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지하 주차장 아저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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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아~~앙~"
크나큰 경적 소리가 귓가에 굉음으로 음습해 오고 좌측 편에서 1ton 트럭이 빗 길에 정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미끄러져 시야를 가로막았다. 순간 어두컴컴한 상영관이 눈앞에 펼쳐지듯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좌석 등받이 같은 사람 등이 휙하고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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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젊은 사람이 어디다가 눈을 두고 다니는 게야!"
"하마터면 황천 갈 뻔했네. 여기 신호는 위에 신호가 바뀌어도 좌회전하는 차가 있어서 아래
신호기는 조금 늦게 바뀐단 말야. 그런 것 도 잘 보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보도로 뛰어들면
어떡하나? 자네가 죽는 거야 한 목숨이지만, 자네 가족이나, 친구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조심해야 되.. 조심해..!!"

허연 이를 연신 들썩거리며 신신 당부를 한다. 좀 전에 까맣게 보이던 등받이 같은 것이 주차장
아저씨가 입고 있던 헤어진 누더기 점퍼 색깔과 비슷했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차들 사이로 주차
장 아저씨의 얼굴이 페이드 인(fade in:영화 기법으로 장면 전환시 어둡다가 서서히 밝아지는
기 것을 말함..)이 되듯 서서히 두 눈으로 들어 왔다. 그랬다. 주차장 아저씨는 매 시간마다 이곳
을 지나치기 때문에 신호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내가 빨간 불
인데도 건너려는 것을 보고 있다가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오는 트럭 한 대를 보고서는 내 앞으
로 뛰어 들어 낚아챘다고 한다. 한 발만 더 나갔어도 앞으로 지나가는 차에 치여 북망산 꼭대기
에 누워 있었을 팔자가 되었을 거라며 조심해야 된다는 말을 던진다. 그리고 젊은 사람이 왜 그
리 간이 콩알만하냐며 그깐 일에 기절을 하냐는 것이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내가 있는 주
차장으로 엎고는 왔다는 것이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멋 적기도 해서 박스에서 일어나려고 했지
만, 아까 넘어 질 때 다리를 접질었는지 잘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그런 나를 아저씨는 부축해서
일으켜 줬고,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를 부축하는 아저씨의 손이 여기저기 부러터 있었
다. 그리고 아저씨에게서 감사하다는 느낌을 받기보다는 지저분한 그의 옷이 닿을까봐 부축 받
는 것조차 꺼러졌었다. 구린내가 나는 그의 옷이 내 옷에 향수 냄새를 씹어 먹어버릴 것 같아 옆
에 오는 것이 싫었다.


박스 위에서 앉아 있던 몸에서 한기가 느껴진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차가운 기운이 스물스물
올라와서 코 끝에 살짝 내리듯 앉았다. 코끝이 간질간질 한 것이 이내 재채기가 나왔고, 조용했
던 지하 주자창안에 커다랗게 울려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의 귀를 간지럽혔다.


'어허~~ 젊은 사람이 몸은 약한대 재채기 소리 한번 크구만!"

그러더니 박스 옆에 신문 뭉치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언제 씻었는지도 모를 흙
때까 묻은 플라스틱 컵을 거내 들더니 병에 들은 액체를 졸졸 따른다. 싸한 향기와 함께 차가운
기운으로 굳어버린 피부를 은근히 데워준다. 아저씨가 건네 준 플라스틱 컵이 꺼름직해서 한동
안 머뭇거렸더니 먼저 입에 한잔 들이키곤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듯 나 한테 내밀었다. 그래 기
왕 이렇게 지하 주차장까지 들어왔고, 보는 사람도 없고, 아저씨와 둘뿐이라는 생각에 게눈 감추
듯 마셔 버리고선 컵을 내 밀었다. 추울 때는 소주 한잔 마시면 금방 몸이 데워진다고 하는 것이
었다. 물론 병에 들은 액체가 술이란 것을 알았고, 마셔야 겠다는 의지가 더 강한 것도 사실이었
다.비운 컵을 아저씨에게로 내밀었다. 컵을 내민 의도가 더 달란 의미가 아니었는데 아저씬 그렇
게 받아들이셨는지 이내 또 술을 따랐다. 안주는 새우깡 하나.. 태어나서 이렇게 조촐한 술상은
처음이었다. 허나 아저씬 익숙했는지 빨리 잔을 비우라며 재촉했고, 나도 소주병을 뺐어 들고는
아저씨께 한 잔을 따라 드렸다. 추운 상태에서 술을 마셔서 그런지 약간 취기가 올라와 이런 저
런 말을 나도 모르게 떠들어댔다. 그리곤 평소에 궁금해하던 한가지를 물어보았다.


"근데 왜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 겁니까?"
"........."
"눈치 없는 것 치면 제가 삼단쯤 되는데요, 그래도 억수로 궁금해서 글카니까 대답 좀 해주소..
따지고 보면 제 목숨 구해준 분인데 그런 것 쯤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제서야 마음이 움직였는지 술 기운이 돌았는지 지나간 이야기를 빗소리 속에 꺼내 들었다.

"대학교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었다고, 그때만 하더라도 그게 제일 장래성 있는 직종이라 열심
히 기술을 배워서 대기업에 취직을 했었지.."
"그렇게 회사 생활 6년 정도 하니까 돈도 적잖이 모였고 결혼도 해야 됐기에 여자를 만나 연애
를 했고, 토끼 같은 아들, 딸 하나씩 낳고 잘 살았는데, 그놈의 사업이 문제지.."
"정상에 있을 적에 그만 두는 것도 좋다는 철학에 대기업 직장 때려치우고 퇴직금으로
조그마한 사업에 손을 댔다네..그리고, 이것저것 돈 되는 것을 골라 찾다 보니 여러 우물을
파게 되더군..사업도 하고 주식도 하고.."
"주식 하느라 집도 팔고, 손대버린 작은 사업도 말아먹고, 마누라랑 자식들이랑 따로따로
흩어져 얼굴을 볼 수 없었다네. 돌아갈 집도 없고, 나를 반겨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기거하고 지낸다네..하루아침에 청와대에서 교도소로 간 대통령이나 다름 없지. "
"대한민국에서는 말이야 사업하다가 실패하면 범죄자가 된다네.."
"부도를 내고 여기저기 도피 생활을 하고, 도저히 숨을 곳이 없어지자 찾은 곳이 여기 지하
주차장이라네.."
"그래도 아직 꿈을 잃고 살지는 않지. 왜냐하면 돌아가야 될 집과 찾아야 될 내 식구들이
있으니까!"
"자네도 이 다음에 사업을 하게 되거나 사랑을 하게 된다면 꼭 한가지 우물을 파도록 하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어 그렇게 한가지에 정신을 쏟다보면 필시 좋은 일이
생길것이네.."
"나도 여기서 이렇게 지내지만 언젠가 다시 재기 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안고, 조그만 발명을
하고 있다네. 그것이 무엇인지 기밀이라서 말해 줄 순 없지만, 희망은 버리는 것이 아니란 것
을 기억하게나.."
" 희망은 내가 버리지 않는 한 늘 곁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네.."

그렇게 주차장 아저씨의 지난 일을 듣고 있자니 나 자신이 숙연해질 따름이었다. 사람 일이란
건 알 수도 없는 거지만, 어떠한 절망 앞에서도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 감사했다. 언젠가 "성자가 된 굴뚝 청소부"란 책의 이름을 보고 난 주차장 아저씨를 "성자가
된 지하 주차장 아저씨"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 사람이 내 옆에 그것도, 항상 같은 하늘 아래
숨쉬고 있는 사람이란 것이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란 생각 마저 들었다. 빗줄기 속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아저씨를 만난 사실이 나에겐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인터넷에는 길거리 노숙자에서 기업가로 재기한 사람을 다룬 기사가 연재되었
다. 물론 그 사람이 그 아저씨였는지 알 길이 없지만, 그 아저씨처럼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언젠가 성공한다는 느낌과 인연이란 소낙비 같은 순간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게 오월에 내린비는 새로운 인연에 한발 다가서게 만들며 주차장에 살고 있는
성자 아저씨에게 한발 다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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