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옷소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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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한 안개속의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아픈 강아지의 신음소리 같은, 혹은 골룸의 축축하고 낮은 숨소리 같은 소리가 지환의 머릿속에 번졌다.
다시 한번의 소름끼치는 소리에 놀라 그는 잠이 깼다.
온몸은 식은땀에 젖어 있었고 그의 옆구리 부분에서 눌려있던 팔이 저려왔다. 손바닥을 폈다 쥐었다를 몇 번 반복하고는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있던 지환의 귓전에 벨소리가 들려왔다.
간신히 머리를 들고 팔꿈치로 간신히 바닥을 지탱하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런 그의 시야에 자신의 옆에서 마치 죽어있는 듯 누워있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런 그 남자의 입가에서 번져 내려가는 흉터가 지환의 눈에 띄었다.
마치 짜증이라도 내는 듯한 초인종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어젯밤의 일을 기억을 해내기도 전에, 지환은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힘들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도냐?”
문을 열고 옆으로 비켜서는 지환을 보고 윤주가 눈을 흘겼다.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선 그녀가 대(大)자로 뻗어있는 우안을 내려다 보고는 혀를 끌끌찼다.
“저기요!”
마치 귀찮다는 듯한 투로 그녀가 목소리를 높여서 그를 불렀다.
“이제 일어나셔야죠!”
그녀의 갑작스러운 큰 목소리에 놀란 듯한 표정으로 우안이 눈을 떴다. 그리고 당황한 듯, 몸을 일으키려고 버둥거렸다.
“아, 그리고 세상에 이 냄새가.....”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가 걸음을 옮겨 창문을 힘차게 열었다.
마치 해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파도처럼 찬바람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방안 구석구석을 휘몰아쳤다.
피부를 스치는 얼음장 같은 차가운 기운에 지환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정신이 번쩍 들은 듯 눈이 똥그래진 그가 팔짱을 끼고는 양 손바닥으로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그거요.”
비틀거리면서 일어서는 우안을 향해 윤주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네?” 당황한 표정으로 우안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상의 내의 벗어주세요.” 마치 오줌을 싼 꼬마를 내려다보면서 타이르는 듯한 엄마의 표정을 한 그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한층 더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 우안이 어쩔줄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어젯밤에 여기저기에 얼마나 많이 토해 놓으셨는지 기억 안나시죠?”
“............”
“입고 계시던 패딩하고 바지는 오는 길에 세탁소에 맡기고 왔어요.”
“............”
“이 바닥 시트하고 이불도 아무래도 세탁소에 맡겨야 할 테니, 그것도 같이 가져갈게요. 그거 집 세탁기로는 지워지지도 않아요.” 그녀가 우안의 런닝의 가슴과 배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야. 그건 그냥....”
흉터를 타인에게 내보여야하는 우안의 입장을 깨닫고는 지환이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는.....”
그런 그에게 윤주가 얼굴을 돌리고는 마치 불량학생을 만난 지도부 교사의 표정을 하고 그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월급타면 내 차 청소비부터 줘야 한다는 것 잊지 마.”
“..........”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 지 청소하고 아무리 환기를 시켜도 냄새가 사라지질 않아. 속이 느글거려서 아주 죽겠다. 정말.”
그녀가 다시 우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는 내의을 벗기 시작했다. 곧 그의 가슴부위와 겨드랑이에 번져있는 불그스름한 빛을 띠는 울퉁불퉁하게 변형된 그의 피부가 드러났다.
어색해질까 걱정했던 지환의 생각과는 달리 윤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우안이 내미는 내의의 끝자락을 엄지와 검지로 집게처럼 잡고는 지환에게 건넸다.
“이거하고 시트하고 이불 둘둘 말아서 내 차 트렁크에 실어. 세탁소에 갖다 맡기게.”
얼떨결에 지환은 그 런닝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샤워 좀 하세요. 몸에서 너무 냄새나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마워.”
트렁크에 빨랫감을 싣고 난 후 지환이 윤주를 머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씨익 웃었다.
“어젯밤에 와 준것도 그렇고.....”
그런 그를 보고 그녀가 눈을 흘겨 보였다.
“꼭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지.” 그녀가 투덜거렸다.
“그런거 아냐.” 지환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패딩하고 바지는 내일에나 찾으러 오라고 하던데.... 니 옷 좀 건네 줘.”
“뭐, 어쩔 수 없지. 직장이 서산이라 다음 주말에 찾아 가라고 해야겠다.” 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운전석에서 창문을 내리고 밖에 서 있던 지환에게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저 사람. 그냥.......”
그녀의 말에 지환이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별로야.”
“...............”
“왠지..... 느낌이 안좋아.”
“무슨말이야?” 그녀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한 표정을 지환이 지어보였다.
“아무 느낌 없다가도...... 어느 순간 그 사람 눈빛이 좀.......” 그녀가 말을 멈추고 머릿속으로 적당한 표현을 찾는 듯 보였다.
“아..... 그냥.... 서늘해.”
“.............”
“그냥. 그렇다고. 뭔가 조금 꺼림직 하달까. 하는 그런 느낌 말야.”
불편하다는 표정을 한번 지어 보이고는 그녀는 지환에게 손을 까딱 해 보이고 차의 창문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차는 곧 지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말하는 그 우안이를 내가 처음 보게 된 것은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 다음 주 금요일 이었다.
탕비실 한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 위에 비닐로 쌓여있는 옷가지가 올려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퇴근 하면서 그 물건을 치우겠다고 지환이가 말을 했지만, 하필 갑작스럽게 해야 했던 야근 때문에, 그 상대방은 사무실로 자신의 물건을 찾으러 와야 했다.
쭈뼛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 온 그를 보면서 지환의 지인이니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말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 했다. 그의 그런 불편해 하는 표정을 보면서 부리나케 지환은 탕비실에 보관되어있던 그의 짐을 꺼내다 주었다.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보이고 문쪽으로 몸을 돌리던 순간, 문이 열리며 장현이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 녀석은 자신의 옆을 지나쳐 문 밖으로 빠져 나가는 우안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쟤가 여기 왜 왔어요?”
우안이를 배웅하기 위해서 지환이 같이 문 밖으로 사라진 후, 나의 책상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고는 장현이 물었다.
“왜? 너 쟤 알아?”
“알죠.” 굳어진 표정으로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지환이랑 친한 사이일 까봐 걱정되냐?” 그에게 흘끔 눈길을 한번 준 후, 슬며시 웃어보였다.
“아. 형님. 그런게 아닙니다.” 그가 손사래를 쳤다.
“백프로 소문을 믿는 건 아니지만 그 자식 소문이 그다지 좋지 않아요.”
“무슨 소문?”
“예전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스토킹하다가 나중에는 그 사람 집에 방화까지 했다고....”
“뭐?” 그의 말에 놀라 서류에서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뭐 다행하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는데, 저 자식 화상 당한 것 빼고요. 저 자식 떼어내려고 상대방이 별 짓 다 했다고 그러더라구요.”
“........”
“그러니까 형님.”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절대 가까이 하시지 마세요.”
“............”
그가 상체를 나에게 기울이고 굳은 표정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마치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환이도 절대 아까 그 녀석하고 어떤 식이라도 엮이지 않게, 형님이 알아듣도록 말해주세요. 형님 말씀은 그래도 잘 듣잖아요.”
그의 굳은 표정엔 비장함까지 보였다.
장훈이 이런 말까지 할 정도면 틀림없이 그저 웃어넘길 일은 아닌 듯 했다.
그렇게 굳은 장현의 표정 뒤로 사무실 문이 열리고 지환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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