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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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땡.....
한쪽 벽에 걸린 괘종 시계가 울려대고 있었다.
8시 10분이다. 정시에 울려대야 할 괘종시계이지만, 우리 집 괘종시계는 더위를 먹었는지 제시간에 울리는 법이 없다.
수리를 하고 싶어도 왠지 귀찮게만 느껴지고, 짜증이 나서 그냥 모퉁이에 장식처럼 매달려 있지만 시간만큼은 정확하게 맞는다.
온 몸에서 열기와 함께 땀이 배어나온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싸우나를 하게 되는 팔월하고도 초순인 듯 싶다. 더군다나 나는 요즘, 살이 문득 오르고 있어 배를 주무르고 있는 시간이 30분이 족히 넘어보였다.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봄에 입었던 청바지를 입어보려고 하는데 지퍼가 반쯤 올라가더니, 멈춰지는 바람에 연실 배를 주무르고 있었다. 잠깐 친구를 만나려고 옷을 골라 보았지만 그래도 청바지가 제격 같아서 청바지를 입는데, 배가 나와서 미어 터질 듯 지퍼가 올라가지 않아서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의 검은 소나타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와 아침 식탁을 대충 정리하고 있었다.
반이나 남긴 밥그릇을 내려다보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같이 먹어주면 좋잖아”
정성스럽게 차려준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허겁지겁 출근을 하는 아내를 바라보니 나의 정성을 무시하고 있구나 하는 반감도 생기곤 하였다.
혼자 먹는 밥이 얼마나 맛이 없는 줄 아내는 모를 것이다.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꾸역꾸역 창자에 집어넣다보니 자연스럽게 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내마음을 그 누가 알아줄지 의문이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시장에서 찬을 장만하고 아내의 끼니를 챙기고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
때 아닌 아픔으로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우연찮게 명퇴를 당하여 살림이나 하는 안타까운 처지도 변모하고, 반대로 아내는 밖에 나가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그 고충을 모를 것이다.
나 역시 아내의 마음은 이해를 하지만, 아내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리라 믿었었는데, 그게아닌 것 같다. 혼자 식탁에 앉아 밥그릇을 달그락 거리면서 밥알을 깨작거리고 있는 내게, 아내는 못 마땅한 시선을 던지곤 하였다. 식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버거운 일이었고, 나의 입속에 있는 밥알을 형체도 없이 짓이겨 씹은 후 힘들게 삼켜버렸다.

늘 상 하루일과가 반복되듯 시작되고 있었지만, 아내는 그 따스한 한마디 조차 없이 “집 잘보고 있어” 라는 것이 아침인사의 전부였다. 내가 집지키는 누렁이도 아닌데 왜 좋은 말들이 많은데 “집 잘 보라는 것”인가?
역으로 내가 회사 다닐 때는 달콤한 입맛춤도 제법 했었는데, 반대로 아내가 가장노릇을 하고 있는 현재로서는 무조건 참는 게 약이라 판단하고,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였다.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아내의 한마디는 2년전이나 지금이나 “집 잘보고 있어”라고 하니 어느 사내가 좋아 하겠냐 말이다.

투덜대면서 머그잔 가득 쓴 커피 잔을 채우고, 쇼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아침드라마 방영시간이라 예전과 같이 나의 세상인량 두 다리를 꼬여가면서 드라마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주인공이라 하루도 빠짐없이 보곤했다.
슬픈 멜로 드라마로 전개되어 가고 있었지만, 드라마의 줄거리나 나의 현재 생활이나 거의 동질감을 느낄 정도로 비숫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극중에 나온 사내도 나처럼 명퇴로 인하여 가사일을 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엮어 가고 있는데, 나의 아내는 언제까지나 구박하면서 시집살이를 시킬지 의문속에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참을 때 까지 참은 나로서도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잘 나가는 회사원에서 백수로 몰락했지만, 그래도 실질적인 가장은 남편이고 나 자신이기에 부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푹 드라마에 빠져 있는데 초인종이 울려댔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몇 번을 대꾸해도 답이 없어 또다시 드라마에 빠져들고 있었다.
거의 종반전의 다달은 드라마를 보면서 눈가엔 이슬만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혼자 드라마에 취해 흐느끼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생활을 카피했듯이 나의 생활인 듯 싶어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뿐이다.
왜 이렇게 아내에게 쥐어 사는지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내라면 일을 하든 안하든 간에 밖에 나가 저녁에 들어 와야 되는 것은 오래전부터 가부장적인 틀에 살아온 조상들 때문이 아닌가도 싶고, 아내의 직선적인 성격이 나를 이렇게 궁지에 몰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다시 초인종이 울려댔다.
피곤한 목소리로 누구세요?
윽박지르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석훈아,
나야
재민이,
문을 열자 재민이는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한손에 들은 짐꾸러미를 받아들이고 어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밖이 덥긴 더운 모양이었다.
짐꾸러미는 김치인 듯 싶었다.
가끔 심심하면 나를 찾아와서 맛나는 김치자랑을 하면서 나누어 먹곤했다. 재민이도 역시 나 같은 처지이고 나누어 먹길 좋아한다.  손도 푸짐하여 김치를 담그면 꼭 내집까지 가지고 왔다. 고마운 일이지만 재민이 역시 나 같은 처지이라 고마움 보다는 동정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번번이 신세를 져서 고맙다.
고맙긴,
맛있게 먹어주니 내가 더 고맙지,
쇼파에 몸을 기대며 재민이는 나의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나는 짐꾸러미를 식탁위에 올려놓고, 쥬스와 수박을 담아 거실로 나왔다.
재민이는 기다렸다는 듯 단숨에 쥬스를 들이켰다.
수박 좀 먹어봐?
맛있게 익었어.
수박 한쪽을 재민이 앞에 내밀고 나서 재민이를 다시 한번 처다 보았다.
참,
아내는 김치를  내가 담았는지 알아,
맛있다고 늘 칭찬하지만, 그럴때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어. 그냥 맛있게 먹어주는 아내가 고맙다는 답례일뿐, 암말도 할 수가 없더라.
가끔 내가 거짓말로  사왔다고 하면 가계부 대령해야 돼.
뭐그리 생활비를 많이 준다고 생각하는지,
그럴때면 꼬박꼬박 반말이야.
너네 아내도 그러니?
다를바 없는 듯 미소만 짓고 있었다.
역시 사내는 돈을 벌어야 해.
그렇게 두 사내가 앞치마를 두른 것에 대한 하소연을 하다보니 점심때도 지난 듯 싶어,
전화로 냉면을 시켰다.
모처럼 친구와 오붓하게 먹는 점심도 괜찮은 듯, 시간되면 자주 들르라고 하였다.
입가심으로 냉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재민이가 늦은 듯 안절부절 못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3시에 낮잠을 자고 있나 아내가 전화로 확인하고 있다기에, 나보다 더 쥐어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소리가 시원함을 느끼게 하고 쓴 커피향이 코끗을 자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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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진모님 소설은
항상 신선하네요 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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