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외 선생님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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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저기 잠깐만! (날 붙잡은 채) 도...도...현준 맞지? (숨을 헐떡이며)”


난 고개를 돌려 성태 형을 쳐다보았다. 

 

9년 만에 형을 마주한다는 생각에 가슴 속 두근거림이 지금 흩날리고 있는 눈발처럼 거세지고 있었다.  



19살, 형을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난 자주 형과의 재회를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형의 모습은 내 상상 속에 없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형의 얼굴을 바라만보았다.


얼굴을 세게 맞아 한 쪽 뺨은 어느새 붉어졌고 머리 또한 세게 맞아서 그런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있자니 내 가슴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이런 모습으로 형을 마주하고 싶진 않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현준아. 이런데서 널 다 만나고...”


사실 너무나 반가웠지만, 반가움보다 갑작스런 만남에 우리 둘은 조금 당황한 듯 했다. 


내 입술을 누가 꿰매기라도 한 듯 쉽게 말이 나오질 않았고 그냥 고개를 들어 조용히 형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그리곤 손을 들어 헝클어진 형의 머리를 가다듬으면서 정리를 해 주었다. 


"잘 생긴 얼굴에 머리가 이게 뭐에요...(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그 때 경찰이 다가오더니


“와.... 아버님 고집이 장난아니시네요. (우릴 보더니) 어!? 근데 서로 아는 사이세요? 여기 이 학생이 전봇대 뒤에 누워계신거 최초 발견해서 신고 했어요. 진짜 이 학생 아니었음 오늘 같은 이 날씨에 정말 큰일 났을수도 있어요. 아무튼 아드님 오셨으니 저희는 이만 마무리 하고가봐도 되겠습니까!”


“네네. 바쁘실텐데 번거롭게 죄송합니다. 어서 들어가보세요. 아버진 제가 모시고 잘 들어갈게요”


“넵! 그럼 수고하세요!”


그렇게 경찰이 자리를 떠나고


“일단 현준아 자세한 인사는 나중에 다시 하고 우선 아버지부터 집으로 데리고 가야 될 것 같아서. 아 맞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허둥지둥 대며) 내가 휴대폰번호가 달라져서.. 너 번호가 혹시 어떻게 돼?”


“혼자선 힘들어요. 일단 아버님 부축해서 같이 가요.”


그렇게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아버지와 몇 분더 실랑이를 벌이다가 어렵사리 택시에 겨우 태웠고 타기전까지만해도 그 난리를 피우시더니 택시에 탄 후 빵빵한 히터로부터 오는 따뜻함에 노곤했는지 금방 코를 골며 바로 잠이 드셨다. 


“아우.. 도대체 을매나 술을 드신거여...우리 나이때는 말여~~~ 과음, 과식 하지 말어야 허는디~~~"


중간 중간 기사님만 앞에서 말씀 하실 뿐


조수석에 탄 나와, 뒷자석에 아저씨와 같이 탄 성태형과는 9년만에 봤는데도 서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택시에 내려 아버지를 성태형 등에 업히곤 겨우겨우 집 앞 까지 와서는 


“현준아, 내가 지금 손 쓰기가 좀 힘들어서 미안한데 여기 현관 비번 좀 눌러줄래. #0912”


“네!”


‘띡 띡띡띡띡 ~ 또르르~~’


그렇게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성태형이 안방으로 바로 들어가더니 침대에 조심스레 눕히고는 보일러를 세게 틀고 전기장판까지 틀어주었다.  

 

형 아버지를 그래도 안전하게 집으로 모셔왔다는 생각에 한 숨을 돌리려는데 방 곳곳에, 그리고 식탁과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소주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난 형이 민망해하진 않을까 싶어 얼른 자리를 뜨려했다. 


“형 고생 많으셨어요. 오늘은 얼른 쉬고 나중에 다시 봬요. 저 이만 가볼께요. 제 핸드폰 번호가....”


“오랜만인데 차 한 잔 하고 가. 현준아.”


"..네 형"


그렇게 날 식탁의자에 앉히고는 형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고 있었고 정적 속에서 먼저 침묵을 깬 건 형이었다. 


“그동안 잘....지낸거지..? 이게 도대체 몇 년 만이야. 어머님 아버님 건강하시고?”


“네 잘 지냈어요.. 형은 여기서 아버지랑 같이 사시는거에요...?”


“아 아니, 형은 회사 옆에서 따로 살고 있어. 너도 다른 곳으로 이사 한거지?”


“네네. 저희 집도 이사 했어요”


“그 아파트 보면 항상 너랑 과외하던 거 생각 났었는데. 벌써 10년이나 됐네. (웃으며)”


커피포트에 물이 그새 다 끓었는지


‘딸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믹스커피랑 아메리카노 카누 있는데 뭐 마실래?”


“카누 마실게요”



‘탁 탁, 휙 휙(작은 수저로 커피를 저으며)’


“회사가 아까 그 동네인가봐. (나에게 커피를 건네며) 많이 뜨겁다.”


사실 회사가 그 동네는 아니였지만 진우형과 데이트 하느라 그 장소에 있었다고 차마 말을 할 수 없어서.


“아..그냥 볼 일이 좀 있어서..(말을 흐리고는) 그리고 회사는 강남에 있어요. 시티 식품회사요. 여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건네며) 제 명함이랑 아래 휴대폰 번호 적혀 있어요.”


“어!!? (내 명함을 받고는) 여기 잘 알지. 잘 알지. 근데 전공이 뭐였길래 식품회사를 간거야?”


“저...(차를 한 모금 마시곤) 미술 살려서 디자인 전공했어요~부서는 마케팅&디자인 부서요.”


“아. 역시 넌 미술에 확실히 소질이 있다니까!!! 잘했네!!”


“형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어요? 형이랑 헤어지고 나서 휴대폰 번호를 모르니 형 찾는게 정말이지 쉽지가 않더라구요. 우리가 서로 페북이나 트위터 같은것도 하질 않으니;”


“아 그랬구나. 그러네. 형은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에서 일하고 있어”


“와. 역시 우리 형. 쌤은 진짜 잘 될 줄 알았어요. 진심이에요.”


“고맙다. 얼른 차 마셔~ 식겠다. 아까 경찰분 한테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 정말 미안하고 그리고 고맙다. 우리 아버지 그냥 지나치지 않아줘서. 그나저나 오늘 너한테 이게 무슨 민폐인지 모르겠다.”


“민폐는요. 전 형 이렇게라도 봐서 좋은걸요.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러게 이게 도대체 무슨 우연이야. 어떻게 이렇게 만나. (놀라는 표정으로)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 건데 아까 우리 아버지한테 그랬던 건 맘에 담지마.”


“네?”


순간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형이 보고 있는 앞에서, 형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소리를 지르며 그 난리를 치던 내가 다시금 떠올랐다. 


“아...정말 죄송해요. 형 맞는걸 보자마자 제가 순간 이성을 잃어버려서...”


“실상은 우리 아버지 멱살을 잡긴 했지만 난 오히려 니가 그렇게 말해줘서.. 형 대신 그렇게 말 해준 것 같아서...정말이지 고마웠어. 이건 진심이야.”


“죄..죄송해요..”


“아냐 아냐. 현준이 넌 어렸을 때부터 날 봐왔으니까. 내 멍든 얼굴도 봤는데 뭐. 충분히 그럴만해.”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곤)”



차를 다 마셔가는 도중



“현준아, 혹시 안 바쁘면 형이랑 소주 한 잔 할래? 우리 술은 한 번도 같이 안 마셔봤잖아.”


“그...그렇네요..(시계를 보고는) 밖에 나.. 나갈까요?”


“지금 시간도 늦었고, 날씨도 눈 날리고 추운데 집에서 마시지 뭐. 여기 남는게 술인데. (냉장고를 열더니) 봐 내 말 맞지? 술로 꽉 채워져 있는거. 우리 아버진 죽을 때 까지 술 못 끊어 (웃으며)”


그렇게 형이 냉장고에서 소주 두 병을 꺼내 와서는 식탁 위에 두고 


“(찬장을 열어서 보더니) 라면 괜찮지?!?”


“그럼요..”


“두 개 끓인다!? 우리 그러고보니 라면은 몇 번 같이 먹었어. 분식집에서같이 라면도 먹고, 내 방 안에서 짜파게티도 먹고”


“(웃으며)”


“그나저나 옷 안 벗어?? 겉옷 벗어서 저기 소파 위에 두면 돼. 편하게 있어~”


“넵!”

 


안정적인 직장에 나이도 31살이라서 그랬을까. 


혹시나 결혼은 했냐는 질문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지금 이 대화의 흐름에서 그 질문은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냥 넘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형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은 묻지 않는 걸로..


그렇게 형의 라면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식탁 위에 있던 내 휴대폰에 문자알림이 울렸다.


‘띵~’ 


[쭌! 어디야? 나 와이프랑 대판 싸우고 지금 집 나왔다. 하..]



진우형이었다. 


형의 첫 문자를 보고는 바로 폰을 주머니에 넣었고 알림소리도 진동으로 바꿔버렸다.  



[지금 어디?]


[하.... 열 받는데 형이랑 어디가서 소주나 한 잔 하자.]


[시간이 좀 애매하면, 모텔이라도 가던가]


[쭌! 형 지금 차 안에 혼자 있어. 이 문자 보면 얼른 연락줘!!]


[나 혼자 오래 두면 미워할꺼얌]



지-------잉 지------잉 지------잉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형이 라면을 끓이다 날 한번 쳐다보고는


“바쁜 일 있는데 형이 괜히 붙잡아 둔 거 아냐??”


“아....별 일 아니에요...”


그리곤 기다리고 있다는 진우형에게 답장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형 정말 죄송한데 아까 저녁에 이야기 하던 그 과외 선생님을 거짓말처럼 오늘 우연히 길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지금 같이 술 한잔 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해요]


라고 얼른 답문을 보냈다. 


[9년 동안 안 봤다며! 그럼 별로 친하지도 않은거 아냐? 게다가 이쪽도 아니라면서!! 칫.. 지금 매주 만나는 나보다 더 중요하다는거지?]


[나 지금 와이프랑 대판 싸우고 집 나와서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단 말야...]


[모텔 잡고 주소 찍을테니..술 자리 끝나고 늦게라도 와서 여기서 자. 알았지? 나 더 이상 양보 불가]



난 답장을 더 이상 하지 않고 휴대폰을 닫아버렸다. 


라면이 다 완성됐는지 식탁위에 올려졌고 김치와 안주거리 반찬 몇 가지를 꺼내곤 뜨거운 라면을 접시에 덜었다. 


그리곤 소주를 집어 


“형 이젠 제가 고등학생이 아닌 성인이니, 제가 따라드리는 소주 한 잔 받으시죠.”


“그래. 근데 형한테 언제까지 그렇게 존대할거냐? 말 편하게 하라니까.”


“아니에요. 그래도 제 과외쌤인데, 형한텐 존대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가 그러고 싶어요.”


그렇게 형의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형이 내 소주잔에 소주를 바로 따라주었다. 


‘짠’


우린 서로 잔을 부딪힌 후 아무말 없이 원샷을 했다. 


“캬...........” “캬...........”


동시에 ‘캬..’를 하더니 눈이 마주치곤 서로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형을 바라보는데 십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고깃집에서 소주잔과 콜라잔을 들어 함께 ‘짠’ 하며 부딪히던 그때로 장면만 바뀐 것 같았다.  


“도현준, 근데 넌 진짜 하나도 안 변했냐. 우리 열 살씩 먹은거 맞어?? 우리가 3살 차이니까 너가 그럼 지금 스물 여덟 인거지?“


“네 형. 형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에요. 저 아까 진짜 밖에서 형 보고 깜짝 놀랬어요. 너무 그대로라서..”


“거짓말....”


“진짜에요...”


“라면 불겠다. 어서 먹자”


“근데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곤) 저기 안방에서 형 아버지 주무시는데 이렇게 술이랑 라면 먹어도 되는거에요??”


“어~(형도 목소리를 낮추곤) 저렇게 마시면 낼 아침까지 절대 안 깨셔”


그렇게 형이 만든 라면을 집어 호로록 입으로 가져가는데


“와 꼬들꼬들한게 존맛. 국물도 뜨끈한게 너무 맛있어요 형”


“내가 라면 좀 끓이지? 더 가져다가 많이 먹어 (라면 냄비를 내 쪽으로 더 가까이 대며)”


그렇게 서로 소주잔을 부딪히고, 술이 들어가다보니


형을 처음만났었던 학원에서부터 과외수업, 형이랑 함께했었던 모든 추억 그리고 군대이야기,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 까지 늘어놓게 되면서 어느새 둘이서 소주 3병을 비우게 되었고 취기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웃으며)"


"야 너 갑자기 왜 웃냐. 이 자식이. 너 설마 또 그 생각 했지!!!!!"


"뭐요~~제가 뭘 생각 했는데요~~~~"


우리 둘 다 아까까지만 해도 정확했던 발음들이 시간이 지나고 소주병이 늘어나면서 점점 어눌해지고 있었다. 


"미술학원에서 옷 다 벗었던 거 임마!! 너 툭하면 그 생각 하곤 나 놀리고 그랬었잖냐!!!"


"(아까 보다 더 크게 웃으며) 아 ... 그 생각 차마 못 하고 있었는데 형이 이걸 또 다시 상기시켜 주시네!! (다시금 웃으며) 

나만 봐서 다행이지. 다봤다고 생각해봐. 어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친....."



둘다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소주 한잔을 스스로 비어내곤) 형. 이거 꿈 아니죠...”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임마! 그리고 혼자 마시지 말라니까. (비어낸 내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9년 만에,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형을 다시 만났다는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아서요...”


“꿈 아니야. 니 볼 꼬집어 줄까?”



그렇게 형이 볼 이야기를 하길래 


아까 아버지한테 뺨을 맞아서 그런지 얼굴 한 쪽에 살짝 달아올라 부어져 가고 있는 형의 볼이 내 눈에 들어왔다.  



“형 근데 여기(손으로 형 얼굴을 가리키며) 약이라도 바르던가 얼음 찜질이라도 해야 되는거 아니에요?”


“약은 무슨. 나 그렇게 약한 남자 아니거든!!”


“거울 좀 보세요! 지금 오른쪽 뺨 한쪽이 빨갛게 부었다니까요.. 형...”


“그러냐...? 이거 술 마셔서 빨개진거다.”


“거짓말. 형 두 병 마셔도 얼굴 잘 안 빨개지잖아요. 지금 빨리 약을 바르던, 찜질을 하던 해야된....”



내가 말하던 도중에 갑자기 성태형이 내 손을 확 잡아채서는 자기 얼굴로 가져가더니 본인의 뺨 위에 내 손을 두었다. 




“그럼 니가 내 뺨 좀 만져주던가. 형 좀 안 아프게”



둘 사이의 거리가 꽤나 가까워서 알콜향이 우리 사이의 공기 중을 꽉 채우고 있었고, 취기가 더 오른것 처럼 보이는데도 꽤나 정확한 발음을 내뱉으며 안 아프게 만져달라는 나를 보는 성태 형의 눈빛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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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0화 전후로 완결이 날 것 같습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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