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외 선생님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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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최성태 시점]
1년 6개월 전
스무살이 되던 해. 2월.
고등학교 졸업식 날.
"오!! 우리 서울대 합격한 성태~~~~ 졸업 축하한다. (내 주변을 둘러보곤) 아버진 아직 안 오셨어?"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아무래도 오늘 안 오실 것 같아요~(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아버님이 많이 바쁘신가보구나~~ 그럼 선생님이랑 같이 사진 하나 찍을까??? 수혁아~ 여기 성태랑 선생님 사진 좀 찍어줄래~?"
꼭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형제 누나 그리고 지인들이 와서 졸업을 하는 친구들을 함께 축하해주며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식에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철컥'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널브러진 빈 소주병들.
그리고 아무데나 벗어져 있는 옷들과 속옷들까지.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을 마주할 때 마다 숨이 턱 막힐 것만 같았다.
엄마의 부재가 이유인걸까.
엄마는 내가 5살 때 아버지와 이혼했다는 소릴 들었다. 아버지와 합의 후 이혼을 한 건지, 아니면 아버지로부터 더는 견디지 못해 도망을 친건지는 그땐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결국 엄마는 날 데려가지 않았고 아빠와 나를 남겨둔 채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엄마를 점점 잊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일까. 언제부터인가 엄마 사진을 보지 않으면 이제는 엄마 얼굴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돌아와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가방을 내려놓으면 "왔니 우리 아들~ 손 부터 얼른 씻고 와서 밥 먹자 성태야" 라는 부모님의 음성과 함께 된장찌개가 끓어오르고, 햄을 굽는 그런 따뜻한 냄새가 나는 집을 몇 번이고 상상해보았지만, 이상하리만큼 상상속에서조차도 그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내가 10살이었던 그 해.
술 그만 마시고 나랑 밖에 나가서 놀자며 아빠의 손을 잡고 흔드는데
아빠가 내 손을 뿌리치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내 뺨을 때렸다.
'철썩'
그게 아마도 아빠에게 처음으로 얼굴을 맞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얼마나 아프던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안 그쳐? 울음 안 그쳐? 임마. 니가 뭘 잘했다고 울어. 지금 아빠 술 마시는거 안 보여?"
"......(뺨을 어루만지며).. 그만.. 그만 마시면 안돼.. 아빠!?"
"이게 확 (때리려는 시늉을 하며) 어디서 버릇없게 아빠가 술 마시는데 이래라 저래라야. 꼴보기 싫으니까 어디 나가든가 아니면 제발 좀 조용히 좀 있든가!!!!!"
집 안에 방은 하나여서 어디 숨을 곳도 따로 없었다. 그렇게 난 방 구석 끝 가장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물을 훔치곤 했다.
"(소주잔을 강하게 내려치며) 뚝 안 그쳐? 최성태! 당장 뚝 그쳐. 한번만 더 질질 짜면 또 맞을 줄 알아."
난 울음을 그치고 쥐 죽은 듯이 책을 폈다. 책을 읽을 때 만큼은 다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아서였을까. 그래서 책 읽는 것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끼리 서로 각자 집에 초대해서 생일파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초대를 해도 음식을 해주거나, 시켜줄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집이 돈 많은 부잣집이였으면 좋겠다는 볼멘소리가 아니였다.
그냥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다. 지극히. 평범하게.
하지만, 아버지의 무관심과 폭력은 점점 늘어만 갔고 난 사랑 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건, 돈이 없는건, 아빠가 날 때리는 건 어떻게든 견딜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정말이지 견디지 못하겠는건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사랑 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 하는 법 또한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공부 밖에 없었고, 그것이 유일한 돌파구였다.
날이면 날마다 술을 찾고, 매번 주먹이 먼저 앞서는 그런 아빠가 정말이지 너무나도 싫었지만
그럼에도 서울대에 최종 합격했을 때
바보처럼 아빠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아빠에게 진심으로 축하받고 싶었다.
하지만
"뭐? 서울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정색하며) 내가 가라고 했냐!? 난 가라고 안 했다. 대학은 니가 간 거니까 그러니 니가 알아서 해"
라는 소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21살, 어느 여름 날
난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과외도 하고, 야간엔 편의점 알바도 했다.
사실 집에 있는 시간 보단 밖에서 일을 하는게 맘이 더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년에 가르쳐준 상희 어머님께 전화가 와선 혹시 지인 과외 좀 해주실 수 있냐는 부탁의 전화가 왔다.
우연히도 그 쪽에서 과외를 희망하는 시간과 남는 시간이 딱 맞아 떨어지길래 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현준이란 학생의 어머님께 먼저 전화인사를 드리고 주소를 받아 적는데 그 동네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리고 상희어머니한테 듣기로는 이번에 새로 과외를 하기로 한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이였고 아버지는 대기업 부장에 어머니는 교사 집안의 외아들이라고 했다.
'이거 생각보다 좀 까탈스럽겠는데...'
현관을 들어선 후 대궐같은 거실에 서서 어머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한 쪽 방에서 한 아이가 걸어서 나오고 있었다.
근데 저 녀석 왜 낯이 익지... 어디서 분명히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그 녀석이 '도 현준' 이라고 소개를 하는데 도 씨라는 성을 듣고 나서야 2년 전 미술학원에서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내 예상과는 달리 까탈스럽기는커녕, 소탈하면서도 밝은 얼굴에 배려심 많은 녀석이란 걸 다시 한 번 알게되었다.
남 부럽지 않은 가정에서 외아들로 소중하게 자란 현준이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만약 이런 집에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현준이네서 첫 과외비 봉투를 받고 집에 걸어가던 길.
그렇게도 아빠를 싫어하고 증오하던 내가 또 안주 없이 술만 마시고 있을 걱정에 치킨집 앞에 걸음을 멈춰세웠다.
"아저씨 후라이드 통닭 하나만 튀겨 주시겠어요?"
"네~10분 정도만 기달려주세요~~~"
왠일인지 오늘은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무엇보다 현준이를 생각하면 할 수록
미술학원에서 만났던 때가 자연스레 떠올라
'도대체 이게 무슨 우연이지' 싶었다.
"학생 ~~~~ 통닭 나왔어요~~~~~~"
"감사합니다(받아들고는)"
"맛있게 드세요~~"
그렇게 난 포장한 후라이드 통닭을 손에 흔들며 봉지로부터 살며시 올라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콧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머금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다.
근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치킨의 고소한 기름냄새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술에 찌든 냄새가 내 코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언제나 그렇듯 아빠가 술에 잔쯕 취한 채로
내게로 성큼성큼 걸어 오더니
아무말도 없이 갑자기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
'퍽'
예상치 못한 손찌검에 가볍게 손에 쥐고 있던 치킨봉투가 아래로 쏟아졌다.
"너 이 새끼. 지금 방학 아냐? 도대체 이 시간까지 뭐하는데 집에 안 붙어있고 맨날 밖에 나가 있어? 어? 이거! 이거! (빨래랑 어지럽혀진 물건을 가리키며) 보여 안보여? 집 꼬라지 안보이냐고!!!!!!!!"
"(맞아서 풀어헤쳐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저 놀다 온 거 아니고 일 하다가 온 거에요. 오늘 그리고 학생 한 명 더 과외 맡아서 하기로 ..."
내 말을 도중에 끊더니
'퍽'
한번 더 내 머릴 때리며
"뭐? 과외를 또 해? 다 집어치우고, 나가서 소주나 얼른 사와. (치킨을 발로 차며) 이런건 도대체 왜 사오는거야? 어? 이런거 사오지 말고 술을 사오라고 술을!"
"이건 오늘 과외비 받아서 같이 먹으려고 사온거..."
"야이씨..(한번 더 말을 끊으며) 돈 번다고 유세 떠냐? 어!? 돈 번다고 유세 떨어? (때리려는 시늉을 하며) 이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아까 발로 찬 까닭에 봉지에서 나와 현관 바닥에 흩어진 치킨을 담으며)"
"내놔"
"네?"
"과외비 받았다며. 당장 내 놓으라고 과외비."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건네고는) 여기요..."
"(봉투를 낚아채며) 돈 번다고 유세 떨지마라. 건방지게."
아빠가 과외비 봉투를 가로채곤, 봉투 안에 든 돈을 힐끔 보더니
방 안으로 들어가 외투를 챙기곤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래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차라리 집에서 나가버려.
그렇게 술 마시고 정신없이 헤매이다 차에 치여서 그냥 죽어버려.
난 머릿속으로 아빠를 몇 번이나 죽이고 또 죽였다.
하지만 새벽이 지나, 날이 밝아도 들어오지 않으면 혹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근심 걱정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술에 만취해 곤드레만드레인 상태에서도 집은 어떻게든 잘 찾아와 들어오면 바로 쓰러지기 일쑤였고 일어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이 거지 같은 상황은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끝이 날 수 있을까.
이젠 다 커서, 나도 어엿한 대학생이라서 대들고, 들이받고 싸울수도 있지 않냐고 누가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상황은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이 상황을 피하는게 그게 가장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독립을 하기로 결정했고
아빠에게
학교 근처에서 집을 구해 혼자 살겠다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역시나 돌아온 건 말보단 손 이였고
난 그 날 아빠에게 주먹과 발로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다.
결국 입술이 찢어지고, 눈 옆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너도 이제 다 컸다 이거냐? 너도 니 엄마처럼 나 버리고 그냥 아예 다 떠나지 그러냐? 대단한 서울대 턱 하니 붙고나니까 성공한거 같지?? 시.발 넌 어딜가더라도 최진수 아들이야. 이 새끼야? 알았어?? 알았냐고!!!! "
"(피를 닦으며)... 집은 일주일에 한번씩 올게요.. 빨래랑 청소도 그때 다 할테니 그냥 두세요. 그리고 돈은 집에 올 때마다 조금씩 드릴테니까.. "
"돈 번다고 유세는..시.발. (소주를 들이키며) 꼴보기 싫으니까 당장 꺼져. 집을 구하든 뭘 하든 어디 나가서 니 맘대로 잘 살아봐."
이틀 후.
오늘은 현준이 과외 수업이 있는 날이다.
현준이네 과외를 하러가는 날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 녀석이랑 있으면 이상하게 맘이 편해진달까.
나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이게 무슨 느낌인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그 녀석이 날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했다.
근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에 멍이 크게 물들어 있었고 가슴과 다리 등 온 몸 곳곳이 상처와 멍 투성이였다.
이래선 도저히 과외를 하러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번에도 한 번 미뤘는데.. 오늘은 또 뭐라 말을 하지...'
하지만 현준이 어머님과 통화한 끝에
어쩔 수 없이 수업을 가기로 결정했고
예전부터 집에 있던 선글라스 하나를 집어들곤 현준이네 집으로 향했다.
사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였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이런 비참한 내 모습이라도 현준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현준이 그녀석이 오늘따라 더욱 더 보고싶어졌다.
[다시 도현준 시점]
형이 날 확 끌어안은 그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이 심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이지 너무나 놀란 가운데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등 뒤로 몸을 바짝 밀착시켜
더욱더 날 세게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곤 귓가에 형 숨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져 오더니
“현준아”
라고 형이 속삭이는데
정말이지 심장이 멎을 뻔 했다.
공원 숲 길이 어두컴컴해서
그리고 그 순간 아무도 우리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였을까.
난 너무 떨려서 형이 현준아 라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도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있잖아 말야.. 형은 네가 참 좋다."
어둠 속에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달빛 아래
뒤에서 날 끌어안은채로 내가 좋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데
따뜻한 형의 품 속에서 난 그대로 얼어버리고 말았다.
(다음화에 계속)..
===============
지난회랑 거의 똑같은 장면에서 끝나서 죄송합니다 ; 아무래도 성태의 시점에서 서술이 한 번은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근데 오늘 글은 제가 봐도; 염세적인 부분이 짙네요.
댓글 및 추천 감사합니다. 탈고하는데 많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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