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훈아명훈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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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쳤냐? 내가 널 왜 좋아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구)
난 최대한 당황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얼굴도 빨개지고 누가 봐도 티나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잔을 마셔버렸다.

"야 이걸 왜 마셔."
명훈이는 말리려는 손이 한 발 늦을 걸 알고
그저 옆에 있던 남은 소주를 따랐다.
"너 얼굴 왜 빨개지냐?"
묻는 명훈이에게 아무 소리를 못하는 내가
한심하기도 했다. 뭔사 시츄에이션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침대 위로 올라가고 이불 덮고 자는 척을 했다.

"너 왜 갑자기 자냐? 너 수상해!"

그 상황에서도 난 아무 말도 못하고
더운데도 이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조용해지는 듯하다가
명훈이 혼자 술과 안주 먹는 소리가 들리더니
난 이내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났을 땐 명훈은 방에 없었다.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수영장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어두워진 밖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저만치 언덕에 앉아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명훈의 실루엣이었다.
난 조용히 명훈에게 다가갔다.

"누가 미대생 아니라고 할까봐 여기까지 와서 그림을
그리냐?"
명훈은 잠깐 놀라는 것 같았지만 이내 평정하고
고요해지면서 풍경화를 마저 그렸다.
색상도 없고 연필로만 쓱싹 그려낸 것 같은데
사진같이 세밀하고 분위기가 있었다.

명훈은 그림 그릴 때 만큼은 엄청난 집중을 갖는 것 같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이
그 모습은 다른 차원의 존재와 접촉되어져 있는 순간과
같게 느껴진다. 나와는 다른 별개의 행성에서 온 게
분명했다.

어떻게 저 손끝으로 대자연을 재현해내는지
내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니 말이다.

근처에 냇물이 있어서 물소리도 들리고
점점 날이 저무는 빛을 즐기며 난 명훈의 향이
느껴지는 가까운 곳에서 앉아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이 순간은 시간이 멈춰있었다.
명훈은 저 세계에서 침묵의 집중을 하고
난 그의 굵지만 섬세한 손을 바라보며
한 획씩 이어가는 작은 스케치북에
창조되어져 가는 세계를 보고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 그의 숨결까지 느끼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알 구 없는 블랙홀과 같았다.
오랜 동안 함께 했어도 알 수 없는 깊은 마음이
있었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마음일런지
아니면 내 마음 속 깊이 꽁꽁 숨겨놓은 짝사랑의
보따리처럼 비밀스런 마음인지 알 수 없다.

그래 내 마음이 어떤지
명훈이도 이 기회에 잘 알았을 것이다.
그의 대답을 듣기엔 내 마음이 너무 두렵다.
난 그저 그의 옆에서 그의 창작물을 바라보는
관중으로도 만족한다.

내 곁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단지 욕심이라면....
아니다. 그럴 일은 없다.

난 명훈의 정체성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래서 여자사람친구도 소개시켜주고 했지...
지금도 누군가와 연애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다.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컸나 보다.

명훈이 나를 바라보며
"아, 그래 들어가자."
하는 것이다. 그는 저 너머의 세계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로 와주었다.

방으로 돌아오고
마지막 밤이라고 주인 아저씨계서
바비큐 파티를 해주셨다.
다른 것보다는 소시지가 엄청 맛있었는데
맥주로도 엄청 취하게 만들었다.

우리 둘은 꽐라가 되어 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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