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이 떠오르는 밤 7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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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종로의 한 외진 모텔. 술을 몇잔 걸친 듯 얼굴이 붉어진 종철이 늦은 밤 모텔 로비로 들어온다. 티비 소리가 새어나오는 주인장의 방을 무심히 스쳐지나가며 바로 엘레베이터로 향하는 종철. 종철의 두 눈은 무거워진 채로 풀린 모습이다.
이윽고 도착한 엘레베이터에 탑승하며 다시 한 번 휴대폰을 확인하는 종철. 미리 받아놓은 방의 위치를 확인하니 505호. 종철은 그렇게 두꺼운 손가락으로 5층을 누른다.
'와아아악'
'깔깔깔'
문을 열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방 안. 종철은 그대로 문고리를 잡고는 망설임도 없이 방 문을 열고 들어간다.
휙-
갑자기 열리는 문에 조용해지는 방 안과 종철을 향해 쏠리는 시선들. 종철은 시선들이 머쓱할 법도 한데 그저 태연하게 신고 온 신발을 벗으며 방으로 들어선다.
'안녕하세요?'
'아 예'
꾸벅-
다섯명 정도 이미 술판을 벌이고 있는 모텔 방 안. 종철은 방장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의 인사에 꾸벅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본다. 비워져있는 소주 병과 안주 쪼가리들 주위로 빙 둘러앉아있는 사람들. 그 중 한 명이 눈에 들어오는지 종철은 유독 한 명을 위 아래로 훑는다.
'와 곰이 들어오시네 완전.'
'어우 깜짝이야. 옆방 잘못 들어온줄 알았네'
그리고 역시나 종철의 흔치 않은 떡대를 보며 놀라는 남자들. 나이는 삼십대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종철을 대놓고 평가하기 시작한다. 술 좀 먹은 듯한 선을 아슬하게 넘나드는 분위기. 종철은 대충 자리를 살피더니, 유독 훑어보던 남자 옆을 비집고 엉덩이를 붙여 앉는다.
쿵-
'시티 맞죠?'
'예 맞는데요'
'아니 너무 일틱하셔서요. 호호.'
'나도 술 한 잔 주셔'
'회비 먼저 선불이라서여ㅎㅎ'
혼자 종로에서 술을 먹던 종철은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술이 너무 부족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이틀전 생전 처음 애인에게 뺨을 맞았으니. 내색은 안해도 마음이 많이 복잡한가보다. 그렇게 평소 자주 들어가지도 않는 시티에서 찾은 술번개 장소에 찾아온 종철.
그리고 몇 푼 되지도 않는 회비를 먼저 걷겠다는 방장. 보아하니 안주는 이미 다 식어가는데 회비는 가차없나 보다. 종철은 그렇게 주머니에 꾸겨놓은 지폐 몇장을 꺼내 방장에게 쥐어주고 팔을 뻗어 빈 종이컵을 자신의 앞으로 옮긴다. 무심한듯 남자다운 종철의 태도에 입술을 삐쭉 내미는 방장. 이전부터 술을 먹고 있던 사람들은 종철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레 감도는 긴장감에 서로의 눈을 맞추기 바쁘다.
'술 저거 소주 좀'
'제가 드릴게요'
아무도 종철에게 술 따라 줄 생각은 안하고 종철을 훑어보기만 바쁜데, 종철은 그런 시선들은 의식도 하지 않고 저만치 떨어진 소주병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때, 종철의 옆에 앉은 남자가 술을 따라주겠다고 소주병을 잡는다.
승환만큼 훤칠한 외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슷한 건장한 체형에 매력있는 이목구비. 나잇대도 승환과 비슷해보인다. 그렇게 자신의 종이컵에 소주병을 기울이는 남자를 힐끔 다시 한 번 훑어보는 종철. 귀엽게 붙은 통통한 섹시해보이는지 종철의 콧구멍에 조금은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탑이요'
얼굴이 더욱 붉어진 종철. 중앙에 뉘어진 소주병이 종철을 향해있다. 진실게임을 하고 있었다던 사람들. 한참 차례가 돌더니 결국 종철을 향해 소주병이 멈춰버렸고, 한 남자가 가볍게 첫 질문으로 종철의 성향을 물어봤다.
무심히 탑이라고 대답을 하는 종철. 보통 탑이라고 하면 다소 우스워하는 분위기가 감도는 게 이쪽 분위기라지만 그 누구도 인상파 종철의 성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어보인다. 그렇게 이어지는 다음 질문.
'애인 있으세요?'
애인이 있냐고 종철이게 묻는 남자의 질문. 종철은 만지작대던 종이컵을 툭툭 건드리고, 종철의 옆에 앉아있는 남자는 순간 종철의 대답을 기대하는 듯 종철을 돌아본다. 아무래도 종철에게 관심이 있는 듯한 모습. 종철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대답을 잇는다.
'예, 있습니다'
'으우움'
순간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웃음기 섞인 탄식. 어떤 남자는 벌써부터 종철의 옆 남자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웃으며 안타까워 해주기까지 한다.
'번개는 좋아하세요?'
그 때, 곧바로 이어지는 질문. 애인이 있다는데도 저런 질문을 하다니 놀랄 법도 하지만, 사실 애인이 있다고 저런 질문 안 받을 거면 애초에 이쪽 술 번개에 나온 게 이상한 게 맞으니까. 종철은 원체 털털한 성격에 역시 별 타격은 없는지 대답을 잇는다.
'섹스 안좋아하는 남자도 있나'
'오올'
가장 연장자인 종철이 말을 하면 할수록 털털하고 쿨한 모습을 보이자, 상황이 재밌어진다고 낄낄대는 남자들. 종철의 옆에 앉은 남자는 이제 대놓고 종철을 쳐다보며 종철의 듬직한 풍채를 감상한다.
'여기 다섯명 중에 박 타고 싶은 사람 있어요?'
그 때, 역시나 점점 수위가 높아지며 들어오는 질문. 종철은 처음으로 머뭇대며 한번 시선을 돌린다. 아예 종철같은 체형은 취향이 아니라며 편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몇몇은 종철의 남자다운 모습에 벌써 반해버린 듯 기대감을 애써 숨기는 눈빛을 하고 있다.
'여기가 맛있겠네.'
'끄앗 푸하하하하'
'흐흐'
순간 종철이 옆에 앉아있는 남자의 허벅지를 괜히 한번 주무르며 시크하게 대답하자, 순식간에 빵 터지는 사람들. 종철 역시 그 분위기에 처음으로 웃음이 터져버린다.
마지막 옆 남자의 질문 차례. 남자는 종철의 선택까지 받아서는 꽤나 도도해진 표정으로 괜히 과자를 주워먹으며 말을 잇는다.
'그러면.. 이따 저랑 가실래요? 사실 저 오늘 존.나 섹스 고프거든요'
'아오 뭐야ㅋㅋㅋㅋ'
'저 미.친년. 저럴 줄 알았다'
그렇게 종철을 대놓고 유혹하는 남자. 평소 승환에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도발적인 반응. 종철은 순간 성욕이 차올라서 긍정의 의미로 특유의 콧구멍을 살짝 벌렁거린다.
'두 언니 끝나고 박타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 짜안 짠. 한 잔'
그렇게 지들 딴에 훈훈해진 분위기가 흥겨워지자 술이나 먹자고 술을 돌리는 방장. 후끈 달아오른 공기에 종철은 순간 승환을 향한 복잡했던 생각이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옆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한다.
통통하니 귀여운 얼굴에 건장한 몸매. 도발적인 말투와 목소리. 종철은 그렇게 계속해서 남자의 허벅지를 만져대고 있다. 그리고 다같이 짠을 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종철의 가랑이로 들어오는 남자의 손. 남자의 손에 종철의 묵직한 윤곽이 닿는다.
'허어..'
그리고 대충 가늠이 가는 종철의 크기에 저절로 흥분감이 차올라 뜨거운 한숨을 뱉는 남자. 방장은 벌써 두 사람의 손 장난을 눈치챘는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고, 종철은 잠시 후 성욕을 못참겠는지 남자의 손을 덥썩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린다.
'아하으으.. 아아앙..'
발가벗은 두 남자. 종철은 남자의 입술부터 목 주변까지 거칠게 핥아대고 있고, 남자는 그런 종철의 애무에 그대로 입이 벌어져서는 떨리는 신음을 뱉는다.
종철의 두꺼운 허벅지에 매달리듯 다리를 꼬고 있는 남자. 종철은 허벅지에 잔뜩 힘을 주고 남자의 가랑이를 문질러댄다.
'아하앙.. 형.. 너무 좋아요.'
'허어억. 허어으. 이 씨.발년.. 제대로 느끼네'
'하으으. 형. 형.. 진짜 게이맞아요? 으흐으..'
'그럼 게이니까 너같은 년 핥아대지. 아으. 아흐으..'
문질 문질-
남자가 종철에게 매달린 채 더욱 깊숙하게 안기며 온 몸을 비벼대자 남자의 귀여운 애교에 미칠.듯이 달아오른 종철이 남자의 목을 부서질듯 휘감아 껴안고는 남자에게 키스를 해댄다. 종철의 힘에 너무나 황홀한 듯 흐느끼며 말을 잇는 남자.
쮸압 쮸아압- 하앑 하아앑
'우움 우우웁. 흐푸웁.. 머리 좀 잡아당겨줘요 으으.'
'흐웁. 뭐?'
'좀 세게 해달라고요. 아 존.나 꼴려요.. 아하으..'
'아 음탕한 년이네 이거 완전'
꾸우우욱-
'아아으!!!'
'이런 새.끼는 처음보네'
꾸욱- 꾸우욱-
'아아아 흐으. 흐으윽.'
종철의 예상보다도 더욱 강한 남자의 성욕. 종철 역시도 이렇게 대놓고 머리를 잡아당겨달라 외치는 남자는 처음인지 낯설어 하면서도 곧바로 남자의 성향을 맞춰주듯 머리를 잡아당긴다. 느껴지는 종철의 힘에 금방이라도 터질듯이 울먹이는 남자. 종철은 그렇게 남자의 머리를 뒤로 잡아당기다가는 남자의 엉덩이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넣기 시작한다. 남자의 반응에 덩달아 종철도 흥분감이 과하게 차오르기 시작한다.
꾸우욱-
'으흐으흥'
'이 걸.레같은 새끼 보.지 벌어진 거 봐라'
'ㄲ아..ㅈ..죄송해요.'
꾸욱 꾸우욱 꾸욱-
남자의 애.널에 손가락을 꾹꾹 눌러대며 남자를 희롱하듯 말하는 종철. 그런 종철의 목소리에 꼬추가 잔뜩 발기되어서는 죄송하다는 말을 잇는 남자. 남자는 종철의 말대로 종철의 힘에 제압되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이고, 종철 역시도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끼는 날 것 그대로의 섹.스에 통제할 수 없이 달아올라 버린다.
'흐응 아하악 하아윽 하악'
꿈틀꿈틀-
그렇게 종철이 두꺼운 손가락으로 애.널을 쑤.셔대자 결국 침대에 몸이 엎어진 채 꿈틀대며 신음하는 남자. 종철은 그런 남자의 뒷.구멍을 손가락으로 뚫을 듯이 애.널을 쑤.셔 넓힌다.
'흐우움.. 후우웁.'
승환과의 섹스 때보다도 더욱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종철. 눈 앞에서 자신의 손에 몸을 배배 꼬며 더 두 다리를 활짝 벌려대는 남자의 저돌적인 반응이 종철을 더욱 자극시킨다.
항상 섹.스에 있어서는 다소 수동적인 승환의 태도. 그런 승환과의 섹스에서도 엄청난 흥분감을 느끼곤 하는 종철이지만, 항상 승환은 종철의 성욕이 죄인 듯 나무라곤 했으니.
심지어 어제는 자신과 섹.스를 하고 싶어서 만나는 것이냐 나무라며 뺨까지 때렸으니. 종철은 지금 점점 복합적인 감정에 두 눈이 붉어지며 남자의 애.널을 쑤.시고 있다.
점점 더 강해지는 손길에 진심으로 고통이 느껴지는지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거의 기절할 듯이 입을 벌리고 있는 남자. 종철은 그런 남자를 제대로 보내려는 듯 삽입을 위해 자신의 꼬추를 두어번 문질러대기 시작한다.
'좋았어요?'
데이트를 하며 하루종일 아슬했던 분위기. 분명 함께 있고 대화를 나누고 있긴 했는데, 무언가 서로에게서 동 떨어진 느낌이 드는 이유가 단순히 몇일 전 큰 다툼의 어색함이 남아있는 줄만 알았다. 허나 번개를 했다는 종철의 쓸 데 없는 양심 고백에 정색을 하는 승환. 승환의 차가운 말투에 종철이 살짝 마음이 급해지는지 말을 잇는다.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좋았냐구요. 궁금해서 그래요.'
'마음이 편치가 않았어'
'섹스 좋았냐구요 형 감정 말고 섹스가 좋았냐고요'
오히려 번개를 했다는 종철의 고백에 캐묻듯이 말을 잇기 시작하는 승환. 종철은 오히려 화를 낼 줄 알았던 승환이 이렇게까지 덤덤하게 좋았냐고 묻는 상황이 그저 당황스럽다.
'섹스야 뭐.. 나는 워낙..알잖냐.'
'좋았나 보네. 근데 번개한 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뭐에요?'
'내가 미안하기도 하고.'
'미안할 일을 왜 해요? 아니, 그건 뭐 술.쳐먹고 그랬을 수도 있는데. 그걸 나한테 말하는 이유가 뭐냐구요. 형 심란한 마음 나보고 덜어가라는 거에요?'
이제보니 전혀 덤덤하지 않아보인다. 점점 화를 드러내며 쏘아붙이듯 말을 잇는 승환. 종철은 꼬여버린 상황에 그저 고개를 숙인다.
'형은 내가 왜 화냈는지, 그리고 지금도 왜 이런 식으로 말하는지 아예 모르죠?'
'알지. 내가 섹스에만 미.친 사람처럼 군다하고.. 실제로도 성욕이 강해서 문제가 많지. 근데 번개한 거는 내가 백번 잘못한 게 맞지. 나는 사과하려고 말한 거고. 절대 너 심란하라고 말한 건 아니다. 근데 승환아. 내가 너랑 섹.스하고 싶은 게 정말 죄는 아니지 않냐?'
'형이 표현을 서툴게 잘못하는 거도 알고. 그걸 오로지 성욕으로만 표현하는 거도 알아요 저는.'
'근데 뭐가 그렇게..'
'말하는 거 봐봐요. 형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내가 그걸 안다고 형한테 다 맞춰야 되나요'
'뭘 다 맞춘다고 자꾸 그러냐. 이거는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너도 섹스하면 좋다 하잖아. 내가 강제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일단 번개를 했다는 죄책감이 있기에 평소보다는 훨씬 순해진 말투로 말을 잇는 종철. 그러면서도 따박따박 의견은 굽히지 않고 있다. 자꾸 서로의 말꼬리만 잡고 있는 상황에 잠시 화를 누르며 진정하듯 숨을 고르게 내쉬는 승환.
종철 역시 말을 하다보니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답답한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 순간, 조금은 슬퍼보이는 종철의 두 눈. 종철이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는 눈빛이다. 잠깐의 정적 후 다시 이어지는 승환의 목소리.
'내가 바라는 건. 형이 성욕을 줄이는 게 아니고요. 저를 애인처럼 대해주는 거에ㅇ..'
'너가 내 애인이지! 그럼 친구냐 임마?'
순간 승환의 말에 울컥한 듯 대답하는 종철. 종철의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승환이 놀란 듯이 두 눈이 커진다. 결국 서러웠다는 듯 말을 잇는 종철.
'나는 니가 좋아서 자꾸 표현하려는 건데 니가 밀어내는 거는 아니냐고? 너 방금 내가 이기적이라 했지. 내 입장에서는 너가 이기적이야 임마.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건데. 그렇게 치면 나는 너가 매일 볼 때마다 섹스하자고 달려드는 사람이면 좋겠어. 근데 내가 그런거 강요했냐?'
'...'
'자꾸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지마. 그래 번개한거는 내가 정말 잘못한 거다. 그건 내가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오늘 말하고 사과하려고 말 꺼낸거고. 근데 어제도 그렇게 섹스가 맛있을 수가 없더라. 그러면서도 너랑은 왜 이렇게 못할까 생각도 들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될 수 있을까 생각도 들었다고. 근데 너는 방금 뭐라했어. 또 내가 내 미안한 마음 너한테 덜어내려고 말 꺼내는 거라고 그랬지. 너야 말로 왜 자꾸 피해자인 척 하냐?'
승환은 종철이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속 얘기를 하며 서운한 티를 내는 모습을 처음 본다. 그만큼 종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점점 표정이 썩어가는 승환. 그런 승환에게 힘이 바짝 들어간 붉어진 두 눈으로 말을 잇는 종철이다.
'사랑이 이거다 저거다. 나는 그런 거 몰라. 말로 자기야 사랑해 보고싶어 그런 말 하는 거도 와닿지가 않는다고. 내가 그게 부족한 점이면 노력해야되는 건 맞지만. 나도 내 방식대로 너한테 많이 표현해준 거라고. 내가 너 좋아하는 게 꼭 말로 단어로 표현해야지만 너는 알아먹는 거냐? 그래 사랑이 꼭 말로 해야지 느껴지는 거냐?'
폭발하든 감정을 쏟아붓는 종철. 승환은 그런 종철의 말을 듣다가는 덤덤하게 대답을 잇고야 만다.
'네. 사랑은 표현해야지 느껴지는 거에요. 자기야 사랑해 보고싶어 해야지 되는 거에요.'
'...'
'...어렵죠? 연애가.'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보다. 그래 번개도 하고 내가 쓰.레기가 맞지. 미안하다.'
'쓰.레기까지는 아니에요. 양심은 있으니까.'
결국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마는 종철. 승환은 어딘가 영혼이 나간 듯이 허공을 바라보며 대답을 잇는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템포의 정적이 흐르고. 이어지는 종철의 목소리.
'나랑 너랑 맞출 수 있는 사이가 아닌가보다.'
'그럴 수도요.'
다소 떨리는 종철의 목소리와 매정한 대답을 잇는 승환. 종철은 그제서야 다시 승환을 바라본다. 왠지 이 순간이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이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어온다. 그렇게 이어지는 종철의 한 마디. 그리고 승환의 대답.
'넌 참 이럴 때 매정하네.'
'그래도 형처럼 잔인하진 않았어요.'
'번개를 했다고 한 순간부터 끝났어요 저는. 그건 연인 사이에서 마지막 마지노선이어서.'
'너가 한 방 맥였네.'
'맥이긴요. 뭘. 개뿔 쓸데없는..'
'으움...'
두 사람의 마지막 장면까지 전부 다 듣고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진 듯 보이는 남우. 새벽 시간이 늦어져서 피곤해서 그런 걸까.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승환도 오랜만에 다시 꺼내본 감정에 기분이 가라앉은 모습이다. 그 날 이후 두 사람은 헤어졌고, 연락은 물론 어딘가에서 마주친 적도 없으니까.
그래도 종철을 만날 때 알게 되었던 남우 형님과는 이렇게 몇번 술을 먹기도 하는 사이가 됐고, 당시에는 완전 초짜 게이였던 승환은 종로까지도 가끔씩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이유가 어찌됐든 이별이 준 상처도 점점 아물어져갔다. 하지만 그 어떤 아문 상처도 들쑤시면 쓰라리는 법. 승환은 지금 가슴이 조금 얼얼하다.
'아직도 서운하냐'
그 때, 훅 들어오는 남우의 질문. 살짝 시선을 내리고 있던 승환이 남우를 올려다보며 대답한다.
'네'
'다른 감정은 없고?'
'...미안하기도 하고요.'
'뭐가?'
'저도 그냥 놓은 거 잖아요. 지쳐서. 형이 저 좋아했다는 거 알아요. 근데 그걸 표현하는 게 너무 서툴렀던 거지'
'그걸 알면 좀 봐주지 그랬냐. 배종철이 은근히 여린 앤데'
'제가 그럴 여유가 없었던 거죠. 뭐..'
'흐우움.. 그래 집이나 가자.'
그렇게 남우의 긴 한숨과 함께 끝나는 술 자리. 남우는 잠시 시간을 확인하는 건지 휴대폰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승환 역시도 씁쓸한 마음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계산대로 향하는 남우. 이야기 잘 들었다고 약속한 대로 술을 사는 남우는 괜히 카드를 들어올리며 승환에게 윙크를 하고, 그런 남우의 장난에 그제서야 희미한 미소를 짓는 승환.
'나 저기. 먼저 간다. 들어 가라.'
'아니 뭐 같이 나가면 되죠.'
휙-
헌데, 계산을 하고 먼저 입구를 향해 급히 걸어나가는 남우. 아직 승환은 테이블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는데, 남우는 그런 승환에게 뭐가 그리도 급한지 인사를 하고 나가버린다. 뭐지. 택시라도 불렀나.
'안녕히 계세요. 잘 먹고 갑니다'
'예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혼자 나오면서도 사장님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승환. 새벽 네시가 넘었다. 승환은 택시를 잡으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가게를 나온다.
덜컥-
문을 열고 나오자 보이는 한적한 골목길. 새벽 늦은 시간이라 종로에도 사람이 그리 많지가 않다. 다들 자신들의 짝을 찾아 떡이나 치고 있을 시간인가. 에어컨이 빵빵하던 가게에서 나오니 다소 습한 꿉꿉한 여름 공기가 승환을 뒤덮고, 승환은 살짝 인상을 쓰며 골목을 돈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승환아.'
후다닥-
순간 걸음을 멈추는 승환. 누군가가 후다닥 도망치는 소리가 들리고, 승환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얘기 좀 할 수 있나.'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얼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얼굴이 너무나도 또렷하게 눈 앞에 나타나자 승환은 순간 벙쪄서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한다. 종철이다. 남우가 종철의 연락에 승환의 위치를 말해준 것 같다. 이제서야 남우가 전화를 받고 한참 돌아오지 않던 이유를 알 것 같은 승환. 사실 지금 그런 이유는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 잘 지냈어요?'
벙찐 승환에게 점점 다가오는 종철. 새벽 가로등 아래 가까이 오니 보이는 붉어져 있는 종철의 얼굴. 두 사람 모두 술 냄새가 풍긴다. 자기도 모르게 당황해서 잘 지냈냐 묻는 승환. 오랜만에 본 종철의 모습은 여전히도 참 불곰같다.
'잘 지냈지. 너는.'
'저도 뭐. 그렇죠.'
'응.. 어디 들어가서 술이 한 잔 할..'
'아뇨. 이제 집에 가야죠. 술을 많이 마셔서.'
무척이나 머뭇거리며 제안을 하는 종철의 말을 끊어내며 대답하는 승환. 종철은 멋쩍게 고개를 끄덕이고 점점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종철의 목 뒤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목걸이. 두 사람이 커플로 맞췄던 그 목걸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게 선물할 거라 했던 그 목걸이를 종철은 아직도 끼고 있었다.
승환은 지금 자신의 앞에서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는 종철을 보고 있기가 너무나 힘들다. 이 바보같은 사람. 안타깝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되었을까. 그 당당하던 종철을 내가 뭐라고 고개 숙이게 만든 걸까.
결국 더 이상은 이 상황을 버티고 있기 싫은 승환이 입을 연다.
'형도 얼른 들어가요. 술 드신 거 같은데.'
'그럼 승환아 그냥 바로 말해야겠다.'
'...'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 이 느낌이 마냥 불쾌한 건 절대 아니지만, 승환은 그저 이 복잡해져오는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다.
'우리 혹시 다시 만날 수는 없는 거냐.'
'형.'
'나는 너가 너무 좋다.. 지금도.'
'하아아..'
생전 처음보는 이토록 애절한 종철의 눈빛.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해주는 듯 종철의 두 눈이 더욱 서럽게도 깊어진 모습이다. 그런 종철의 눈빛에 절로 한숨을 쉬는 승환.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미 그 때 그 순간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서로를 맞출 수 없다는 결론을 냈던 두 사람인데. 이제와 다시 만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리고 그런 승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는 듯 점점 불안해지는 종철의 눈빛.
한없이 강해만 보였던 종철의 여린 눈동자. 안쓰럽게도 젖어들어가는 종철의 두 눈에 그만큼 깊은 종철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승환은 지금 종철이 밉다. 왜 또 종철에게 모진 말을 해야만 하는 건지.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요.'
'승환아.'
덥썩-
결국 거절을 하는 승환의 손을 덥썩 붙잡는 종철. 승환은 그런 종철을 외면하려 하는데 마주친 종철의 눈빛이 너무나도 강렬해 눈을 피할 수가 없다.
'승환아.'
'...'
'사랑한다 승환아.'
'......'
그렇게 승환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종철. 사랑한다는 말이 내키지 않는다고 표현하지 않았던 종철이 이제는 달라진 걸까.
종철은 어떠한 이유로 완고히 지키던 자기 자신을 놓아가면서까지 승환을 다시 붙잡으려 하는 걸까. 이게 과연 승환이 정말로 듣고 싶던 말이고, 원했던 상황일까. 이대로 승환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면, 두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종철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렇게 승환은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어쩐지 오늘따라 불곰이 떠오르는 밤이더라니. 여느 헤어진 연인들에게 그런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어떻게 그 밤을 견뎌내는지. 승환은 지금, 그저 깊은 잠에 들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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