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5화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본문
그날 저녁 퇴근 후, 방에서 쉬고 있는데 만호가 영민의 방으로 들어왔었다. 손에는 봉지를 들고 있었는데 맥주와 과자가 들어 있었다.
- 영민아 뭐해?
- 어? 최 주임 님...! 웬일이세요...? 그냥 TV 보고 있었어요…
- 배 안 고파? (가지고 온 봉지를 내밀며…)
- 네, 좀 출출하긴 하네요… 근데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뜬금없이 찾아온 최 주임이라 낮의 일이 신경 쓰였다.
- 어… 시내 나갔다가 오는 길에 간식 좀 사 왔어!… 맥주도… 너랑 마시려고!
- 네? 저랑 요...? 헤헤!… 전 술 못하는데요…
- 네 나이가 몇 인데 아직 술을 못 마셔! 이제 술도 배워야지...! 안 그래?
마치 안 마시면 낮의 일을 일러바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 …… 음… 그럼, 한 잔만 마실게요… ㅠㅠ
- 그래, 호텔 일은 할 만 해? 힘든 건 없어?
- 네, 다들 잘 해주셔서 괜찮습니다… 형님들도 좋으시고요...!
- 힘들더라도 열심히 해라. 요리사가 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주목 받을 거야! 자, 한 잔 마셔!
- 네… 제가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 근데.... 낮에는 왜 그랬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총지배인 님 아시면 큰일 났을 거야!
- …… 죄송해요… 주임님… 정말, 아무에게도 말 안 하실 거죠...? 제발 요...! (영민은 애원하듯이 말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영민은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며 들지 못하고 있었다. 영민은 그때까지 술이나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었다. 만호는 영민에게 맥주를 따라주며 자꾸 마시라고 권했다. 낮의 일도 있고 해서 하는 수 없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겁 없이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처음 마시는 술인데 아니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태식과 처음 마신 맥주가 있었다.)이지만 술은 역시 술이었다. 상황은 달랐으나 맥주가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시원하고 좋았다. 영민은 만호가 주는 대로 받아 마셨다. 서너 잔을 마셨을까...? 만호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함께 마셨다. 결국 영민은 그대로 앉아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음 날 영민은 아침이 되어 깼는데 머리가 띵하니 불쾌하게 아팠다. 아니 머리가 아파 깬 것 같았다. 퍼뜩 어젯밤의 일들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왜 머리가 아플까...? 방 안을 둘러보니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전날의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만호와의 술자리… 그러나 방 안에 술을 마신 흔적은 없었다.
아마도 만호가 다 치우고 갔나 생각했었다. 난생 처음 제대로 마신 술이라 마지막 잔을 받는 것까지 생각이 나고 그 후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밤새 룸메이트도 기숙사에 들어 오지 않았다.
호텔 기숙사에는 1실 2인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밤새 룸메이트 형이 들어 오지 않은 것이다. 영민은 샤워하러 세면 장으로 향했다. 직원들을 위해 사우나는 항상 개방하고 있었다. 몸을 씻고 난 후 거울을 보며 얼굴을 닦는데 이상하게 목 아래에 벌겋게 흉터가 생겨 있었다. 마치 가려워 심하게 긁은 것처럼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밤새 왜 이렇지? 벌레에 물렸나...? 영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후에 영민이 알았는데, 그날 반 만호가 영민을 취하려고 룸메이트에게 미리 비번을 줘서 외박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영민을 격하게 애무하여 목에 그 흔적(키스 마크)을 남기게 된 것이다. 만호는 양성애자였었다.
가만히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영민에겐 두 번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한번은 구미에서의 호텔 생활이었고, 또 한번은 이십 대 중반 거제도에서의 생활이었다. K 호텔은 어린 영민이 세상 물정에 눈을 뜨게 해준 중요한 시절이었다. 여러 가지로 자신을 성숙하게 한 시기였다. 그곳에서 남자 대 남자로서 동성을 좋아하고 비록 짝사랑이었으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김주하, 나이 31세. 그의 직책은 호텔 객실 주임이었다. 입사는 영민 보다 조금 늦었지만 경력 사원으로 입사하면서 객실 주임으로 타이틀을 가졌었다. 고향은 강원도 영월이었고 굵직굵직하게 생긴 외모와 달리 자상하고 부드러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신뢰를 얻고 있었다.
영민은 그런 주하를 자연스럽게 좋아하고 따르게 되었다. 주하는 어린 영민을 친동생처럼 보살펴 주었고, 주변에선 둘의 사이를 모르고 친 형제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영민이 주방에서 일하기에 맛있는 게 있으면 매번 챙겨 놓았다가 주하에게 갖다 바치고 해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함께 받기도 했었다.
그런 영민에게 자신도 모르는 걱정 아닌 고민거리가 하나 생기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주하와 키스를 한번 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 순수한 마음에서 가진 바람이었다. 대구에서 태식과의 첫 키스를 잊지 못했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바램이었다.
이런 영민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집착에 가까워져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민은 자신이 남자가 좋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그냥 주변에 있는 형들이 좋았을 뿐이었다. 예전의 태식도 그랬고 지금의 주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형이 좋아 형과 키스하고 싶다는 뭐… 말도 안 되는… 그러나 그만큼 순수했던 시절의 영민이었다. 한번은 낮 영업시간이 끝나고 크로스 타임(쉬는 시간)에 둘 이 기숙사에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주하와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것이라 용기를 내어 주하에게 결국 말을 꺼내고 말았다. 형과 키스 한 번만 하고 싶다고. 마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둘 뿐이었다. 그랬기에 영민이 기회를 봐서 말을 꺼낸 것이다.
뒷산에서는 한여름의 매미 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 대고 그 사이로 불어오는 산속의 바람이 둘의 몸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영민의 이런 부탁이 일반적으로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는데, 주하는 영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씨~익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가볍게 입술에 입을 맞춰 주었다.
영민은 좋기도 했지만 소원이 너무 쉽게 이루어져서 인지 기쁨보다는 허탈감에 더 실망했었다. 그것도 완벽한 키스가 아닌 그냥 보통의 입맞춤이라 영민은 주하에게 한 번 더 졸랐다. 진짜로 키스해 달라고… 그러자 주하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주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서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영민의 목을 천천히 감싸 안았다. 주하의 향긋한 살 냄새가 영민에게 훅하며 들어왔다. 주하의 두툼한 입술이 영민의 입술에 천천히 닿기 무섭게 그의 혀가 영민의 벌어진 입속으로 미끄러지듯이 깊숙이 들어왔다. 영민은 키스를 제대로 할 줄 몰라 그냥 입만 벌리고 있었다.
주하는 짧은 순간에 영민의 혀를 힘껏 부드러우면서 강하게 빨아들이며 무아지경으로 이끌었다. 영민은 그냥 주하가 이끄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게, 그렇게 주하와의 첫 키스이자 마지막 키스는 끝이 났었다. 영민은 잠시 멍하니 눈을 감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키스가 끝나자 주하는 벌렁 돌아눕고 서는 바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잠든 주하의 얼굴을 손으로 살며시 만지면서 영민은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 그래, 난 이제 이 형과 평생을 함께 할 거야! 난 주하 형만 보고 살 거야!
영민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했었다. 그때가 1982년의 여름이었다. 주하와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영민은 호텔 생활에 잘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몇 개월이 흘러 뜻밖에도 주하는 호텔의 기숙사를 나와 인근의 마을에서 자취하게 된다. 사연인즉슨, 술을 너무나 좋아했던 주하는 술 때문에 회사에서 징계당해 기숙사에게 퇴출을 당한 것이었다. 누구보다 주변에서 신임을 받는 주하인지라 영민은 충격이 컸었다.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주하가 술을 많이 마셔서 다음날 객실에 VVIP 손님이 오는데 출근을 못 한 것이었다. 객실 주임이 룸의 VVIP 고객을 맞이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 것이다. 지배인이 숙소를 찾아가니 한낮인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다행히 지배인이 잘 알아서 해결은 했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어 이래저래 주하가 숙소에 있기 불편했는지 몰랐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주하는 여자를 많이 밝힌다고 들었다. 그 말에 영민의 가슴이 또 무너졌다. 성인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게 죄인가? 당연한 게 아닌가!
영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거나 말거나 영민은 그래도 일편단심 주하뿐이었다. 퇴근 후에 자취하는 곳까지 매일 찾아갔었다. 그 사건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술을 마시러 나간 주하를 밤 늦게 까지 기다리다 얼굴도 못 보고 그냥 발길을 돌리는 날도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영민이 하루는 머리를 썼다. 이제 주하가 호텔을 나가서 바깥에 있으니 맘 편히 작전을 써도 되겠다 싶었다. 영민은 비번 날 시내에 나가서 큰 맘 먹고 떨리는 가슴으로 수면제를 두 알 구입했다. 용도는 주하를 쓰러뜨리기 위함이었다.
어리석게 영민의 짧은 지혜는 수면제를 술에 타서 주하를 잠들게 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만약에 그때 주하를 잠재워서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ㅎㅎ) 영민은 시원한 맥주를 몇 병 사서 뚜껑을 찌그러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따서 한 병 안에 수면제 두 알을 다 넣어 버렸다. 근데, 그게 실수였었다. 약을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넣어야 하는데 그냥 알 채로 넣었다.
차가운 맥주에 수면제(정)를 넣으니 쉽게 녹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소주가 아니고 맥주라 거품이 나서 흔들 수도 없었다. 주하가 매일 술에 취해 있으니 이건 잘 못 보기를 바라며 주하의 집으로 향했다.
마침, 그날은 주하가 집에 있었다. 비번인 걸 알고 영민은 주하의 집으로 간 것이지만 마침 집에 있었다. 날이 더워서인지 주하는 나시를 입은 채 마당의 평상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하얀 나시를 입은 주하를 보자 새삼 영민의 가슴이 심장이 쿵쿵했다. 주하가 영민을 보더니 왜 또 왔어? 하는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 뭔 일이야? 이른 시간에… 술까지 다 사 오고...! 너 이제 술 좀 마시냐?
- 아침 조라 일찍 마쳤어요… 그리고 제가 호텔 생활이 몇 년인데 맥주 몇 잔 못 마실까 봐요...?
- 하긴!… 그래, 낮에 바빴어...?
- 아휴! 말도 마세요… 장난이 아니었어요! 형 오늘 비번은 완전 재수였어요...! ㅋㅋ
- 그랬어? 이상하게 오늘 쉬고 싶더라니… 그럼 피곤할 텐데 일찍 쉬지 뭐 하러 또 내려왔어...?
- 참...! (서운하다는 듯이 주하를 노려보며…) 제가 형을 하루라도 안 보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거 알면서...! 자, 어서 시원하게 한 잔 드세요...!
영민은 재빨리 봉지에서 맥주와 종이컵을 꺼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을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까지 수면제가 안 녹았을까 싶어 살짝 병 안을 보니 알약이 작은 기포를 뿜으며 그대로 가라앉아 있었다.
주하가 볼까 싶어 얼른 새 맥주를 따듯이 오버하며 맥주를 따서 주하에게 한 잔을 따라 주었다. 주하가 맥주 한 잔을 받아 마시자 영민은 재빨리 한 잔을 더 따라 주었다. 주하는 갈증이 났는지 연거푸 잔을 비웠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하가 영민에게 맥주를 한 잔 따라 주려고 하자 영민은 좀 있다 마시겠다며 사양했다. 근데 그게 화근이었다. 주하는 따라 줄려고 하고, 영민은 기겁하며 안 마시겠다고 사레를 치는 동안 맥주병이 흔들리면서 알약 하나가 살짝 위로 떠 오른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소처럼 큰 눈을 가진 주하가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맥주병을 들어 속을 자세히 보던 주하는 놀라는 모습이었다.
- 잉?!!...! 이… 이 게 뭐야!!...!
- … 혀... 엉...! 그… 그게… 말이야...! 그… 그게…(영민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이 자식이 귀엽다 귀엽다 해줬더니 어디서 이런 걸 배워서!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아직 어둡지는 않았으나 여름 하늘이 노랗게 변한 것이다. 그리고 영민의 몸도 마음도 얼어 버렸다. 주하는 영민의 손에 든 맥주병을 빼앗아 마당 한가운데에 힘껏 던져 박살을 내 버리고 말았다. 그 맥주병과 함께 영민의 작은 꿈도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 당장 꺼져...! 그리고 다신 여기에 오지 마! 알았어?!!!
- 혀… 형...! 잘못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혀~엉… 잘 못 했어요!…
주하는 영민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영민은 사색이 되어 꼼짝 못하고 요즘 말로 “얼음 땡”이 되어 버렸다. 주하는 그런 영민을 흘끗 보더니 그냥 방으로 획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나와서 영민을 두고 외출을 해 버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영민은 그제야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왜 그랬냐며 자신을 때리기라도 하던가! 그렇게 돌아서는 주하를 보니 속이 더 상했었다. 이렇게까지 했던 자신도 미웠었고… 호텔로 돌아오는 영민의 눈에는 어리석은 후회와 한편으로 자신의 맘을 그렇게 몰라주는 주하가 미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무지 더웠던 한여름 오후의 공기가 그때는 그렇게 서늘하게 느껴졌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주하는 영민을 외면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마주쳐도 투명 인간 취급했었고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주하의 그 싸늘한 눈빛은 영민을 더욱 두려움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주하가 곧 결혼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사이에 입사 한지 얼마 안되는 웨이트리스와 동거한다는 소문도 돌았었다. 영민은 그 일이 있은 후 주하의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었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그 일 이후로 주하는 영민에게 객실 사무실(하우스 키핑)에도 놀러 오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그 소문이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2년 차의 웨이트리스와 30대로 들어선 주하의 결혼 소식은 호텔에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사표를 냈다. 결혼한다는 소식은 나돌았지만 그래도 계속 함께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영민은 주하가 사표까지 내고 이곳을 떠난다고 하자 앞이 캄캄했다.
어린 영민의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계속 이어집니다...
★글을 읽으시고 좋아요를 눌러 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솔라리오 테라피는 남성을 위한 남자만의 마사지입니다.
*부드러운 스크러빙 아로마오일 마사지에 관심 있으시면 편하게 상담 주세요...
이 글을 쓴 리오가 직접 마사지를 해드려요~! ^^
https://cafe.naver.com/solarrio 네이버 카페 자동승인
https://cafe.daum.net/SolarStory 다음 카페 자동승인
관련자료
-
이전
-
다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