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외 선생님 -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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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유부남인 진우형을 만난지도 어느덧 5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리 둘은 사귀자는 말만 안했을 뿐, 만나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드라이브도 하고, 그리고 모텔에 가서 섹스도 하는걸 보면 영락없는 애인사이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 유부남을 만난다는 것에 조금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그가 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게 안정감을 주었고 편안함을 만들어주었다.
무엇보다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형은 집과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난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그렇게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서로 털어놓곤 했다.
어느새 겨울이 찾아와
영하 1도의 날씨에 하얀 눈이 펄럭이고 있었고
그 날도 어김없이 진우형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우린 나이차이도 크게 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봐도 이상한 관계로 보기는 어려웠다.
대학교 동생 또는 회사 동료라고 하면 그만. 게다가 그는 유부남이였기 때문에 우리 사이를 의심할 사람은 사실 그 누구도 없었다.
"나 요새 운동부족인가. 대실 네시간에 세 번이나 하려니까 체력이 딸린다."
"하면 되죠! 사실 난 다 좋은데 뭐 한다고 하면 형 가슴이 조금만 더 탄탄했으면 싶은데 형은 어때요?! (웃으며) 물론 지금도 충분히 좋지만.."
"어휴.. 어린 놈한테 팽 안당할라면 내가 잔말말고 해야지. 암요 암요."
"그러지 말고 같이 헬스 끊을래요?"
"어쭈. 나보다 몸 좋은 남자 보고 싶은건 아니고? 나 그리고 헬스 다닐 시간도 없다."
그렇게 형과 모텔에서 나와 밥을 먹으려고 골목길을 돌아서는데
"(웃으며) 와 근데 영하라서 그런가 날씨 개 춥다 진짜. 배도 고프고. 얼른 가자!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빠른걸음으로 재촉하다 걸음을 멈춰선) 쭌! 근데 저기 구석에 누워있는거 사람 아니냐?”
내 이름이 현준이란 걸 형에게 오픈한 후 형은 언제부턴가 나에게 쭌 이라고 자연스레 부르고 있었다.
“어디요...?”
“저기 전봇대 뒷쪽에 쓰러져 있는거..”
“헐... (자세히 쳐다보며) 사람 맞는 것 같아요.. 이 날씨에 무슨 일이지..”
“(가까이 가서 보고는) 어우. 술 냄새. 야 술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가자가자! (몸을 돌이키며)”
“경찰한테 신고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니에요..?”
“뭘 신고까지해. 노숙자 같은데; 요즘 저런 사람 함부로 도와주다가 잘못 엮이면 골치 아퍼 임마!”
“그래도 이 날씨에 저렇게 자다간 얼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요..”
“어우. 야!!! 내가 먼저 추워서 얼어죽겠다. 됐고, 쭌, 밥이나 얼른 먹으러 가자”
그래. 나 아니여도 다른 누군가가 보고 신고해주겠지. 오지랖부리지 말고 지금 내 앞에 있는 형에게 집중하자 생각하고는 형과의 식사 데이트를 온전히 만끽하기로 했다.
우린 모텔에서 멀지 않은 일식집으로 들어왔고 초밥세트와 우동을 주문했다.
"형 여기 완전 맛있어요. 특히 참치랑 연어!"
"그래? 많이 먹어 우리 쭈니. 난 사실(고개를 내 앞으로 쭈욱 밀고는) 니가 제일 맛있어(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어우. 미쳤나봐. 또 저런다."
그렇게 형과 밥을 다 먹은 후 바로 옆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로 자리를 옮겨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티 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형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도중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 두 사람이 앉더니 문제집인지 책을 펴놓고는 과외 수업 같은 걸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카페까지 와서 과외를 하냐~~ 집중도 안 될 것 같은데~~~(형이 목소리를 낮추곤) "
형 입에서 과외 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문득 성태형이 떠올랐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진우형 때문에 그동안 성태형을 잊고 산 듯했다. 아니, 사실 잊고 있었다.
최 성 태.
그 이름 세글자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순간, 그와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뭐냐?(날 보더니) 너 갑자기 왜 웃었냐?"
"아니에요;"
"아 웃었잖아!! 웃을 타이밍도 딱히 없었는데...?(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과외하는거 보니까 고등학교 때 저 수학 가르쳐 주던 과외 선생님이 문득 생각이 나서요.."
"과외? 너 과외도 했어? 올~~~~역시 있는 집은 다르구만(웃으며) 남자? 여자?"
"남자요. 그것도 서울대학교 학생!"
"올~~~~ 잘 생겼냐? 이거이거 과외를 빌미로 완전 작업치려고 했던거 아냐?"
"잘 생기기만 했게요~ (말 끝을 흐리곤 미소를 보이다 잠시 생각에 빠져선)"
"어?? 지금 뭐냐?? 왜 말끝을 흐리는건데!!! (쏘아붙이며)"
"네? (순간 당황해선)"
"좋아했네. 좋아했어. 와....나 질투 나려 그런다."
"그 형은 이 쪽 아니에요. 얼른 커피나 마셔요~"
"어쭈! 말 돌리는거 봐라! 이 쪽 아니면 그럼 너 혼자 짝사랑 한거였어? 어휴..(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 과외 선생님은 뭐하는데? 지금은 안만나?"
"19살때 마지막으로 보고 ...그 이후로 본 적 없어요~"
"어?? 19살?? . 그럼 9년이나 흘렀잖아. 뭐야. 이쪽도 아니라면서. 싱겁긴."
그 때 갑자기 테이블 위에 놓여진 형의 핸드폰이 울리더니
“야야 쉿! 쉿! (코 앞에 검지를 가져가대며) 와이프 와이프”
그렇게 와이프와 조심스레 통화를 마치곤
“하...(한숨을 쉬고는) 돌겠네 진짜. 와이프 존나 화났다. 얘도 아픈데 아빠란 놈은 주말에 집에 안 있고 어디서 뭐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난리. 아니 내가 얘 아픈걸 알았냐고!!!! 휴....나 간다 쭌!~~나중에 문자할게”
형은 일어서면서 나중에 문자할게란 말을 남기고는 급히 가게를 나가버렸다.
카페에 혼자 남겨진 나는 잔에 남은 커피를 다 비우고는 그렇게 가게를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새 눈이 더 내렸는지 바닥에 눈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려나"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정류장으로 향하던 도중 아까 그 전봇대 쪽을 지나치는데
왠걸, 아직도 그 사람이 누워있었다.
이 상태로 자다간,, 진짜 큰일이라도 날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 아저씨를 불러보았다.
“아....아저씨....”
강한 알콜향이 올라옴과 동시에 아무 미동도 없는 아저씨.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아....아저씨!!!!!!!!!”
큰 소리로 불러보아도 미동이 없자 이 영하의 날씨에 혹 큰일이라도 생긴건아닐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무서움이 닥쳐왔다.
난 조심스레 더 가까이 다가가 아저씨의 몸을 흔들어 깨워보았다.
“(몸을 흔들며) 아저씨...아저씨!!!! 이 날씨에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다간 진짜 큰일 나요!! 얼른 집에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렇게 내가 큰 소리로 아저씨를 깨우자 앓는 소리를 크게 한 번 내더니 고개를 들곤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날 쳐다보았다.
“뭐야..? 시.발 상관하지 말고 가라고!!”
“저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구요.. 지금 날씨가 영하인데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면 진짜 큰일나신다구요!!!(큰 목소리로)”
내 말을 무시하는 것처럼 아저씨는 다시 그 자리에 털썩 누워버렸다.
안되겠다 싶어 난 112에 바로 신고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관이 바로 찾아왔다.
“아저씨. 여기서 이렇게 주무시다간 정말 큰일나십니다~~~~~”
“아저씨(경찰관들이 그를 계속 흔들어 깨워봐도 도저히 안되겠는지) 아저씨 휴대폰 어디있어요?? (주머니 안 쪽에 휴대폰을 찾아서는) 아저씨 가족한테 전화겁니다!????”
비번이 걸려져 있지 않았는지 휴대폰을 꺼내 바로 연락망을 찾더니
“여기 아들 있네. 여기 아드님께 전화 걸게요!! 아저씨!!”
“아들한테 전화를 왜해. 하지마! 하지 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그렇게 연락이 닿았는지 경찰이 아들과 통화를 마치는 걸 보고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와 비슷해 보이는 나이라 측은한 마음이라도 들었던 걸까.
그렇게 떠나야 하는데도 그 아저씨를 계속 지켜보느라 제자리에 15분 정도 멍하니 서 있게 되었다.
“어!? 학생 아직도 안가셨어요??”
“아...가야죠. 가야죠. (정신을 차리곤) 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우 젊은 학생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렇게 연락 줘서 고맙습니다!! 날도 추운데 어서 들어가세요. 저 아저씨 아드님이 마침 이 근방에 있다고 해서 바로 오시기로 하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렇게 경찰 분에게 인사를 하려고 돌아서는데 누군가 이쪽으로 급하게 뛰어오는 한 남자와 강하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렇게 가볍게 쥐고 있던 내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졌고
“헉...헉 (숨을 내몰아 쉬며) 괘...괜찮으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내 휴대폰을 집어서 어디 깨진데는 없는지 살피며) 정말 죄송합니다(고개를 숙인채)....”
내가 지금 취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 난 오늘 분명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목소리. 항상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실루엣.
22살의 나이에서 그대로 9년이라는 흔적이 고스란히 얼굴에 베인 채, 31살의 최성태라는 남자가 눈 앞에서 연신 죄송하다며 내 휴대폰을 줍자마자 본인의 코트 앞 소매로 열심히 닦고 있었다.
난 너무 놀란 나머지 제 자리에 멈춰 서서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고 있었다.
형은 정신이 없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으며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저.....정말 죄송합니다. (휴대폰을 재차 확인한 후 나에게 휴대폰을 건네곤) 여기..”
"(휴대폰을 받고는 기스가 났는지 볼 겨를도 없이 성태형을 계속해서 쳐다보며) 괘...괜찮습니다"
그렇게 내게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곤, 아버지에게로 바로 달려가더니 쭉 뻗어 누워있는 아버지를 손으로 잡아 흔드는데
“아버지. 저에요. 저 왔어요. 성태”
“(목소리를 높여) 아버지!!!! 저 왔다구요. 여기서 도대체 왜 이러고 계세요. 어서 택시타고 집에 가요.”
“아이씨..아까 그 새끼 어디갔어. 내가 전화하지 말랬지..? 나 좀 냅두라고 진짜 시발. 넌 또 왜 왔어. 어? 이거 놓으라고!! 놔!!! 안놔!??? (팔을 내팽겨치며)”
그렇게 욕을 하면서 냅두라는 말과 함께 붙잡은 팔을 내팽겨치고는 손을 그대로 다시 펴서 강하게 형의 뺨을 후려치더니 한번 더 손을 들어 형의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철썩’ ‘퍽’
그것도 아주 세게.
형을 9년 만에 만나서 그런지 기분이 얼떨떨하면서도 오묘했다. 그래서 난 그런 형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그 누구보다 잘 지내고 있을 줄 알았던 형이
9년이 지나고 처음 마주친 이 순간에도 아버지에게 맞고 있는 눈 앞의 현실에 내 모든 감정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내 앞의 상황을 지켜만 보다 형의 얼굴을 손으로 친 그 순간
머리가 완전히 돌아 그만 이성을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곤 아저씨에게로 달려가 차오르는 분노를 안고 멱살을 세게 끌어 잡았다.
“(멱살을 잡은채로) 아저씨,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에요? 왜 사람을 때려요? 네?? 게다가 지금 때린 사람 아저씨 아들 아니에요? 남도 아닌 귀한 아저씨 아들 얼굴을 왜 때리고 그러시냐구요!!!? 네!??? (화가 치밀어오른 상태로) 이 날씨에 아버지가 길바닥에 쓰러져있다며 경찰 전화를 받았을 때 아저씨 아들이 얼마나 놀랬을지 상상이나 해보셨어요?
아저씨 아들은 맞으면서도 저렇게 매일매일 애를 쓰는데.. (울먹거리며) 저렇게 죽어라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는데 왜 아저씬 그런 형을 때리기만 하냐구요.. 왜!!!!!!! 도대체 형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 (울먹거리며) 도대체 왜!!!!!!!!!!!!!!!!!도대체 왜!!!!!!!!!!!!!!!!(멱살을 잡은 채로 이성을 잃고는 소리를 더욱 더 크게 지르며)”
“(순간 당황했는지 두 눈을 부릅 뜨고는) 야! 너 이 새끼 뭐야! 임마! 너 뭐냐고!!! 니가 뭔데 참견하고 지.랄이야. 이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새끼가....”
경찰 두 명이 달려와 나와 아저씨를 겨우 떼어내는데 나도 모르게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난 흐르는 눈물을 뒤로 하고 자리를 급히 떠나려 하는데
“현... 준 이..!?”
형이 날 알아봤는지 뒤에서 내 이름을 불러세웠다.
난 멈춰 설 용기가 나지않았고 뒤돌아서 형의 얼굴을 볼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못들은 척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데
달려오는 소리가 빠르게 들리더니
내 왼쪽 팔을 누군가가 낚아채듯이 잡아 내 걸음을 멈춰세웠다.
"저기 잠깐만! (날 붙잡은 채) 도...도...현준 맞지? (숨을 헐떡이며)”
형이 내 팔을 잡는 순간, 호흡이 비정상적으로 가빠져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발은 아까보다 조금 더 굵어져서 매섭게 휘날리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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