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눈물에 젖은 50대 후반의 신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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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았다.
모든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
내가 그토록 원하고 내가 그토록 찾던 그런 분과 오늘 이밤에 사랑도 확인하고 내 옆에서 새곤새곤 주무신다.
조용히 그분을 끌어 안았다.
주무시는 그분의 뺨에 키스를 했다.
내 옆에 주무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어느때 보다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다음날 부터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위해주며 사랑하며, 밤에는 연인으로 낮에는 아버지와 아들로 지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애널까지도 서로가 사랑했다.
겨울에는 동해바다로, 봄에는 놀이공원으로, 여름에는 제주도로, 가을에는 낙엽이 뒹구는 고궁와 공원으로 한달에 한번씩 여러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때로는 우리가족과 같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내미는 교감선생님을 할아버지로 부르며 내가 질투 할 정도로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
그렇게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나도 방황을 하지 않고 오로지 이분을 위해서만 살아왔다. 아버님도 나를 위해서 정성을 다해 나를 사랑해 주셨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 같았다.
아버님의 건강도 이제는 거의 다 나으신것 같다. 새학기에 다시 복직 준비하시느라 분주하시다.
나도 겨울방학이고 몇주간은 연수도 없다. 아버님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에게는 또 다른 불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루는 저녁식사후에 아버님이 하시는 말씀이
"시원아 우리 명동성당이나 가볼까?
"네 좋아요 아버님! 우리 오랬만에 데이트 하네요"
오랬만의 데이트라 좋았다.
"그렇게 좋니? 허허허. 오늘 날씨가 눈이라도 내릴 모양이야!"
웃는 모습에 기운이 없으시다.
"그렇네요. 옷 두툼하게 입으셔요 감기드시지 마시고"
"자네나 잘 챙겨입게"
밖으로 나와 승용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려던 순간 아버님이 오늘 술 한잔하시자며 지하철 타고 가자고 하신다.
아버님이 어두운 모습이었다.
명동입구에 들어섰다.
거리에는 청춘남녀들이 팔장을 끼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활기차게 걷고 있었고
휘황찬란한 네온불빛 속에는 마지막 송년의 달을 아쉬어 하듯 사람들을 환락의 세계로 끌어 들이는것만 같았다.
성모마리아상 앞에는 수십개의 촛불이 켜져 있고 여러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우리도 조용히 두손모아 기도를 했다.
기도를 마친후 아버님이 술한잔 하시자며 내손을 이끄신다.
간곳은 '이종환의 쉘부르의 우산'이였다.
맥주와 과일을 시키고 이어 나온 무명가수의 섹스폰연주와 노래를 감상하면서 지긋이 눈을 감는 아버님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고맙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 주시는 아버님. 내가 이반세계에서 헤매지 않고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주신 교감선생님이... ...
대학다닐 때 이곳이 단골이셨다고 하신다.
쇼가 한단락 끝나고 맥주 5병을 마시고 나서는 아버님이 입을 여셨다.
"시원아. 우리 나가자. 소주한잔 하면서 내가 자네에게 할말이 있네"
"네? 무슨걱정이라도 계세요"
"나가서 얘기하지... ..."
"어디로 갈까요 아버님"
"집근처로 가지"
"네"
택시를 타고 집근처로 왔다.
그리고 나서 들어간곳은 손님이 한테이블도 없는 선술집.
삼겹살과 소주가 나왔다.
소주 두병에 매실하나 섞으니 달콤해서 마시기에 좋았다.
고기굽는 연기가 멀리 퍼지면서 이내 두어잔의 술이 오가면서 대화가 오고갔다.
"자네"
"네. 아버님"
"너 우리 아들맞나! 시원아 너 우리아들 맞어"
하시며 내 뺨을 두손으로 만지시며 얼굴을 숙이셨다.
"아버님 맞아요 내가 아들이잖아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아버님이 떠신다.
갑자기 무슨일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모르겠다.
내가 잘못해 드린것이 없는데... 내가 싫어지신걸까?...
난 조금전에 성모마이라상앞에서 더욱 당신을 사랑하겠노라고 기도까지 드리고 왔는데... ...
갑자기 교감선생님이 술을 연거푸 세잔을 안주없이 드셨다.
난 상치에 고기를 싸 교감선생님의 입에 넣어주었다.
잠시후 아버님은 주머니 속에서 편지를 하나꺼내 나에게 보여주셨다.
미국에서 퀵서비스로 온 편지이다. 발신일이 어제로 되어있다.
아마 딸에게서 온 편지구나 생각하고 열어보니 영문으로 되어 있었다.
몇글자 없는 편지를 자세히 보니 미국에 있는 딸이 위급하단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루빨리 미국에 들어오시라는 내용이였다.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왜 이분은 자식복이 이토록 없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아들도 교통사고로 죽고, 그리고 딸마저 위급하다니...
다음 2월 달에 한국에 들어온다고 1주일전에 딸에게 전화까지 왔는데..
갑자기 무슨일일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늘 낮에 자네가 집에 간 사이에 편지가 왔네. 내용을 보고는 미국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되질 않더군. 그래서 자네 오기만을 기다렸네"
"그래서 아버님이 명동성당에 오자고 하셨나요?"
"그렇네!. 하지만 자네가 내 옆에 있으니 큰힘이 돼"
"시원아 너 내아들 맞지? 내가 사랑하는 시원이 맞지!"
"네 아버님"
다시한번 리바이벌 하신다.
난 이분의 두손을 꼭잡고 내가 옆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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