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옷소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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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까지 강한 바람과 함께 상당히 많은 봄비가 내린 후, 기온이 내려가 다소 쌀쌀한 느낌이 드는 화요일 아침이었다.

 

거래처의 박사장과 외부에서 오전 미팅을 하면서 받은 자료를 나는 메일로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남아있던 지환은 그 자료를 프린트하고 내용을 다시 한번 확인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빠지거나 처음의 계약조건과 달라진 사항이 있는 지 확인을 하느라 그는 서류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책상의 한쪽 모서리로 밀려나 있던 그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여전히 눈은 서류를 향한 채, 그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시선을 휴대폰의 액정화면으로 돌렸다.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가 떠 있는 액정화면을 잠시동안 망설이듯이 응시하던 지환이 마침내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이준합니다.”

남자의 이름이 귓전에 울리는 순간 예상치 못했던 일에 당황해진 그는 손에 들려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그건....” 느긋한 말투로 남자가 말했다.

“아마 김지환씨가 저를 찾아오신 방법과 비슷할 것 같네요.”

“.........”

“느닷없이 멋대로 전화를 드려서 죄송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전에 연락도 없이 일면식도 없는 타인 앞에 불쑥 나타나는 결례를 하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그의 말에 자신이 했던 행동이 떠올라 지환이 수화기를 귀에 댄 채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앞뒤 구분할 틈도 없이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나서 과거의 인물의 이름을 들추는 자신을 보고 상대방은 상당히 놀랬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매우 무례하다고 생각하면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가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찾아오셨는데, 제가 바빠서 절 찾아오신 이유도 못 듣고 가시게 해서 저도.....

“아닙니다. 제가.....” 또 다시 예상치도 못하게 자신의 행동을 사과하려는 그의 말을 당황한 지환이 가로막았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가 부드럽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그의 전화를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고, 또한 그로부터 이러한 반응도 기대하지 않았던 예상밖의 상황에 지환은 당황해졌다.

“저...그게....”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두서없이 우안에게 들은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고, 간단하게 그에게 논리적인 설명을 한다는 것도 지환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저..그러니까....” 그렇게 계속 머뭇거리고 있는 지환을 남자는 인내심있고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로 말씀드리기가....”
복잡해진 머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궁색한 변명이 지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럼, 만나서 말씀하시죠.” 냉담한 반응을 예상했던 지환의 귀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부드러웠다.

“오늘 퇴근하고 시간 괜찮으신가요?”

“.......”


“제가 김지환씨 편한 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슬며시 창문을 열고 지환은 여전히 가랑비가 떨어지고 있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어제만 해도 화려했던 벚꽃으로 몸을 두르고 빛을 발하던 나뭇가지가 하룻밤 사이에 초췌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져 빗물에 쓸려 하수구를 향해서 흘러 내려가고 있는, 한때는 아름다웠던 꽃잎들이 지환의 시야에 들어왔다.

더러는 못내 아쉬워서 마른 바닥에 몸을 피하고 있었지만, 곧 사람들의 발에 밟혀 모습을 감추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그 준하라는 사람과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서둘러 호텔을 빠져나오다 그가 섞인 무리와 눈이 마주쳤었다.

그들의 냉담한 눈빛, 교양있는 웃음과 태도로 슬며시 감추어놓은 상대를 무시하는 법을 익힌 듯한 그들의 표정에 한순간 굴욕감이 느껴졌었다.

방금 전 통화중에도 그는 그런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자신은 그의 목소리만 감지했을 뿐이었고, 그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의 뒤에 보이지 않던 그의 표정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원래 다른 종족이었다.

어쩌다가 우안은 그런 사람과 사귀게 된 것이었을까? 정말 그의 말대로 사귀긴 한 것이었을까? 장현의 말이 옳은 듯 보였다. 그저 두세번 가지고 놀았을 것이다. 하찮은 존재이니 버리는 것도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 거리낌도 없이 그를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준하란 사람은 우안을 노리개 삼아 철저하게 현재만을 즐겼을 것이고, 우안은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가 뱉어 낸 구역질나는 작업멘트 한두마디에 우안은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목을 메고 있는 것이 틀림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한가지가 그의 마음 한켠에 걸렸다.


그는 이렇게 살아있다.
그렇다면 우안이 말한, 소방관까지 확인해 주었다는 시체로 발견된 준하란 사람은 어떻게 된 일일까.

한순간, 그의 머릿속에 맴돌던 자신의 그런 궁금증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화재는 그렇게 스토커처럼 따라붙는 우안을 떨어뜨려놓는 간단한 방법이었을 뿐이었다.  그, 혹은 그들이 화재를 일으키고 우안에게 이제는 이 세상에 준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한 것이었다.  화상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우안에게 소방관 복장을 한 사람을 보내 그것을 공식적으로 확신시켜 준 것이다. 그렇게 확실하게 그들은 일을 마무리 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야 그런 일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화상을 입게 된 우안은 사람들의 시선과 접촉을 피해 혼자만의 세계속으로 숨어들었을 것이고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들과 우연이라도 마주칠 일은 이제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들은 일을 벌이기 전 모두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
이제야 그 모든일이 어떻게 흘러간 것인지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창문을 닫고 자리에 돌아와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다시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일 안해?” 휴대폰을 수화기에 대고 다짜고짜로 지환이 물었다. 그의 손은 다시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니 갑자기 따뜻한 국물이 땡겨서 말야.” 여느 때처럼 명랑한 윤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간단하게 소주한잔에 얼큰 버섯찌개 어때?”

“미안한데 오늘은 선약이 있다.”

“누군데?” 그녀가 물었다.

“..........”

“누구야? 나도 따라가면 안 돼?”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그녀가 다시 물었다.

“안 돼.”

“왜?” 그녀가 끈질기게 물었다.

“너가 끽해봤자 사장님하고 회식하는거 아냐?”

“아니거든?”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짐짓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투였다.

“이준하란 사람한테서 전화왔었어. 오늘 만나서 얘기하자고....”

“진짜?” 화들짝 놀랄만한 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같이 가.”

“야!” 어이없다는 투로 지환이 소리쳤다.

“그 남자 잘 생겼다면서.....” 그녀의 콧소리가 섞인 말투가 들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니 보디가드도 하고...”

그녀의 말에 지환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같이 가자. 방해하지 않을게. 너보다 10분정도 늦게 약속장소 들어가서 그냥 얼굴만 볼수있는 근처 다른 자리에 앉아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딴 짓하다가 나올게. 응?”

“.........”

“혹시 예상하지도 못한 돌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그녀가 끈질기게 물었다.

“번화가 한가운데서 돌발 상황은 무슨.......”

“그 사람...자기가 무슨 크게 잘못한 일이 있어서 혹시 제발 저려서 입막음 하려고 돈봉투 건네는 것은 아닐까?”

“소설쓰냐?” 지환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하고 웃었다.

“진짜......” 지지않고 그녀가 버텼다.

“너와 전혀 상관없이 가만히 먼 곳에서 있다가 갈게. 응?”

그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정말 웬만해선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정확히 약속시간에 맞춰 나갔는데도 그는 먼저 나와 있었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안을 둘러보는 지환의 눈에 창가에 앉아 있는 그가 들어왔다.

그의 뚜렷한 이목구비가 비스듬한 조명에 빛이 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는 사람들의 말대로 사람들 속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의 화면에 시선을 두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고는 지환과 눈이 마주쳤다. 지환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얼떨결에 사과의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니예요. 내가 좀 일찍 나온거예요.” 그가 지환을 올려다보며 슬며시 손으로 건너편의 의자를 가리켰다. 지환은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트레이를 들고 와서 테이블위에 지환과 자신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그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번 지환을 보고 희미한 웃음을 보인 후, 고개를 슬며시 돌려 이제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바빠서 꽃 구경 한번 못 가봤는데, 벌써 벚꽃이 사라져 버렸네요. 지환씨는 구경 좀 하셨나요?” 그가 슬며시 지환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전히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아니요. 저도.......”

“벚꽃은 정말 ‘사랑’같지요. 아니면, 사랑이 벚꽃같은 것인지.....”

말을 멈추고 그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다시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온 마음을 다 빼앗아 버려서 정신 차리지도 못하게 순식간에 활짝 피어있단 말이예요. 그리고 내가 어디를 가도 따라다녀요. 아니, 내가 어디를 가든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지요.”

“...........”

“숨을래야 숨을 곳이 없어요. 한창일 때는요.”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봄비한번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예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잠든 사이에, 내려버린 비로 아침에 밖으로 나가면 전날까지 나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그 모든 만개하던 꽃잎들이 어디론지 다 사라져버리죠.”

“..........”

“어이없게요. 마치 내 손안에 있던 그 화려했던 사랑이 순식간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처럼....”

그가 다시 지환을 한번 흘끗 본 후, 고개를 돌려 창 밖을 응시했다.

 

“저.......”

“아!” 그가 지환의 목소리에 다시 지환에게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지환씨는.....” 그가 지환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안이와 무슨 관계인가요?”

“............”

“우안이에게 남자 형제가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없었으니, 혹시 친척이신지...아니면 친구?”

“...........”

“아니면 지금 사귀는 사이인지.....”

“친구......입니다.” 딴이 간단하게 설명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아 지환이 둘러댔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를 찾아오신 이유는....” 그가 지환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환의 등뒤에 있는 카페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와 지환과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 근처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곁눈질로 지환은 그녀를 흘끗 보고는 다시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환에게서 그가 다시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잠깐동안의 침묵 후에 지환이 입을 열었다. 그가 창문밖을 향하던 눈을 지환에게 돌렸다.

“우안이는...” 지환이 말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죽은....... 줄로... 알고 있어요.” 지환이 슬며시 손을 들어 그를 가리켜 보였다.



그의 표정을 살펴보면서 지환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커피잔을 들어서 한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런 지환을 아무말 없이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쩌다 그게 아니고 살아있다는 말을 듣게 되어서.... 그냥, 사실인지 확인을 해보고 싶어서....”

지환의 말을 듣던 그가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김지환씨.” 빤히 지환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대답없이 지환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에서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우안이와 나 사이의 관계는 벌써 십년이 지난 일이예요.”

“...........”

"그리고 우안이에게 어떤 얘기를 들으셨는지 제가 잘 모르지만.....“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었다.

“다른 사랑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지내면서 좋은 때도 있었고, 서로에게 상처도 주고......” 그가 커피잔에 손을 뻗었다.

“또 서로에게 원한 것은 얻어서 가져 갔구요.”

“.........”

“이미 십년도 넘은 일인데.....  내가 죽고 아니고.....가 중요할까요? 서로에게.....”

그의 입술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지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서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멈추고 그가 낮은 기침을 했다.

“왜 십년도 더 지난 지금에 나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서 다시 김지환씨를 나에게 보냈는지 우안이의 저의를 모르겠군요.”

“보낸게 아니예요.” 당황한 지환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까 말한 것처럼 우안이는 준하.....” 지환이 말을 더듬으며 손바닥을 펴고 그를 슬며시 가리켰다.

“님...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어요.”

“...........”

“제가 잠시 잘 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 딴에는 우안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

“우안이하고는 상관 없습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마치 지환이의 말이 사실인지를 판독하려는 듯 그의 표정을 조용히 살피고 있었다.

“그게 다예요.”

 

지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가 입을 열었다.

“김지환씨.”

“네?” 자신의 커피잔을 내려보던 지환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부탁이 한가지 있는데요.”

“...........”

“이미, 너무 오래전의 일이고..... 다시 꺼내어 봤자. 서로에게 그다지 도움은 되지 못할거예요.”

“............”

“지나간 일은 그대로 그렇게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 우안이에게도 상처가 있을텐데, 다시 들쑤*서 좋을 일은 없을 거예요.”

가만히 지환은 그를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안이에게 저에 대해서 말씀 하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작고 낮았지만 그 안에는 어쩐지 간절함이 묻어나는 듯이 보였다.

“부탁드립니다.”

그가 다시 한번 지환을 바라보았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맑은 눈동자는 마치 자신의 말은 전부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듯 했다.  돌아가는 내용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지환도 그런 그를 믿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카리스마를 그는 가지고 있었다.

아마 그런 모습에 우안은 사랑에 빠져 농락을 당한 것이 틀림 없어보였다.

지환이 다시한번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그럼 전....” 지환이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그 자리에 그와 함께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실례 많았습니다.” 그가 일어나 남자에게 다시한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런 지환을 보면서 그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지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

무의식적으로 자신도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아서 부드럽게 악수를 하고는 지환이 몸을 돌릴때였다.

“우안이는....”

그의 말에 다시 지환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잘..... 지내고 있나요?”

그의 표정은 어딘지 긴장되어 보였고,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에는 웃음이 아닌 씁쓸함이 묻어있는 듯 했다.

지환이 그런 그를 보고 말없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돌아서는 그의 시야에 근처의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의 화면을 보면서 키보드에 얹은 손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안경을 쓴 윤주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지환은 조용히 카페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렇게 뻔한 일이었다.’

지하철의 구내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 털썩 주저앉으며 지환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의 대화는 지환이 생각했던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저 그렇게 된 일이었다.

돈 많고 잘생기고 또 영악하고 사악한 그를 만나 돌아서는 그를 ‘쿨’하게 보내지 못한 대가를 우안은 그렇게 혹독하게 치른 거였다. 
 


 

“오래 기다렸어?”

윤주가 다가와서 지환의 건너 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제 시원하냐?” 그런 그녀를 보면서 지환이 피식 웃었다.

“그래 잘 생긴 남자 구경하니 어땠어?”

“첫눈에 확 띄고 막 설레긴 하더라.....” 그녀가 지환의 말에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근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

 

그녀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너가 나간 다음에 다른 남자가 금방 들어왔거든. 한 이삼분 후에...”

“.........”

“그 남자가 너가 만난 그 사람하고 같이 앉아서 무슨 얘기를 했는데....”

“근데?”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너와 만난 그 남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라고 말하니까,  그 남자가 ‘너 그것 말 한거 아니지?’ 그런식으로 물으니까, ‘안했다’고 그러더라고...” 

긴장되어 보이는 윤주가 두서없이 그 두 남자가 한 말을 옮겼다.

“.........”

“그러니까, ‘항상 입조심 해야 한다’고....’잘못하면 우리 모두 끝장 날수도 있다‘ 고...... ’모두 한 배를 탄 거‘라고.....”

 
걱정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지환이 피식 웃었다.

“사실, 그거 아무일도 아니야.”

그의 말에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너가 좋아하는 소주한잔에 버섯찌개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녀에게 일어서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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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비에 떨어진 벗꽃 잎과 당시의 마음 상태를 연결시켜 잘 표현 하셨네요.
적당히 긴장감 돌고
궁금증 유발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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