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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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가는 큰 섬이다. 당시만 해도 2차선 다리가 하나뿐이었으나, 몇 년 후에는 새로운 4차선 다리가 새로 놓였다. 현재는 다리가 구거제대교, 신거제대교로 나뉘어 있다. 몇 년 전에 거제도에서 부산 가덕도까지 연결되는 거가대교가 놓여서 부산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다.
현재(당시 1984년) 거제도의 인구는 20만이 넘었다. 거제도에는 S 중공업과 D 조선이라는 큰 두 회사를 선두로 해서 크고 작은 조선소들이 여러 개 있다. D 조선소가 있는 옥포에는 가까운 장승포가 있는데, 당시만 해도 옥포, 장승포는 D 조선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무대고, S 중공업이 있는 장평과 고현이 그들의 주 무대였다. 신현(고현은 신현의 옛 이름)의 위치가 사실상 거제도의 노른자 위다. 한마디로 신현은 거제도의 중심지였다.
거제시청도 고현에 있으니 말이다. D 조선에 다닐 때만 하여도 대구로 갈려면 S 중공업이 있는 고현을 지나야 했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곳에 S 중공업이 있는 줄을 몰랐었다. (사실, 규모로는 S 중공업이 잽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5일이 지났다. 마지막 날 출근을 하자 주방 과장이 영민을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사무실로 갔더니 주방 과장과 삼인자 되는 상철, 그렇게 두 명이 있었는데 자리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다.
- ..... 영민 씨, 어때요? (주방 과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 네...? 무슨...?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 아, 영민 씨가 이곳에서 며칠간 일을 해보니 어떠냐는 말이지요... (상철의 부연 설명이었다)
- 아... 네. 모두 잘 해주셔서 편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방 과장이 영민만 괜찮다면 같이 일을 할 수 있겠냐는 뜻밖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며칠간 함께 일을 해보니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보았다. 그래서 일주일간의 임시직이 끝나면 정식 직원으로 발령을 내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 시스템으로 정직원 되기가 쉽지 않았었다. D그룹의 사원이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 여러 가지 조건이 나쁘지는 않을 텐데… 어떤가요? (주방 과장이 재차 물었다)
- 먼저, 과장님 외 모든 분들께서 저를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정사원으로 채용해주시겠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 그럼, 같이 하는 걸로...?
- 저.... 과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 네. 말해 봐요…
- 저에게 하루만 더 시간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괜찮다면 내일까지 답변을 드려도...
그때까지만 해도 영민은 대구의 D호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날 D 호텔의 담당자와 마지막 전화 통화를 하였는데 이 사흘 내에 최종 결론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 하루의 시간이 있기에 주방 과장에게 사실대로 말을 하고 하루 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내일까지 대구에서 연락이 없으면 완전 물 건너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 대구에서 정말로 반가운 전화가 걸려 왔었다. D 호텔에서 일이 잘되어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핸드폰이 없을 때라, 사무실로 걸려 온 전화를 받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들었을 것이다. 일단, D 호텔 담당자에게도 시간을 잠시 달라고 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민은 갈등에 빠지게 된다. 자신이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이곳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몇 개월 동안을 기다리다 마침내 성사된 고향에 있는 호텔에서 일하느냐? 갈등을 안 할 수 없었다.
하루가 흘렀다. 이미, 이곳 호텔에서는 영민이 일주일을 채우면 떠난다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되어 있는 분위기였다. 고향이 대구이고 그곳에서 러브콜이 왔었기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마지막 날, 영민은 공중전화로 D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이런저런 사유를 대면서 늦게라도 잊지 않고 연락해 주어 고맙다고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지금의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고 정중히 사양했었다. 영민을 끝까지 연결 시켜준 분께도 정말로 고맙고 죄송스러워했다. 그리고 지금의 주방 과장에게 면담을 신청했다.
주방 과장은 영민이 그만둔다는 인사를 할 줄 알고 마음을 비우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해 보고 싶다고 말을 하니 얼굴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 그래, 잘했어요! 잘했어...! (과장의 진심 어린 환영 인사였다)
- 축하해요! 같이 열심히 해 봅시다! (삼인자 상철이 축하를 해주었다)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 근데, 어제 대구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나요? 일이 잘 안됐나요...? (상철이 물었다)
- 아... 네. 감사하게도 대구에서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전화였습니다...
- 그래요...? 그런데 왜, 대구로 안 가고... (상철이 의아해하며...)
- 짧은 시간에 저도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실, 대구에 있는 호텔은 몇 개월째 기다렸던 곳이거든요... 집도 대구에 있거니와... 한데, 이곳에서 일주일 일을 하면서 모두 잘 대해 주시고, 또 제가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셨는데 제가 그냥 이곳을 떠나기가... 왠지, 이곳에 더 마음이 가더라구요!
- 김 군! 잘했어요...! (주방 과장의 진심이었다)
- 과장님 이하 선배님들께서 따듯하게 대해주셔서 저도 정이 들었나 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여러분! 이제 영민 씨가 우리 가족이 되었습니다! 하하하...! (주방 과장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영민은 다들 반갑게 진심으로 환영해 주는 모습에 쑥스러워하면서 눈물이 살짝 나올 뻔했다. 이제 우리 가족이라니...!
= 드디어, 나도 다시 한 무리의 일원이 된 것인가!
영민은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그런 자부심이랄까...! 영민 자신이 생각해도 멋있어 보였다. 여러 가지 조건을 봐도 대구행이 유력했고 좋았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이기도 하지만 먼 타지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그 당시의 생활상으로 불편한 게 불을 보듯 뻔했었다.
그러나 천성이 악하지 않은 영민은 어려울 때 거둬주시는 분들을 두고 혼자 잘 되겠다고 떠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비록, 오래 같이 있지는 않았지만 따듯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근무 분위기가 맘에 들기도 했었다.
결과론이지만, 만약에 그때 영민이 D 호텔에 간다고 거제도를 떠났다면 대구에서 과연 일이 잘 풀렸었을까...? 그리고 영민의 인생이 어떻게 풀렸을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 거제에 남기를 정말 잘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영민이 거제에 머물기로 결정을 내리자 주변에서 모두 축하의 인사를 해주었다. 특히, 성오가 너무 좋아했었다. 그렇다고 영민이 거제에 머무는 동기가 성오 때문은 절대 아니었으나 성오는 영민에게 갈수록 집착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민은 그런 성오에게서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비록, 그의 페니스는 크고 굵어 마음에 들었지만 이글거리는 성오의 눈빛은 갈수록 부담이 되었었다. 결국 영민은 기숙사를 다른 동으로 옮기고 말았다.
몇 개월 후, 호텔에 계속 일하면서 그사이에 여러 번의 시운전을 다녀왔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시운전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영수는 이번에도 영민이랑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인원이 여유가 있어 호텔에 있는 다른 요리사랑 같이 가게 되었다. 이젠 여러 번 시운전을 가서 배의 내부나 시스템을 알지만 그래도 큰 배는 볼수록 신기했다. 일반적으로 작은 배도 아니고, 24만 톤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배(유조선 & 컨테이너)가 망망대해에 턱 하니 떠 있다는 것이 신기했었다. 어떻게 무거운 쇠로 만든 배가 망망대해에 둥둥 떠다니는 것인지...? 조선소에서 10년을 넘게 일했으나 언제나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무거운 배가 물에 뜨는 과학적인 원리는 알고 있다. ^^ 이렇게 숫자로 말하니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배의 선수(배의 앞)에서 선미(배의 후미)까지 길이가 100m가 넘는다고 하면 감이 오려나? 조선소 현장에 가서 보면 배의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무슨 운동장도 아니고 그 규모가 굉장하다. 높이 또한 너무 높아서 아래를 보면 어지러울 정도다. 그렇게 매번 설레는 시운전을 가곤 했는데 예상하지 않았던 문제가 생기게 된다. 다름이 아니라 영민이 뱃멀미를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이다. 생전 배를 탈 일이 없었던 영민은 엄청나게 큰 배인데도 멀미를 하는 것이다. 배가 흔들려서 멀미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배 전체를 새 페인트로 도장을 해 놓으니 특히, 냄새에 예민한 영민은 그 페인트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남들보다 냄새에 민감한 영민은 그렇게 시운전을 갈 때마다 선내의 페인트 냄새 때문에 고통을 받곤 했었다. 그렇다고 시운전을 안 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3박 4일의 시운전이 끝나갈 어느 마지막 전날의 저녁이었다. 내일이면 육지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영민은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다. 짐도 대충 꾸리고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설계 쪽에 있는 대리 한 명이 갤리(주방)를 기웃거렸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라는 특수한 공간에 며칠이나 같이 있다 보니 웬만해서는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사원들은 영민을 더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얀 요리사 복장에다 위생 모자를 쓰고 있는 호텔 요리사의 모습은 험한 현장에서 기름을 만지는 조선소의 사원들에게 있어서 또 다른 선망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일반 사원들은 회사 소속의 호텔이 인근에 있어도 이용하기가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웠다. 시운전이 끝나고 회사에서 명명식이 치러지는 날에 몇 명의 사원들이 대표로 호텔에 초대되기도 하지만, 그때 가보는 곳이 호텔이었었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일하는 사원들은 호텔 요리사를 언제나 우러러보았었다.
- 저… 주방장님...!
회사에서 근무 연수, 직책이나 월급을 비교하면 영민은 잽도 안 되지만 이곳에서는 제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영민에게 최 대리가 영민에게 쩔쩔맨다.
- 어서 오세요! 최 대리님께서 어쩐 일로...?
- 음… 혹시 안주 한 접시 좀 안 될까요? 선실에서 한잔하려는 데…
- 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설계팀인데 왜 안 되겠습니까...! 가만있자 뭐가 남아 있나 한 번 볼게요… 아! 스모크햄이 있네요…
영민은 스모크햄을 두툼하게 슬라이스 하여 살짝 구운 후, 타바스코 소스를 뿌려 은박지 접시에 듬뿍 담아 주었다.
- 아이코, 이렇게나...! 번번이... 정말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 네. 그동안 수고하셨는데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오늘 같은 날은 웬만해선 현장의 작업이 거의 다 끝이 났다. 선실에 관계된 직원들 몇 명만 대기조로 안 자고 있을 뿐, 나머지 직원들은 고스톱을 치거나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행위들이 암묵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최수만 대리는 작달막한 키에 도수 높은 두꺼운 안경을 착용했는데 사람이 착해 보였다. 그래서 영민은 선심을 쓴 것이다. 설계팀에는 김연홍 과장이 있었는데 설계팀의 수장이었다. 영민과 함께 시운전을 자주 다녀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김 과장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감정은 없었다. 사람이 좋았고 형님 같아 가까이하게 되었었다. 그분과 함께 있는 팀이기에 설계팀에서 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영민은 잘 챙겨주었다.
최 대리는 기대 이상으로 좋은 안주(?)에 싱글벙글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시간 나면 객실에 술이나 한 잔 하러 오라고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갤리를 대충 정리하고 영민이 묶고 있는 선실로 돌아왔다. 선실에서도 사원 식당의 직원들 여러 명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술잔도 벌써 여러 잔돈 듯했고 영민은 술을 잘 못 마셨기에, 옆에서 잠시 구경하다가 담배 연기가 너무 심해서 바람을 쐬러 바깥으로 나갔다.
망망대해라고 했던가...! 넓디넓은 바다였지만 깜깜한 밤이 되니 보이는 것은 멀리 보이는 대마도의 점 같은 불빛과 어선들의 작은 불빛뿐이었다. 멀리서 듬성듬성 오징어 배가 환하게 불을 밝히기도 했지만 너무 멀리 있어 한 점 점으로 비쳤다.
깊은 밤바다의 찬 공기가 싸늘하게 온몸을 헤치고 지나간다. 난간을 잡고서 배 아래를 보자 하얀 거품들이 배가 지나간 흔적의 꼬리를 물며 남기고 있었다. 한편으로 무섭기도 했다. 이런 밤에 잘못하여 난간에서 떨어진다면 흔적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얼른 난간에서 데크 안으로 돌아섰다.
그때였다. 안에서 얼큰하게 술이 한 잔 된 최 대리가 나오는 것이다. 영민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난간에 기대어 소변을 보는데, 오줌발로 둥그런 원을 그리면서 마치 장난을 치듯이 흔들어 대었다. 영민은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재밌어서 그냥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소변을 다 보자 그제야 영민을 힐끔 쳐다보더니 몇 살이냐고 물었다. 최 대리 자신은 35살이며 결혼했고 쌍둥이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물고 영민에게 한 개비를 권했다. 영민은 담배를 못 피운다며 손을 내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싸늘했던 바닷바람이 이제는 갑자기 시원하게 느껴졌다. 둘은 이전부터 알고 지냈으나 짧은 시간 안에 더 친해지게 된다. (설계팀의 김 과장과 함께 최 대리를 비롯한 설계팀의 직원들은 대부분 영민과 회사 바깥에서 술도 한 잔씩 하는 사이였다) 그렇게 시운전의 마지막 밤은 깊어만 갔었다...
다음 날, 일찍부터 마지막 아침 식사를 마무리하고 최종 짐을 쌌다. 배가 조선소에 도착해서도 안벽에 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해당하는 부서는 배를 안벽에 대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관계없는 부서는 전혀 남의 일이었다. 영민 역시도 시간이 많아 이곳저곳 신기한 듯 구석구석 각 데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배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힐하우스부터 시작해서 제일 밑에 있는 엔진 컨트롤룸까지, 안 가 본 곳 없이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3 데크(3층을 말한다. 배에서는 각 층을 데크라고 한다)를 지나가는 데 선실의 문이 열린 사이로 최 대리가 보였다.
지난밤에 인사를 나누었기에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고 문을 두드렸다. 최 대리는 영민을 보더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이미 같은 일행들은 가방을 챙겨 바깥으로 나가고 없는데, 최 대리는 전날 과음한 탓에 늦게 일어난 것이다. 왠지 모를 이상한 분위기가 갑자기 선실을 감싸고 있었다.
최 대리는 자신이 앉아 있는 침대에 앉으라고 눈으로 사인을 보냈다. 영민은 영문도 모른 채 조심스럽게 그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최 대리가 일어나서 선실 문을 잠가버렸다. 그러는 중에 그의 것은 타이트한 작업복 바지 속에서 볼록 솟아 있는 게 표가 났다.
덩달아 영민의 그것도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그는 영민의 입에 입을 맞추려고 했지만, 그의 입에서 역한 담배 냄새가 심하게 나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자 그는 영민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배가 안벽으로 유도당하고 있어서인지 선실 전체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가 영민의 그것을 입에 넣고 흔들었기에 흔들리는 것인지 몰랐다. 아무튼 현기증이 잠시 나려고 했다. 그 현기증이 짜릿한 그런 기분이란 걸 그때는 잘 몰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흥분된 영민이 이내 최 대리의 입에 사정하자, 최 대리는 혀로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해주었다. 마침 선실 스피커에서 이제 모두 하선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최 대리는 영민에게 자신의 명함에 집 전번을 적어서 주었다.
- 영민 씨… 여기, 내 명함… 언제든지 생각나면 전화해요...! 사무실로 안 되면 집으로 해도 돼...!
- 저는 명함이…(시운전을 가면서 명함을 왜 챙겨!)
- 괜찮아요… 사내 연결망 조회하면 나올 텐데… 연락할게요!... 영민 씨 볼수록 귀엽다! ㅎㅎ
그렇게 영민의 시운전은 또 한 번의 역사를 만들어 내며 무사히 마치게 된다. 그 후, 최수만 대리와 영민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났었다. 그는 열 살 넘게 차이 나는 영민을 동생처럼 잘 대해 주었다. 다음 해에 그는 과장으로 승진했고, 회사에서 승진자들을 위한 뷔페 파티가 호텔에서 열렸는데 그는 부인과 함께 왔었다.
그때 영민은 그의 와이프를 처음 보았다. 단아하게 생긴 인상 좋은 주부였다. 그녀의 남편이 이렇게 이중생활을 하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 까...? 사전에 최 과장에게 함께 갈 거란 말을 들었기에 영민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좀 이상했다.
둘이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초라해지는 그런 기분이 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민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었다. 영민은 그때 일식 요리사 성오와도 몰래 가끔 즐기고 있었기에 최 과장이 만나자고 하면 부담 없이 만나곤 했었다.
마치, K 호텔에 있을 때 두 형과의 밀월 관계처럼... 그러나 영민의 남성 편력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루는 최 과장의 집으로 초대받았다. 물론 와이프는 대전의 친정으로 가고 없을 때였다. 아파트가 꽤 넓었다. 대기업의 과장이라 그런지 은근히 잘 꾸며 놓고 사는 최 과장이 부러웠다. 더군다나 외국으로 출장을 자주 나가서 그런지 희귀한 물건들도 진열장에 다수 있었다. 아마도 최 과장이 영민이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무덤덤하게 만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우연찮게 연결된 인연이 좋은 인연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연도 아닌 그런 관계였다. 몇 년 후, 영민이 S 중공업으로 옮기고 난 후에 장평으로 찾아오기까지 했었다. 최 과장은 몇 년 동안 장평까지 찾아왔는데 그때는 중간 간부가 되어 있었다. 영민은 옛정도 있고 해서 그를 몇 번 만났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이제 영민에게 그가 아니어도 남자가 많았다. 당시, 거제도는 개발이 한참 되기 전이었다. 마땅히 갈 술집이나 식당 등이 몇 군데 있지 않아 어디로 가야 할지 그야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택시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영민은 D 호텔을 떠나서 1987년도에 S 중공업으로 입사하게 된다. 아마도 그 시절이 영민에게 있어 리즈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그곳에서 영민은 꿈을 키우고 첫사랑을 만나게 되고 많은 시련도 겪게 된다. 하긴 영민의 청춘시대를 거제도 장평에서 보냈으니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였다. 장평은 옥포와 또 다른 분위기였다. 국내 최고의 S그룹 계열사답게 복지 혜택과 급여가 셌다. 그리고 국내에서 알아주는 계열사의 전문가들이 만든 조경이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전반적으로 S 중공업의 규모가 D 조선과는 달랐기에 회사의 분위기도 달랐다. 기업 분위기가 좀 더 세련되었다고나 할까? 당시 영민의 나이 스물다섯 살. 한창 모든 것에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칠 때였다. 그래서 S 중공업에 있으면서 많은 지인을 알게 된다. 아직도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는 지인들이 있다. 영민이 S 중공업에서 10년이 넘는 짧지 않은 긴 세월을 보낸 것은 자신의 청춘을 키우는 시간이기도 했고, 한편으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영민에게 있어 큰 성장을 하는 시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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