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버린 아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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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산한 날씨 탓인지 지금까지 빗줄기가 멈추지 않고 가을비답게 처량하게 대지를 뿌려대고있었다.
이맘때면 늘 외롭고 의지하고픈 충동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건만, 지금은 진수하고 있는 것이 다행인 듯 싶어, 모든 것을 진수에게  이야기하고픈 생각뿐 아무 생각도 없었다.
비록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방안은 아담하게 잘 정돈이 되어있었다.
늘상 자취를 하다보면 모든 것에 쫒기다시피 생활하고 있지만 진수는 계획성있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방에 들어서면서 느낌이 오고 있었다.
깔끔하구나.
그렇지 뭐,
세면은 저쪽에서 하면 돼,
한숨을 연거푸 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느님도 나처럼 우울한지 연실 빗줄기를 뿌려대고 있었다.
가을비치곤 제법 많은 량을 뿌려주는 느낌이다.
이 비가 그치면 이제 겨울로 접어들겠지?
혼자 푸념하듯 하늘을 쳐다보면서 꿍시렁 대는 모습이 안타까워보였는지, 진수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진모야.
날씨도 서늘한데 감기 들겠어?
빨리 씻고 들어와.
알았어.
호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모처럼 피워보는 담배라 머리가 핑- 돌고 있었다.
긴 한숨과 함께 간단한 세면을 마치고 구석진 방으로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나만의 공간도 아닌데, 따스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듯이 포근함 그 자체였다.
우선 이쪽에 와서 누워
열기가 느껴지는 이불을 깔아놓고 나더니 나보고 일찍 자라는 것이었다.
나는 책 좀 더 보고나서 잘 거닌까,
책상에 앉아 정독하고 있는 진수를 또 한번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고 당연한 자세일수도 있는데 나는 왜 규칙적인 생활에 구역질을 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진수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비록 지방대생이라고는 하나, 학교가 달라 왕래는 자주 없었지만, 그래도 의지하고픈 마음만은 변함이 없었다.
눈을 감았다.
나 자신을 한번 뒤돌아 볼 좋은 시간인 듯 하다.
이렇게 한가하게 술타령이다, 계절병이다 하는 퇴색적인 나의 양심이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뭐든 진수처럼 할수 있는데, 왜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될대로 되라는 것은 자신이 용서할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여지껏 마네킹처럼 책에 빠져들고 있는 진수에게 말을 건넸다.
진수야.
피곤하지 않아?

아니, 괜찮아.
늦은 시간인데 일찍 자고 내일 일어나서 읽어.
그럴까.
억지로 나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고 잠을 청할 듯 주변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무슨 얘기?
무슨 이야기든 들어보면 될 거 아냐.?
그러면서 진수는 무슨말부터 시작해야 될지 고민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글쎄 지금부터 좀 오래된 일인데,
고교시절 졸업반 때 일 인 것 같아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모두들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고. 저마다 좋은 대학 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을 때 인 것 같아.
날씨도 지금처럼 가을비가 구슬프게 내리던 날 이었거든.
같은 반 친구들 중 한 놈을  내가 많이 좋아했었는데, 혼자만 가슴에 묻어두고 멀 발치서만 바라볼 뿐 아무표현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막차를 놓치고 막상 집까지 가기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라, 어떻게 하든 의지할곳이 있나 거리를 헤메이고 있는 데 갑자기 사우나 네온빛이 시야를 자극하고 있었어.
잘 되었다 싶어 비상금을 털어 사우나에서 하루 밤을 신세질 요량으로 문을 열었지
집에는 미리 막차를 놓쳐 친구 집에서 잔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우나에 들어갔어.
생각보다 한산한 분위기여서 내가 몸을 은닉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해두고 목욕이나 하면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탕으로 들어갔어.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저쪽 구석에서 열심히 때를 밀고 있는 것이었어.
순간 당황하면서 어쩔줄 몰랐었는데, 사내들끼리 앞면 몰수 하는것도 그렇게 해서 아는체하기로 했거든.
어깨를 툭 치면서 동우야.
어쩐 일이냐?
내가부터 친구를 아는체 했지만 한편으로 가슴이 무너질 듯 콩당거리고 있었거든.
당황한 동우는,
너는 왠일이야.
어,
그렇게 되었어.
사실
어떻게 해서 막차를 놓쳐 갈 곳이 마땅찮아 이곳을 찾아온거야.
저녁도 안 먹었겠다.
그렇지 뭐,
그럼 우리집으로 가자.
얼떨결에 동우 입에서 우리집으로 가자라는 소리에 한동안 멍해있었다.
비록 내처지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지만, 동우의 배려에 동우의 마음은 내가 생각했던대로 따스하구나 하는 감동뿐이었다.
고맙긴 한데 여기서 자면 돼.
여기서 자?
여기는 12시까지만 영업을 해.
나름대로 사정해 보지 뭐.
그러지 말고 우리집에서 자면 돼.
혼자 방을 사용하니까 불편한 것은 없을거야.
일방적인 동우 때문에 무사히 잠자리는 확보되었지만, 마음 한켠에 또 다른 욕망이 타오르고 있었다.
뭔지는 알수 없지만 나의 욕망으로 인한 사내와 의 첫날밤을 잊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나는 흥미유발을 하고 있는 진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다구치듯 다음 이야기 전개를 계속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잠시만 있어봐.
맥주가 몇병 있는데.......
한잔 마시고 다음 이야기 해줄게.
알았어.
단숨에 맥주잔을 비우고 또다시 진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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