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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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아내에게 구박을 하면서 일부러 아침밥을 못 챙겨 준게 마음에 걸려 수화기를 들었다. 비록 나의 자책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이기 때문에 이해하리라 생각하고 다이얼을 돌렸다.
죄송합니다만,
이순영씨 좀 부탁 드릴께요.
예,
지금 회의 중이라 30분 후에 다시 하십시오.
그렇게 아내와 통화를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뭔가 꼬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모처럼의 외출이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아내에게 끌려 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해본건 아니지만, 어쩜 나를 위해 희생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으련만,
자존심이 강한 나로서도 용서가 되지 않아 이렇게 백수 아닌 백수로 몰락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책하면서 아내 회사 근처로 몸을 향했다.
무슨 말부터 해야 될지 망설였지만, 그래도 한 이불속에서 거의 3년이나 동거동락한 아내에게 위로한답시고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감동이 될 수 있다고 다짐하면서 사무실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처음 오는 사무실이라 낮설게만 느껴지고, 아내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한번도 들른적이 없었다. 오늘따라 무슨 맘 먹고 아내의 사무실을 찾았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숙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어디 찾아 오셨읍니까?
아, 네
이순영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저쪽 왼편 사무실에 계십니다.
저, 죄송하지만 불러 주시면 안 되나요?
그럴까요,
아래층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부탁 좀 드릴께요.
숙녀의 배려로 나는 로비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잔 들었다.
여성들이 북적이는 회사인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주부들이 이렇게 많이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다 이들 주부 남편들도 나 같은 신세로 가정에서 시집살이를 하고 있지 않나 의구심을 가져보았지만 그런 잡념도 잠시뿐,
아내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왠일이야?
아내의 말투가 좀 거칠은 듯 나에게 말을 건넸다.
왠일이긴,
아침에 내가 너무한 것 같아서,
너무하긴,
내가 심했지 뭐.
외박하는 아내를 누가 좋아하겠어?
이해하지만, 어쩔수 없이 연락을 못했어.
일찍 집까지 왔는데 취기가 있어서 좀 깨고 들어가려던 것이 차에서 그만 졸음이 오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외박 아닌 외박을 한 것이야.
전화를 미리하려고 했었는데 어제따라 바쁘고, 급하게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 깜빡 했어.
이해하고 당신한테 미안해.
얼떨결에 아내 입에서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얘기인지 다시금 아내를 바라보았다.
사람 되는가 보네,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잘못 했으니까 미안하다고 하는 것 아냐?
그럭저럭 화해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도 지금처럼 냉대하고 이기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나의 명퇴로 인하여 한동안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럴때 내가 위로라도 해 주었어야 하는데, 명퇴로 인한 나의 마음이 칼날같아 늘 냉소하게 대화를 하고,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아내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지금의 셩격이 배어있는 듯 보였다. 어차피 한배를 탔으니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하고 근처 시장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못다 이룬 밤을 준비할 요량으로 분주하게 시장에서 맛 나는 음식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 포도주에 약한 아내를 위해 큰맘 먹고 비싼 포도주 한 병을 샀다.
일반 포도주에 열배나 비싼 포도주를 샀지만, 오늘만큼은 아내에게 거하게 한번 배려를 해주고 싶었다. 모처럼 외출이라 재민이에게 한번 들르기로 하고 몸을 움직였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안에서 재민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석훈이
반갑게 맞이하는 재민이가 한참 빨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점심이나 같이 하려고,
그래,
잠시만 기다려,
저번에 김치 맛 있더라.
찬밥 있으면 대충 차려놓고 먹자.
그럴까?
그렇게 사내 둘이서 찬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어쩜 측은하리만큼 사는 것이 처절하다 싶이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가정에서 살림을 하다보니 뭐든 아껴야 된다는 진리를 깨우쳤지만, 그렇게 찬밥으로 한끼의 식사를 해결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고 있는데, 술 생각이 났는지 낮술을 권하고 있었다. 모처럼 둘만의 희열을 느끼고자 거부를 하지 않고 그렇게 소주잔을 기울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마셔보는 소주인지는 알수 없지만, 시집살이 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끔 포장마차에서 잔을 기울던 때가 생각났다. 밤늦게 까지 마셔 아내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렇게 마셔댄 소주 맛을 지금 느끼기라도 한 듯 소주 맛이 제법이었다.
석훈아.
왜?
이렇게 사는 것이 힘들지 않아?
힘들긴 한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그래,
너는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계획이 세워져 있거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보고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아. 그렇지만 취업이 될 듯 싶을때 일을 저지르는 거야.
무슨 일?
무슨 일이긴 임신이지,
아내가 임신하면  어떻 할거야.
어짜피 집에서 살림 뿐이 더하겠어.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서 직장 다니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견뎌온 보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내에게 구박 받은것 만큼 되돌려주면 될것아니야?
그리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자연히 자식을 생각해야 될 입장이고,
늘 처가에 가도 시댁에 가도, 자식 타령을 하는 부모님의 마음도 생각해야 될 나이인 것을 벌써 잊어 버린거야?
어차피 계획을 세웠으면 일을 저지르고 수습 하는게 상책이야.
나의 일방적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재민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재민이 입장을 들어 보고
있었다.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고 있는지 나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어쩜 밖에 나가 스트레스 받는 것 보다는 아내에게 스트레스 받는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지만, 재민이의 우유부단한 행동에 다시 한번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 가정의 가장을 무시하면서 아내에게 시집살이로 살아가는 것 보다는 나을 듯 싶어 제안을 하고, 조언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재민이를 이해 할 수가 없었다.비록 술기운이 있어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곤 하지만, 나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퇴색해 버리고 있는 재민이가 안스러워 보였다.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재민이를 찾아갔건만, 나의 고민거리를 하나 더 덤으로 머리에 담아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보았지만, 나와의 성격 탓인지 씁쓸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어째든 실직으로 인한 아내의 시집살이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그리 잘못한 것도 없고 냉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 할수 있는 아내이지만, 내게 하는 행동은 이해를 할수 없을 만큼 냉소적이고 단호했다.
아직까지 이력서를 여기저기 내 보았지만 그리 뚜렷한 반응이 없어 실망하고 있을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세요?
네, 이석훈씨라고 계시면 부탁드릴까요?
제가 이석훈인데.....
네 이번주 금요일날 면접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통화내용이었다.
면접?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말이다.
얼마나 아내에게 시집살이를 당했으면 전화 한통으로 희열을 느끼고 있는 자신도 어리벙벙할 정도로 감탄을 하고 있는지도 의아스러웠다.
비록 최종합격은 아니지만, 나에게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보일수도 있다는 얘기와 같은 급이기에 스스로 축하를 하고 있었다.
잘된 일이다.
백수 아닌 백수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고 생활하지만, 이제 나도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재출발의 시점이 왔음을 감지하고 자축하는 의미에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캔 맥주를 마시면서 이것저것 상식 책을 뒤척이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나름 대로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 면접 준비에 한참이었다. 서둘러 아내가 들어오기 전에 준비할 것이 있어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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