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처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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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
그녀의 존재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디까지인지 알수는 없었다.
그날 그녀의 전화를 받고 나간 장소에 그녀가 거의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채 전화박스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뭐라고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녀에게 기달리라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조차.. 너무 앞서가기 싫었다. 그녀의 인생을 쉽게 내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옆에서 그렇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고 앉아 있었다.
"어..우리 오빠왔네..히히"
울었던 것일까? 그녀의 볼은 눈물이 흐른 자국이 남아있었다.
"자식 술은 어디서 이렇게 많이 먹은거야..추운데 그만 집에가자"
다른 말을 해주고 싶었다.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냥 잊으라고..정리하고 싶었다. 그녀의 걱정까지 짊어지고 군대라는 곳을 가기 싫었다. 난 이기적인 놈이다..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를 데리고 택시를 잡았다. 그녀의 집은 신촌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몇번 그녀가 술이 취해 정신이 없을때 데려다 주곤해서 그녀의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만 들어가서 자라..내일 얘기하자"
"오빠....잠깐만.."
그녀의 집앞에 도착해 집에 들여보내려고 할때 그녀가 말했다.
"응...왜?"
"난 오빠 기달릴거야....오빠가 왜 나한테 얘기안하고 그런결정 내렸는지 모르겠지만...혹시라도 내가 고무신 거꾸로 신을 까봐 걱정돼서 그런거라면....그런거라면 그런 생각하지마..그리고 앞으로는 무슨일 있으면 나한테 다 얘기해줘"
"......흠.."
한숨이 나왔다. 이런 대답을 기다린건 아닐까? 왠지 이말을 들으니 마음 한구석에 안도의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기적인 놈인것같다.
"그래...오빠가 너한테 미리 얘기 안해줘서 미안하다. 그런데 혜미 너도 생각잘해. 너나 오빠나 아직 어리잖아. 앞으로의 일.....그런것 어떤것도 장담할 수 없는거야. 사람이 살아가는 일 쉽지만은 않은 것같아. 그러니까 혜미 너도 생각 잘하고..세상에 좋은사람은 많아..그러니까"
"아니!! 세상에 오빠는 하나야...나 들어갈래... 어지러워"
그녀가 힘없이 일어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그녀는 뒤를 돌아봤다. 활짝은 아니지만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내가 말했다.
"처음에 말했지. 오빠 내가 찍었다고......조심해서 들어가. 오늘 데려다 줘서 고마워"
다른 말이 필요없었다.
'그래 찍힌거구나...하하...'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휴학을 한지 벌써 6개월째다.
집에선 이미 군대간다는 놈이 벌써 반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처음 한달간은 군대가면 체력보충을 해야한다며 극진히 잘해주시던 어머니도 '너 아직도 안갔니?'하는 눈길을 거침없이 뿌리고 있었다.
처음 며칠간 말이 없던 혜미도 예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른점이 있다면 꼭 내가 내일 죽을 것처럼 나에게 충실했다. 그러한 시간들도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지겹다는 투로 변했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을쯤 영장이 날라왔다.
"다다음주로 날짜 나왔습니다"
"오..드디어 가는거냐?"
'이게 무슨 반응이지?' 처음 군대를 지원했다고 말했을때 분위기와는 360도 바뀐 아버지의 반응은 아들로써 감당하기 힘들었다.
'네 드디어 아버지의 소망대로 들어갑니다'
난 가족들의 열렬한 환호(?)를 뒤로하고 혜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혜미야 오빤데.."
"어..잠깐만..어 말해"
"오빠 군대 영장나왔다"
"...."
전화기에서 나오는 모든소리가 끊겨버렸다. 그래 역시 혜미 밖에 없구나...
"해피야 좀....어 오빠 미안..해피가 오줌을 싸놔서...뭐라그랬지?"
쿵!....혜미 너마저...
"응?..응...오빠 군대간다고"
"그래? 일찍도 가네... 언제?"
"응..7월18일"
처음 군대를 간다고 했을때와 같은 반응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혹시...흠...역시나..
"그럼 상철이 오빠랑 축하파티 준비해야겠다"
헉!!...축하파티라...
이주라는 시간은 금방흘러갔다. 영장를 받기전까지 그렇게 안가던 시간이 영장를 받으니 쏜살같이 흘러갔다.
"잘갔다와"
"응..."
의정부 306보충대 연병장에 수많은 사람들로 꽉찼다.
여기저기 생이별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의 이별영화 출연진은 상철이형과 혜미, 그리고 고등학교 단짝인 민수가 출연하고 있었다.
혜미는 무슨생각을 하고 있는건지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죄없는 땅만 발로 채며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시간이 좀 남았네? 뭐좀 더 먹을래?"
상철이형이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떼우려는 듯 말했다.
"아니 별 생각이 없네.."
아침에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왔다. 굳이 오신다는 어머니를 아버지께선 무슨 전쟁터에 가는 길이냐며 말리셨고 누나들은 평소와같이 잘다녀오라는 인사로 배웅했다.
"군대가면 전자시계 필요하다던데...기달려 형이 사올께.."
"어..형 같이가요"
상철이형과 민수는 둘이서 눈짓을 교환하더니 이내 그말을 하고 혜미와 나만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아마도 혜미와 둘이서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듯하다.
"꼭 저렇게 티를 내고 일을 한다니까.."
그런 그들의 모습에 혜미가 오늘 처음으로 웃으며 내게 말했다.
"..."
"..."
막상 어떤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뭐라고 말을 해야하나...혜미역시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데 선뜻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둘의 침묵을 먼저 깬것은 혜미였다.
"오빠..."
"응?.."
"잘갔다와. 건강하게. 아프면 안돼. 편지도 자주하고. 시간나면 면회 꼬박꼬박 갈께"
오늘 아침부터 이말을 외우고 온것처럼 혜미는 쉬지않고 말했다. 말을 마치고 처음의 그자세로 여전히 죄없는 땅을 발로 차고 있었다.
"그래....공부열심히 하고...그리고...아니다..건강하고"
기다리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목에서 그말이 걸려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 오늘 입대를 하시는 분들은 사열대 앞으로 모여주시고 가족친지 여러분께서는 그만 돌아가주십시요."
사열대 위에서 군인 한명이 안내방송을 했다.
오늘 입대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배웅나온 사람들과 마지막인사를 나누고 사열대 쪽으로 뛰어갔다. 상철이형과 민수가 그때 저쪽에서 뛰어왔다.
"자 여기 시계....진짜 가네...잘가고"
"응...형도 잘지내고 ... 민수야 나중에 보자!"
말은 형과 민수에게 하면서도 시선은 혜미를 쳐다보았다. 혜미를 나를 똑바로 올려다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혜미야 오빠간다"
그말을 뒤로 사열대로 뛰어갔다.
뒷쪽에서 갑자기 혜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뒤를 돌아보았다. 혜미가 나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난 혜미쪽으로도 사열대쪽으로도 가지않고 그자리에 멈춰섰다. 혜미가 내앞으로 거의 왔을때 더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오빠....아프면 안돼..흑흑"
울고있었다. 그렇게 씩씩하게만 보이던 혜미도 이렇게 울줄 아는구나.. 마음이 갑자기 두근거렸다.
"그래... 오빠 갈께"
그녀에게 달려가는 대신 난 사열대쪽으로 몸을 돌리고 뛰어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녀에게 다시 달려갈것 같았다.
'그래 조금만 참자...'
# 조장
"이 새X들 봐라...여기가 니들 집이냐? 빨랑 빨랑 안뛰어!!"
왼쪽팔에 '훈육'이라고 새긴 완장을 차고 빨간 모자를 쓴 이들이 이제 막 군대라는 울타리에 들어온 이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고등학교때 제식훈련을 기억하며 이제막 군인이 되버린 이들이 긴장을 하며 줄을 맞추고 있었다.
'어휴...이제 시작이군'
"줄 똑바로 맞추라고 이 새꺄"
"이것들 정신이 아직도 여자친구 치마속에 있군...모두 어깨동무 실시!!"
여기저기서 난리아닌 난리가 났다. 뭐라 지정해주는 것도 없이 막무가내로 여기저기서 빨간모자를 쓴 이들의 요구사항을 감당하기란 아침까지 식구들과 밥을 먹고 귀하게만 자라온 이들에게는 벅차보였다.
십여분간의 실랑이 끝에 어느정도 상황 파악이 끝난 우리들에게 그들중 제일 고참으로 보이는 훈육이 출석을 불렀다.
"XXX"
"예"
"XXX"
"예"
"..."
출석이 끝난 그 훈육은 결과를 간부있듯한 사람에게 넘겼다.
"에...모두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3일간 여러분께 군대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 물품, 정신상태를 책임질 소령 박상섭이라고 합니다."
군인이라기 보다는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소령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그는 줄맞추어 쪼그려 앉아있는 우리들의 시선을 한번 쭉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일단 현상태에서 번호를 부여받고 그번호대로 조를 짜겠습니다.....오지훈...여기 알아서 조 짜고 내무실 지정해줘라.....그럼 모두들 다시한번 환영하며 앞으로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선봉!!"
대답을 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오지훈이란 사람은 아까 그 출석을 부르던 제일 고참같은이였다. 그사람의 계급은 병장이었다.
"에..그럼 이제 각자의 번호를 불러주겠다. 호명하는 사람은 차례로 나와 10열씩 줄 맞추어 앉아라"
"예!!"
"이 새X들 아직 정신 못차렸나..목소리가 그것밖에 안나와!!..다들 앉아...일어서...앉아...빨랑빨랑 못해!! 앉아 일어서 50번 구령은 목에서 피가 나도록..실시"
이별의 달콤함을 느낄새도 없이 얼차례로 모두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났다.
40명씩 한조로 나뉘어져 각조대로 내무실을 배정받았다. 처음 그렇게 우릴 죽일듯이 하던 훈육들은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이 저녁시간이 될때까지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끼리끼리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늘어놓았다.
"좃도 아닌것 같은 넘들이 지X이야..."
"그러게요..여긴 뭐 그냥 3일 있다가 군복받고 신병교육대 배치받고 그냥 그렇게 보내는 대라고 하던데요"
처음의 긴장감도 많이 수그러진듯 내게 커피한잔을 권유하던 덩치가 좋은 사람이 말했다. 그사람의 말에 억울하다는듯 어려보이는 사람이 맞장구를 치며 담배를 빨았다.
"그래도 군대는 군댄거 같네요..오자마자...고등학교 교련시간이후 오랜만에 제식할려니 급급하네요"
"하하...그래도 이정도면 할만하던데요...뭐.. 할때는 좀 그렇지만"
그들의 대화에 난 미소만 약간 머금었다. 환영회때 선배들이 얘기해주던 군대 생활이 이정도만 된다면야....정말 선배들이 부풀려서 나에게 겁을 주려고 한 거짓말들인가?
이런저런 잡담으로 시간이 갈때 훈육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집합"
시계는 이제 5시가 조금 넘어 가고 있었다.
"뭔 밥을 이렇게 일찍 먹는데?"
"그러게요...어디 짬밥이나 함 먹어볼까?"
그말을 끝으로 우리는 내무실 건물 앞에 줄을 맞추어 섰다.
"식사전에 우선 조대로 조장을 뽑겠다. 모두 눈감고......조장하고 싶은사람 손들어!"
우리조의 담당 훈육은 아까 출석을 부르던 오지훈병장이었다. 속으로 모두들 재수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까의 행동을 보면 그리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임은 분명한것 같았다.
"조장하고 싶은 사람이 없나? 조장하면 그래도 남들보다 밥도 빨리먹고 씻는것도 그렇고 좋은 점이 많은데.."
오지훈병장의 달콤한(?)유혹에도 쉽게 넘어오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그럼 내가 임의대로 정하겠다....모두 눈뜨고...음...거기 너"
"예?"
"그래..너. 나와"
오지훈병장의 지목을 받은건 다름아닌 나였다. 그가 훑어볼때 그와 시선이 마주쳤을때 피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본게 원인인듯했다.
"이름?"
"신재영입니다"
"신.재.영.....운동했냐?"
"아닙니다."
"그래 몸은 좋네..니가 이제부터 이조 조장이다."
"예"
"그래 그럼 인솔해.."
멀뚱멀뚱...지시를 내리고 뒷쪽으로 걸어가던 오지훈병장이 어물주물 서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인솔하라구...반장해본적 없냐?"
"..."
"참내...멍청한놈 조장으로 뽑았네...오른쪽으로 빠져..그리고 인솔해"
"예... 3조 앞으로 갓!!"
식당앞에는 다른 조들이 이미 식사대기를 하며 군가를 배우고 있었다.
내가 아는 군가라고는 '진짜 사나이' 정도였다. 우리조를 담당한 오지훈병장도 우리에게 하나의 군가를 가르쳤다. 군가중 제일 쉽다는 '멋진 사나이'였다.
군가를 배우는 중 우리조의 식사차례가 되고 우리는 '입장!'이라는 구호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대기를 하며 앞조의 식판을 살핀 나는 이미 저녁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앞조의 사람들은 이미 식판에 한숟가락도 건들지 않은 밥들을 짬-남은밥 버리기-시키고 있었다.
-흔히들 군대에서의 '짬밥'이란 용어를 쓴다. 이말의 어원은 '잔밥' 즉 남은 밥의 말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흔히들 군대의 몸답고 있는 기간에 비유한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기름진 음식만을 먹던 우리에겐 짬밥은 쉽사리 적응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입대날이라고 몸보신을 한우리에게 이른 저녁이 눈에 찰리 없었다. 나도 남들처럼 한숟가락을 또보곤 이내 입맛을 잃어버렸다. 한숟가락 입에 집어넣고 나머진 모두 버리려고 하는데 옆에서 오지훈병장이 웃으며 말했다.
"맛이 없나보지? 나중엔 없어서 못먹을텐데?..흐흐"
나중엔 맛이 있던 없던 우선 지금은 더이상 먹을 수 없었다.
"아니 속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유치한 변명이었지만 더 먹기도 그렇고해서 그냥 모두 짬시키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줄을 섰다.
저녁시간이 끝나고 내무실에서 잡담을 하고 있던중 오지훈병장이 각조 조장들을 집합시켰다. 그는 각조 조장들에게 봉투를 나누어 주며 조원들에게 나누어주어 집주소를 작성하라고 시켰다.
"아마 옷부칠라고 그럴껄?"
아까 커피를 같이 마셨던 덩치가 그렇게 말했다.
나도 선배들에게 얼핏들었던것 같다. 군대를 가면 밖에서 입던 옷들을 집으로 부친다고 그때 부모님들 특히 어머니들이 무척이나 우신다고 한다.
마음이 울적했다. 이제 진짜 군생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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