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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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을 가라앉힐 생각으로 창밖으로 보이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노오란 이파리들을 세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침착하려고 해도 저 깊은 속에서 용광로 처럼 펄펄끓는 분노가 '욱'하고 올라와 내 마음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창 밖에서도 마치 내 마음속을 비추듯 어디에선가 초겨울 찬 돌개바람이 불어와 간신히 매달려 있던 이파리들을 손안에 쥐고는 노란 눈보라처럼 공중에 흩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창문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나의 등 뒤로 방문이 열렸다.
“종수야, 윤희 간댄다.” 초등학교 동창이 집에 왔다 간다는데도 방안에서 창밖만 바라보고 서있는 아들이 못마땅하다는 투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수야. 나 이제 갈게.” 윤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슬며시 돌려서 어깨너머로 어머니의 뒤쪽에 서 있는 그녀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러자 간다던 그녀는 외려 발을 몇 걸음 옮겨서 내 방안으로 들어왔다.
커피잔이 담겨있는 쟁반을 가지고 주방으로 몸을 돌리는 어머니에게 한번 시선을 주더니 그녀는 방문을 닫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간다며? 가라.”
퉁명스럽게 내뱉는 내 말에 그녀는 코웃음을 치듯 피식 하더니 마치 무시하는 표정으로 입을 비쭉거리면서 방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래. 이게 네 방이구나.”
“..........”
“너가 우리 아버지 싫어하는 것은 알겠는데...” 그녀는 시선을 돌려 내 얼굴을 주시했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아니잖아. 혹시라도 우리 아버지가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나와 상관있는 것은 아니잖아.”
'혹시라도‘ 라고? 낮짝도 뻔뻔한 년.... 그렇게 얼굴을 쳐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를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마치 분노를 표현하면 내가 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감정을 억눌렀다.
“왜 너랑 상관이 없어!” 그녀도 자신의 아버지가 어떤 인간이고 또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를 뻔히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 그렇게 나를 쳐다보는 그녀가 가증스러웠다.
“너의 아버지 돈으로 네가 아직까지 먹고 입고 한 거 아냐?” 그녀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너 대학 다니고 유학하면서 쓴 그 돈! 다 늬 아버지 한테서 나온거 아냐? 너 이번에 고향에다가 관광객들 상대로 무슨 큰 사업 하려고 한다면서? 그게 다 늬 아버지한테서 네가 물려받은 거 아니냐구! 그러면서 아버지와 네가 상관이 없다는 말이 나오냐?”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지며 뺨이 붉게 물들어갔다.
“나쁜새끼.” 그녀가 입술을 씰룩거렸다.
나는 그녀에게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등 뒤로 그녀의 차가운 송곳 같은 시선이 내 뒤통수에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 그렇게 침묵이 흐르더니 등 뒤에서 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그녀가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하는 목소리와 엄마가 그녀를 따라 현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어떻게 사람이....” 어머니의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 우리집엔 왜 왔대요?”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래도 아는 고향 사람이라고, 인사라도 하려고 찾아온건데...”
“혹시라도 걔네 집하고는 어떤 일이라도 엮이지 마세요.” 냉랭한 내 목소리에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 한두번 혀를 차고는 방문을 닫으셨다.
수없이 잊으려고 했지만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끔찍한 과거를 말이다.
열두셋의 나이에 벌어졌던 그 모든 일들은 스물 아홉이 된 지금도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과거로부터 도망치려고 해도, 내 머릿속의 기억은 심연의 거대 문어처럼 나의 발목을 그 끈적거리는 빨판으로 휘어잡고는 놓아주질 않았다.
나는 그녀의 아버지를 저주했으며 그녀를 저주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그리고 나의 고향의 모든 마을 사람들을 저주했다. ‘무능력한 노예근성 밥벌레들’ 이라고 그들 모두에게 저주했지만 그 당시에 어렸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구원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그 당시 뱃길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키도 라는 작은 섬이 나의 고향이었다.
여객선이 인천에서 출발해서 그렇지 실상 충청도에 가깝게 지도상 아래쪽에 위치한 섬이라서 섬 주민들 사이에는 충청도 사투리가 번져 있었다.
그리고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다 보니 마치 작은 독립된 자치국가처럼 느껴질 정도로 섬은 육지에서 고립 되어 있었다.
키도와 가깝게 위치한 조금 큰 섬인 덕적도로 인천에서 여객선이 하루에 한번 왕래를 했지만 키도에는 들르지 않았다. 그 작은 섬으로 올 사람도, 그렇다고 뭍으로 갈 사람도 거의 없었다.
가물에 콩 나듯이 어쩌다가 육지에 볼일이 있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마다 작은 통통선 한척이 그 사람을 여객선 시간에 맞추어 덕적도로 데리고 가곤 했다. 그렇게 그 섬은 바깥 세상과는 담이 쳐진듯한 그런 곳이었다.
2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그 작은 섬에 작은 일이 벌어졌다.
내가 열두살이 되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봄이었다.
그 작은 섬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거의 볼일이 없는 덕적발 통통선 한척이 키도에 온 것이었다. 그 배는 한 가족을 바닷가에 내려 놓았다. 뽀얀 피부를 가진, 나와 동갑인 태현이라는 남자 아이가 그의 부모님과 그리고 큼지막한 개 한 마리와 함께 그 작은 섬으로 살러 온 것이었다.
어쩌다가 뭍에 살던 사람들이 별 볼일 없는 그 작은 섬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등장은 나에게는 사뭇 엄청난 일이었다.
전교생이 서른다섯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에 선생님은 세 분 이셨다. 각각 1,2 학년과 3,4 학년 그리고 5,6 학년을 한 교실에 앉혀놓고 수업을 했다.
그 애를 노골적으로 피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 애가 좋았다.
아직까지 태어나면서 같이 자라온 아이들..... 사내아이고 계집아이고 간에 모두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어진 꾀죄죄 하던 아이들 속에서 반 곱슬 머리를 한, 피부가 뽀얀 그 녀석은 나에게는 동화 속에 나오는 왕자님 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그 녀석을 보게 된 때부터 아마 나는 그 어린나이에 나의 성정체성을 깨닫게 된 듯 했다. 그런 나는 아직 친구가 없는 그 녀석에게 접근을 했고 곧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광주댁’으로 불리웠다. 경기도 광주였는지, 전라도 광주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저 호기심에라도 어느 쪽 광주인지 물어보기라도 했을 듯은 싶다.
그의 아버지도 나의 아버지와 친해진 듯 싶었다. 그 작은 섬에 유일하게 육지생활도 해 보고 공고를 졸업한 아버지가 그 이유로 뭍에서 온 그의 아버지와 말이 잘 통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사람들 속에서 그래도 어쩌다가 아버지는 유식하게 들리는 어려운 말 한두마디는 가끔씩 하시는 듯도 했다. 그리고 그 두 분은 그 작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우리집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바둑을 두기도 하셨다.
태현이네 가족은 희멀건한 색의 큰 개도 한 마리 데리고 와서 키우고 있었다. 몸집도 크고 잘 생겼지만 그래도 그냥 잡종인 똥개였다.
하지만 이 개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사람말을 잘 듣고 영특했다. 그 개는 나를 특히 잘 따라서 길에서나 어디에서 날 보게 되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내 가슴과 어깨에 머리를 부벼대며 핥곤 했다.
태현이가 ‘캐시’라고 불렀던 그 개는 한가지 행동만으로도 동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썰물이 되면 미리 바닷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개펄이 나타나면 슬며시 마을 이장집에서 설치한 그물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 중에서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을 물고는 냅따 달리는 것이었다. 처음엔 자기가 먹으려고 그러는 것인지, 배가 고팠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에 태현이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우연히 캐시를 보게 되면서 캐시의 영특함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낮 열두시가 다 되어가던 즈음에 대문이 빼끔히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나는 태현이가 뭍에서 가지고 온 동화책을 그와 함께 그의 집 대청마루에서 배를 깔고 옆드려서 읽고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논을 한번 둘러보고 난 뒤에 집안의 수돗가에서 뭍어 있는 흙을 씻고 계셨다.
“어허, 이녀석.” 그의 아버지의 목소리에 태현이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캐시가 슬그머니 어슬렁거리면서 수돗가에 있는 태현이의 아버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입에는 큼직한 물고기 한 마리가 물려 있었다. 곧, 아직도 싱싱하게 파닥거리는 그 물고기를 아버지의 발치에 내려 놓고는 캐시는 꼬리를 연신 흔들면서 태현의 아버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착한 일을 한 다음에 칭찬을 받기를 기다리는 꼬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 나와 동갑인 윤희의 아버지가 그 섬의 이장이었다.
얼마동안인지 모르겠지만 그 한참 전부터 그는 계속 그 섬의 이장직을 맡고 있었다.
섬에서 그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가 그렇게 똑똑했는지 아니면 섬 주민들이 순진했거나 혹은 멍청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섬에는 뭍에서 파견된 치안을 담당하는 순경도 둘 있었는데, 한명은 그의 사촌동생이었고 또 한명도 그의 먼 친척이라고 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을회관에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장은 회의를 열었다. 그 중 한 가지가 모래를 파는 것이었다.
그 마을의 한 쪽 해변 끄트머리에 아름다운 모래 언덕이 하나 있었다.
말이 언덕이지 산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큰 그 언덕은 곱디고운 모래로 된 것이었다. 그 주변에 해당화가 그림을 그려 놓은 듯 펼쳐져 있었다. 한여름에는 아이들은 따끈거리는 그 모래산을 맨발로 달리기도 하고 열려있는 해당화 열매를 따서 반을 갈라 씨를 파서 빼내 버리고는 입에 넣고 냠냠 거리면서 먹기도 했다.
그런 그 모래산을 적당한 작자가 나타났다고 이장은 팔겠다고 했다. 인천 어디엔가에 있는 유리공장 사장이 좋은 가격에 사겠다고 했다고 그는 말했다. 으레 그렇듯이 마을 사람들은 회의 내용의 이해와 상관 없이 이장의 말을 들으면서 머리를 주억거리며 찬성의 표시를 했다. 나의 아버지도 마찬가지 였다. 마치 순응만이 최선의 선택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쳤다고 했다. 오랜 역사동안 이장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것은 감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태현이의 아버지만이 예외였다.
그때까지 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을 하지 못했던 그는 그때부터 이장에게 미운털이 박-힐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던 듯 싶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그는 순진한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고 했다.
섬의 한 모습으로 이어져 오던 모래섬을 팔아야 하는 이유와 만일 판다면 가격은 어떻게 매겨지는지, 그렇게 해서 들어온 수입은 어떻게 마을을 위해서 쓰여질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고 했다. 곧 그 회의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악을 써대는 이장의 모습과 함께 그 섬의 최초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고 했다.
“내가 마을 돈 떼먹어? 날 어떻게 보고 그러는겨? 이 시퍼런 젊은 사람이 사람을 도둑으로 몰어?!”
사실 그 당시 까지는 가을 추수후에 쌀을 농판장으로 공동판매를 한다던가 사료나, 비료, 농약등을 공동구매 할 경우에도 모든 일을 이장이 다 알아서 하고 있었다. 비용이나 판매 후 이익금 등은 모두 이장이 관리하고 배분해 주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회의나 질문 하나 없이 그렇게 이장을 믿고 있었는지 의심할 사람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두 만족한 듯 보였었다.
“우리 이장님이 다 알아서 하시겄지. 무식한 우리가 뭘 알겄어. 이장님이 다 잘해 주시는디.” 그러면서 주민들은 모든 결과가 이장의 덕택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도 아버지가 마을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이 세상에 우리 이장님 같은 분도 없어. 참 우린 복받은 겨.”
이장에게는 석호라는 아들도 하나 있었다.
윤희 보다 한 살 많아 6학년이었지만 5, 6학년 학생들이 같은 반에서 공부하다 보니 나이와 상관없이 같이 친하게 지냈다.
석호도 태현이와 친하게 지냈다. 내가 하루가 멀다하고 태현이네 집에 놀러가서 보면 자주 석호도 와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자신들을 눈엣가시로 보는 듯한 이장의 아들이 자신들의 집에 와서 아들과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볼 만도 한 일인데, 태현의 부모님은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그 두분을 보면서 착한 분들이라고 혼자 생각하곤 했다.
그 당시에도 그 정도 되는 나이이면 사춘기의 성에 눈을 뜰 시기였는지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 ‘누구는 누구하고 사귄대요’ 라던가 ‘철수♡순자’ 와 같은 것을 학교 운동장이나 화장실 벽에 적어 놓곤 했다.
어느 날 하교길에 운동장을 터덜대고 걷다가 문득 익숙한 이름이 운동장 바닥에 씌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태현♡성자’ 라고 누군가가 땅바닥에 선명하게 써 놓은 것 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웃에 살아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효식이도 그것을 보고는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성자, 이 지지배 태현이 좋아하나보네?” 낡은 운동화 바닥으로 마구 비벼대서 글자를 없애는 나를 보면서 효식이는 여전히 킬킬 거렸다.
논둑길을 돌아 집에 오면서도 그 어린 나이에 질투심은 사라지지 않았나보다.
나는 우리집 마당의 한 귀퉁이에 뾰족한 돌 끝으로 ‘종수♡태현’ 이라고 도장이라도 새기듯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만큼 깊게 파 놓았다. 그리고는 ‘너 이제 어디 다른데 못 간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그 글자들을 손끝으로 한번 슬며시 만져 보았다.
몸을 막 일으키려는 순간 태현이 이웃집에서 걸어내려 오는 것이 보였다. 신발은 한쪽을 신지 않은 채로 그는 훌쩍거리면서 우리집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태현아. 왜 울어?” 발로 슬쩍 방금 써 놓은 글자를 밟아서 가리면서 그에게 물었다.
“우리개가... 캐시가...” 말을 잇지 못하고 그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 걸어가는 그를 뒤따라 가다보니 길 아래 오른쪽 논바닥에 캐시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몸을 오돌오돌 떨면서 울고 있는 태현이 옆에 서서 캐시를 불렀다.
“캐시야. 캐시야!”
캐시는 눈이 하얗게 뒤집어져 있었다. 입에서는 하얀 거품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고 허덕거릴때마다 배가 부풀어 올랐다 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가끔씩 경련 때문에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동네에 쥐가 있긴 했지만, 모든 가구들이 가축을 기르고 있었기 때문에 쥐약을 놓는 날과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같은 날 쥐약을 놓고 가축을 잘 관리하고 가두어 놓았다가. 삼사일 지나고 놓았던 쥐약을 모두 수거한 다음에 다시 가축을 풀곤 했다. 하지만 그 때에는 쥐약을 놓는 때가 아니었다.
영특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캐시가 죽은 것을 사람들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아이들이 캐시의 죽음을 안타까움과 놀라움으로 반복해서 화제로 삼을 때에도 어른들은 무관심하다는 듯이 그렇게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도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사건이 그 직후에 벌어졌다.
그 악몽은 아무리 기억속에서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뇌에 각인되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나를 제외한 다른 마을 사람들은 그 사건 이후에도 아무일 없었다는듯이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아갔다는 것이다.
가뭄이 계속되었다.
논밭은 쩍쩍 갈라져가고 있었다.
마을 위쪽에 큰 저수지가 하나 있었다. 오랫동안 이장이 그것을 관리해 왔다. 이장의 권한이 극에 다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이장을 찾아가 굽신거렸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 이장의 집에 갔다. 아버지는 갈라지는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부탁하러 가는거라고 하셨지만 이장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아버지의 모습은 하인의 그것과 다른 것이 없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저수지가 이장네 집 것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을 공동으로 만들어 진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이장이 태어나기 전부터 거기에 저수지가 있었다고 했다.
그 저수지 땅도 이장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였는지 그 저수지 땅은 이장의 것이 되어있었다. 원래 그 땅주인이 이장에게 팔아 넘기고 이사를 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태현이네가 살던 그 집에서 그 전에 살던 그 저수지 땅의 소유주였던 가족은 이장의 눈 밖에 나서 섬에서 쫒겨나다시피 뭍으로 이사를 갔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던 듯 싶었다.
태현이와 나는 논둑에 서서 소가 풀을 뜯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에게 풀을 뜯게 하는 것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집의 아이들의 매일매일의 일과였다. 태현이는 그때 라디오에서 자주 나오던 유행가를 부르고 있었고 나는 그걸 들으면서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태현이가 노래를 멈추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태현이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장이 비틀거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꼴을 베는 중이었던지 낫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대신에 우리의 맞은편에서 허리를 굽히며 논을 보고 있던 태현이의 아버지쪽으로 향했다.
“누구맘대로 저수지에서 물을 대! 이 새끼가!” 온동네가 다 들리도록 쩌렁쩌렁한 이장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태현의 아버지가 허리를 펴고 몸을 세우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술이 취했으니 들어가시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시 돌아서는 태현의 아버지를 향해서 이장이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가 감히 내가 말을 하는데 어디서 건방지게!” 이장의 손에 들려있던 낫이 그의 머리 위로 올려지더니 허공을 가르고 태현이의 아버지의 어깨에 박혔다.
태현의 아버지가 앞으로 고꾸라져 자라고 있는 벼속으로 가라앉았다.
“아버지! 아버지!” 태현이 잡고 있던 소의 고삐를 떨구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던 이웃 주민 서넛이 뛰어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이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개-새꺄. 내가 여기 이장이야. 씨-발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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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요?
혹시 쉬지 않고 글을 올려서 운영자님에게 미운털 박-힌 것은 아니겠죠? ㅎ
네번에 걸쳐서 드래그를 반복해서 겨우 올렸습니다. ㅠㅠ ;;;;
'고양이의 숲' 을 올리려고 준비중인데, 교정할 부분과 오타가 생각보다 좀 많아서요.
그 사이에 잠시 이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게이소설같지 않은 게이소설인?... 시대와 상황이 많이 달라 당황스러운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ㅎ)
7회까지 있는 짧은 글입니다. (하루에 2회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