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이야기] 그 날, 그 부대에서 -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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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


첫 날부터 매우 정신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새발의 피였다.
왜냐하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정신이 없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정해성 일병님의 말에 따르면 ‘공교롭게도’ 이번 주는 큰 훈련이 있었던 다음 주여서,
대부분의 훈련 물자를 정비하는 것이 주 일거리였다.

“넌 복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본인보다 한 대여섯배는 커보이는 대형 국방색 천막에 물을 호스로 뿌리면서 한인혁 이병님이 말했다.

“제가 어떤부분에서 말입니까?”
“이번 훈련 꽤 컸는데 그거 피해서 들어와서. 그냥 해본 소리야.”

물기를 탈탈 털어내는 한인혁 이병님한테 나는 훈련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지난주에 했던 훈련 말씀이십니까?”
“어. 그거 RCT? 인가 뭔가 그거였는데, 연대장님 사단장님 다 오시고 난리도 아니었어. 덕분에 엄청나게 무서운 부분대장님도 엄청 날뛰셨지……. 뭐 하나 잘못될때마다 혼이 나가는 줄 알았어.”

후에 들은 설명으로는 2년에 한 번 쯤 하는 연대 기동전술훈련이 RCT라는 모양이다. 
연대 전체가 한 날에 모여서 기동훈련을 하는 날이라, 사단장님도 보러 오신다고 한다.
덕분에 엄청난 스케일로 커져버렸던 훈련……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천막을 널면서 막사 아래 연병장에서 사람들이 두돈반에서 뭔가를 계속 내리고 창고에 넣고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도 엄청나게 바쁘겠고만…….

어쨌든 우리는 천막 세척하는 일이 다 끝났기 때문에
다음 일을 받으러 생활관에 있는 분대장님한테 돌아가봐야 했다.
그래서 한인혁 이병님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아니 그럼 얘 2주대기 동안에 제가 일 다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공기를 쩍 얼게 만드는 커다란 소리가 생활관을 가득 메웠다.
목소리를 낸 주인공은 정해성 일병님.
맞은 편에 있는 분대장인 박상욱 병장님의 얼굴은 상당히 이례적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차분히 억누르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후임이 소리를 치는 마당에 그게 그렇게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니 니가 오랫동안 후임이 없어서 짜증난 건 알겠는데…….”

거기까지 말을 하다가 멈추고 정해성 일병의 등 뒤로 방금 막 들어온 우리 둘을 바라보는 박상욱 병장님.
정해성 일병님은 우리가 들어온 것을 알고는 있는 모양이었지만, 우리를 돌아보거나 하진 않았다.
숨이 턱 막히는 분위기에 저절로 등골이 싸해졌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지만, 정해성 일병님은 그만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차피 저도 2주대기 없었습니다. 일도 하면서 배워야 느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들어왔음에도 이야기를 멈출 생각이 없는 정해성 일병님을 보고,
박상욱 병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손을 휘저었다.
그만 하라는 무언의 제스쳐 였다.

그제서야 정해성 일병님은 주먹을 꽉 쥐고는 뒤로 돌아섰다.
누굴 쳐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우리를 쓱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쾅 소리를 내면서 생활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인혁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박상욱 병장님이 한인혁 이병님을 불렀다.

“이병 한인혁!”
“생활관 애들 오라그래. 밥먹으러 가게. 해성이도 불러오고.”
“알겠습니다!”

각 잡힌 자세로 한인혁 이병님이 정해성 일병님 뒤를 쫓아갔고, 나도 자연스럽게 같이 가려고 했는데-

“보현이 너는 여기 있고.”
“이병 김보현!”

목소리가 내 뒷덜미를 콱 잡은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그대로 생활관에 대기할 수 밖에 없었다.
나가려던 생활관 문을 찰칵- 하고 닫았다.

생활관에는, 박상욱 병장님과 나만 남았다.
박상욱 병장님은 잔뜩 짜증이 난 채로 머리를 뜯기 시작했다.

“아휴 씨.발 저 새끼는 맨날 저 지.랄이네.”

박상욱 병장님의 군화를 신은 발이 거칠게 침상 사이의 작은 테이블을 찼다.
위에 올려진 텅 빈 플라스틱 물병이 텅- 하는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생활관 구석에 쳐박혔다.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는 나는 숨도 멈추고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보현이 너도 힘들겠다. 저런 놈 밑에서 군생활하려면."

순간 나는 이 말에 수긍을 해야할 지 말아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긍정을 한다면 이 사람 편을 드는것이고,
아니라면 이 사람은 나한테 등을 돌릴 것이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박상욱 병장님의 반응을 살폈다.
박상욱 병장님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차버린 테이블과 물병을 다시 제자리로 해놓았다.

"미안하다…… 원래 그러려던건 아니었는데 나도 화가 좀 나서……"
"ㅇ…...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엄청 놀란거 표정에 다 쓰여있는데."

그렇게 말하고는 박상욱 병장님은 내 가까이로 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워낙에 마음 둘 곳이 없었던 거겠지. 하나뿐인 후임조차도 저렇게 불같으니까.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만 왜 이렇게 따뜻한지도 의심이 들었다.

"힘든 일 있으면 나한테 말 해. 해성이든 누구든 괴롭히면."

그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활관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밥을 먹는 내내 이상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난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이 상황이 그냥 지나가길 바랬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후로 이런 패턴은 굉장히 자주 반복되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야 김보현! 또 실수하냐? 정신 안차려?"
"이병 김보현! 죄송합니다!"

한 번은 생활관에 물병에 물을 채우는 일을 할 때였다.
조금 멍을 때린 사이에 가져다 놓으려던 물병을 생활관 바닥에 엎어버렸었다.

"뭘 저런 실수가지고 저러냐. 애좀 작작 괴롭혀."
"........"

그때 갑자기 박상욱 병장님이 정해성 일병님이 다그치려던 것을 제지하며 나서는 것이다.
전역까지 두세달밖에 남지 않은 말년병장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정해성 일병님은 직접적으로 박상욱 병장님에게 뭐라고 하지 못했다.

"야 너도 가끔 실수하잖아. 이쯤 해둬."
"......."

그러고는 정해성 일병님은 정말 짜증나서 못견디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생활관을 나가버리는 것이다.
나는 중간에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고.

그걸 유유하게 지켜보는 박상욱 병장님의 표정에는 슬그머니 실소가 떠올라있었다.
난 아직까지도 그런 실소가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바보같이.

"보현아~"

엄청나게 친근한 톤으로 박상욱 병장님이 나를 부른다.

"이병 김보현!"
"일롸봐 ㅋㅋ"

딱히 생활관 중앙에 있었고 내 자리는 원래 으레 신병들이 그렇듯 분대장 바로 옆자리였기 때문에,
더 붙을것도 없는데 박상욱 병장님은 나를 불렀다.
개인정비 시간이라서 그런지 생활관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박상욱 병장님과 나. 그렇게 단 둘이었다.

멀거니 떨어져있기도 뭐했던 나는 박상욱 병장님 옆으로 딱 붙어 앉았다.
그랬더니,

"힘들지?"

하고는 박상욱 병장님은 내 어깨를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나는 몸이 엄청나게 민감한 편이다.
덕분에 평상시였다면 시원해야 했을 안마지만, 나는 그게 무척 간지럽게 느껴졌다.

내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반쯤 막으려는 행태가 되고 말았다.

"박상욱 병장님 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간지럽습니다."
"뭐가 ㅋㅋㅋ 그냥 안마해주려고 하는건데 ㅋㅋㅋ"

박상욱 병장님은 무척 재밌어 보였지만,
나는 거의 반자동으로 나오는 반응이었다.
사실 이게 간지럼으로 느껴지는 수준이 지나면…… 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누워봐."
"박상욱 병장님……."
"어허 누워보래도 ㅋㅋㅋ"

내가 곤란한 스킨쉽에 자꾸 만류하려고 하자, 박상욱 병장님은 이번엔 나를 침상에 눕히고 말았다.
그러더니 개어져 있는 모포로 손짓을 한다.
이걸 베고 누으라는 뜻이겠지.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 했다.
사실 이등병이 누워서 딩굴거리는 것은 암묵적으로 거의 금기시 되었기 때문에도, 나는 그 자세가 너무 편하고도 불편했다.

"어때. 편하지?"

박상욱 병장님은 그런 나한테 어깨를 으쓱하면서 얘기했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정해성 일병님이 쓱 하고 생활관에 들어왔다가,

"......."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등에 가시가 돋은 것 마냥 불편하다.
바닥…… 바닥이 원래 이렇게 불편했나? 그럴리가 없는데?

"ㄱ…...그렇습니다."

마지못해 대답은 해야했기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박상욱 병장님이 나한테 가까이 오더니.

"ㅋㅋㅋ근데 너 가까운데서 보니까 좀 귀엽다?"

그런 말을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쑥 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귓볼까지 아마 새빨개졌을것이다.
그런 생각이 더 부끄럽게 만들고, 그게 더 달아오르게 만들고……

"ㅇ…...아닙니다."
"동글동글하게 생겨가지고 ㅋㅋㅋ"

동글동글하게 생긴 건 내 이미지가 맞다.
사실 그것때문에 나는 학교에서도 곰이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정작 나는 그런 별명이 별로 탐탁치 않았다는게 문제였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갑자기 박상욱 병장님은 내 볼을 쭈욱 하고 잡아당겼다.
조금 아플지경이었는데, 나는 그냥 속절없이 당해줄 수 밖에 없었다.
무슨 죽부인 마냥 나는 계속 간지럽힘을 당하고, 껴안아지고의 연속이었다.

문제는 이 상태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길게 지속되었다.
박상욱 병장님의 장난은 계속됐고, 그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내가 간지럼을 잘 탄다는 것을 알자마자 귀에 바람을 넣고, 옆구리를 눈물이 날 때 까지 괴롭히고……
엄밀히 말하면 간지럼이 느껴지는 부분이 죄다 성감대였기 때문에,
나는 똘똘이가 서지 않도록 진짜 오만 잡생각을 다 떠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생활관에서 그런 일이 있을때마다,
정해성 일병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냥 자리를 피하고는 했다.

제일 심각했던건, 한 번 장난을 치다가 내 허벅지에 박상욱 병장님의 사타구니가 닿을때가 있었다.

'.......?'

이상하게도 박상욱 병장님의 물건은 서있었다.
대체 이 사람……. 무슨 생각을 하고 나를 계속 괴롭히는거지? 설마 S인가?
이 사람, 나를 통해서 일종의 성욕같은걸 풀어버리려고 하는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내 2주대기가 거의 끝날 무렵의 주말이었는데,

"오 보현이 왔어?"

일과가 끝나고 밥을 먹고 생활관 문을 열었을 때였다.
생활관이 평소보다 너무 텐션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박상욱 병장님 주위로 3중대 상병장들이 몰려서 과자를 먹으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티비에는 여느때랑 다름없이 음악 프로그램이 틀어져있었고, 걸그룹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야 쟤가 신병이야? 너네?"
"ㅋㅋㅋ 귀엽지 않냐?"
"그런 취향인줄은 몰랐는데……."
"뭐래 미친새끼가 ㅋㅋㅋ 아니거든? 걍 신병 좀 귀여울수도 있지."

박상욱 병장님이 한껏 들떠서 비슷한 군번의 사람들과 떠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 사람들은 나를 에워쌌고, 박상욱 병장님은 나를 옆구리에 끼고는 과자를 주기 시작했다.

그것 뿐만이면 모르겠는데, 박상욱 병장님은 잡담을 하면서 계속 내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나는 선임들 사이에서 내색할수가 없어서 온 정신을 다해서 간지럼을 참을 뿐이었다.

'어……?'

근데 점점 박상욱 병장님의 손이 내 가슴팍에 닿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손이 남의 시선이 닿지 않는 틈을 타서……

찌릿- 하는 느낌이 들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화기애애 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 마냥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내가 갑자기 박차고 일어난 덕분에 테이블이 덜컹- 흔들리면서 물병을 쏟았다.

"이 새끼 갑자기 왜이래?"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박상욱 병장님까지 전부 눈이 커다래져서.
정적이 가득 메운 생활관에, 텅텅-거리며 빈 플라스틱 물통이 굴러갔다.

"쟤 원래 저러냐? 왜 이리 급발진해?"
"ㅇ…...아닐텐데……?"

제일 당황한 박상욱 병장님이 말을 더듬고 있었다.
나도 내가 왜 일어섰는지 모르겠다. 그저 쿵쿵 뛰는 심장소리만이 고막을 울리고 있었다.
그냥 분위기가 이렇게 얼어붙은 것 만으로도 쪽팔려서 어디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건 뻔한 일이었다.
왜 일어섰는지를 설명하면, 나나 박상욱 병장님이나 곤란하게 될 것이니까.

"ㅈ…...저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겨우 힘겹게 입을 움직여서 나는 목소리를 냈다.

"뭐야 화장실 가면 그냥 조용히 가면 되지 뭘 이리 야단이야."

벙찐 박상욱 병장님 옆의 한 상병님이 손짓으로 다녀오라는 시늉을 한다.
나는 황급히 생활관 문을 열고 나갔다.
이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나가기 직전에, 생활관 문 바로 옆 침상에서 책을 읽고있던 정해성 일병님이 나를 지긋이 올려다 보는 것이 보였다.
무슨 생각이신걸까.

화끈거리는 얼굴을 거의 붙들다시피 하고 나는 좌측 현관으로 나왔다.

해가 완전히 져서 별들이 총총히 박힌 하늘 아래로는, 다행스럽게도 열을 식혀줄 바람이 불고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었다.
왜 그런 자리에서 싫다. 안된다. 그런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생각해보면 그런 일에 엮여서 소문나면 아웃팅 당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데 까지 생각이 미치니, 더더욱 설움이 북받히기 시작했다.

'왜 나는 저런 일에 장난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겨우 저딴 일인데, 장난일텐데, 난 왜 이렇게 과민반응을 했지?'

좌측 현관의 벤치에서 한참을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무렵, 내 코끝에 매캐한 담배냄새가 닿았다.

'......?'

옆을 슥 쳐다보니, 정해성 일병님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물론 이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말이다.
내가 돌아보자 그제서야 스윽 하고 이쪽을 한 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는 정해성 일병님.

조금 시간이 흐르고, 정해성 일병님이 말을 걸어왔다.

"너도 참 답답하다."
"이병 김보현."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 참지말고. 그 새끼 몇 주 안 돼서 갈 인간인데."

그렇게 말하고 정해성 일병님은 스읍- 하고 다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회색빛 연기는 그렇게 까만색 하늘로 흩어져 사라졌다.

나는 살짝 멍해진 느낌이 들어서,

"그래도…… 잘 해 주시는 것도 있고 해서……"

멍청한 나는 무심코 해선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잘해줘? 저게? 너를?"

정해성 일병님은 순간 나를 확 쳐다보면서 그렇게 다그쳤다.
그 눈동자는 도무지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담고 있었다.

"뭘 잘해줬는데? 아, 생활관에 눕게 해줘서?"

그렇게 얘기하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직접적으로 나한테 뭔가 잘해준 기억은 없었다.
단지 사사건건 정해성 일병님과 부딪히면서 나를 걸고 넘어졌을 뿐.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씨.발 물어보잖아 대답을 해 새끼야!!"

좌측 현관을 고함소리가 가득 메웠다.
먹먹한 귀 만큼이나 내 명치에도 뭔가 단단하고 먹먹한 느낌이 푹 하고 들어왔다.
이 사람은…… 왜 또 이렇게 화를 내는거야……

눈 앞이 살짝 흐려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 것 같았다.
나…… 왜 우는거지?

"어휴 씨.발. 내가 천날만날 애들한테 잘 해주면 뭘 하냐. 너 같이 눈치가 없는 새끼들이 태반인데."

정해성 일병님은 그렇게 물고있던 담배를 발로 비벼 꺼버리고는

"남자 새끼가 쳐 우는거 보기 안좋으니까 그만 쳐울어."

그 뒤로 아무 말도 없이 쓱 하고 막사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열렸다 닫힌 막사 유리문만이 흔들리다가 이내 멎을 뿐.

하염없이 그걸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씨.발…… 나보고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좌측현관 벤치에 있었더니
누군가가 또 현관으로 나왔다.
대충 다른 중대 사람이 담배피러 나온거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뭐하냐?"

슥 하고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한인혁 이병님이 있었다.
그나마 생활관에서 행동을 제일 많이 같이 하다보니 심적으로 편한 사람이 된 사람.

"ㅇ…...아닙니다.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었어서."
"아까 생활관에서 뭔 일 있었대매."
"아 별거 아닙니다. 그냥…… 제가 딴 생각하다가 또 실수해가지고……"

줄줄이 변명을 읊는 나한테 피식 하고 웃는 한인혁 이병님.
그런 인간다운 반응을 보자니 나도 조금 긴장이 풀려서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긴장이 조금 풀리니, 날씨가 아직도 제법 쌀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월 말. 아직 더위가 오기에는 조금 이른 날이었다.

한인혁 이병님이 내 옆에 와서 앉아서 조금 내가 진정될 때 까지 기다려줬다.
스물 네 살인 한인혁 이병님은 실제로도 나보다 두 살 더 많아서,
뭔가 모르는 것이 있고 할때는 항상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대강 무슨 일인지는 알겠다. 너 잘못 아니니까. 너무 풀죽지 말고."
"아닙니다. 다 이게 제가 정신을 못차려가지고……"
"아냐 임마 ㅋㅋㅋ 나도 너랑 같은 처진데 모르겠냐."

ㅋㅋㅋ 하고 슬쩍 웃어주시는 한인혁 이병님.
이 사람. 엄청 어른스럽다. 순식간에 그런 느낌이 들었다.

"너 정해성 일병님이 왜 저런 성격인지 알아?"

넌지시, 한인혁 이병님이 그런 얘기를 꺼냈다.
그러고보면 항상 정해성 일병님이 엄하다는 생각은 했어도, 왜 그런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조금 민감한 개인사라서 어디가서 떠들 건 아니니까, 너도 그냥 알고만 있어.
 정해성 일병님, 아버지가 장군이라시나봐. 그니까 음…… 군인집안? 뭐 그런 모양이더라."

조금 의외였다. 정해성 일병님 집이 그랬었다니……

"그걸 어떻게……"
"나 인사병이랑 대학 동기라서 ㅋㅋ 어째 하다보니 좀 주워들었어. 알고 나니까 한결 편하더라."

나는 인사과에 있던 박상인 상병님을 떠올렸다.
그게 또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세상은 참 좁은법이다.

"아무튼 근데 본인이 그거 티내는거 되게 싫어해서. 애초에 본인도 군인 인생 살고싶지는 않고 조용히 있다 가고싶어서 병사로 있다 가는거라서 소문안나게 부탁했다더라."

그렇게 잠시 살짝 숨을 삼키고 있으니, 한인혁 이병님이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래봤자 간부들도 다 알고, 병사들도 짬좀 먹은 사람들은 다 알겠지. 그래서 정해성 일병님 함부로 못대하는 거고. 애초에 저런 대쪽같은 성격에다가 맨날 저런 말투면 누가 함부로 대하기도 힘들지."
"아……"
"근데 정해성 일병님도 너한테 막 뭐 가르쳐줘야 하는데 너가 자꾸 저 인간한테 붙들려있어서 좀 언짢았나봐. 근데 그게 오늘 터진거지뭐. 잘됐어 차라리. 박상욱 병장님도 경각심은 좀 가져야돼. 짖궂은 장난 많이 치시잖아."

하루이틀 일이냐. 하고 으쓱 하는 한인혁 이병님.
그제서야 오늘 일어났던 일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정해성 일병님이 너한테는 좀 더 강하게 하는 느낌도 있어. 살짝 과하다고 해야되나……?"
"그렇습니까……?"
"모르겠어. 그냥 항상 신경은 쓰고 있는데 욕은 한 두 배 정도로 하는 느낌? ㅋㅋㅋㅋ 뭐 잘 되라고 하는거겠지만."

이걸 감사하다고 해야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왜 그 사람은 욕을 입에 달고 사는거야 대체.

"그래도 좀 있을만 하지 않냐 우리분대?"
"그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다 좋아서……"

한인혁 이병님이 그렇게 물어오길래, 나는 즉답을 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작전병 제의를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하나 하는 생각중이었다.

"슬슬 2주대기도 끝나니까 과장님이 한 번 부르시겠네…… 생각은 좀 해뒀어?"
"사실은…… 작전병은 하고싶은데 딱히 본부로 옮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ㅋㅋㅋㅋ 그게 가능할라나 모르겠네. 여태 그랬던 사람이 없어가지고…… 있으려면 아마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할거야."
"아……."

등을 탁탁 두드려주시는 한인혁 이병님 덕분에 힘이 좀 났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렇게 또 하루를 보냈다…….



- 04.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난 뒤였다.
내일이면 2주대기도 풀리고, 나는 본격적으로 한인혁 이병님이 하던 일들을 그대로 받아서 하고 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난 뒤였다.

“보현아, 잠시 독서실로 와.”

박상욱 병장님이 나를 불렀다.
막사에는 개인정비 시간에 병사들이 책을 읽으라고 마련된 작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보통은 잡지 이외에는 읽을 게 없어서 사람들이 잘 안오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면 박상욱 병장님은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나한테 조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조금 과했다는 것을 본인도 알아서일까?
하지만 어찌됐든 나는 이런 상황도 굉장히 불편했던 터라 내심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차라리 대화를 해서 풀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이병 김보현! 알겠습니다.”

초록색 견장을 찬 박상욱 병장님이 앞장서고,
나는 그 뒤를 따라서 독서실로 들어갔다.
독서실은 무척 좁고, 책 냄새로 가득했다.
교범을 보관하는 잠긴 캐비넷 하나와 책장 두어개, 그리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마련된 칸막이 책상들 두세개가 끝이었다.

“음……”

조금 고민을 하는 것 같던 박상욱 병장님은 내가 기다리자 무겁게 입을 뗐다.

“요전에 있었던 일은 미안하다.”
“ㅇ…...아닙니다.”
“아냐. 생각해 봤는데 내가 장난이 과했어.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네.”

고개를 조금 숙이고 담담하게 말하는 박상욱 병장님.
여기까지 하시리라고 생각도 못했어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박상욱 병장님을 말리려고 했다.

“아닙니다 저도 장난으로 하신거 아는데 너무 과민반응 했습니다.”
“아냐아냐. 선은 지켜야지. 그건 내가 잘못한 거 맞아.”

그렇게 말하시는 박상욱 병장님 앞에서 나는 수긍도 반박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시간을 두고, 박상욱 병장님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때 인혁이랑 얘기 좀 했어?”
“예……”
“나도 조금 놀라긴 했다. 너 작전병 하겠냐고 과장님이 물어봤어?”

그제서야 나도 앗차 하고 실수를 떠올렸다.
정해성 일병님도 거의 아는 눈치였어서, 당연히 박상욱 병장님도 알고 있었을거라 생각한 나머지
따로 얘기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좀 일찍 말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중대장님이 말 안해주셨으면 몰랐을거야.”
“죄송합니다.”
“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중대장님이 물어보라고 하셔서. 어떡하고 싶어?”

박상욱 병장님은 나한테 그렇게 물어왔다.
내심 생활관 사람들과 어렵사리 정붙였는데 또 새로운 생활관에 가서 눈치밥 먹으면서 적응하는 것도 싫었고,
뭣보다 한인혁 이병님과 떨어지는 것도 조금은 싫었다.
맨날 나만 보면 잔소리하는 정해성 일병님도, 잘 챙겨주시려고 노력하는 박상욱 병장님도,
싫은 사람 하나 없는게 문제였다.

“아무래도 생활관 옮기는게 좀 싫어서…… 그냥 이대로 있고 싶긴 합니다.”
“그렇지? 그럴 줄 알긴 했는데…… 조금 그게 상황이 복잡하게 됐어.”

박상욱 병장님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눈이 동그래진 나한테 계속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편제상으로는 우리 중대도 사람이 꼭 필요하기는 해서, 
 정식으로는 너가 기관총 부사수 자리에 있긴 할거거든……. 근데 작전과 상황도 상황이라서 신병이 꼭 필요하대.”

음 이게 무슨소리지……?

“이게 말이 되나 싶긴 한데, 일단 생활관은 그대로 쓰면서 작전과 출근만 해달래.”
“그게 됩니까?”
“뭐 전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생활관이나 보직변경은 천천히 해도 되니까 일단 인수인계부터 받으라는거지 뭐.”

정말 애매하긴 했다. 한편으로는 그게 정말로 되는 거라면 나로서는 거절 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래도 상관이 없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마 중대장님이 곧 너 부를거 같아. 그전에 이런거라고 내가 대충 설명해주는거고. 중대장님은 아마 할건지 말건지만 물어보실거 같아서…… 대충 상황이 이렇다고 말해주는거야.”

담담하게 설명을 풀어나가는 박상욱 병장님에게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그러면 대충 오케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을게.”

박상욱 병장님은 그걸로 됐다는 듯,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어깨에 가볍게 내려앉는 무게감이 만감을 교차시킨다.

“그리고…… 아까 하던 얘기 말인데.”
“어떤 거 말입니까?”
“그…… 너 괴롭혔던거…….?”

박상욱 병장님은 조금 숨을 삼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오해…...가 있을 지도 몰라서 얘기해 두는 건데, 사심있어서 했던거 절대 아냐.”
“ㅇ…...알고 있습니다.”
“그냥 좀 심한 장난 이었던 거라고 생각해 줘.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건 변한게 없지만.”
“알겠습니다……”

변명같은 말이었지만 사실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불현듯 그때 잔뜩 성나 있었던 그의 물건이 떠올랐다.
대체 그럼 이건 뭐야……?

더 깊이 따져들어가면 나만 피곤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여기서 그냥 생각을 그만하기로 했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그냥…… 그냥 없던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아닙니다.”

그렇게 조금 머쓱한 시간이 지나고, 
박상욱 병장님은 먼저 나가겠다는 얘기를 하고 가벼운 문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뭔가 해결된 느낌은 있었지만 썩 개운치 않은 찜찜한 기분이 계속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괜찮은거겠지?




그렇게 다음 날이 됐고,
나는 아침점호가 끝나고 부리나케 세면을 마치고 바로 3중대 행정반에 노크를 했다.

“들어와라.”

안에서 낮은 목소리의 중대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금 텀을 두고 행정반 문을 열었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아직은 쌀쌀한 아침공기가 남은 행정반 가운데는 탁자가 있는 소파가 있었다.
그 뒤로는 쓸데없이 깔끔한 사무용 유리테이블과 컴퓨터, 잔뜩 꽂혀진 파일들.
그 너머로 보이는 엄청나게 푹신해 보일 것 같은 사무용 의자에 중대장님은 앉아있었다.

런닝차림인 채로 말이다.

“ㅊ…...충성! 이병 김보현!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오 왔네. 그래 거기 소파에 앉아.”

너무나도 듬직한 중대장님의 체격은 런닝차림 바깥으로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건장한 체격인건 알고 있었지만…… 와……
순간적으로 너무 엄청난 광경이라 경례를 잊어버릴 뻔 했다.

런닝차림의 중대장님은 캐비넷에서 새 전투복을 꺼내서 걸치고 있었고,
나는 그걸 최대한 의식하지 않는 척 하면서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진정하자 내 똘똘이….. 진정해 여기서 화내면 안돼……

조금 주의를 다른데로 돌릴 겸 나는 행정반 구석구석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중대장님만 있는 줄 알았던 행정반의 어두운 구석에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던 것이다.
안경을 쓰고 의욕없는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는…… 한 사람.
중대 행정병인 이지환 일병님이었다.

“왜.”

내가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이지환 일병님은 작은 목소리로 왜? 하고 물어왔다.
내가 입모양으로 아닙니다 라고 얘기하자 이상한 놈이군 하는 표정으로 다시 보던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행정반 창가에는 시끄럽게 짹짹거리는 참새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다행스럽게도 무거운 행정반 공기를 조금 가볍게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전투복을 걸친 중대장님이 터벅터벅 걸어서 내 맞은편 소파에 앉으셨다.
팔을 괴면서 중대장님이 말을 이어가셨다.

“대충 상욱이한테서 얘기는 들었지?”
“예 그렇습니다.”

중대장님은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그 얘기를 꺼내셨다.

“어떻게 할래? 오늘부터 작전과 출근할거냐?”

오.…..오늘부터?
확실히 월요일이니까 일과는 하긴 해야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무턱대고 오늘부터라고?

“오…….오늘부터 출근합니까?”
“바쁘다고 빨리 출근하라더라. 인수인계할 거 많다고.”

중대장님은 넌더리가 난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보나마나 과장님이랑 또 신경전 한 판 하신거겠지.

“저…… 생활관은 안 옮긴다고 박상욱 병장한테서 들었습니다.”
“어. 맞아. 너는 우리 중대 소속인건 안 변하고, 출근만 작전과로 하는거니까.
 중대에서 뭐 한다고 하면 거기에 참석은 해야할거다.”
“알겠습니다.”
“작전병 할거야?”
“예.”

나는 결심을 굳혔고, 중대장님은 다시 소파에서 일어나셨다.

“그럼 9시까지 작전과로 출근하고. 그 전까지 생활관에서 대기해. 작업 나가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래, 그 외에는 별 일 없지?”
“그렇습니다.”
“나가봐.”

나는 가볍게 경례를 하고, 행정반에서 나와서 생활관으로 향했다.
뭔가 기분이 엄청나게 이상했다. 2주동안 왔다갔다 거려서 익숙해진 줄 알았던 복도가 다시 느낌이 이상해졌다.
그래도…… 중대 생활관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는건 좀 다행이다.
그걸 위안을 삼으면서 생활관으로 들어갔다.

생활관으로 들어가자마자 상병장들이 나한테 급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르르 몰려와서는 하나둘씩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니 이 사람들…… 갑자기 뭐야……?

“뭐라고 대답했어? 작전병 한대매?”
“아 좀 조용히 좀 해봐. 얘기하려고 하잖아 보현이.”

내가 어느 질문부터 대답해야할지 곤란해 하자,
초번 경계근무에서 막 복귀한 박상욱 병장님이 총기를 거치하면서 사람들을 제지했다.

“좀 비켜봐 다들 뭐하냐. 그래서 보현이 너 간다그랬어?”
“예 그렇습니다.”
“잘 됐네. 컴퓨터 할 줄 알고 그러면 가는게 더 낫긴해. 땅파는거보다야.”

등을 탁탁 두드리면서 박상욱 병장님은 그렇게 얘기를 했다.
저 멀리서 정해성 일병님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냥 책을 읽고있을 뿐이었다.

한인혁 이병님은 내 바로 옆자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같은 소대원으로 그렇게 지낼 줄 알았는데…….

“너 생활관은?”
“아 그래도 저 중대소속인건 그대로라서 생활관 안 옮겨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자마자 생활관이 갑자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한인혁 이병님도, 심지어 책을 읽던 정해성 일병님도 이상한 듯이 책에서 시선을 떼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얘 소속 안 바껴?”

맞은편에 있는 화기소대 분대장님이 그렇게 박상욱 병장님한테 물어왔다.
그렇다는 모양이더라. 하고 박상욱 병장님은 가볍게 대꾸했다.

“그런 게 어딨어? 얘 그럼 훈련때 어떻게 해야돼?”
“몰라. 채워주기 전까지는 그냥 이대로 가는거지 뭐.”

뭔가 그 뒤로도 수군거리면서 내가 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상병장들.
그 사이에 한인혁 이병님이 쓱 다가와서 나한테 작게 얘기했다.

“좋겠다. 너 이제 본부 사람들이랑 친해지겠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겠지. 다들 같이 일하는데 안친해지겠어? ㅋㅋㅋ 우리 버리면 안된다?”
“제가 왜 버립니까 ㅋㅋㅋ”
“약속했다? ㅋㅋㅋ 나중에 딴 말 하면 안돼.”

한인혁 이병님이 그렇게 얘기하자 나도 조금 쑥스러워졌다.
본부 행정병이라는게 이렇게 야단법석일 일인가 싶기도 하고…….

다시 생활관을 둘러보니 정해성 일병님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셨다.
생각해보면…… 지금쯤이면 또 한 마디 듣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왜 이렇게 조용한거지……?
그러고보면 오늘 아침에는 이례적일 정도로 정해성 일병님이 나한테 단 한마디의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게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변화라는 걸, 나는 그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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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부분 지루하시죠...?
저도 압니다 ㅋㅋㅠㅠ 빨리빨리 진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ㅠㅠ

비 많이 오는데 다들 조심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댓글주시면 쌩큐베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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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연재분 읽던 기억 새록새록 나네요 :) 좋은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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