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2부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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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일본으로 떠난후 한동안은 정말이지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었다.
무언가 집에다 두고 나온듯한 기분으로 몇주를 지냈다.
그도 그럴것이
몇개월을 함께 한 침대를 쓰던 사람이 갑자기 자리를 비웠고,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드는 겨울의 느낌도 만만치 않았고,
성탄절이다, 새해다, 거리의 분위기도 분주했고.
무엇보다..
2월쯤 진급을 하리라 믿었던 회사에서 1월초 예정보다 빨리 진급을 시켜주며
자주 드나들던 동대문구 지사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의 적응기를 바쁘게 진행해 나가는듯한 형님의 전화는
거의 이틀에 한번씩 걸려왔고,
그러는 동안, 혼자만의 생활에 조금씩 조금씩 적응해 갔다.
집안에서의 성화에 못이겨 두어번의 맞선을 치러야했던 3월이 지나고나서
내게 가장큰 아쉬움들은....
놀랍게도 내 안에 있는 부재감들이었다.
잠자리에 들때마다, 치가떨릴만큼 아쉬워하기 시작했고
그럴때마다 당장이라도 일본으로 날아가고 싶은 욕망들에 시달려야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볼때 형님과 덩치가 비슷한 중년들은
습관처럼 다시한번 보게하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고,
이쁜 배우들보다 멋있는 배우들의 영상에 더 많은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한 나의 생활들과,
정서불안적인 심리적 변화들은...
몇잔의 술만 마셔도 말을 하지 않는 이상한 술자리 습관을 만들어 냈고...
주변사람들은 그것이 서른이된 마음의 병이라고 했고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는것이 상책이라 입을 모았다.
내 생활의 탈출구는 오직 하나 늦은시간 형님과의 통화였다.
형님은 내 그런 변화들을 예상이라도 했듯이 길고 짧은 메일들을 보내주고
바쁜 와중에도 간간히 전화를 걸어왔다.
힘들면 다른 사람들을 좀 만나 보라는 권유도 하곤했지만,
나 스스로에게 오히려 그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걸 형님또한 알고 있는듯 했다.
그러한 나날들도 차츰 적응이되던.... 5월 어느날이었다.
동대문지사로 자리를 옮긴후 나의 일정에는 오후내내
창고하역을 돕고, 또 그것을 관리하는것이 주된 임무였다.
빙과류의 상자들을 날르는 창고업무에는 늘상 몇개월을 못 버티는 어린 아르바이트생들과
주임급들의 아저씨들이 몇몇 있었는데,
아르바이트생들이 자리를 비울때마다.
그들보다 훨씬 젊은 나로서, 관리자이긴했어도 그런 일들을 돕지 않을수는 없었다.
5월 햇살속에 냉동창고를 드나들면서 일을해도, 몇시간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창고일이 끝나면 냉동창고옆 샤워장에서 샤워를 해야하기 일쑤 였다.
책임이외의 일을 함께 해주는 젊은 관리인에게, 창고관리직 중년들은 늘 고마워했고,
또 더욱 깍듯하게 상급자 대우를 해주곤했다.
양주임.
165가 될까 말까한 작은 키에, 내가 동대문지사로 옮긴후 주임급으로 입사한 그는
늘상 퇴근시간 창고직들의 술자리에 날 참석시키려 사무실앞에서 기다리곤하던 사람이었다.
함께 샤워를 할때마다 다가와 등에 비누칠을 해준다거나 하는 친절을 베풀곤 했고,
술자리에서도 내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술병을 들이대곤 했다.
몇번이고 사양을 해도 그의 행동은 늘상 내게 과분할만큼 친절하고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쉰이 다가오는 그는 막노동판에서 번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가, 실패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형님이외에 다른 남자들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던 나에게도
양주임의 그런 접근들은 뜻하지 않을만큼 내게 평안함을 주고 있었다.
5월말 창고 결산이 끝나고, 함께한 회식자리에서
양주임은 또 어김없이 내 옆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고,
그날따라 시작부터 무리하게 내게 술을 권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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