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추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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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항상 보름날이면 어린 나를 데리고 “칠성사”의 절에 가셨다.
그 절은 우리가 사는 집에서 십오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족히 반나절이 걸리는 거리였다.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지만 산사가 험하고 좁다란 오솔길이라 어린 나 때문에 시간은 족히 반나절을 잡고, 오가는 시간으로 따지면 꼬박 하루 일과인 듯 그렇게 멀기만 한 곳이었다.
내가 초등하교 들어갈 무렵 이닌까, 엄마품에서 떨어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할수 없이 늘 그렇게 불공을 드리러 산사를 찾았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엄마는 머리에 쌀을 이고 흰색 한복차림으로 항시 나를 손잡고 불공을 드리러 가는 중이다.
정갈하게 빗은 머리며, 곱게 차려입은 한복은 새색시처럼 수줍어 보였지만 엄마의 얼굴은 늘 웃음이 배어 나오듯 그런 인상이었다.
산사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산등성이엔 온천지가 진달래 꽃이 피어있다.
그날따라 붉게 물들은 산등성이를 벗 삼아 “모자”는 하염없이 목적지를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개구쟁이 나도 옆에 핀 진달래 꽃을 꺾어 엄마 귀밑에 곱게 꽃아 주었던 생각도 잊지 않고,
한 아름 따다 엄마 가는 길에 뿌려주곤 했다.
가끔씩 엄마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 진모는 이담에 무럭무럭 자라 큰사람이 되야지.
엄마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한사람이 되고 .......
늘 하시던 말씀이지만 싫지는 않았다.
새벽의 졸린 눈을 비벼대며 먼길을 따라 나서는 것은 어린 나로서 쉬운일은 아니었다.
귀찮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엄마와 벗하면서 동행하는 것은 모자의 끈끈한 정이 그때서 부터 있었던지 그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마 손을 붙들고 산사를 따라 다녔다.
비록 한달에 한번 불공을 드리지만 엄마의 정성은 부처님도 감동하실 듯 싶었다.
가끔 눈비가 와서 포기할 만도 한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절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
나도 자꾸 엄마를 따라다니면서 많이 익숙했는지 절에서 얻어먹는 음식이 싫지는 않았다.
비록 철부지 어린이 였지만 그 맛에 따라 다니고, 부처님에 대한 공양은 엄마 몪이어서 나름대로 놀이터로 생각하고 마냥 뛰어놀던 기억뿐이 지금은 나지 않는다.

돌아 오는길에 엄마는 이야기 주머니가 있듯 옛날 얘기를 해주시면 나는 그냥 기분이 찢어지도록 좋았던 기억도 있다.
옛날 거지형제의 이야기며, 왕자님과 공주님 이야기며, 백설공주.........
귀가 솔깃하면서 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시절이 문득문득 새록거리고 있었다.
그날도 불공을 마치고 머리에 한아름 이고 있는 것은 흰떡인 것 같았다.
내 입맛에 맞지 않지만 그래도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고 챙기시던 가슴 깊은 사연을 알지 못했던 때라 왜 남들을 주느냐고 징징댔던 그런 추억들이 하나둘 나열하는 나 자신신도 그때로 돌아가고픈 기나긴 여정인 것을 알면서도........

새벽 5시.
스님들의 새벽 예불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온갖 번뇌를 백팔번의 절에 담아 마치고 나면, 엄마는 조찬시간까지 선방에 앉아서 좌선을 했다. 모든 불자들이 벽을 향해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숨 호흡을 하면서 비스듬이 눈을 바닥에 깔고 나름대로 명상에 들어갔다.
무슨 전생에 죄를 지었는지 모르지만 저마다 바램과 주문이 달랐다.
엄마의 불공은 안 들어봐도 내가 씩씩하고 아무 탈 없이 자라라고 빌고 있을 것이다.
불자들의 불공이 무아지경에 이르고 있다.
숨소리 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산사가 조용하다.
할일도 없고 심심해서 그날따라 여기저기 기웃 거리고 있었다.
거의 사람은 찾아 볼수 없고 따분하여 약수터로 발길을 옮겼다.
목이 마르고 해서 약수터를 찾아 나서는데 나보다 좀 큰 형이 약수터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형이고 해서 나는 그냥 목이 말라 물만 마시고, 아는체 하지 않고 뒤돌아 오는데 형이 나를 부르는 눈치였다.
왜요?
으응.
여기 자주오니?
네.
엄마 따라 한달에 한번와요.......
형은요?
처음인데 너무 심심해서.
나는 7살인데 형은 몇 살이에요?
나는 8달.
그런데 학교는 안가요.
다니다가 몸이 아파서 내년에 들어가려고.......
그렇구나.
그때는 몰랐지만 형이 몸이 안 좋아 불공을 드리러 온 것이다 판단하였다.
그래도 한살차 이면 어렸 을때는 꼬막 형이라고 부른 것 같았다.
이런저런 얘기가 길었는지 엄마가 찾고 있었다.
진모야.
나는 형하고 헤어지면서 담에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엄마.
저형은 오늘 처음왔대.
누구 말이야?
저쪽 약수터에 있는형 말야.
엄마는 내가 주시하는 곳으로 시선을 보더니
아랫마을 사는 진욱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형의 이름이 진욱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그렇게 인연이 되고 있었다.
오늘은 새벽불공이라 어제저녁부터  산사에 기거 했었다.
잠이 덜자서 인지 잠이 쏟아졌다.
엄마는 분주하게 아침을 준비 하는것 같았다.
불자들이 많아서 인지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산사라 그런지 아직까지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추었다.
옷을 챙겨 입고 왔는데도 추위가 온몸을 더욱 더 싸늘하게 식히고 있었다.
산사를 뒤로하고 나는 엄마손을 잡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집으로 향해 돌아오고 있었다.
한참을 걸었는지 추윈 간데없고 산등성이의 꽃들이 반기기라도 하듯 새하얀 햇살이 눈부실정도로 맑았다.
그렇게 산사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벌써 내 나이 30대이다.
그렇게 아련한 추억이 서려있는 산사를 나도 모르게 찾았다.
변한 것은 없었다.
단지 변했다고 하면 세월의 흐름 탓인지 노송들이 가득하고 주변 도로만 포장이 되어 있을뿐 절 자체의 건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산사에 찾은 나로서는 모든 것이 궁금하여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어릴적 생각과 현재의 모습은 거의 비숫 하다시피 하고, 빛바랜 사진처럼 뚜렷하지는 않지만 추억들이 새록새록 꿈틀거리고 있었다.
갈증이 나서 약수터를 찾았다.
문득 형 생각이 났다.
그 형도 나같이 산사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어렴풋이 그 형의 얼굴를 그려 보았다.
비록 20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래도 윤곽을 희미하게 남아 기억이 나고 있었다.
물을 마셨다.
전에 마시던 그 약수물 그대로의 맛이다.
잊을수 없을 만큼 짜릿하다.
아직까지 오염이 여기까지는 찾아오지 않은 듯 하다.
여기저기 두리번 하면서 추억을 되살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갈 요량으로 몸이 분주한데 한 노스님이 내게로 다가왔다.
나미아불타블...........
간단한 인사를 대신하고 내게 할말이라도 있어 보여 물어보려는데 노스님이 말을  나에게 건넸다.
급한일 없으시면 하루 쉬어가도 됩니다.
아.....네.
그런데 노스님의 얼굴이 많이 본 듯 할아버지 느낌이었다.
저,,스님
제가 20년전에 한달에 한번 엄마 손잡고 불공 드리러 왔었는데.....
그때 어린이가 바로 접니다 스님.
저는 개구쟁이였고 엄마는 고운 흰색 한복을 입고...........
흰색 한복에 한번도 거르지 않고 불공드린 그 불자님의 아들이 이렇게 자라셨군요.
예........
그 코흘리게 어린애가 바로 저입니다.
노스님은 그때 일을 기억하듯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러면서 건너 방으로 안내하고 이곳에서 하루 머물러 가라고 신신 당부을 하고 있었다.
사실 떠나고 싶은 생각을 없었지만 친절한 노스님의 배려로 하루 신세 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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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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촣은 추억을 그려 나가시네요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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