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 방황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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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진학을 두고 아버지와의 갈등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동생이 학교에서 가져온 미술 과제물만 보면 일일이 참견을 하고, 연필이랑 붓을 먼저 내 들고서는 뺏어서 다해주곤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은 모습으로 한마디 지나가는 말을 하신다.
 
 "영호 니 나중에 화가 될라 그라나? 만화가 될라 그라나? "

" 그런 것 해봐야 돈 벌어 먹기도 힘들고, 그런 것 하지 말고, 차라리 기술이나 배워서 밥
  빌어 먹고 사는게 좋지 안겠나?"

 

 마냥 철이 없을 것만 같던 나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가정 형편쯤은 곰고미 생각해 볼 필요도 느꼈고, 그것이 맞다면 아버지 말대로 하는 게 아버지 짐 덜어 드리는 방법일거란 생각을 했다. 아버지 밑에서 크는 가정환경을 잘 알던 담임 선생님도 예술고등학교 보다는 특수 목적고로 진학해 기술 배우길 권하셨다. 선생님 댁이 우리 집과 가까운 관계로 등교는 늘 같이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가정 사정을 잘 아시는 선생님이 자칫 엇나갈 수도 있던 사춘기에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셔서 성적도 좋아지고, 아무런 문제없이 특수 목적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기술을 배우는 곳이 근본적으로 여성스러운 성격에 조용하고 내성이었던 내 성격과는 맞지 않아서 도서관에 책을 빌려다보긴 하되 기술 공부에는 취미를 붙이지 못하고 겉으로 맴돌기만 했다. 학교가 재미없다는 나의 불만을 여러 번 아버지께 말씀 드렸지만, 무덤덤히 듣고만 계실 뿐, 그 어떠한 해결책도 없이 시간은 흘렀다.

 

 "정신병원에 가서 검사 한번 받아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른 척 시침 때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토끼 굴에 숨어들 듯이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는 대화는 단절되었다. 17년 동안 잘 키워온 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교장선생님의 말과 정신과에서 검사를 한번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는 조언을 들은 아버지는 뭐라고 할 말도 없이 기가 빠져 어깨가 사시나무처럼 늘어뜨려져 있었다.

 

"영호야 니 와그라노?"

 

학교 가기 싫은 이유가 뭐냐며, 혹시나 괴롭히는 애들이 있어 그러는 것 아니냐며, 고등학교도 안나오면 군대도 못 간다는 말로 나의 결심을 돌려놓으려고 아버지는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미 한번 틀어진 나의 마음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학교 이외의 다른 공간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일 나가시면 옷을 갈아입었다. 여느 때랑 틀리게 조금은 어른스럽게 입고, 어른스러운 말투를 흉내내가며 약간은 유행이 지나버려 시장 통 가판대 위에서나 볼 수 있는 창이 있는 모자를 눌러 쓰고는 거리를 헤메이다 두 편 동시 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이 영화관 저 영화관을 전전했다.

 

 어느 틈엔가 한 사람이 옆 자리에 몸을 기대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버렸다.  별 대수롭지 않게 영화를 계속 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이상한 신음 소리가 들린다. 아직 학교에서만 지내던 터라, 나보다 나이가 서너살 많은 형들 위로는 대화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 보는 눈도 그렇게 없었나 보다. 젊어 보이는 형이 어둠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남자라면 하나씩 달고 태어나는 그 곳에 손을 찬찬히 얹더니 만지작거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하얀 스크린 위에서 엎치락 뒤치락 애무를 하고 있는 남녀와 겹쳐져서 묘한 호기심으로 눈 끝을 땔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행여나 뒷 자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보면 어떡하려고 그러는지 이유 없는 불안감으로 그 형의 행동을 주시하게 되었다.
  스크린과 옆에 앉아 있는 형의 모습을 곁눈질 해가면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슴 콩닥대는 설레임으로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 틈엔가 지퍼를 내리고 팔을 흔들어 대며 남자의 그것을 보란듯이 내어들고 그 만의 리그에 진입 해 있었다. 어느 틈엔가 스크린 속의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의 젖무덤 속에 얼굴을 파묻고는 느슨해져버린  팬티의 고무줄처럼 힘없이 쓰러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그 형은 한줄기 정액을 뿜어내고선 거친 숨소리로 누가 볼 새라 뒷처리를 하며, 나를 보더니 한번 살짝 웃고는 자리를 피해 버린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그 사람은 형이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20살이나 많은 아저씨였다. 이반들이 워낙 어려 보이는 탓에 그런 것 도 있었지만, 그 사람은 그 당시 젊은 남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귀걸이도 하고 있었기에 20대 초반의 형으로만 기억했었다. 그렇게 흔하지 않은 구경을 하고 난 뒤 알 수 없는 흥분감에 사로 잡혀버린 영호는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기 위해 더욱 극장 출입이 잦아 들었다.

 

 1m 81cm 고1이라 하기엔  조금은 큰 키로 인해 모자만 조금 눌러 쓰고, 옷만 촌스럽게 입으면 2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런 제약도 따르지 않았다. 다만, 어려서인지 담력이 약해 누군가 말을 붙여 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과 함께 일탈을 꿈꿀 수 있는 극장 출입은 빠져 나올 수 없는 도박과도 같았다.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극장 출입에 빠져버린 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2 초 다음해에 다시 입합 하기로 아버지와 합의를 보고 자퇴서를 쓰고선 학생이 아닌 학생으로 떠돌아야만 했다. 기술 공부가 싫어 학교가 가기 싫은 이유보다는 조그마한 나의 생활에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했던 나이였을 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0년 여년 후 아버지는 술로 하루 하루를 보내 알콜 중독에 이르게 되었고, 형은 되먹지 못한 친구들과 만나 사고를 치며 그의 화려한 10대를 보내고 있었다. 나 또한 친구들이 돌려보던 도색 잡지들과, 극장 출입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한 성의 지식이 쌓였고, 남들과는 다른 환경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기를 겪었다. 또한 극장 출입이  내가 아닌 내안의 들어 있는 또 다른 한 사람을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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