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태수의 지포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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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야.! 니는 와 학교도 안가고 극장에 들낙거리노?"
"영화가 좋은기가? 아님 남자들 때문에 좋아서 그런기가?"
"아제도 내하고 똑같은 것 아이가? 그래서 극장 댕기는거 거고...."
"아제가 내 놀려줄라고 그라는거 다 안다. 그런데 한방 먹었제?"
"하하..녀석도.. 나도 이제 니 못당하겠다.. 이쪽 생활 1년 하면 길가는 남자만 봐도 긴지
아닌지 구별 한다카드만 니가 딱 그짝이네.."
"헤헤.. 다 아제 한테 배운 솜씨 아이가?. 훌륭한 스승 밑에 훌륭한 제자 나는거야 늘의 이치
거늘 어찌 그리 애들 같은 말만 하노?"
"이런 애기 그만하고 아제 그 좋아하는 지포 라이터좀 빌려도.."


짧은 스포츠형 머리에 바닷가 사람 특유의 살짝 그을린 피부를 가진 30대 중반쯤의 사내로 포장마차를 하는 "김 태수".. 1980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광주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형이 유품으로 남긴 라이터라며 틈이 날 때 마다 만지작거리는 라이터였다. 아제의 말로는 형이 운동에 참여하기 하루 전날 지포 라이터 하나 구해줄 수 없겠냐 라는 말에 광주 시내를 돌아 다녀 천신만고 끝에 아는 친구로부터 하나 얻었다는 것이다. 지포 라이터를 형에게 건네준 날밤 그의 형은 앞으로 다가올 시련을 견디기 위해 라이터의 휠이 돌아가듯 기억 속의 필름을 되돌렸다.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구걸 해달라는 심정으로 지포 라이터가 왜 필요했는지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태수 아제에게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모 여그 소주 한 병하고 고갈비 하나 주소"
"태수야 니 한잔 받아라~!"
"니하고 내하고 이렇게 술 마시는 거는 처음이제?. 군 제대하고 아버지 밑에서 만두 빚는
기술 배우라는 말이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피해서 멀리 광주까지 가서 학교도
댕기는 거고, 여하튼 간에 니가 그 간 고생이 많았데이. 내가 이번에 하는 일만 넘어가면 집에
들어 와서 아버지 밑에서 만두 빚는 기술 배울 테니까 니가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한번 해봐라..
알아들었제?.이번이 마지막일꺼다."
"이 썩어 빠질 놈의 세상 어떻게 될라꼬 국가의 아버지까지 총으로 싸 죽이는는지.."
"도덕성이라곤 눈을 씻어봐야 보이지도 않하고, 아버지 총으로 쏴 죽이는 개새끼 같은 놈들이
아버지 자리 꿰차고 않았으니 정통성마저도 붕괴된 이런 분위기라면 한국은 망해버리고
말끼다. 민주화 정신은 그래서 필요한기라"
"....................."

침묵 틈으로 지포 라이터의 휠 돌아가는 소리와 함게 촤르륵 하는 불꽃이 이는 소리가 한치도 알수 없는 형의 내일을 붉은 조명처럼 적시어 갔다.

"태수야"
"지포 라이터는 말이제.. 2차 세계 대전이랑 베트남 전쟁 때 군인들이 자주 쓰던 라이터라
카드라. 총알 쏟아지는 정장터에서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한가치 담배를 피우기
위해 그렇게 그게 필요했다고 하드라."
"그 군인들은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면서 죽음의 대한 공포심 마저 극복 하고 싶어 했
을기다."
"그리고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베트남 전쟁 때 한참 교전 중이던 미 육군 중사가 가슴
팍을 움켜쥐면서 쓰러졌다고 하드라. 놀란 의무병이 총알이 빗발 치는 속에서 단숨에 뛰어가
서 중사의 가슴을 살폈는데 총알이 박힌 곳에서 피 한방울 안나왔다 카드라. "
" 지포 라이터에 총알이 박혀서 목숨 건진거지..."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신기한거는 총알에 맞아 찌그러진 라이터가 계속 작동되더라 하는거
아이가.."

태수 아제는 형과의 지난 얘기가 어젯밤에 겪었던 일인 듯 조금은 숙연해진 분위기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란 노래를 틀어 주었다. 장중한 남자의 목소리가 전장터에서 쓰러져간 영혼들을 위로하듯 재생 버튼 마져 망가져 버린 스테레오 스피커 사이로 파도처럼 밀려나온다. 옆 테이블에서 소주를 기울이던 태수 아제 나이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들도 장중한 남자의 목소리에 맞춰 유신 정권 얘기며, 그때 죽어간 영혼들이 아직도 구천을 헤메고 다니는데도 나라에선 보상금도 문제지만 , 위령제조차 제대로 치러지지 않는 다며 한탄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태수 아제는 형과의 일을 생각하는지 라이터의 뚜껑을 엄지손가락으로 튕겨 올렸다. 챙그랑 하는 쇳소리와 함게 고요한 음악 사이로 이루지 못한 형의 젊은 날들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불꽃을 피워댔다. 그리고 입술에 꺼내 물은 담배 한가치에 라이터를 가진 손을 들이댔다. 끝에서부터 서서히 타들어 가는 담배는 방금 전의 말이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는 듯 자욱한 연기로 포장마차의 사람 사는 얘기로 뒤덮혀 갔다. 태수 아제의 그런 모습이 "카사블랑카" 에 나오는 험프리 보가트의 모습처럼 머릿속 깊숙이 틀어 박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지포 라이터에 대한 애수를 가지게 되었고, 또한 나도 지포 라이터가 가지고 싶어 그곳에서 태수 아제의 일을 거들어 주면서 몇 천 원의 용돈을 얻었다. 차곡 차곡 모아가면서 나두 태수 아제처럼 담배를 피워야지 하는 환상으로 사춘기는 어느덧 건장한 청년의 모습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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