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너머의 세상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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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의 맨 안쪽에 위치한 작은 카페의 구석자리에 앉아서 승호는 머그잔을 들고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삼키고는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낡은 옥외 광고판의 빛바랜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액정 창을 확인한 후 테이블 위에 놀려놓았다.

 

카페의 문이 열리자, 그의 시선이 안으로 들어오는 20대 중반의 남자를 향했다.

그 남자는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승호의 앞으로 걸어와서 그의 건너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래, 반디 가져간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왔냐?”

“응. 근데 개가 제대로 그 집에서 적응을 못하고 까탈스러워서 지방에 있는 친척집에 보냈다네?”

“그래?” 그의 말에 승호가 손에 들었던 머그잔을 내려놓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여전히 그를 보면서 승호가 다시 물었다.

“뭘, 그 남자는 아무소리 안하고 지방 주소 받아 적고 부리나케 가버리던걸? 어디였더라? 군산이라던가?” 그가 지명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던 승호가 윗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려 놓더니 슬며시 맞은편 남자 앞으로 밀었다.

“형, 형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야.” 봉투를 집어들고 자신의 주머니에 넣으면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하러 반디를 데려간 집을 일부러 사장 아들에게 가르쳐 준거야? 그것도 이미 미국으로 간 사람한테....” 그가 승호를 보고는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자꾸 귀찮게 물어보니까 말해 줘버리고 만 거야.” 승호가 맞은편의 남자에게 시선을 한번 주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화번호를 바꾸면 되지. 깔끔하게. 그 자식 작정하고 경찰에다가 신고라고 하면.....”

“신고 같은 거 안 해.” 승호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고는 한번 피식 하고 웃었다.

“자기 엄마 때문에?”

“.........”

아무 말 없이 승호가 손을 뻗어 커피잔을 집어 입에 가져갔다.

“뭐야. 그럼. 그 사람 때문에?”

“..........”

“형도 혹시......”

그의 말에 승호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 좋아해?”

“..............”

“그래서 전화번호도 안 바꾸고 있는거야? 혹시라도.. 그 사람이 전화라도 할까봐?”

“...........”

“그럼, 혹시.....”

계속되는 그의 말에 승호가 그를 슬쩍 보고는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형이 저번에 그 사람이랑 통화할 때, 춘천이라고 곧이 곧대로 말하길래 순간 말 실수를 한건가 보다 했는데, 혹시라도 그 사람이 찾아올까봐 그랬던 거야?”

“아니야.” 승호가 그의 시선을 피한 채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그래서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 반디 건네 준거지? 혹시라도 그 남자가 강아지 찾으러 오면 멀리서라도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아니라니깐..” 승호가 그를 보고는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뭐, 형이 아니라니깐.. 아니겠지.” 그가 말을 멈추고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그러면서 반디 찾으러 온 사람이 연락했을 때 약속장소 근처까진 왜 나왔어? 버스 터미널 앞에서 그 사람하고 대화할 때, 형 그때 스타벅스 앞에서 어슬렁거렸지?”

“너..진짜..”

“알았어. 형!” 승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픽 웃어보였다.

 

“그보다, 회사에서는 다른 일 없지?” 잠시 침묵을 지킨 후 승호가 그에게 물었다.

“뭐, 사장 아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면 회사 물려 받을 거라고 하긴 하는데, 거기서 박사학위까지 따온다면 5~6년은 걸릴 거라던데?”

“............”

“상무가 그러더라구..  그 아들이 빨리 회사에 와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구. 사장보다야 기본 마인드가 백배 낫다구.. 근데 미국에서 오래 있을거 같다구..”

 

“형은 이제 어떻게 할거야?”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승호를 바라보며 그 남자가 다시 물었다.

“여기서 큰형님 돌보면서 살거야? 평생을?”

“.......”

“형도 형의 인생이 있는데.... 요새는 옛날 같지 않고 중증장애인 복지시설도 잘 되어있다던데, 그런 곳에 맡기고 형도 형 삶을 ........”

자신을 노려보는 승호의 시선을 느끼면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표정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 어떤 말을 하지는 못하고 그저 입맛을 쩝쩝 다셨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었지?” 이제는 누그러진 표정을 띠고 낮은 목소리로 승호가 입을 열었다.

“형이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어. 부모가 버린 날, 형이 구해 주었어. 그때 형은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이었어. 가끔 입장이 바뀌어서 그게 나였다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다.” 그가 말을 멈추고 침울한 표정으로 낮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없었다면 형은 저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형이 나를 돌보겠다고...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나와 같이 살겠다고 밤 늦게까지 일하곤 했다. 형은 그렇게 책임감이 강했어. 호이스트가 고장 났을 때에도 할 일은 많고 수리공은 연락이 되지 않고... 급하게 물건이 나가야 되니 어떻게든 자신이 고쳐보겠다고 올라갔다가 소둔로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그가 말을 멈추고 굳은 얼굴로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형이 없었다면 나도 없어.” 승호가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앞으로 형 얘기는 쉽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가 승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도, 그 사람 통장에서 이백만원만 인출한 건 좀 아까워. 나중에라도 큰형님 치료하는데 돈 들어갈데도 많을텐데.....”

“이미 일 시작하면서, 사모한테 받을 만큼 받았어.”

“그래도.....”

“그만 가봐라.” 승호가 그의 말을 잘랐다.

“아직까지 고생했다. 부지런히 가야지 내일 또 출근할거 아니냐.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승호의 말에 그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빤히 승호를 바라보면서 잠시 망설이더니,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형.” 그가 창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승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무엇이든지 할게. 나도 형 덕분에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거니까...”

 

 

 

 

 

제대를 하고 작은 기업체에서 배송일을 할 때까지는 먹고 살면서 형의 병원비를 대기에는 빠듯한 생활에 삶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승호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딴에는 착실하게 생활하다 보니 사장과 사모의 눈에 들었던지 사장의 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친 형이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중증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장은 알게 모르게 그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개인 운전사로서 자신의 비밀을 사모에게 알리지 않고 눈치껏 알리바이도 만들어주며 자신을 커버해주던 것에 대한 대가였다.

눈치로 인생을 살아가던 그는 그런 기회를 차 버릴리가 없었다.

사장과 사모 사이에서 요령껏 솜씨 좋게 자신의 처세술을 발휘 하면서 그는 삶의 여유도 되찾게 되었다.

 

 

그때까지 눌려졌던 성적인 욕망이 스멀거리면서 빠져나와 그의 온몸을 휘감게 되면서 그는 종로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포장마차의 한 구석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의 눈에 사장의 아들이 어떤 남자와 다정하게 걷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예상치 못했던 일에 깜짝 놀랐던 그는, 슬며시 몸을 일으켜 그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그의 존재를 모르는 채, 그 둘은 다정한 모습으로 종로를 마치 자신들의 뒤뜰 마냥 활보하고 있었다.

 

사장의 아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그 이후부터 그는 허름한 뒷 골목의 낡은 술집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그렇게 어두운 술집의 한 구석에 앉아, 자신의 손에 에이스 카드가 들어온 것을 느끼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을 이용할 수 있을지 곰곰이 따져보기 시작했다. 잘 하면 목돈을 쥐게 되어 형을 좀 더 좋은 환경으로 옮겨줄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장에게는 알리는 것에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욱’ 하는 성격에 물불 안가리고 덤비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계산이었다.

여러모로 사모와 거래를 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자질은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사람의 질이 떨어져 보이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배신을 할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실수인 척, 사모의 인기척을 알지 못한 듯, 그렇게 지인과의 통화를 시도했고, 자신이 모시는 사장의 아들인 ‘지훈이 남자 연인과 깊은 관계’ 라는 것을 슬며시 언급했다.

순진한 표정으로 오해라고 오리발을 내밀던 그는, 그가 그렇게 기다리던, 병원에 있는 형의 치료비를 미리 준비 해 놔야 되지 않겠냐는 사모의 당근을 한손에 쥔 추궁에 못이기는 척, 그렇게 그녀에게 지훈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녀에게 ‘게이는 쉽게 자신의 연인을 잊지 못한다’ 고, ‘인내심을 가지고 완전히 그 둘이 헤어진 것이 확인이 될 때까지 경계심을 풀면 안된다’ 고 부추긴 것도 그였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오른팔로서 두둑한 보상을 받으며 지훈의 연인을 감시하도록 임무를 띠고는 지석에게 접근을 하게 되었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는 지훈의 친구가 자신을 알아보는 듯한 것을 눈치 채고는 쾌재를 불렀다.

지훈이 ‘이끼나리’에서 자신을 불러내자 그는 슬며시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켜 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협박하는 지훈의 목소리를 녹음해 놓고는 사모에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중간에서 그녀를 위해서 일하는 자신은 슬며시 자신의 몸값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에게 확실하게 약점을 잡아서 상대를 떼어내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언급해 주었다.

 

몰카를 설치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비용만 챙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저 그녀에게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어둠속에서 인물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는 동영상을 몇 개 건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그 자신의 감정이었다.

어느 순간, 자신을 위해서 ‘벗어 놓고 간 것을 세탁해 놓았다’ 고 말하면서 그에게 세탁된 옷을 꺼내 주면서 배시시 웃던 지석이의 눈빛이 그의 마음 한쪽 구석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와 식사를 하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해맑은 미소를 띠우며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건네는 그의 얼굴을 대하면서 그런 작은 행복이 그에게 허락되지 않음에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석이 보낸 문자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의 사진을 멍하게 바라보는 자신을 인식하면서 그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새벽에 눈을 뜨고 슬며시 몸을 일으키는 승호의 곁에,  여전히 편안한 표정으로 깊은 잠에 빠져있는 지석의 얼굴이 그렇게 그를 내려다보는 승호의 눈에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는 그는 지석의 집안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안락한 작은 보금자리가 아쉬워서 구두에 발을 집어넣는 그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더 흔들리기 전에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변두리의 병원에 있던 형을 시설과 환경이 좋다고 들어온 춘천의 돌봄 센터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자신도 기거할 작은 집을 얻어 놓았다.

 

그리고는, 마침 지석이 외국으로 출장을 간 틈을 타서 예전부터 알고 있던 동생에게 반디를 데려오게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는 그 강아지를 지석이가 키우도록 할 생각이었다. 혼자 집에서 살아가는 지석에게 무엇인가 자신을 대신해서 곁에 있어 줄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반디를 데려온 그 동생에게 다시 통장에서 이백만원만을 인출하도록 시켰다. 의아해 하는 그 남자의 표정을 보면서도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려고 했다.

 

일부러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고 그는 지석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지석의 전화를 받으면서, 기다렸다는 듯, 그는 지석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뱉어냈다.

통화를 끝내고는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나버렸다.

지석에게 준 상처는 자꾸 그에게 향하는 자신을 단념시키기 위한 완전히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꾸 지석에게 향하는 그의 마음을 그렇게 단절시켜버렸다. 지석에게는 그의 존재는 이제 ‘사기꾼’ 이라는 것 이외의 의미는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마치 절벽을 건넌 후 등 뒤의 다리를 제거해 버린 자의 그것 마냥, 돌아갈 수 없이 앞만 볼 수 밖엔 없게 되어버렸다.

 

“시간이 가면.....”

여전히 창 밖을 멍하니 응시하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시간이 가면, 나 때문에 상처받은 네 마음이 편안해 지겠지...”

그가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내 마음도 잔잔해 지겠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가 다시 고개를 들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형이 기다리겠네. 오늘이 형 목욕 시켜주는 날인데...”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그는 천천히 카페의 문을 향해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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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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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 작성일
필력 좋으시네요 ㅎㅎ

그동안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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