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다방과 동네 양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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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읍내 어귀에 옛날식 다방인 '길' 다방이 들어섰을 때, 고운 한복에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빗어넘기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마담이 택시에서 내릴 적에, 수다쟁이 아주머니들은 동네 말아먹을 것처럼 생긴 년이라고 숙덕거렸다.
길 다방이 생긴 지 수년이 지나고 이제 길 다방은 동네 사랑방이 되었다.
담배냄새로 찌든 커튼으로 젊은이 석, 연로 석으로 구분한 길 다방 내 창가 쪽으로는 오늘도 동네 어른들께서 내기 장기와 바둑을 뜨고 계셨다.
집에서 입던 그대로 츄리닝 차림으로 마실 나온 동네 양아치들은, 며칠 전 서울나들이 이야기로 아주 신바람이 나 있었는데, 짙은 쌍화차 냄새가 구슬픈 색소폰소리를 타고 조그만 유리창에 겨울 성에를 만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길 다방을 갈 적에 굳이 돈을 가져갈 필요는 없다. 차를 마시고 돈이 있으면 페인트가 벗겨진 카운트에 올려두고, 없으면 가을걷이를 해서 나중에 주면 된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밥 때가 되면 카운트 뒤로 마련된 주방으로 달려가 커다란 밥통에서 밥을 퍼먹으면 되고, 다방 뒤뜰에 묻어 둔 김장독에서 김치 몇 포기만 꺼내오면 된다.
방금도 동네아주머니 한 분께서 친정집에 급하게 다녀온다며 남편 끼니나 잘 챙겨달라고 지난 가을걷이 고구마를 비료포대로 한 포대나 가져다 주고는, 낮잠을 자다가 파마머리 시간을 넘겨 뽀글뽀글 라면 머리가 되었다고 한참이나 깔깔거리다 가셨다.
오늘도 길 다방 마담은 손님이야 오거나 말거나, 가거나 말거나, 맛깔스러운 솜씨로 차를 끊인다.
이따금 궂은비가 오시는 날 밤 버스가 끊기면 동네 양아치들은 길 다방을 찾는다.
그럴 때면 마담은 다방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양아치들에게 소주병을 내민다.
같이 마시다가 한껏 취기가 오르면 길 다방 마담은 동네 양아치들과 함께 소변을 보는데, 모두 같이 서서 소변을 갈긴다.
길 다방 마담이 게이인 줄은 읍내사람 대다수가 알고 있지만, 모두들 쉿~ 쉿~ 한다.
읍내 어귀에 길 다방이 생기고부터 몇 년에 걸쳐 농사가 대풍이었고, 이 읍은 전국에서 범죄 없는 곳으로 지정되어 정부에서 주는 상까지 받았다.
어젯밤도 술이 과해 길 다방 마담의 펄펄 끊는 온돌방에서 아침을 맞이한 동네 양아치들은, 누님 누님 부르며 마담이 끊여 준 콩나물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고는 깨끗하게 빨아 둔 새 양말을 신었다.
길 다방에서 잠을 자거나 말거나, 해장국을 먹거나 말거나, 양말을 신거나 말거나, 차를 마시거나 말거나,
오거나 말거나, 가거나 말거나
오늘도 길 다방 마담은 콜드크림 지문이 묻은 면경을 바라보며 새빨간 립스틱을 칠하고는, 참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었다. /終/
-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란 트롯을 듣고, 즉흥적으로 창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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