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워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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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얼떨결에 주형이 형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했다.


주방옆의 작은 방에 간단한 짐을 풀어놓고 그가 쓰던 책상에 앉아 예전에 그가 입사한 날부터 정리해 놓았다는 거래에 관련된 업무파일을 꼼꼼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우리회사가 아닌 클리오네 입장에서의 업무방식과 거래업체와의 접근방식을 습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따로 마킹해 놓았다가 형에게 자세히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안개가 걷히고 그 속에 있던 섬이 나타나듯, 그렇게 그 거래의 내용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클리오네 본사의 근처에서 주형이 형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편의점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 승우!”
누군가가 뒤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 등을 툭하고 쳤다.

“어...”

돌아 본 나의 눈에 웃고있는 우영이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하필이면 바로 그때 나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던 주형이 형에게로 옮겨갔다.

“어떻게 된 일이야?”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일그러진 억지 웃음을 지으면서 녀석이 나에게 물었다.

“일 때문에...” 주형이 형이 뭐라고 입을 열기 전에 나의 입에서 재빨리 변명이 튀어나왔다.

“전에도 왔었잖아. 미팅 때문에...”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내가 덧붙였다.

“그 일을 내가 완전히 맡게 되었는데, 담당자가 주형이 형이라서......”

 “아.....그래?” 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막 일 끝나고 저녁 먹으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설마 그가 오해를 할까봐 과한 재스츄어를 취하면서 그의 팔을 잡았다.




“정말 잘 됐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한 후에 우영이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런 인연은 또 있기 어려운데....” 그의 말투는 건조하고 차가웠다.

“승우, 우리 집에 들어왔다.” 그런 그를 흘끗 보더니 갑자기 주형이 형이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이 지낸 지 며칠 됐어.” 남의 말을 하듯 그렇게 툭 건네고는 그는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등골에 오싹해지면서 식은 땀이 배어 나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떨리는 손으로 물잔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한 순간 수십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흔들어 놓았다.




“우영아...그게.....” 물잔을 내려놓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가 아직 업무파악이 안돼서 형한테서 개인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야.”

 “그래?‘ 그가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냉랭하게 물었다.

“며칠만 형에게 실무교육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 말을 멈추고 슬며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여전한 그의 굳은 표정이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의 오해를 풀어 줄 만한 다른 설명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반드시 사실만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상대는 내가 어떻게 설득할 만한 대상이 아닌 우영이였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나는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의 생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공짜로 부탁한거 아냐.” 녀석을 보면서 가능한 태연하게 보이려고 했다.

“교육 끝나면 꼭 교육비 안 떼먹고 낼거야.” 나의 말에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쩌면 변명의 물꼬를 예상치도 못한 다른 곳으로 튼 것이 먹히는 듯 했다.

“내가 아무리 없이 살아도 나 알로 먹는 그런 사기꾼 아니다.” 고개를 슬며시 숙이고 얼굴에 우울함과 자괴감을 표현하려고 자존심 상했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월급 받으면 꼭 형한테 갚을거야. 일반 학원비로 계산해서....”

말을 멈추고 슬며시 고개를 들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형도 불편하겠지만  형 업무가 같이 걸려 있으니....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못하면 클리오네도 문제가 생기는 거고, 그러면 형도 부장으로 승진도 걸림돌이 될 거고...”

 “아.... 그런거였어?”

여전히 반신반의한 표정이었지만 일단 녀석의 얼굴에 악의에 찬 표정은 사라진 듯 보였다.

“난 또 뭐라고....” 그가 피식하고 웃었다.

“하긴...형도 보는 눈이 있는 데... 말도 안되는 일이지....”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주형이 형에게 시선을 돌렸다.






출근 후, 업무 보고를 하고 일반적인 보조 업무를 정신없이 마치고 나니,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다.
 
점심 식사 후에는 형이 소개해준 클리오네의 오더를 맞춰줄 제조업체를 방문하고 확인작업을 하기로 되어있었다.

김과장과 윤대리는 모두 외출을 한 후였고, 휴대폰을 열어보고 시간을 확인 한 후,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저.... 이 승우씨.”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영업3팀의 정지영씨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는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슬며시 나에게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네?”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매일 얼굴을 보면서도 나는 영업3팀 직원들과 대화를 해 보지 못했다.

업무가 관련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출근하면 매일 큰 소리로 욕만 먹고 있는 나는 그것을 매일 보는 것이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그들 앞에서도 이미 주눅이 들어버린 후였다.

그들의 표정에도 ‘등신같은 놈’ 이라던가 ‘멍청이’ 라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말하는 듯 했기에 가능하면 나는 그렇게 스스로 고립된 생활을 해 오던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그녀가 나에게 와서 말을 건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다른 게 아니고요.” 그녀가 말을 꺼내기 전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시 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어제, 퇴근하기 전에 사무실에서 윤대리님이 김과장님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는데요.”

그녀가 말을 잇기 전 잠시 멈추고 슬며시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이 승우씨가 거래업체를 둘씩이나 바꾼 것이 수상하다고....  이승우씨가 아는 거래업체에 일감 몰아주기 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 본격적인 업무 경험도 없는 이 승우씨가 어떻게 기존 생산업체를 둘씩이나 바꿀 생각을 하겠냐고.. 자기 생각이 백프로 맞을 거라고...”

 “.......”

 “제가 말했다고 하시면 절대 안돼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하고는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손가방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순진한 나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 될 리 만무한 것이었다.

내 머리의 한참 위에 윤대리가 있는 것이 틀림 없었다.

잔머리를 굴리면서 살아왔을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임기응변과 권모술수를 통해 그가 원하는 사람에게 믿음을 얻는 방법과 눈엣가시는 제거하는 방법을 터득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나는 그저 하룻강아지에 비하지 않을 것이었다.


다시 한번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의 목이 잘리더라도 그런 상대에게 어떻게든 상처라도 주겠다는 윤대리에 대한 증오과 분노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승우씨.”

퇴근이 가까워 질 무렵, 외근에서 돌아와서 정리를 하던 나를 김과장이 불렀다.

“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김과장과 나의 사이에 앉은 윤대리가 그런 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잠시만 이리와 봐.”

 “.......”



 “일은 잘 돼가고 있어?” 김과장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있는 서류 여기저기를 아무 의미 없는 손놀림으로 만져보았다.

“근데, 이상한 말이 들려서 말이야.”

 “.........”

“원래 거래를 하고 있던 생산업체를 이승우씨가 바꾸겠다고 했다던데.” 그가 말을 멈추고 입을 ‘쩝쩝’ 하고 다셨다.

“예...”

“그냥 혹시 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 거래업체가 이 승우씨가 전에부터 잘 알던덴가?”

“아닙니다.”

그가 나의 대답을 듣고도 여전히 빤히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의 표정을 관찰하는 듯 했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판단을 하는 중인 것이다.


“저, 과장님.”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윤대리는 나의 등 뒤에서 다른 일을 하는 척 하고 있지만, 내가 하는 말에 온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제 정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김과장의 앞에서 단호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저 군산에서도 한참 오지 출신 촌놈입니다.”

떨려오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내가 하는 말에 집중을 하려고 했다. 나는 양심적으로 걸리는 일이 없다. 나는 그저 내가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뿐이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는 삼류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하지만 재정적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가 넘어가면서 버티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여전히 김과장은 머리를 까딱거리면서 나를 주시했다.

“저 우리 회사가 거래할 만한 생산업체에 연이 닿을 만한 그런 배경이 있을 만큼 잘난 놈이 못됩니다.”
그가 희미한 미소를 띄고 나를 바라보았다.

“상공회의소에서 추천받은 업체 중에서 직접 제가 방문하고 확인한 후에 결정한 제조업체입니다.  공인받은 실적도 직접 제 눈으로 확인했고요. 제 방식대로 계획하고 추진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

“클리오네 건도, 처음부터 제가 하겠다고 지원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 한참 부족한 저에게 윤대리님이 책임을 지고 한번 해 보라고 주신겁니다.“

나의 뒤통수를 째려보고 있을 윤대리가 느껴졌다.

“저,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서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나에게 맡겨진 이 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모르고 부족하지만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뭔가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제가 하고 있는 일의 결실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최대한 심사숙고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과장은 여전히 고개를 슬며시 까딱거리면서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가 나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회사에 눈꼽만큼의 누도 끼칠 생각도 없고, 또한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도, 할 수도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과장님.”


어떻게 나처럼 소심의 바닥을 걷는 녀석이 김과장의 앞에서 당돌하게 머리를 쳐들고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는 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필사적이었다.

그 일을 해내는 것이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을 쓰면서 대학을 나온 이유인 듯했다.

또한 그것이 내가 서울로 다시 올라온 이유였고, 그것이 마치 내가 존재하는 이유인 듯 했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두 번 다시 나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필사적인 감정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나를 조용히 바라보던 김과장이 등을 세우고 마치 기지개를 켜는 듯 몸을 한번 움직이고는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나중에 결과를 좀 보자.”

그에게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고 나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윤대리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여전히 내 등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윤대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김과장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내 주제에 윤대리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정문을 향해서 발을 옮기는데 내 뒤에서 부지런히 나를 따라오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나의 시야에 비열하게 히죽거리는 윤대리의 모습이 들어왔다.

“너,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응?” 그가 나를 노려보았다.

“너. 조심해라. 털어서 먼지 안나는 놈 없다.” 꽉 악문 이빨 사이로 그가 내뱉었다.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하면, 그날로 넌 끝장이야. 새꺄.”



그가 히죽거리면서 나를 비웃고는 나를 지나쳐서 정문 밖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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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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