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옷소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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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종잡을 수 없는 5월 초였다.
한낮에는 반팔티 하나만을 입고도 이제 가끔씩 덥다는 느낌도 들기도 했지만, 해가 지고 난 후에는 대충 바람막이 정도는 입고 있어야 할 정도로 쌀쌀해졌다.
큰 배가 파도를 가르고 지나간 후에 그 뒤편에 남은 바닷물 표면은 잔잔함을 잠시 유지하듯, 지환은 다시 자신만의 느릿하고 변화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주말 저녁, 지환은 오랜만에 다시 친구 녀석들과 종로에 있는 작은 술집에 모여 있었다.
그 중의 한 녀석이 가입했다는 밴드의 모임에서 얼마전에 만났다는 상대의 사진이 들어있는 그 녀석의 휴대폰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각자가 판단하는 그 상대의 외모의 점수과 성격, 그리고 직업과 능력을 거쳐, 이제 만나본적도 없는 그 남자의 성적인 매력과 능력까지 탈탈 털어내고 있었다.
모두 적당히 취해 있었고 발그레하게 된 얼굴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녀석들 중에서 술집의 입구를 향하고 앉아있던 친구의 표정이 바뀌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저 사람 그 사람 아냐?”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술집의 입구로 향했다.
“아, 그렇네.” 옆에 앉아있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던 지환의 시야에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이 술집안의 사람들을 하나씩 눈여겨 보며 확인을 하고 있는 듯한 우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혹시 아는 술 상대가 없을까 하고 찾아보는 것 아닐까?”
“그럴지도....”
친구녀석들의 실 없는 웃음속에서 우안의 시선이 지환과 마주쳤다.
그리고 한순간 그렇게 그 둘은 얼떨결에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우안은 그를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한번 고개를 돌려 홀 안을 둘러본 후 몸을 돌려 술집의 문을 닫았다.
예전의 일을 사과하고 싶었던 지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히 문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우안씨”
그에게 등을 보이고 걸음을 옮기고 있는 우안을 그가 불렀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지환을 바라보았다.
“아...예...”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잘 지내시죠?”
“예. 그리고....” 지환이 말을 잇기 전 자신의 주위를 슬며시 곁눈질로 살폈다.
“죄송합니다. 전에 제가...괜히 쓸데없는 말을....”
“아니예요.” 지환의 말에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제가 술김에 순간 감정적으로 되어버렸던 거예요. 아무 상관없는 애먼 지환씨에게 제가 실수를 한 겁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가 지환에게 슬며시 고개를 꾸벅해보였다.
“제가 미안하지요.”
“그런데 누구...찾으시나봐요.” 얼떨결에 아무 의미없이 지환이 그에게 물었다.
“예, 그냥, 누군가를 좀 찾아보느라고....” 그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히즈끼 형이라면 저 안쪽에 다른 일행분들하고.......”
“아...” 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형을 찾는게 아니고...” 그가 손을 들어 뒷통수를 긁적였다.
“얼마전에 길에서 우연히 예전에 형이 살아있을 때 가깝게 지냈던 사람과 마주쳤어요.”
“.............”
“나 보다 그 형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형하고 사귀면서 나이도 동갑이다보니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었거든요.”
그의 말에 지환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를 보고 못본척 하더라고요. 내가 인사까지 했는데....”
“...........”
“병원에서 화상치료를 하고 퇴원하고 나서 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형의 부모님이 오셔서 형을 데려갔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그래도.....”
그가 말을 멈추고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만약에 형이 화장해서 납골당 보관함속에 한 줌의 재라도 되어서 남아 있으면 가서 꽃이라도 한송이 놓고, 강물에 뿌려졌다면 거기로 찾아가서 이제 앞을 보고 열심히 살겠다고,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보내주려고 했었어요.”
“........”
“그런데 형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형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그저 안면만 있던 거라서 연락처를 제가 알지 못했고,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던 그 친구도 전화번호를 바꾸었더라구요.”
“.........”
“그렇게 그냥 감쪽같이 나 혼자 남겨져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종로에서 얼마전에 그를 보게 되어서, 혹시 운좋게 다시 찾게 되면 그 후에 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려고요.”
“.........”
“형을 마지막으로 잘 보내고 이제 저도 제 인생 살아보려고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도 찾아보고 배우고 싶은 일도 배우고, 또......”
그가 말을 멈추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지환씨 덕분에 이제 사람들하고 부딪히는 것도 자신감이 생겼고요. 계속 혼자서 외롭게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겸사겸사 돌아다니면서 예전에 형하고 같이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서 아무나 만나 볼수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다니고 있어요.”
“........”
“자신감을 가지고 반드시 찾아 볼 거예요. 그리고 확실하게 끝마무리를 짓고 내 인생 살거예요.”
“저기....”
망설이던 지환이 그에게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뒤를 돌아 어두운 골목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수요일의 퇴근 무렵이었다.
내가 건넨 두 장의 이력서를 책상위에 올려 놓고 지환은 그것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꽤 많아진 일로 나와 지환이 둘이서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되기 시작한 지 꽤 오래 되었고 미루고 미뤘던 신입사원의 채용을 더 이상 미루기에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녀석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여러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회사 분위기 상, 그래도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마음이 편할 듯 해서 발이 넓은 장현이에게 부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보내 온 그 두장의 이력서에 있는 녀석들은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입견이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한 녀석은 너무 뺀질거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녀석은 똥오줌 못가리고 주어진 일도 감당을 못할 듯 굼떠 보였다.
회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변두리의 작은 상가의 2층에 조그마한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대우도 변변하게 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무슨 대단한 직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꼴에 사장이라고 나도 그 ‘이왕이면’ 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환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그 이력서 두 장을 넘겨주고 그 녀석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이력서 두 장을 책상위에 나란히 놓고 열심히 비교하고 있는 녀석의 어깨를 내가 툭하고 쳤다.
녀석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야! 너랑 사귈 놈 고르라는게 아니라 같이 일할 놈 고르라는 거야. 어느쪽이 니 맘에 드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어떤 놈이 더 일 잘할 것 같은가를 생각해 봐.”
“아, 사장님. 제가 아무려면 새식구 구하는데 음흉한 생각 가지고 고르겠습니까?”
녀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 너 애인도 없고 오래 굶었잖아.”
“아직 참을 만 합니다. 걱정마세요.” 녀석이 대꾸했다.
“그리고 그거 성희롱 발언이예요. 사장님.”
그런 녀석을 무시하고 나는 사무실의 문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나, 김사장 좀 만나보고 곧장 퇴근 할 거니까 너도 대충 정리하고 퇴근해.”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해 보였다.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녀석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저장목록에 없는 전화번호였지만 액정창에 떠 있는 번호를 보자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는 순간 알수 있었다.
“여보세요.”
“이준합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지금 통화 불편하신 것은 아니신지요.”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느긋한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문자를 드리려다가 그 편이 오히려 더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요. 혹시 오늘 시간 좀 되시나요?”
“특별한 건 없지만 무슨 일이신지......”
“별건 아니고요. 그냥 제가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정말 신촌은 오랜만이네요.”
지환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그는 이미 꽤 술을 한 듯 해 보였다.
그리고 지환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긴장감은 이제 사라진 듯 보였다.
그의 굳어졌던 얼굴의 근육은 술기운의 영향인 듯, 풀어져 있었고 붉게 변해 있는 그의 얼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그의 입술 주위에 번졌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그의 입술의 끝이 슬며시 올라가고 눈을 찡긋 거리면서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지환에게 술을 권했다.
그렇게 지환과 마주앉아있는 그는 정작 자신의 할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는 묻지도 않은 예전의 자신의 대학생활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았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든 까닭인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서 잊어버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내가 가려는 길은 정치였는데...정치가가 되어서 세상을 바꿔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
"그때 나의 외골수의 성격에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무작정 그것에만 목표를 두고....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불그레한 얼굴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마치 후회스러운 과거를 회상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술잔을 들고 추억에 젖어있는 듯한 그의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그래....” 휴대폰을 귀에 대고 그가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중이야.” 그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 주위를 슬며시 문질렀다.
“나중에 전화할게.”
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지환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만나고 있는 중이야.’ 라는 그의 말이 마음에 걸려 지환이 슬며시 물었다.
“지금 통화하신 분이 혹시 저를 아나요?”
“아.....” 그가 고개를 돌려 지환을 보고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집에다가 그냥, 오늘 예전 친구를 만날거라고 말을 해놓아서......”
“...........”
그의 시선이 다시 테이블 한쪽에 놓여있던 양주병으로 옮겨가고 지환이 얼른 그것을 들고 그의 잔을 채웠다.
“그런데, 오늘 제게 하실 말씀이라는게......” 슬며시 지환이 그에게 물었다.
“아......그거요.” 그가 슬며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던 듯도 싶네요. 별것 아니었을건데.”
“..............”
“누가 종로에서 우안이를 봤다고 해서요.” 겸연쩍은 미소를 그가 지어보였다.
“그리고 나서 자꾸 우안이가 종로에 오는 것이 눈에 띈다고......”
그가 술잔을 들고 지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두 잔이 부딫치는 순간 그의 손에 쥐어있던 잔이 미끄러져 떨어져 버렸다. 테이블 위로 술이 쏟아지고 술잔은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와주려는 지환의 손을 만류하고 그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수건으로 서류와 자신의 다이어리를 서투르게 문질렀다. 글자가 번지고 젖어버린 종이가 찢어졌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두툼한 다이어리에 꽃혀있던 종이쪽지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바의 여종업원이 티슈를 가지고 뛰어와 테이블 위를 문질렀다.
자신의 옆에 있는 바닥으로 밀려와 떨어진 서류와 종이쪽지를 지환은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종이조각 사이에 바닥에 떨어진 작은 사진한장이 그의 눈 안에 들어왔다.
“강인혁 선생님...”
“이리 주세요.”
중얼거리면서 사진을 집어들고 들여다보고 있는 지환에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다른 손에 들려있던 서류들과 함께 그 사진을 그에게 건네면서 지환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받아든 종이더미를 그는 자신의 가방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티슈를 몇장 뽑아들고 자신의 얼굴과 손, 그리고 젖어버린 그의 배와 사타구니, 허벅지 부분을 문질렀다.
“죄송합니다.”
그가 술에 취한 얼굴에 멋쩍은 표정을 하고는 지환을 보고 웃어보였다.
“저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선생님의 사진을 그가 갖고 있을리는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흐릿한 불빛에 취기에 얼떨떨해진 자신이 잘못보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보면서 지환이 입을 열었다.
“한국대학교 나오셨나요?”
“지환씨.”
그런 지환을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내가 지환씨를 만나자고 한 것은...”
“.......”
“지환씨가 우안이 친구라고 하셨으니 드리는 말씀인데...우안이에게 나를 찾지 말라고 확실하게 얘기 좀 해달라는 거예요.”
“.......”
“공연히 종로에 들락거리면서 과거의 지인을 찾아다니지 말라고....”
그가 말을 멈추고 젖어 버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그의 팔꿈치 위쪽에 흐릿한 흉터 자국이 언뜻 지환의 눈에 띄었다.
틀림없이 화상의 흉터로 보였다.
갑자기 지환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예, 알겠습니다.” 짐짓 무표정한 투로 지환이 그에게 대답했다.
“그런데...혹시....”
지환의 말에 다시 양주병에 손을 뻗던 그가 지환을 바라보았다.
“화재가 있던 날, 그때 우안이와 같이 계셨던 것은......”
“나는 그때 대전 본가에 있었어요.” 그가 별것 아니라는 듯 조용하게 대답했다.
“어머님이 좀 편찮으셔서 다녀오느라고.....”
“우안이는 아직도...”
술잔을 들고 한번에 들이키고는 얼굴을 한번 찡그리면서 잔을 내려놓은 후에 지환이 입을 열었다.
“그쪽...준하...형을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저 술 김에 나온 말이었을 수도, 그의 흉터를 본 후 혹시 그가 정말로 우안이 말한대로 목숨을 걸고 그를 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그런 오지랖이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 그의 말에 준하가 피식 하고 웃었다.
술에 취한 지환에게 그 웃음은 견딜 수 없는 냉랭한 비웃음으로 보였다. 마치 상대가 한 말의 내용이 가치가 없다는 듯한 경멸적인 웃음으로 지환에게는 느껴졌다.
순간 지환이 가지고 있던 상대방을 향한 작은 호의와 호감, 그리고 연민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뭐예요?”
술에 약한 자신도 이제 상대만큼 취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지환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와버렸다.
“10년이란 세월이 우스워요?”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표정이 굳어진 채 준하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안이는 20대의 황금같은 10년을 고스란히 당신 때문에 날렸어.”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지환이 벌떡 일어났다.
“당신이 부족할 것 없이 행복하게 꿀 빨면서 보낸 그 10년을 걔는 가슴에 멍이 들어가면서 자기 때문에 당신이 죽은 줄 알고 고통속에서 보냈다고.”
“야!”
그가 그런 지환을 노려보면서 고함을 쳤다.
“당신이 우안이 만나!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말해. 10년 전에 당신이 죽었으니까 이제 찾지 말라고!”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지환은 술집문을 박차고 나가 좁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건물의 밖으로 나와 주위를 돌아보고는 두세걸음 발을 옮기는 지환의 어깨를 뒤쫒아 뛰어나온 그가 붙잡아 세웠다.
“너가 뭘 안다고 그래.” 지환을 돌려세운 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지환을 노려보았다.
“너가 도대체 뭘 알아.”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굳어진 볼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우안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때 우안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네가 눈꼽만큼이라도 알기나 해?”
그가 지환의 가슴을 거칠게 밀었다.
“지금 그 녀석이 어떤 상황에 처 한지, 네가 알기나 해? 도대체 네가 뭘 안다고 끼어들어서 일을 망친거야!”
험악하게 지환을 노려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붉은 핏줄이 서 있었고, 그의 악문 입 주위에 경련이 일었다.
한낮에는 반팔티 하나만을 입고도 이제 가끔씩 덥다는 느낌도 들기도 했지만, 해가 지고 난 후에는 대충 바람막이 정도는 입고 있어야 할 정도로 쌀쌀해졌다.
큰 배가 파도를 가르고 지나간 후에 그 뒤편에 남은 바닷물 표면은 잔잔함을 잠시 유지하듯, 지환은 다시 자신만의 느릿하고 변화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주말 저녁, 지환은 오랜만에 다시 친구 녀석들과 종로에 있는 작은 술집에 모여 있었다.
그 중의 한 녀석이 가입했다는 밴드의 모임에서 얼마전에 만났다는 상대의 사진이 들어있는 그 녀석의 휴대폰을 돌려보았다.
그리고, 각자가 판단하는 그 상대의 외모의 점수과 성격, 그리고 직업과 능력을 거쳐, 이제 만나본적도 없는 그 남자의 성적인 매력과 능력까지 탈탈 털어내고 있었다.
모두 적당히 취해 있었고 발그레하게 된 얼굴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녀석들 중에서 술집의 입구를 향하고 앉아있던 친구의 표정이 바뀌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저 사람 그 사람 아냐?”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술집의 입구로 향했다.
“아, 그렇네.” 옆에 앉아있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입구를 바라보던 지환의 시야에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이 술집안의 사람들을 하나씩 눈여겨 보며 확인을 하고 있는 듯한 우안의 모습이 들어왔다.
“혹시 아는 술 상대가 없을까 하고 찾아보는 것 아닐까?”
“그럴지도....”
친구녀석들의 실 없는 웃음속에서 우안의 시선이 지환과 마주쳤다.
그리고 한순간 그렇게 그 둘은 얼떨결에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우안은 그를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한번 고개를 돌려 홀 안을 둘러본 후 몸을 돌려 술집의 문을 닫았다.
예전의 일을 사과하고 싶었던 지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히 문을 향했다.
“안녕하세요. 우안씨”
그에게 등을 보이고 걸음을 옮기고 있는 우안을 그가 불렀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지환을 바라보았다.
“아...예...”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잘 지내시죠?”
“예. 그리고....” 지환이 말을 잇기 전 자신의 주위를 슬며시 곁눈질로 살폈다.
“죄송합니다. 전에 제가...괜히 쓸데없는 말을....”
“아니예요.” 지환의 말에 그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제가 술김에 순간 감정적으로 되어버렸던 거예요. 아무 상관없는 애먼 지환씨에게 제가 실수를 한 겁니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가 지환에게 슬며시 고개를 꾸벅해보였다.
“제가 미안하지요.”
“그런데 누구...찾으시나봐요.” 얼떨결에 아무 의미없이 지환이 그에게 물었다.
“예, 그냥, 누군가를 좀 찾아보느라고....” 그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히즈끼 형이라면 저 안쪽에 다른 일행분들하고.......”
“아...” 그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 형을 찾는게 아니고...” 그가 손을 들어 뒷통수를 긁적였다.
“얼마전에 길에서 우연히 예전에 형이 살아있을 때 가깝게 지냈던 사람과 마주쳤어요.”
“.............”
“나 보다 그 형하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형하고 사귀면서 나이도 동갑이다보니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었거든요.”
그의 말에 지환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를 보고 못본척 하더라고요. 내가 인사까지 했는데....”
“...........”
“병원에서 화상치료를 하고 퇴원하고 나서 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형의 부모님이 오셔서 형을 데려갔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그래도.....”
그가 말을 멈추고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만약에 형이 화장해서 납골당 보관함속에 한 줌의 재라도 되어서 남아 있으면 가서 꽃이라도 한송이 놓고, 강물에 뿌려졌다면 거기로 찾아가서 이제 앞을 보고 열심히 살겠다고,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보내주려고 했었어요.”
“........”
“그런데 형의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형과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그저 안면만 있던 거라서 연락처를 제가 알지 못했고,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던 그 친구도 전화번호를 바꾸었더라구요.”
“.........”
“그렇게 그냥 감쪽같이 나 혼자 남겨져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종로에서 얼마전에 그를 보게 되어서, 혹시 운좋게 다시 찾게 되면 그 후에 형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려고요.”
“.........”
“형을 마지막으로 잘 보내고 이제 저도 제 인생 살아보려고요.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도 찾아보고 배우고 싶은 일도 배우고, 또......”
그가 말을 멈추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지환씨 덕분에 이제 사람들하고 부딪히는 것도 자신감이 생겼고요. 계속 혼자서 외롭게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겸사겸사 돌아다니면서 예전에 형하고 같이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 중에서 아무나 만나 볼수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다니고 있어요.”
“........”
“자신감을 가지고 반드시 찾아 볼 거예요. 그리고 확실하게 끝마무리를 짓고 내 인생 살거예요.”
“저기....”
망설이던 지환이 그에게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뒤를 돌아 어두운 골목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수요일의 퇴근 무렵이었다.
내가 건넨 두 장의 이력서를 책상위에 올려 놓고 지환은 그것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꽤 많아진 일로 나와 지환이 둘이서 처리하기에는 부담이 되기 시작한 지 꽤 오래 되었고 미루고 미뤘던 신입사원의 채용을 더 이상 미루기에도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녀석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여러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회사 분위기 상, 그래도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들이는 것이 여러모로 마음이 편할 듯 해서 발이 넓은 장현이에게 부탁을 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보내 온 그 두장의 이력서에 있는 녀석들은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입견이긴 하지만, 왠지 모르게 한 녀석은 너무 뺀질거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녀석은 똥오줌 못가리고 주어진 일도 감당을 못할 듯 굼떠 보였다.
회사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변두리의 작은 상가의 2층에 조그마한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대우도 변변하게 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무슨 대단한 직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꼴에 사장이라고 나도 그 ‘이왕이면’ 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환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그 이력서 두 장을 넘겨주고 그 녀석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을 하면서 이력서 두 장을 책상위에 나란히 놓고 열심히 비교하고 있는 녀석의 어깨를 내가 툭하고 쳤다.
녀석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야! 너랑 사귈 놈 고르라는게 아니라 같이 일할 놈 고르라는 거야. 어느쪽이 니 맘에 드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어떤 놈이 더 일 잘할 것 같은가를 생각해 봐.”
“아, 사장님. 제가 아무려면 새식구 구하는데 음흉한 생각 가지고 고르겠습니까?”
녀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걸 어떻게 알아? 너 애인도 없고 오래 굶었잖아.”
“아직 참을 만 합니다. 걱정마세요.” 녀석이 대꾸했다.
“그리고 그거 성희롱 발언이예요. 사장님.”
그런 녀석을 무시하고 나는 사무실의 문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나, 김사장 좀 만나보고 곧장 퇴근 할 거니까 너도 대충 정리하고 퇴근해.”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을 열고 나가는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해 보였다.
책상을 정리하고 있는 녀석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저장목록에 없는 전화번호였지만 액정창에 떠 있는 번호를 보자 상대방이 누구인지 그는 순간 알수 있었다.
“여보세요.”
“이준합니다.”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지금 통화 불편하신 것은 아니신지요.”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느긋한 목소리로 그가 말을 이었다.
“문자를 드리려다가 그 편이 오히려 더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요. 혹시 오늘 시간 좀 되시나요?”
“특별한 건 없지만 무슨 일이신지......”
“별건 아니고요. 그냥 제가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정말 신촌은 오랜만이네요.”
지환의 맞은 편에 앉아있는 그는 이미 꽤 술을 한 듯 해 보였다.
그리고 지환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긴장감은 이제 사라진 듯 보였다.
그의 굳어졌던 얼굴의 근육은 술기운의 영향인 듯, 풀어져 있었고 붉게 변해 있는 그의 얼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그의 입술 주위에 번졌다가 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그의 입술의 끝이 슬며시 올라가고 눈을 찡긋 거리면서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지환에게 술을 권했다.
그렇게 지환과 마주앉아있는 그는 정작 자신의 할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는 묻지도 않은 예전의 자신의 대학생활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았다.
자신이 하려고 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든 까닭인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서 잊어버린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내가 가려는 길은 정치였는데...정치가가 되어서 세상을 바꿔보는 것이 꿈이었어요."
"....."
"그때 나의 외골수의 성격에 다른 것은 보지 못하고 무작정 그것에만 목표를 두고....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불그레한 얼굴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가 마치 후회스러운 과거를 회상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술잔을 들고 추억에 젖어있는 듯한 그의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그래....” 휴대폰을 귀에 대고 그가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중이야.” 그가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 주위를 슬며시 문질렀다.
“나중에 전화할게.”
그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지환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만나고 있는 중이야.’ 라는 그의 말이 마음에 걸려 지환이 슬며시 물었다.
“지금 통화하신 분이 혹시 저를 아나요?”
“아.....” 그가 고개를 돌려 지환을 보고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집에다가 그냥, 오늘 예전 친구를 만날거라고 말을 해놓아서......”
“...........”
그의 시선이 다시 테이블 한쪽에 놓여있던 양주병으로 옮겨가고 지환이 얼른 그것을 들고 그의 잔을 채웠다.
“그런데, 오늘 제게 하실 말씀이라는게......” 슬며시 지환이 그에게 물었다.
“아......그거요.” 그가 슬며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 생각했던 듯도 싶네요. 별것 아니었을건데.”
“..............”
“누가 종로에서 우안이를 봤다고 해서요.” 겸연쩍은 미소를 그가 지어보였다.
“그리고 나서 자꾸 우안이가 종로에 오는 것이 눈에 띈다고......”
그가 술잔을 들고 지환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두 잔이 부딫치는 순간 그의 손에 쥐어있던 잔이 미끄러져 떨어져 버렸다. 테이블 위로 술이 쏟아지고 술잔은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와주려는 지환의 손을 만류하고 그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수건으로 서류와 자신의 다이어리를 서투르게 문질렀다. 글자가 번지고 젖어버린 종이가 찢어졌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두툼한 다이어리에 꽃혀있던 종이쪽지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바의 여종업원이 티슈를 가지고 뛰어와 테이블 위를 문질렀다.
자신의 옆에 있는 바닥으로 밀려와 떨어진 서류와 종이쪽지를 지환은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종이조각 사이에 바닥에 떨어진 작은 사진한장이 그의 눈 안에 들어왔다.
“강인혁 선생님...”
“이리 주세요.”
중얼거리면서 사진을 집어들고 들여다보고 있는 지환에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다른 손에 들려있던 서류들과 함께 그 사진을 그에게 건네면서 지환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받아든 종이더미를 그는 자신의 가방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티슈를 몇장 뽑아들고 자신의 얼굴과 손, 그리고 젖어버린 그의 배와 사타구니, 허벅지 부분을 문질렀다.
“죄송합니다.”
그가 술에 취한 얼굴에 멋쩍은 표정을 하고는 지환을 보고 웃어보였다.
“저 혹시....”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선생님의 사진을 그가 갖고 있을리는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흐릿한 불빛에 취기에 얼떨떨해진 자신이 잘못보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보면서 지환이 입을 열었다.
“한국대학교 나오셨나요?”
“지환씨.”
그런 지환을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 내가 지환씨를 만나자고 한 것은...”
“.......”
“지환씨가 우안이 친구라고 하셨으니 드리는 말씀인데...우안이에게 나를 찾지 말라고 확실하게 얘기 좀 해달라는 거예요.”
“.......”
“공연히 종로에 들락거리면서 과거의 지인을 찾아다니지 말라고....”
그가 말을 멈추고 젖어 버린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그의 팔꿈치 위쪽에 흐릿한 흉터 자국이 언뜻 지환의 눈에 띄었다.
틀림없이 화상의 흉터로 보였다.
갑자기 지환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예, 알겠습니다.” 짐짓 무표정한 투로 지환이 그에게 대답했다.
“그런데...혹시....”
지환의 말에 다시 양주병에 손을 뻗던 그가 지환을 바라보았다.
“화재가 있던 날, 그때 우안이와 같이 계셨던 것은......”
“나는 그때 대전 본가에 있었어요.” 그가 별것 아니라는 듯 조용하게 대답했다.
“어머님이 좀 편찮으셔서 다녀오느라고.....”
“우안이는 아직도...”
술잔을 들고 한번에 들이키고는 얼굴을 한번 찡그리면서 잔을 내려놓은 후에 지환이 입을 열었다.
“그쪽...준하...형을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저 술 김에 나온 말이었을 수도, 그의 흉터를 본 후 혹시 그가 정말로 우안이 말한대로 목숨을 걸고 그를 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그런 오지랖이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 그의 말에 준하가 피식 하고 웃었다.
술에 취한 지환에게 그 웃음은 견딜 수 없는 냉랭한 비웃음으로 보였다. 마치 상대가 한 말의 내용이 가치가 없다는 듯한 경멸적인 웃음으로 지환에게는 느껴졌다.
순간 지환이 가지고 있던 상대방을 향한 작은 호의와 호감, 그리고 연민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뭐예요?”
술에 약한 자신도 이제 상대만큼 취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지환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와버렸다.
“10년이란 세월이 우스워요?”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표정이 굳어진 채 준하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안이는 20대의 황금같은 10년을 고스란히 당신 때문에 날렸어.”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지환이 벌떡 일어났다.
“당신이 부족할 것 없이 행복하게 꿀 빨면서 보낸 그 10년을 걔는 가슴에 멍이 들어가면서 자기 때문에 당신이 죽은 줄 알고 고통속에서 보냈다고.”
“야!”
그가 그런 지환을 노려보면서 고함을 쳤다.
“당신이 우안이 만나!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말해. 10년 전에 당신이 죽었으니까 이제 찾지 말라고!”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지환은 술집문을 박차고 나가 좁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건물의 밖으로 나와 주위를 돌아보고는 두세걸음 발을 옮기는 지환의 어깨를 뒤쫒아 뛰어나온 그가 붙잡아 세웠다.
“너가 뭘 안다고 그래.” 지환을 돌려세운 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지환을 노려보았다.
“너가 도대체 뭘 알아.”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굳어진 볼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우안이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때 우안이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네가 눈꼽만큼이라도 알기나 해?”
그가 지환의 가슴을 거칠게 밀었다.
“지금 그 녀석이 어떤 상황에 처 한지, 네가 알기나 해? 도대체 네가 뭘 안다고 끼어들어서 일을 망친거야!”
험악하게 지환을 노려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붉은 핏줄이 서 있었고, 그의 악문 입 주위에 경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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