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에서 만난 남자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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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우 시점]
영상통화 중 본 적 없던 빨간색 칫솔을 본 그 순간, 은호에 대한 의심과 의혹은 어느새 확신으로 그리고 배신감이라는 감정에까지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복잡한 마음 때문에 미팅으로 가는 발걸음은 정말이지 무거웠지만 은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오전에 미팅을 잘 마친 후 이케부쿠로 역에서 다음 목적지인 시나가와역까지 우선 미리 이동해야겠다 싶어 내선순환지하철인 야마노테선에 올라탔다.
점심시간도 있고 다음 미팅 시간까지 두시간 남짓 여유롭게 남은 상황에서 시나가와역을 5정거장 앞두고 있는데
"츠기와 시부야, 시부야. 오데구치와 히다리가와데스. (다음역은 시부야, 시부야.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다음 정차 역이 시부야역이라는 지하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제 내일이면 이곳 도쿄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던걸까. 나도 모르게 안내방송에 이끌려 자연스레 시부야 역에서 하차를 했다.
곧장 파출소로 가서는 3일전에 분실신고 접수를 했다 말하며 혹시나 분실물 습득 접수가 추가로 들어온 게 없는지 확인 요청을 했다.
그리고 구석 한 켠에 투명해서 안이 전부 들여다보이는 분실습득함을 눈으로도 재차 확인해봤지만, 형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은 보이질 않았다.
난 분실물 접수 신청서에 정보 추가 요청을 했고 건네 받은 신청서에 당사자가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에 연락이 필요하면 이쪽으로 연락을 꼭 달라며 내 한국 집주소와 회사주소 그리고 휴대폰 번호까지 추가로 기입하곤 (일본어 가능) 이라고 표기를 했다.
경찰은 본청측에 현재 분실물 습득 장소 주변과 시부야역 주변 일대로 CCTV 확인 요청 의뢰를 넣어두었으니 혹시라도 용의자가 정해져 범인이 잡히게 되면 물건을 찾지 못하더라도 해당 내용에 대해서는 서면으로 통보를 해주겠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물건 찾는게 정말 어려울 거란 건 잘 알고 있지만 출국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확인해보고 싶어서 찾아 왔다는 말을 건네곤 바쁜 와중에 지금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곤 파출소를 나왔다.
볼일을 마치고 나왔는데도 다음 미팅시간까지는 아직도 1시간 30분 남짓 남아있었고 입맛도 없고 해서 시나가와 역으로 이동 후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고 있는데
문득 한없이 외로워진 느낌이 들면서 눈물 한 방울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그래 아직 내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니까, 직접 은호의 입으로 들은게 아니니까. 나부터라도 최은호 그 녀석을 신뢰해야지 라며 다시금 마음을 고쳐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이어지는 오후 미팅, 저녁엔 마츠모토 회사와의 회식까지 연이어 달리다 보니 어느덧 밤 11시 4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어제도 승준이 형과 취할정도로 그렇게 달렸으면서 왠걸,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마셔버렸다.
정말이지 오늘은 술에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냥 무작정 취하고 싶었다.
자정이 넘어선 시각, 호텔에 돌아와 보니 승준이 형이 아침 모습 그대로 침대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진
오천엔 짜리 1장과 천엔짜리 2장 그리고 나머지 동전들.
그리고 그 옆에 우콘파워(우콘노치카라, 일본숙취음료) 1개와 함께 메모지가 놓여져 있었다.
[아침 500엔, 점심 800엔, 저녁 900엔, 자판기 음료 110엔. 숙취음료제 250엔. 이렇게 사용했습니다. 준우씨, 오늘 미팅 잘 하셨어요? 고생많으셨어요. 그나저나 어제도 술 많이 드시고 오늘도 회식하시느라 술 많이 드셨을텐데 이거 하나 드시고 주무세요. 나머지는 오늘 쓰고 남은 잔돈입니다.]
나보다 어린 은호를 챙기기에만 급급해서 누군가가 날 챙겨준다는 느낌을 정말 오랜만에 받아서였을까.
꼼꼼하면서도 숙취음료제까지 사둔 세심함에 하마터면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그리곤 침대에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
“승준이 형. 자요...? 치.. 안자고 있으면 형이랑 한잔 더 할려고 했는데 헤헤....
그나저나 어제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형 그렇게 술 잘 마시는지 몰랐어요!! 저 어제 뭐 실수한 거 없었죠?? 헤헤 (웃으며) 근데...오늘도 제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아주 사알~~~~짝 취했습니다.....하하
근데..기분이 좋아서 많이 마셨냐구요? 아니요... 그럼 기분이 안 좋아서 마셨냐구요?
그것도 아니에요”
형을 앞에 두고 취중고백이라도 하듯 조용히 독백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냥 마음이 좀 심란해서... 이게 기분이 안 좋은건가...(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그래도 기분 좋은 거 하나 있다. 미팅 다 잘 끝냈고, 일 모두 잘 마친거!! 헤헤 나 잘했죠.
근데 만 엔이나 줬는데 비싸고 맛있는 것 좀 드시지.. 하루종일 3끼 밥 값으로 겨우 2천엔 남짓만 쓰시고.. 전 오늘 회식 값으로 8만엔이나 결제 했단 말이에요....어차피 내 돈도 아닌 회사 돈이긴 하지만 아무튼 저 오늘 비싸고 맛있는거 진짜 많이 먹었어요... 그렇게 먹고 와서 형이 남긴 이 잔돈을 보니까......괜히 미안해지잖아요...”
형의 숨소리가 들리며 배가 위 아래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데 꽤나 깊게 잠이 든 것 같았다.
“오늘 미팅 가는 길 도중에 시간이 좀 많이 남기도 해서 시부야 파출소를 다녀왔어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확인하고 싶어서..아직 추가로 접수된거나, 진전된 건 아직까지 없더라구요...(한숨을 쉬며) 오늘 혹시 전화나 연락은 따로 안 왔겠죠..? 형 카메라랑 지갑 그리고 잃어버린거 싹 다 찾아야 하는데...나쁜 새키들......"
“형 근데 그거 아세요.. 형 처음 만난 날, 시부야 역 앞에서 카메라 목에 걸고 여기저기 찍는걸 보고 있었는데 그냥 멍하니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가까이서 봤을 땐 너무 잘 생겨서 놀라기 까지 했다니깐요..(웃으며) 물론 지금도....
근데 형.. 저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이건 만약인데요.. 정말 만약에 혹시 연애를 하는 도중, 애인이 저 몰래 다른 사람을 만나고...만약 저보다 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면 그때 전 어떻게 해야되는걸까요..."
"그냥 헤어져야 되는게 맞는걸까요...?"
한 껏 술이 올랐는지 고개를 숙이다가 누워서 곤히 자고 있는 형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는
“아.. 내 정신 좀 봐. 편히 자고 있는 형한테 이런 쓸데없는 말로 잠이나 방해하고 (웃으며) 저 진짜 많이 취했나봐요. 그나저나 형이랑 일본에서 오늘이 마지막 밤이네요!! 좋은 꿈 꿔요. 형. 오야스미 (잘자요)”
그렇게 형 옆에서 혼자 주절주절 대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정장을 입은 채로 침대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근데 자던 도중 목이 말라 잠시 일어나 보니 넥타이는 목이 조이지 않도록 아래로 풀어져 있었고 양말도 벗겨져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내가 자기 전에 양말을 벗었던가?’
잠결에 불편해서 그랬나 보다 싶다가도 저 양말..생각보다 너무 가지런히 놓여져 있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일어나 물을 마시는데
“일어났어요?”
어둠속, 침대위에서 형이 일어났냐고 묻는데 물을 마시다 깜짝 놀라선
“아 깜짝아!”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니.. 몸이라도 좀 움직이시고 말하시면...안 놀라죠..”
“(웃으며) 아직 새벽 4시 네요. 언제 들어오셨어요..”
“아 머리야...(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쥐어잡으며) 자정 넘어서 들어온 것 같은데...언제 잠들었는지는 기억이 잘..”
“얼른 더 주무세요~”
“형은 왜 깼어요~ 혹시 저 때문에....”
“아니에요~ 어제 일찍 잠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 오후 비행기니까 조금 더 눈 붙여요. 여기선 오전 10시에 퇴실하면 될 것 같아요.”
“넵!”
그렇게 다시 침대에 들어서는데
“근데 그 차림으로 주무시려구요?..”
“아 내 정신 좀 봐.”
그렇게 정장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침대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형이 갑자기 몸을 내 쪽으로 돌이키더니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이 어두워서 그나마 다행이였다고나 할까.
“준우씨 오늘은 왜 이렇게 또 술을 많이 마셨어요"
"아... 회식이다 뭐다 해서 주는거 다 마시다보니....."
"근데 준우씨 옆에서 보니까 코가 참 반듯하면서 높네요. 그래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잘 생겨보이네요. (웃으며)”
저 형이 갑자기 왜 그러지. 무엇보다 우리 둘 사이가 지금 두 뼘 사이도 안 될 정도로 너무나 가까웠다.
“헐..갑자기 왜 그러세요~~ (괜히 부끄러워서) 형이 훨씬 더 잘생기셨...”
“벌써 내일이면 한국에 가네요. 그동안 저 도와주셔서 진짜 고마웠어요. 준우씨. 아리가토고자이마스.(감사하다는 말을 일본어로 하며 미소짓는)”
취하지 않아도 일본말을 하다니..지금 이 상황이 매우 어색하기만 하다.
“도우이타시마시테(천만에요~)”
“그건 무슨 말이에요?”
“천만에요~~~~라는 뜻이에요”
“이런 간단한 인사말도 못하면서 일본 여행이라니..너무 준비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온 탓에, 이런 일을 당했나봐요.”
“에이 또 그러신다. 형 실수 아니고, 저번에도 말했지만 형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사고 친 그 놈들이 백번 잘못한거죠.”
“피곤하실텐데 얼른 조금 더 주무세요”
“....근데 언제까지 그렇게 쳐다보실...”
“아.. 내 정신 좀 봐(몸을 다시 돌리며) ...”
그렇게 그가 몸을 급히 돌리는 도중 내 왼손위에 그의 오른손이 닿으면서 살짝 포개졌다.
전기가 찌릿하면서도 이 오묘한 분위기를 더는 참지 못할것만 같아 닿은 손을 빼내려 하는데
그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준우씨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준우씨 손 참 따뜻하네요. 전 손이 차가워서”
라고 말하는데
나란히 누운 침대 위에서 그가 내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데도 그의 말이 잘 들리질 않았다.
그냥 편한 형이 동생 잘 자라며 편하게 손 잡아주는거라 생각을 하려고 해도..
아무리 생각을 고쳐보려 해도...
심장은 아까부터 터질것처럼 두근거리고 있었고
누운채로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준우씨..벌써 자는거 아니죠? 너무 갑자기 잡아서 미안해요.(손을 풀며) 잘자요 준우씨.”
네 라고 대답을 해야하는데..왜 대답을 하지 못하는거야. 갑자기 잡아서 미안하다는 그의 말에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가 나에게 잘자요 준우씨 라고 이야기한지도 20분은 더 지난 것 같은데 아직도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잠 못 이루는 새벽.
잠을 뒤척이다보니 어느새 바깥은 동이 트려하고 있었다.
[최은호 시점]
준우형이 도쿄로 출장가기 한 달 전.
매니저님에게 고백을 받은 뒤로 자꾸만 매니저님의 얼굴을 마주할 때 마다 괜히 부끄러워져서는 최대한 매니저님과 마주치지 않도록 일을 했고, 전달사항이나 꼭 말해야되는 부분은 최대한 남석일 통해서 전했다.
오후가 넘어선 시각.
화장품을 진열하고 있는데
뒤에 매니저님이 바짝 붙더니 작은 목소리로
“최은호”
“네 매니저님”
“내가 많이 불편하냐? 왜 자꾸 나 피해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냐.”
“네? (괜히 당황하며) 저 매니저님 피한 적 없는데요.”
“뭐래. 지금 오후 4시가 넘었는데, 나 오늘 너랑 처음 대화하거든?”
“일이 바빠서 그래요...”
“바쁘긴.. 오늘 매출 뻔히 다 아는데..그럼 그 쪽이 보고해야될 일을 왜 남석씨한테 시키셨어요~~~”
“그...그건....”
“오늘 퇴근하고 밥이나 같이 먹어...나 불편한거 진짜 싫거든...”
남석이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자 매니저님이 휙 돌아서서는 매장을 나간다.
“매니저가 또 무슨 잔소리라도 했어요?”
“아냐; 그냥 물건 진열할 때 똑바로 놓으라고...그 말 하더라..”
“아니 진열을 똑바로 해도 손님들이 돌려놓는 걸 우리보고 어쩌라고.”
“이게 우리 일인데 뭐~”
그렇게 일이 끝나고
“형 나 오늘 데이뚜 있어서 먼저 나갈게요~~~(전화를 받고는) 어어 지금 나가는 중”
남석이가 급하게 나가고, 나도 짐을 챙겨 퇴근을 하려하는데
“최은호씨”
뒤에서 매니저님이 큰 목소리로 날 불러세웠다.
“네 매니저님”
“남석씨는?”
“여친이랑 약속있다고 벌써 나갔어요. (괜히 뻘쭘해서는)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뭡니까?”
“네...”
“아까 제가 했던 이야기 벌써 까먹었어요?”
“네? 무슨...?”
“퇴근하고 같이 밥 먹자고 한 거 벌써 잊었습니까?”
“근데 매니저님. 저희 둘 밖에 없는데 왜 갑자기 존댓말을 하세요...”
“은호씨가 절 많이 불편해 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그냥 예전처럼 존대말 하려구요..”
“......(살짝 불편한 표정을 내비치며)”
“그러지 말고, 밥이나 같이 먹으러 가죠...”
그냥 다음에 먹자고 말할 걸.
근데 집에 가면 오늘도 준우 형은 야근하느라 분명히 없을테고 혼자서 처량하게 밥 먹기는 싫었던 걸까. 나도 모르게 그의 뒤를 종종 따라갔다.
우린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 후 ‘종로3가’ 역 앞에서 함께 내렸다.
“날도 좋은데 야외 포차에서 소주나 한 잔 하죠”
“....네...근데 매니저님”
“네 은호씨”
“언제까지 그렇게 존대말 계속 하실꺼에요?.. 저 안주 먹다가 진심 체할 것 같은데..”
“(웃으며) 그럼 다시 놓는걸로 하지 뭐.”
“.........”
저 형이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건가.....
근데 어떻게든 이 불편한 상황을 자연스레 풀어보려는 형의 모습이 눈에 자꾸만 보여서 속으로는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길가 야외 테이블 자리에 마주앉아 소주 1병과 맥주 1병, 그리고 안주까지 주문을 했다.
“방금 들었어?”
“뭘요?”
“방금 지나가는 남자가 나 보면서 잘생겼다고 하면서 지나간거...”
“....아 그래요?? 진짠지 아닌진 잘 모르겠지만, 못 들어서 그것 참 다행이네요.”
“얌마. 구라 아니거든!!?”
“아 매니저님 잘 생긴거 저도 알거든요!!!!! 근데..본인 입으로 본인이 그러는건... 좀...”
“잘생겼다는 소리 싫어하는 사람 있음 어디 나와보라 그래! 정우성은 그 소리 몇 천번도 더 들었겠지. 말해 뭐해. 근데 그런 정우성도 잘 생겼다는 소리가 제일 좋다 카더라. (웃으며) 근데, 최은호!”
“네? 매니저님.”
“넌 근데 왜 자꾸 매니저님이라고 해. 현수형이라고 부르라니까”
“그건 그냥.....”
“아우 진짜 불편해 죽겠네. 너 애인있는거 알고도 고백한 내가 멍청이지. 근데 좋은걸 어떡해? 난 그냥 애인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니가 그냥 좋다고 말한 것 뿐인데. 그니까 내가 고백한거에 대해 오케이 대답 같은거 안해도 되니까 그냥 편하게 지내자 어!?”
“.....”
“같이 일하면서 이쪽 사람 만난 것도 인연이니까 편하게 진해자고! 임마!! 됐냐??“
그렇게 소주잔을 부딪치며 편하게 지내자는데..
이 싱숭생숭한 마음은 도대체 무얼까.
우린 1차를 마무리하고 가볍게 한 잔만 더 하자고 가자는 형의 말에 근처 게이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이블 다이 앞에 앉아 형과 칵테일을 마시는데
둘이 오셨냐고, 같이 놀겠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난 둘이 마시러 왔다며 정중히 거절을 하는데
30분 정도 지나서 또 다른 두 명의 남자가
“두 분 커플 아니신 것 같은데 저희랑 같이 합석해서 마실래요?”
말을 건넸다.
난 동일한 말로 거절을 하려고 하는데
형이 덥석 내 손을 잡아채더니
“커플이 아닌것 같다뇨, 누가봐도 우리 커플처럼 안 보여요??”
라며 목소릴 내뱉었다.
두 남자는 죄송하다며 좋은시간 되시라고 몸을 돌이키는데
아직도 형이 내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리곤 형이 내 손을 잡은 채로 한 손으로 칵테일을 들어 마시는데 칵테일을 마시면서 보이는 그의 옆선과 마실 때 마다 드러나는 그의 선명한 목젖은 내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목구비도 어쩜 저렇게 뚜렷한지...
내가 취하기라도 한걸까 싶어 정신을 차리고 부끄러운 마음에 그에게서 손을 빼내려 하는데
이 때 형과 내 눈이 그대로 마주 쳤다.
1초
2초
3초
그 때 그 순간, 현수 형이 내 손을 더 꽉 잡아 자기 쪽으로 세게 확 끌어당기더니 앞에 놓인 칵테일 한 모금을 더 마시곤 그대로 내 얼굴과, 입술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본인의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내 입술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그의 혀와 함께, 형의 입에 머금고 있던 칵테일이 내 입속 안으로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이게 현수 형과의 첫 키스였다.
형과의 키스는 그 어떤 칵테일보다 달콤했고 그 어떤 양주보다 진하게 느껴졌다.
바에는 사람이 무지 많았지만 어둠 속의 공간이라 그랬을까.
우리는 더욱 더 눈치 보지 않고 뜨겁게 서로의 타액을 교환했다.
한창 뜨겁게 달아오르던 키스를 이내 마치고 입술을 떼어내더니
“칵테일 맛이 어때?"
라고 내게 말을 하며 내 손을 꽉 쥐는데 형의 손은 정말이지 따뜻했다.
그리곤 동시에 심장이 미친 듯이 떨렸다.
이건 분명 술기운 때문이 아니였다.
이상하게 그의 말에, 그리고 그의 눈빛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새벽 1시가 지난 시각.
"그만 가자. 은호야"
"네"
바를 나오자마자 주변에 택시가 있는지 고개를 두리번 거리는 형.
“형”
“어! 왜!? 근데 여기 왜 택시가 안 보이냐. 큰 거리 또 나가야 되나. 은호야 여기 콜 택시 몇 번인지 알어...?”
“현수 형(한 껏 취한 목소리로 형을 부르며)”
“어!? 니가 이제 정신을 차렸구나. 드뎌 현수 형이라고 하네!!!! (미소를 보이며) 근데 왜 자꾸 불러!?”
“그러지 말고 우리 한 잔 더 안할래요?...(형에게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옷깃을 붙잡으며)”
그렇게 형에게 한잔 더 하지 않겠냐는 말을 건네곤 그의 옷깃을 살며시 붙잡는데 사실 이 행동은 '저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어요' 라는 간접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곤 형이 내게로 다가오더니 한번 더 내 입술 위에 그의 입술을 얹었다.
준우형에 대한 마음이 점점 식어가고 있어서 그랬던걸까.
아니면 단순히 술에 취해, 본능 앞에 이성이 무너져버린걸까.
형에게 내 입술을 맡긴 채로 그의 현란한 키스에 다시 한 번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 뒤로 수많은 모텔들의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들이 우릴 향해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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