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너머의 세상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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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 소리에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햇볕이 방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옆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보니 열시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지훈이 형이 반디를 돌려주려고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에 떠올랐다.
벽에 걸려있던 후드티를 대충 걸치고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총각. 1층사는 할머니여.” 열린 문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할머니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반디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올라왔지.” 걱정 어린 표정으로 할머니가 나의 눈치를 살폈다.
“예. 찾았어요. 할머니. 아는 사람이 데려 갔다고 하네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얼굴에 억지 웃음을 띠고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아이고. 다행이네. 고마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나의 손을 잡았다.
“아니예요. 할머님. 심려 끼쳐드려서 제가 너무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쉬세요.”
“그려. 아주 잘됐네.” 마침내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지으시고 나에게 들어가라고 손짓을 하고는 할머니가 계단으로 몸을 돌리셨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창문을 슬며시 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겨울 바람이 쏜살같이 나의 얼굴을 훑고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몽롱했던 기운이 사라지고 정신을 완전히 차릴 수 있었다.
창문을 빼꼼히 열어놓고는 침대에 앉아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승호도 없어진 반디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을 터였다. 우선 그에게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그의 번호를 눌렀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전화 하려고 하던 참인데....” 신호가 가기 무섭게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디 찾았어.”
“그래? 어디서?” 승호의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 말대로 전에 사귀던 형이 데려갔대. 돌려준다고 했다.”
“정말?”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물어보고는 마치 어이없다는 듯, 비웃는 듯한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걔가 어떻게? 무슨 능력으로?”
“...........”
이제 그럭저럭 일이 해결 되어서 그렇지 않아도 너에게 대충 얘기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이해되지 않는 그의 갑작스러운 말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우선, 반디는.......” 말을 잇기 전 피식하는 그의 비웃음소리가 다시한번 들려왔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그 개*끼 원래 우리 사장 집에서 키우던 거였어. 내가 슬쩍 몰래 가져다가 너한테 잠깐동안 맡겨놨던 거야. 그러다가 마침 적당한 구매자가 나오길래 팔아 버렸지.”
“뭐라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런 그의 그런 말은 하나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마치, 그가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농담을 하는 듯이 느껴졌다.
“재미없어. 하지 마!” 그렇게 생각하자 슬며시 짜증이 몰려왔다. 나는 걱정할 그를 위해서 전화를 했는데, 나를 가지고 진지한 일로 농담을 하다니.....
“진짜야.” 여전히 장난스럽게 그가 픽 하고 웃었다.
“1층 할머니에게 네 사진 보여주니 아니라고 하던데. 너 왜 그래?”
“야! 너 정말 순진하다.” 그의 목소리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사모가 성격이 지*맞긴 해도 돈이 많아서 깐깐하고 최고급만 손에 넣으려고 하거든. 그 개*끼가 그래 봬도 희귀모색에 혈통도 좋아서 치와와중에서는 최고가품이야.”
“.........”
“우리 형이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시골에 있는 요양원으로 옮겨와서 돌봐 주느라, 내 대신 내가 아는 동생 시켜서 반디 데려 오라고 시켰다.”
“..........”
“예전에 그 동생 녀석이 내가 너네 집에 있는 타이밍에 맞춰서 네 집 현관문 앞에 오물도 뿌려놓고 도망갔잖아.”
그가 마치 무슨 재미있는 사건이라도 말하듯이 웃으면서 떠들어댔다.
“뭐, 그 오물도 네 손 대지 않고 네 생각해서 내가 다 치웠지만....”
“왜 그런 짓을.....” 여전히 그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 채 멘붕 상태에서 나는 멍해져 있었다.
“그 덕분에 확실하게 네가 나 믿고 의지하게 되었잖아. 그래서 아무 때나 네 집 편하게 드나들 수 있게 되고, 그 일로 강아지 맡기는 것도 핑계도 되었고 말야...” 그의 히죽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앗 참. 네 통장에서 돈 좀 뺐다. 형의 병원비에 보태느라 돈이 필요했거든. 신고할 생각하지 마라. 네 방에 몰카 몇 개 설치해 놨다가 쓸만한 것 몇 개 건졌다. 뭐, 그 안에 나도 있긴 하지만.... 그거 내 생각 아니었다. 누구한테 부탁받은 거였어.”
“뭐?”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벌리고 멍해져 버렸다. 결코 나에게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그는 떠들어대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방을 둘러보았다.
“세상에 밝혀지면 너 어렵게 들어간 회사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돈이야 또 벌면 되잖아. 그냥 살아가면서 인생에서 좋은 교훈 하나 얻었다고 생각해.”
그의 목소리가 귀에서 사라진 후, 휴대폰은 나의 손에서 힘없이 떨어져 침대 아래 한쪽으로 굴러가버렸다.
멍해진 나의 머리는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멈추어 버렸다.
그렇게 살아있는 미이라처럼 굳어진 채 한참을 넋을 놓고 앉아 있었다.
아니라고,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혼잣말로 되풀이 했다. 누군가가 나를 가지고 못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그 모든 것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아서 슬며시 볼을 꼬집어 보았다.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두 사람에게 연거푸 뒤통수를 맞다니....
아니 처음부터 멍청했던 내 탓이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상황에서 나처럼 멍청할 수 있을까. 그렇게 사람볼 줄 모르고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모르고 단순할 수 있을까?
그가 나의 사생활에 속속 흘러들어와 나를 가지고 농락을 하는 것도 모른 채로 완전히 벌거벗겨진 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그가 설치한 몰카가 여전히 지금도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이 차라리 어이가 없어서 우습게 느껴졌다.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생활비를 아껴가면서 매달 떼어내어 저축해 온 여분의 통장도 그의 손으로 넘어가버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던 나는 도대체 어떠한 머저리 팔푼이 일까.
그에 대한 분노와 처해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이성적인 판단은 나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완전한 무기력감에 빠져서 몽롱한 상태로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이렇게 우울증이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몰려왔다.
그렇게 눈을 감고 누워서 존재의 사라짐을 생각했다.
죽는다는 것이 아닌 그저 나의 모습이, 내가 존재했다는 자취가 감쪽같이 사라지기를 바랬다. 그냥 그렇게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애초에 나와 같은 존재는 왜 생긴 것일까.
못난 인간은 왜 이렇게 버티면서 살면서 모욕적인 대우만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나보다 더 잘나고 미래가 환하게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세상을 등지지 않던가.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또 어떤 인간이 나에게 어떠한 짓을 꾸미고 있는 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이렇게 갈데까지 간 인생, 타석에 들어선 다음 타자에게 뺨을 내밀어 줄까? 실컷 나를 두들겨 준 후 손마디를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기분좋게 사라지는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힘들게 손을 뻗어 침대 아래에서 굴러다니는 것을 집어서 귀에 갖다 댔다.
“여보세요.”
“나야.” 호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나의 귀에 대고 그가 소리를 질렀다.
“왜...” 간신이 입 밖으로 목소리가 나왔다.
“나와.”
“.......”
“야! 듣고 있어?” 다시 그가 소리를 질렀다.
“.......”
“나와. 나 지금 원흥역에 와 있다.”
“......”
“지금 나와. 너 올 때까지 기다릴거야.”
“......”
“1번 출구 앞에 있는 편의점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빵집에 와 있다.”
“......”
“집에서 혼자 주접떨지 말고 나와서 내 앞에서 주접떨어. 내가 다 받아줄게.”
어떻게 옷을 입고 역까지 걸어왔는지 전혀 기억이 없는데도, 어느 한 순간 나는 빵집 앞에 서 있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듯, 술이 만취해서 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 그렇게 나의 시야에 빵가게 안의 좌석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던 호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향하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가 내 앞에 놓인 공기밥을 크게 한 숟가락 퍼서 갈비탕 그릇에 넣고는 수저로 꾹꾹 둘렀다.
그리고는 내 손에 수저를 쥐어주었다.
“먹어.”
“......”
“먹어 얼른.” 그가 채근했다.
“누가 니 멋대로 밥을 국에 말아버리래.” 고개를 떨군 채 나지막히 불평을 했다.
“앗쭈. 니 아직 안 죽었네?” 그가 ‘큭’ 하고 웃었다.
수저를 들고 갈비탕 그릇에 넣어 한 숟가락을 퍼서 입안에 넣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배어 나왔다. 입안에 들어온 밥알을 씹으면서 수저를 내려놓고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으으으으...“ 버티려고 하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두 손을 떼고 왼팔을 들어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간신히 보이는 내 시야에 호진이 내민 휴지가 보였다.
“닦아. 더럽게 코도 나왔다.”
휴지를 받아들고 얼굴을 문질렀다. 그런 나에게 다시 그가 수저를 내밀었다.
“자. 다시 어서 먹어.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어떻게 알고 왔어?”
간신히 몇 숟가락을 입안에 넣고 여전히 눈물이 흥건한 채로 고개를 채 들지 못하고 코맹맹이 소리로 물었다.
“지훈이 형이 전화했어. 너 어떻게 하고 있나 가서 보라고.”
“........”
“나중에 지훈이 형한테 연락해 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눈물섞인 목소리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
“그냥 감쪽같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눈물이 다시 배어 나왔다. 눈을 꼭 감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랄한다.” 그가 피식하고 웃었다.
“여튼, 난 내가 할 일 했다.” 그가 말을 멈추고 다시 손을 뻗어 나에게 휴지를 내밀었다.
“너....” 그가 말을 꺼내기 전 잠시 머뭇거렸다.
“나도, 이제야 알게 된 거지만... 너 승혁이 소개로 걔네 친척 아저씨네 건물 원룸에 들어온거라면서?”
그의 말에 힘들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요새 세상에 무보증에 월세 십만원짜리가 어디 있겠냐.” 그가 말을 멈추고 슬며시 한숨을 내쉬고는 내 눈치를 보았다.
“너랑 헤어지고 지훈이 형이 승혁이에게 부탁해서 너하고 연락하게 한거라더라. 너 대신 몰래 보증금 건네줬다고 하더라구. 너한테 반드시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 부족한 월세는 매달 자기가 대신 채워 주기로 하고 말야.”
“.......”
“어떻게 된 건지 니가 직접 지훈이 형에게 물어봐. 나도 거기까지 밖에 몰라.”
“.......”
“그리고 빨리 좀 먹어라. 우리 형도 지금 집에서 내가 오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이 녀석아.” 그가 나를 보고는 마치 짜증을 내듯이 툭 내 뱉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피식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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