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밤이고 실내라 어두웠고 또한 벽 쪽을 보고 있었다. 정열은 목도 마르고 해서 몸을 일으켰는데 무언가 주변의 느낌이 이상했다. 처음에는 어두웠으나 방 안의 커튼 창으로 달빛이 어슴푸레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제야 시야가 눈에 들어왔다. 민박집 방의 넓은 실내였다. 민박을 몇 개 얻었는데 술이 된 사람은 먼저 가서 자고 밤새 노는 사람들은 놀고 있었다. 정열이 먼저 쓰러지자 차례대로 누워 자라고 벽 쪽으로 정열을 눕혀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창문 밑에 무엇이 포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었다. 정열이 있는 곳은 방의 구석 쪽이라 어두웠었고 커튼이 쳐진 창문 밑은 그런대로 보였었다. 몇 시인지 모르겠으나 바깥에서는 아직도 시끄럽게 노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눈을 크게 떠보니 창문 아래에 두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는데...
정열은 어두워도 두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누워 있는 사람은 장진영 선배였고, 그의 사타구니에서 엎드려 고개를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친구 정구였었다. 처음에는 무얼 하나 했는데 정구가 진영 선배의 그것을 빨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정열은 일으켰던 몸을 다시 조용히 원래 바닥에 눕혔다. 그러나 벽 쪽으로 눕지 않고 둘이 보이는 방향으로 천천히 소리 없이 누웠다. 어두워도 행여나 들킬까 실눈을 뜨고 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가만 보니 진영 선배는 자는 건지, 아니면 같이 즐기는 것인지 몰라도 상의를 반 정도 위로 올리고 바지도 무릎까지만 내려져 있었다. 그 위에서 정구는 옷을 다 입은 채로 진영 선배의 페니스를 정신없이 빨고 있었다.
어둠 속이고 정구가 진영 선배의 페니스를 입에 넣어 선배의 굵기나 사이즈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 든 게 지금 생각하니 참 웃겼다. 아무튼 정열은 꿈만 같았던 둘의 행위를 끝까지 다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2박 3일의 MT는 끝이 나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둘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열은 그 일을 지금까지 감추고 있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그것도 최고참을 건드리다니! 평소 정구의 적극적인 성격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담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정구에게 물어보기도 그랬다. 그 후로도 부대에서 그런 소문을 잠깐 더 듣기도 했었지만 정열은 그냥 넘어갔었다. 그때만 해도 정열은 세상 물정에 대해서 잘 몰랐었다.
더군다나 군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말단 사병이 어떻게 진위를 알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이병이 최고참 병장을 건드렸다고 소문은 났어도 그것이 문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직접 발설하지 않았고 문제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누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정확한 사실은 둘 많이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이 같이 전역하기까지 정열은 그 일을 또 묻어 두고 잊혀 갔었다. 후에, 대학에 다시 복학 후에도 정열은 군에서의 정구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랬는데… 각자 결혼 후 서로의 삶에 묻어갈 즈음이었다. 정열의 나이가 마흔 중반 정도 되었었나...?
부서 회식이 있었는데 장소가 종로 3가에 있는 국일관에 있는 고깃집으로 결정이 됐다. 1차를 먹고 2차를 가기 위하여 건너편의 낙원상가 쪽으로 향했다. 맥주 가게에서 2차를 파하고 한 잔 더 하려 하자 일행들 일부는 늦다고 집에 가 버렸다.
오랜만에 시내에 나왔기에 정열을 포함한 나머지 넷은 다시 3차를 가기로 하고 어디로 갈까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건너편 골목에 있는 술집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 아니, 정구아냐! (정열은 처음에는 반가워 정구를 부를 뻔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정열은 반사적으로 건너편의 사람들이 나오는 가게의 간판을 퍼뜩 보았다. (레인보우 - MEMBERSHIP CLUB)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득, 오래전에 후배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종로에 가면 게이들이 자주 다니는 술집들이 몇 개 있는데, 그곳에는 모두 상호 옆에 멤버십 클럽이라고 적혀 있다고.
그러자, 지난 몇십 년 간 잊고 살았던 정구의 미스터리가 다시 떠 올랐다. 아! 정구가 역시 남자를 좋아하는 게 맞구나! 정열은 오히려 정구가 자신을 볼까 봐 재빠르게 몸을 돌리고 일행들을 다른 쪽으로 유도했다.
정열은 그렇게 우연찮게 정구가 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정열은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누구와 상의할 곳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서야 오래전부터 정구에게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 하나씩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오래전, 대학 MT 갔을 때 진영 선배와의 밤, 군대에서의 그 무성한 소문들… 그리고 얼마 전 종로 3가에서의 발견은 지금까지 정구에게 미스터리로 남았던 일들을 사실로 확인시켜 주는 결정타가 되었었다.
그렇게 다시 십여 년이 훌쩍 지나가고 이제는 서로가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정열은 최근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57세면 기본은 살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언제 어떻게 가도 아쉬움이 크게 없는 나이가 아닌가!…
그래서 정구에게 사실을 알리고 진심으로 그를 위로하고 이해해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정열은 오랜 숙제를 이제 해결한 것이다. 유독, 오늘 밤은 길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열의 마음이 편했었다. 마치 오래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이…
= 자식, 인천으로 잘 갔나 모르겠네…
*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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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리오가 직접 마사지를 해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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