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너머의 세상 8

작성자 정보

  •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영혼까지 쓸어갈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집 앞의 공터를 샅샅이 훑고 지나가고 있는 밤이었다.

 
패딩의 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은 채로 부지런히 건물 안으로 바람을 피해 뛰어 들어 온 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부지런히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그 녀석은 거실의 한 구석에 놓여있는 방석위에 웅크리고 앉아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벽쪽을 향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도 그런 그 녀석을 무시하는 척, 방으로 들어와 패딩을 벗고 옷걸이에 걸어 벽에 걸어놓고는 가만히 침대의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승호가 녀석을 데리고 온지 벌써 열흘이 지나가고 있었다.

   

낯선 사람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집에 온 녀석이었지만 승호가 품에서 내려놓자마자 그 녀석은 내 눈을 피해 승호의 뒤에 숨어 버렸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보고 곧 거실의 한쪽 구석으로 도망을 치고는 그곳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간식이라도 주려고 가까이 가는 기색을 느끼기라도 할라치면 녀석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순식간에 집안의 다른 구석으로 도망을 쳐 버렸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그렇게 그 녀석은 나의 손길을 끈질기게 피해서 숨어 다녔다.

 

 

“공격적인 성격이라며? 치와와는 집도 잘 지키고 주인한테 충성한다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내가 승호에게 투덜거렸다.

“아직, 여기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그리고 저 녀석이 아직 너가 주인인 것을 모르고 있는거고 말야. 이 집이 자기집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힐 때까지 기다려 줘야지..” 그가 피식 웃었다.

“아, 그리고 말야.” 그의 말에 구석에 무심히 나의 눈길을 무시하고 있는 강아지에게서 시선을 승호에게 돌렸다.

“반디는 사실..... 유기견이었어.” 그가 낮은 목소리로 슬며시 중얼거렸다.

“.........”

“그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은 듯, 나의 표정을 살피며 그가 슬며시 한숨을 지었다.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전 주인에게서 버림을 받아서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주차장 한 구석에 쓰러져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걸 보고 내가 집으로 데려왔지.”

“........”

“병원에 데려갔는데 굶어서 아사 직전이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피부병같은 자질구레한 증상 빼고는 큰 병은 없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주인이 버린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

“혹시 주인이 잃어버린 건 아니구?”

“잃어버렸으면 벌써 동네 여기저기 찾는 다는 벽보도 붙였을 건데 그런것도 없었어. 근처에 있는 동물 병원에서도 누가 치와와 잃어버렸다는 말도 들은 적 없다고 했고...”

“.......”

“반디는 털이 짧은 종도 아니고 장모에다가 순종암컷이라고 하더라고. 그럼 가격도 꽤 나갈거야. 그런 녀석을 왜 내다버렸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여튼 녀석을 내가 데려다가 기른지 이제 6개월이 좀 넘어간다. 의사 말로는 두 살 좀 넘었다고 그러더라구.”

“반디라는 이름은?”

“내가 붙였어. 녀석의 인생도 참 답답하고 어둡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딧불만한 빛이라도 피워서 자신이 갈 길이라도 찾길 바래서...”

“........”

“그 녀석 보면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말야. 버려졌다고 해서 쓸모없는 존재도, 쓸모 없는 인생도 아닌거야.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거잖아.”

그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에게 다시 시선을 주고는 낮게 읊조렸다.

 

“무슨 말이야? 너한테....무슨 일이 있었어?” 슬며시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는 나의 시선을 피해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슬며시 눈물이 고이더니 마침내 그의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슬며시 고개를 숙이면서 그가 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볼을 문질렀다.

“나도 가족에게서 버려졌었어. 어렸을 때....”

“.......”

“내가 일곱 살 때 엄마가 돌아가셨거든.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재혼하셨어. 새 엄마는.... 뭐 좋은 분도 많이 계시겠지만.... 나를 귀찮아 하셨어. 사실, 뭐, 이해가 되기는 해. 남의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키운다는 것이 ‘쉽다 어렵다’라는 말을 떠나서 끔찍할 수도 있는 일일 테니까.  뭐 풍족하게 살던 형편도 아니고.... ”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끗 보고는 아픈 웃음을 한번 지어보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처음엔,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현실로 닥치면 완전히 다른 일이 될 테니까. 자기가 낳은 자식도 힘들고 짜증 날 때가 많은건데. 매일 남의 자식을 돌본다는게 오죽하겠어? 점점 더 꼴보기 싫어지고 눈앞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겠지.”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 천천히 나의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의 과거속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름방학 때였어. 그때 우리 식구들은 청주에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버지와 새 엄마가 대전 시내에 까지 가서 시장을 보러가시는데 나를 데리고 가셨어.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형은 그때 방학 기간이라고 집에 내려와 있었는데, 아버지가 형은 그냥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셨어. 한참을 시장 여기저기를 다니시더니 한 포목점 앞에서 아버지가 날더러 다리 아프고 힘들테니 계속 따라 다니지 말고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하셨어. 다른 곳에서 먼저 물건을 사서 곧 돌아올거라시면서.....”

“.......”

“아버지가 꽤 엄하셔서 어리광은커녕 ‘싫다’는 말 한마디 하지도 못했어. 그리고 그냥 그곳에 서 있었지. 그런데 몇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시지 않으셨어. 날은 어두워지고 가게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버리고....“ 말을 멈추고 그가 다시한번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파출소를 찾아가 본다던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그냥 생각에 지나지 않았어. 나중에 아버지에게 ‘왜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니까 말을 듣지 않았느냐’ 라는 야단을 맞을 것이 두려웠어. 그래서 머릿속으로는 어떻게든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내 입은 열리지 않고 발도 떨어지지 않았어. 그리고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지고 한밤중이 된 후에, 그제서야 나는 문이 닫힌 가게의 문과 벽사이의 틈 사이로 파고 들어가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 그가 말을 멈추고 낮은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밤을 새고는 다음날에도 여전히 다시 그 포목점 앞에 서 있었어. 너무 배가 고파서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서도 집에 돌아가서 밥 먹고 쉬고 싶다는 생각과 아버지와 새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어. 그렇게 어린 녀석이 ‘설마 이 시장을 다 돌아다니면서 할 일을 찾으면 나 혼자 먹고 살지 못하겠어?’ 라는 발칙한 생각을 했었으니까.... ” 그가 다시 말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도록 내 옆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어. ‘승호야!’ 하고....”

그가 말을 멈추고 자신의 눈을 슬며시 비볐다.

“형이었어. 형이 나를 보고는 정말 미친 듯이 달려와서 나를 끌어안고는 울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때 난 눈물이 나지 않았어.” 그가 말을 멈추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입을 막고는 터져나오는 소리를 죽였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는 마침내 어깨를 들먹이면서 낮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등에 대려고 하다가 다시 손을 거두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위로 할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나의 그런 위로가 도움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마치 혼자 인 듯 그렇게 편하게 자신의 감정을 토해낼 수 있도록 가만히 두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잠시 후, 조금 진정이 된 듯, 그가 두 손으로 자신의 볼을 문지른 다음 다시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이 그렇게 나를 붙잡고 울고 있는데, 나는 멍한 채로 그렇게 우는 형의 목을 끌어안고 내가 형을 다독거렸어. 울지 말라고..나 괜찮다고...”

“.......”

“그길로 형을 따라서 서울에 사는 할머니네로 왔어. 그리고 일주일 정도 거기서 머물다가 다시 형이 나를 외할아버지 댁으로 데리고 갔지.”

그가 다시한번 낮은 기침을 했다.

“그날 외할머니가 나를 붙잡고 밤새 우셨어. 그때 고등학생이던 형은 다시 할머니댁으로 가야 했어. 외할아버지 댁도 먹고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나 혼자 얹혀 사는 것도 힘든 일이었어. 돌아가기 전에 형이 약속을 했어. 무슨일이 있어도 형이 날 돌보겠다고 조금만 참으라고....”

“.......”

“형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정말 안 해본일 없이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일이면 다 했어. 그리고 나중에 나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면서 형하고 같이 살게 됐지.”

그가 말을 멈추고 두 손으로 눈을 슬며시 문질렀다.

“뭐, 배운 게 없으니, 그 다음에도 별별일 다 해보다가 군대에 갔어. 그리고 제대하고는 작은 기업체의 배송일을 맡아서 하다가 그 회사 사장의 차를 운전하게 됐지. 그러다가 사모의 눈에 띄어서 지금은 사모가 하는 일 도와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그가 말을 멈추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잠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럼 그 형은... 홍제동에 산다던...” 궁금하다기 보다는 분위기를 바꾸고자 무엇인가 말을 해야 할 듯해서 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가 대답했다.

“지금은 그래도 그럭저럭 집도 하나 장만하고 결혼해서 조카도 있지.” 피식 하고 그가 웃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반디도 그런 아픔이 있는 걸 거야. 그러니까....”

“그래. 알았어.” 작은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내가 잘 보살필게. 반디는 걱정하지마.”

 

 

그렇게 혹 떼려고 하던 일이, 어쩌다 보니 혹을 붙인 격이 되어버려서, 나는 이제 출근 전과 퇴근 후에 강아지의 눈치까지 살피게 되었다.

추위에 민감하다고 해서 항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보일러를 틀어 놓았으며 반찬거리로는 싼 것을 찾으면서도 녀석을 위해서는 꽤 영양가 있다는 값비싼 사료와 군것질 거리에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녀석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고, 냉담하게 자신의 방석위에만 앉아서 나를 피했다.

그리고 밤사이 내가 침대에 누워 자는 동안과 아침에 출근한 후에는 집안의 이곳 저곳을 소리내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퇴근 후에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던 나를 문가에서 어슬렁거리던 그 녀석이 건방진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예의 그 거들먹거리는 걸음으로 조용히 자신의 방석위로 돌아가 버렸다.

 

방바닥에 앉아서 등을 침대에 기대고 티비를 보고 있던 나의 옆구리에 어떤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마침내 내 옆에 기대고 있는 녀석을 발견했다.

시선은 나와의 반대방향을 향하면서도 그 녀석은 몸을 내 허벅지에 대고 누웠다. 그리고는 큰 한숨을 쉬고는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몰랐다.

만지거나 쓰다듬으면 다시 몸을 돌리고 도망칠 듯 해서 나는 가만히 소리도 내지 않고 시선만 돌려서 녀석을 내려다 보았다.

 

침대 위에 올려놓았던 전화벨이 울렸다.

가능한 그 녀석을 자극하지 않도록 손을 길게 뻗어 슬며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액정화면에 ‘이상현’ 이라는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무슨 약속 있어요?” 그의 밝은 목소리가 내 귀를 채웠다.

“글쎄요....” 승호와의 약속이 아직 잡혀있지 않은 터라서 갑자기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아....” 그가 눈치를 챈 듯 어색한 말투로 마치 나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슬며시 말을 바꾸었다.

“특별한 일은 아니고요. 혹시 봐가면서 다른 약속 없으면 코엑스에서 ‘국제 디자인 대전’이 열리는데 같이 보러 가는게 어떨가 하고요. 저도 보고 싶었던 거고 지석씨도 이럴 때 봐두면 무역일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렇군요.”

대답을 하면서도 나의 시선은 여전히 옆에 누워있는 그 녀석에 가 있었다.

“그럼....”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내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도록 할게요.”

“네. 근데...” 그가 머뭇거렸다.

“네?”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그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속삭여요? 무슨 일 있어요?”

“아...아니예요.” ‘큭’ 하고 내가 슬며시 휴대폰에 대고 웃었다.

“냉정한 녀석하고 이제 간신히 친해지려고 하는 순간이라서요.”

“네?‘ 그가 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거든요. 근데 나에게 너무 무심하게 굴다가 이제 처음으로 저한테 살을 대고 누웠어요.”

“아.. 무슨 일 인가 했었어요.” 그가 밝게 웃었다.

“복 받은 녀석. 나중에 한번 보여주세요.” 그의 웃음소리가 내 귀를 채웠다.

 

그리고 그 녀석은 여전히 그렇게 누워서 고개를 들지 않고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내 쉬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