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 95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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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22살의 봄

군대를 가려고 휴학을 했지만, 실수하여 입대가 미뤄졌다.

서울 친구 집에서 잠시 머물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괜찮은 건 모두 군필이 조건이었다.

고향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영등포역 근처의 직업소개소를 들렀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디나 첫 질문은 군필 여부였다.

자격증만 있으면 일을 안 해도 대여해서 용돈 정도는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가진 자격증도 없었다.

일자리를 많이 소개받았지만, 맘에 들지 않았거나 보수가 적었다.

나중엔 상담사가 짜증 투로 아무 일이나 하라는 듯 말했다.

“군대도 안 갔다 왔고 몇 달 일할 자리만 찾는 거잖아요. 소개했던 일이 전부예요”

“사무직 같은 건 없나요? 육체노동 이런 거 말고요”

상담사는 비웃듯 입을 삐죽거렸다.그런 곳은 오래 써야 되니까 정직원을 뽑죠. 있다고 해도 돈 많이 안 줘요”

“그럼 숙식할 수 있고 돈 많이 주는 곳 아무 데나 소개해 주세요.”

“3달만 한다고요?”

“네”

상담사는 잠시 기다리라며 다른 손님을 상담했다.

15분 정도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다 가려고 일어서려는데 상담사가 전화를 끊고 물었다.

“강원도 속촌데 숙식할 수 있고 보수도 이 정도는 괜찮은데 해 보시겠어요?”

“무슨 일 하는데요?”

“공사장인데 인부들 밥해주고 빨래도 해 주고 잔심부름도 하는 그런 거라네요”

“잡부네요”

“그런 셈이죠. 생각 있어요?”


동서울 터미널에서 속초가는 버스를 탔다.

어차피 맘에 안 들면 속초 구경 간 셈 치려고 했다.

버스엔 승객이 나를 포함해서 3명뿐이었다.

휴대전화도 없던 때라 시간 맞춰서 데려간다고 했다.

오후 3시에 도착했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어차피 맘에 들지 않는 일이었고 30분 정도 더 기다리다 안 오면 말 생각이었다.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앞에 있는 속초 해수욕장에 갔다.

맨발로 파도를 밟으며 해변을 걸었다.

발이 무척 시렸지만 모래밭에 나오면 금방 따뜻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하늘은 파랗고 파도는 잔잔하고 세상 평화로운데 난 왜 이러나 싶었다.

다시 터미널로 와서 서울 가는 시간표를 바라보았다.

그때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누구를 찾는 듯 두리번 거렸다.

약속 시각보다 1시간 30분이 지난 4시 30분이었다.

그는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차로 안내했다.

그가 몰고 온 1톤 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이동했다.

“군대는 갔다 왔어요?”

“아니요. 이번에 갈라고 했는데 뭔가 잘못되었어요”

“아! 그럼 밥은 할 줄 알아요?”

“중학교 때부터 자취해서 요리를 좀 하는데요”

“오! 잘됐네요. 인부들이 20명 정도 되는데 점심을 해서 먹여야 해요. 딱이네요”

“그것만 하면 되나요?”

“소장님 잔심부름도 하고 이것저것 잔일이 좀 많아요. 그래도 힘든 건 없을 거예요”

“무슨 현장인데요?”

“아! 모르셨구나. 기업 연수원 신축공사장이요”

“큰 공사나 보네요”

“크진 않아요. 객실이 백 개 좀 안 되고 뭐 강당이랑 사우나 이런 부대시설이 들어가죠”

“잠도 재워 준다고 들었는데요”

“자세한 건 소장님이 알려 줄 거고요. 지금은 터파기 공사 중이라 씻고 자는 데 많이 불편할 거예요. 전기도 조그만 발전기 하나 있는데 좀 불편하긴 하죠”

“원래 현장이 그런 건가요?”

“아뇨. 미리 이런 거부터 해야 되는데 뭐 돈이 문제죠. 한 달 정도 되면 수도도 전기도 들어올 거예요. 그때까지만 참으면 돼요”

“네”

“현장에서 잘 건가요?”

“다들 그렇지 않나요?”

“그렇진 않고요. 일 끝나면 다들 시내로 가서 자요. 거기서 술도 마시고 나이트클럽도 다니고 뭐 그렇죠. 현장에선 소장님만 자요.”

“네”

“소장님 뭐 성격이 좀 급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니고요.”


트럭은 2차선 도로를 달리다 비포장 산길로 진입해서 현장에 도착했다.

20분이 좀 안 걸린 것 같았다.

현장엔 굴착기 2대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뭔가 작업하고 있었다.

보이는 건 창고와 사무실로 보이는 2층짜리 가건물이 정면으로 보였다.

트럭 기사는 2층 사무실로 나를 안내했다.

“소장님 곧 오실 거예요. 여기서 기다리세요. 커피 한 잔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기사는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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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랑 나이가 같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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