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옷소매 15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무표정한 얼굴로 전방만 주시하면서 핸들을 꽉 움켜잡고 있는 장현을 지환은 흘끔거리면서 곁눈질로 살펴보고 있었다.

 
"왜?"

그런 지환을 모르는 척 가만히 있던 장현이 여전히 눈은 앞을 보고 있는 채로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

그의 질문에 지환이 마치 놀라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너, 왜 내 눈치를 보는건데?”

“..........”

“너, 혹시 그 우안이란 자식 어디 있는지 알면서 모른 척 하는거야?”

“아니예요. 저는 정말....”

사실을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도 마치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슬며시 지환이 말을 삼켰다.

“근데 너가 왜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래?”

“.........”

그의 말에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한 지환이 얼굴부터 목 아래까지 빨개졌다.

 

“어디로 가는 중인가 해서요. 조용한데 가서 얘기하자고 하시고 차로 이렇게 멀리까지 가시길래....”

지환의 말에 장현이 고개를 돌려 흘끗 그를 돌아보고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편하게 대화할 곳이 집 만한 곳이 있겠냐?”

“.........”

“남들 눈치 안보고 저 자식에게 자기가 한 짓을 자백하게 만들려고 집으로 끌고 가는거다.”

“..........”

 

 

 

 

방에서 지환이 옷을 갈아 입고 나온 후에도, 장현은 물잔을 손에 들고 굳은 얼굴로 식탁에 앉아있었다.

반쯤 물이 남아있는 머그잔을 움켜쥐고  그는 마치 무슨 생각에 잠긴 듯이 보였다.

 

잠시 후, 현관의 벨 소리가 들려왔다. 
인터폰의 모니터를 확인한 후, 여전히 꼼짝 않고 굳어버린 듯 앉아있는 장현을 한번 돌아보고,  지환이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식탁에 앉아있는 장현을 한번 흘끗 본 후에, 그가 지환을 돌아보았다.

“지환씨 아까도 말했지만......”

그가 초조한 표정으로 지환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우안이가 있는 곳을 알고 있으면 꼭 좀 말을 해줘요.”

“저도 잘.....안양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밖엔.....”

“일하는 현장에 말도 없이 결근중이예요. 기숙사에도 안들어오고 있구요.”

 

“네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같다.”

꼼짝않고 앉아 있던 장현이 고개를 돌려 준하를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건 니 똘마니들 한테나 물어봐야지.”

그의 말에 준하가 고개를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걔네들은 아냐.”

“아닌 거 좋아한다.” 경멸적인 표정으로 장현이 입가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야, 그건 그렇고.....”

마침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면서 장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뭐하나만 물어보자.”

몸을 돌려 준하를 마주보며 그가 굳은 표정으로 턱을 쳐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솔직하게 말해주면 그 우안이란 놈 찾는 거 내가 도와줄게.”

“.........”

 

“너!”

험악한 표정으로 그가 발을 옮겨 준하의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이준하란 놈이 도대체 누구냐?”

“.......”

그의 말에 순간 준하가 당황한 듯, 움찔했다.  가느다랗게 그의 입 주위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게 무슨.....”

“그러게.  그게 무슨말인지 네가 설명을 해야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도망치던 사냥감을 한방에 쓰러뜨린 사냥꾼처럼 장현이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 알고 있으니까 개수작 부리지 말고.....”

경멸적인 눈빛으로 그가 준하를 노려보았다.

“..........”

“십년전에 니놈이 살던 집에서 화재로 죽은 애 있잖아. 너와 똑 같은 이름을 가진 놈....”

얼굴에 배어있던 당황함이 천천히 사라지고 다시 태연한 표정으로 준하가 마치 아무일도 아니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너네가 그랬냐?”

“.........”

 

굳은 얼굴로 그 둘은 잠시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왜 그랬냐?”

“..........”

“똑같은 이름을 가진 녀석을 만나게 되니까 흥분 되더냐?”

“.........”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던데, 네가 시키는 대로 그 놈이 안 들어준거냐? 그래서 그랬어?”

굳은 얼굴에 험악한 표정을 하고 경멸의 눈초리로 장현이 그를 쏘아보았다.

 

“드러운 새끼.”
마치 야수가 으르렁거리듯  강렬한 눈빛으로 장현을 노려보며 악문 이빨 사이로 준하가 내뱉었다.

“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장현이 준하를 바라보았다.

“내가? 멀쩡한 생사람을 죽인 니 새끼가 아니고?”

마치 당장이라도 한방 갈길 듯한 험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장현이 그를 노려보았다.

 

“멀쩡한 생사람?”

장현의 그 말에 마치 순간 이성이라도 잃은 듯,  입 주위에 경련을 일으키며 준하가 그를 맹렬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이. 개 쥐뿔도 모르는 새끼!”

그가  장현의 목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이 자식이!” 장현이 자신의 손을 들어 그런 준하의 팔목을 잡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놀란 지환이 얼떨결에 그 둘 사이로 달려들어 양 팔로 그들의 가슴을 막았다.

 

“ ‘멀쩡한 생사람’ 이라구?”

마치 울부짖는 듯이 입에 거품을 물고 창백해진 얼굴로 꽉 다문 입 주위에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면서 준하가 장현을 노려보았다.

그의 왼쪽 눈에 눈물이 맺혀 눈꼬리 끝에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니놈이 말하는 그 ‘멀쩡한 생사람’이 내 친구를 죽였다. 이 자식아!”

“........”

갑작스런 그의 말에 장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니놈이 말한 그 ‘멀쩡한 생사람’ 이.....”
그렇게 말하는 준하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주먹으로 장현의 가슴을 쳤다.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 녀석.... 돈벌이에 쓰려고  사생활을  발가 벗겨서....”
입을 벌리고 뜨거운 한숨을 뱉어낸  준하가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부분의 셔츠 붙잡고 잡아당겼다. 셔츠의 단추가 바닥에 떨어져 굴러갔다.

더 이상 자신을 버티지 못한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 앉아 버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그 인간 말종 쓰레기가 인혁이를....”

순간 마치 둔탁한 쇠망치로 뒷통수를 맞은 듯, 지환은 멍해져 버렸다.  한 손으로 간신히 식탁의 끝을 잡고 의자에 걸터 앉았다.

“강...인혁?”

마치 믿지 못하겠다는 듯 지환이 중얼거리면서 주저앉아 흐느끼고 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뇌리에 준하가 술집에서 떨어뜨렸던 사진이 스쳐갔다.
술기운이었을거라 생각했다.  흐릿한 조명 때문에 잘못 본 것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준하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그 이름은 그 모든 것을 그의 머릿속에서 한번에 확인시켜 주었다.

“설마.....”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헝클어진 머리로 난파선처럼 쓰러져있는 준하를  지환이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그 새끼 비제이로 한방에 뜨려고 궁리하다가 작정하고 나온거였어.”

이제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듯한 모습으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비통한 목소리로 준하가 입을 열었다.

“흥청망청 살다가 신용불량자까지 되게 생겼으니까 어떻게 하면 한방에 뜰까 하다가 생각해 낸게 종로였지.  몰래 들어와서 한 놈 걸리면, 그렇게 걸린 놈 인생은 나락에 떨어지든 말든 지는 비제이로 뜨고 돈 좀 만져 보려고 한거였어.”

“.............”

“방송 전날 미리 포비아 놈들하고 그런 것 이용해 먹으려는 보수 교회에 관련한 사람들한테  전부 다 있는대로 연락해놓고...... 자기 방송 보라고 큰거 한방 터뜨린다고 소문 내놓고  몰래 카메라로 인혁이 찍은 영상 틀어놓고 더러운 말 해가면서 방송에서 아주 쓰레기를 만들어 놨다고....”

말을 멈추고 준하가 팔꿈치로 이마를 괸 채로 한숨을 쉬었다.

 
“인터넷 모임에 나가서 새로 가입했다면서 먹잇감 찾고 있던 놈에게 하필이면 인혁이가 재수없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어리버리하고 모자라 보인다고 호의를 베풀고 친절하게 대해줬던게....”

“.........”

“게다가 그 새끼가 자기 이름이 이준하라고 하니까,  자기 베프랑 동명이인이라고 큰 인연이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그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장현은 그렇게 낮은 한숨을 뱉어내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반반하게 생겼겠다, 강남에 살면서 번듯한 대기업 다니는 젊은 애가 추잡한 생활을 즐기는 호모라고 방송에서 떠들어 댈 생각에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접근했겠지.”

“.........”

“가난한 집 아들에다가 대학도 못 가고 힘들게 살아왔다고 하니 착한 그 인혁이 녀석이 안됐다 싶어서 더 잘해줬을거고.....”

“그... 방송은?”
그런 그의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굳은 표정으로 장현이 물었다.

“내가 그 얘기 들었을 때는 이미 삭제하고 파프리카도 탈퇴 했어. 지 놈두 크게 문제될 줄 알고 곧 삭제했겠지, 그래도 이미 볼 사람은 다 보고 퍼질 만큼 다 퍼져서.....”

“.........”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혁이 녀석이 나에게 몇 번을 말을 하려고 했었던 거야. 문자 내용도  도와달라고 한 거였고...”

“........”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일 많아 바쁘다‘ 고........”

그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 자식 목소리가 웬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으면서도 ‘바쁘니 나중에 만나서 얘기하자’ 고....”

“........”

“절친이라면서 그 전에도 배신 때리고 또 다시 녀석이 그렇게 힘들 때 등 돌린 나 같은 게 무슨 친구라고........”

그가 울먹이면서 말을 하고는 다시 낮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장현이 손을 들어 그의 어깨에 슬며시 대고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 자식, 그때 숨 쉬면서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지옥 같았을지....”

그의 입에서 둔탁한 신음 소리가 나오면서  손으로 자신의 와이셔츠 찢어진 부분을  힘껏 잡아당겼다. 어깨 부분에서 셔츠가 뜯어져 그 속에 감춰져 있던 화상의 흉터를 드러내면서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그가 식탁에 쿵 하고 자신의 이마를 내려쳤다.

장현이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녀석이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 난간을 들이받았을 때, 도대체 그 녀석의 머릿속은 어땠을 지.......”

그가 울음섞인 큰 한숨을 쉬었다.

 

그의 말에 지환은 순간 가슴이 막혀왔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녀석이 두 팔로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그런데도 그 자식은 그런 패닉상태에서도 나에게 부탁을 했다.”

준하의 목소리가 지환에게 마치 꿈속에서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려왔다.

“자기네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이 녀석이 하나 있다고, 오랫동안 눈여겨 봐 왔다고....성실하고 인성도 올바른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집안이 너무 가난하고, 집에서 학대받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서 녀석을 볼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

“도대체 어떻게 생긴 애 길래 그러냐고 했더니 사진을 보여주더라.”

말을 잇기 전 그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우안 이라고... 이름도 평범하지 않아서 쉽게 누군지 알 수 있을거라고...”

그의 말에 지환이 무거운 고개를 힘들고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종로에서 그 녀석을 보게 되면 자기라고 생각하고 아껴달라고.....자기가 도와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

다시 한번 말을 멈추고 그가 울음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인혁이 녀석이 그렇게 떠나고 그 이유를 알게 된 후부터 나는 내 이름과 똑같은 그 놈을 찾아다녔다.”

비통한 표정으로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 전에 녀석을 팔아넘긴 나 같은 놈이.....  녀석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복수밖에 없었어.”

‘.......“

”발 넓은 믿을만한 몇 놈에게 그 놈의 사진을 돌리고  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잡게만 해주면 원하는 것 다 들어주겠다고.  내 전부,  내 목숨도 내놓겠다고....“

”......“

”그런데 그 놈은 어딘가에 꼭꼭 숨어서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

”......“

”나를 마음에 두고 잘 따르는 애들을 모았다.  인원이 많아지면 찾기도 쉬워지겠지.  리더 행세를 하고 녀석들에게 슬슬 웃음을 팔면서 우스갯소리로 나와 같은 이름 가진 놈 찾아오면 하룻밤 같이 보내주겠다고 했다.“

”......“

”그런데 잡으려고 하던 그 놈은 나타나지 않고  어느 날 종로에서 우연히 그 녀석을 보았다. 인혁이 녀석이 준 사진속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놈이 내 앞에 서 있던 거였어.”

“.......”

“슬그머니 그 녀석 앞으로 가서 웃으면서 이름을 물었다. 그 녀석이더라.”

 

 

준하가 고개를 들고 장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분노로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불 속에서 술 취한 우안이를 끌고 나올 때, 테이블 옆에 묶여서 벌벌 떨고 있는 그 새끼의 공포에 질린 눈과 마주쳤다.”

일그러진 얼굴로 그가 장현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안이를 밖으로 끌고 나와 내려놓는데, 안에 또 사람이 있느냐면서 소방대원 한명이 뛰어들어가려고 하는거였어.”

“.........”

 

“그 사람을 내가 꽉 붙잡았다. ‘안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고.. ‘들어가지 말라’고...”

 

 

 

관련자료

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dolldoll2" data-toggle="dropdown" title="doll2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doll2</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아...!
아까워서 한번에 못 읽겠습니다.
..
아껴 두었다가 천천히 나누어서 읽어야겠어요.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