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친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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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역시 니밖에 없다."
"지랄..새끼야 담부터 이런 것 팔 것 같으면 1000원 짜리 삼겹살말고, 스테이크 사라."
"얌마.. 내가 돈이 어딨노.. 그라지 말고 오늘 삼겹살 한 20인분 먹어라."
"새 빠질놈...."
"임마, 고기 다 구워졌다. 타겠다 빨리 먹어라."
"........."
"담에도 하나 또 부탁한데이.. 하하하하."
"피식..."

미워하면서도 미워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놈이다. 말도 많아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으면 화가 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옆에 없으면 허전하고 그런 점에서 녀석은 묘하게 태수 아제를 생각나게 만든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내 사람이 아닌 것 같고, 멀리 떨어뜨려 놓기엔 아쉬운 웬수 같은 존재이다. 부탁 할 때도 고개 숙이는 일 없고, 당당하게 말한다. 팔아주는 사람은 꼭 사야된다고  느끼게끔 만드는 뻔뻔함이 그의 매력이다. 그렇게 그 녀석에게 인라인을 구입한다는 약속을 하고 기분이 좋았는지 녀석이 2차도 쏜다고 해서 노래방에 가서 가슴에 응어리 졌던 감정들을 쏟아냈다.

"영호냐... 니 노래다.."
"어...짜슥.. 그런건 언제 외워가지고.."
"그러니까 친구지..달리 친구가.."

전주가 나오는데 이 녀석이 내 노래라며 먼저 불르라고 한다. 20대 초반에 그런 노래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한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와, 재혼에 실패하신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한핏 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거의 매일을 술에 쪄들어 생활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고모들은 정신 좀 챙기고 애들 돌보며 살아라는 충고를 하셨지만, 외아들로 자란 그는 고집이 여느 집 갓난아기 응석받이 보다 심할 정도라서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휴일이면 어김없이 집에서 음악 소리가 나왔다.
집안 가득 울리는 전축에서..,하춘하 "날버린 남자.", 주현미 "신사동 그사람" 태진아 "옥경이 "그와 더불어 자주 듣던 나훈아"무시로", "영영", "갈무리"가 다람쥐 챗바쿠 돌 듯 돌아갔다. 그런 노래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터라 나훈아의 "무시로, 갈무리, 영영"은 내게도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
"꼬집어 말할순 없어도 서러운 맘 나도 몰라 잊어야 하는 줄은 알아 "
"이제는 남인 줄도 알아 알면서 왜 이런지 몰라 두눈에 눈물 고였잖아"
"이러는 내가 정말 싫어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
" 이제는 정말 잊어야지 오늘도 사랑 갈무리"
".........................생략"

"야..영호 부라보.. 니는 트롯트 가수 해라.. "
"개나 소나 다 트롯트 가수하나..크크크"
"그래도 그렇게 옛날 노래 아는것도 신통하다.."
"그래...하하하"

이 녀석..물건 팔아 넘길 때만 하더라도 밉더니만 이렇게 사람 마음을 잘 맞춰줄때는 둘도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기분도 좋은데 3차 가자.. 3차.."
"낼 출근은 어짜고?"
"출근..괘않타.."
"하루 월차 내면 되지.. 좃나 남자 새끼가 그런 것 같고 걱정이가?"
"그래도.. 둘다 빠지면 안될텐데.."
"그게 그렇게 걱정되면 3차는 간단하게 하고 들어가면 되지.."
"간단하게..그럼 그럴까? 그럼 편의점 가서 소주하고 안주 쪼매 사올게 기다리라.."
"아이다.. 내가 가자고 했으니까 내가 사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
"뭔소리 하노? 임마..내가 오늘 니한테 물건도 팔았는데 내가 쏴야 되지.."
"18..그런게 어디있노? 3차 가자고 하는 사람이 쏘는거지...기다리라.."

영호는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소주랑 요기 될만한 음식 몇 가지를 샀다. 근처 공원에서 신문지를 깔고선 소주와 인생의 철학을 주제로 강연하는 밤거리의 소크라테스가 되었다. 개개인의 삶들이 모두들 틀리듯 사랑도 그와 같을 수 있다는 화두로 시작된 강의는 누구를 사랑했느냐가 아닌 어떤 사랑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로 자신의 사랑 방정식을 합리화 시켰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든 남자와 남자가 사랑하던지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의 깊이가 있다며 그걸 존중하지는 못하더라도 인정은 할 수 있어야 된다는 말로 얼굴까지 올라오는 취기를 다스리고 있었다. 영호의 열변에 친구 놈은 개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웃고 넘기며, 종이컵에 마지막 남은 소주를 따라 부었다.

"이것 마지막이니까 퍼득 마시고 일나자."
"..그래..."

그렇게 녀석과의 식사는 어김없이 술자리까지 이어졌다. 친구라곤 그렇게 많지 않던 나에게 이 녀석은 언제든지 고민 털어놓고, 울고 떠들 수 있는 그러한 놈이었다. 그러나 이 녀석에게도 감추고 싶은 생활이 있다는 것이 때론 아쉽다. 늘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털어놓지 못하는 그런 관계가 녀석과 나의 거리를 좁혀 놓질 못한다. 그렇게 녀석의 부탁을 들어주고 술에게 나의 목을 들이민 날이 지나고, 며칠 후에 인라인이 배달되어 왔고, 평소에 운동 신경이 좋던 난 예전에 타던 롤러스케이트를 바탕으로 한번에 별 어려움이 없이 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게 벌써 두달 전 일이다.

"영호 오늘은 일찍 나왔네?"
"응.."
"커피 한잔 마시고 일 시작 할래?
"아니..내 커피 안좋아한다."

사무실의 경리 누나가 출근을 한다. 사람들이 이내 출근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공장으로 내려갔다. 출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침에 인사를 했던 태양도 구름 뒤에 숨어들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하늘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회색 빛으로 물들어 갔다. 장마 때라서 그런지 날씨가 죽 끓듯 이래저래 변한다. 아마 오늘은 인라인을 회사에 두고 가야 될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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