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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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태풍이 막 지나가고 난 7월 초였다.

 

 

    

키도의 앞바다는 꽤 잔잔했다고 했다.

 

낮 동안 기온은 올라가서 30도를 육박하고 있었고 뜨거운 햇살은 바닷물에 부딪혀 반짝거렸다. 키도에서도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고 했다.

 

라디오에서도 북상하던 태풍의 진로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로 빠져 나갈 것이라고 예보했다. 제주도와 남해안 만이 태풍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기상 캐스터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가게를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아버지는 밤낚시 여행객을 맞았다고 했다. 낡고 작은 통통배를 띄우고 이웃집 아저씨와 함께 돈 좀 있는 서울의 한 가족을 태웠다고 했다.

 

밤 늦은 시간부터 스산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조금씩 일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고 같이 승선했던 그 이웃집 아저씨가 전했다고 했다. 키도의 앞바다였고 여차하면 부두안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돌풍이 문제가 되고 말았다.

 

갑자기 비까지 내리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 그 이웃집 아저씨는 급하게 배를 키도 쪽으로 돌렸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배의 갑판을 비추던 전등이 걸려있던 나무기둥이 돌풍에 쓰러지면서 갑판위에서 쪼그리고 앉아있던 그 손님 가족의 아이를 덮친 것이다.

 

순간적으로 아버지는 그 아이를 보호하려고 아이를 자신의 몸으로 막았는데, 기둥이 아버지의 머리를 내려친 것이었다.

 

 

도시였다면 곧장 병원으로 옮겼을 것이고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섬에서, 그것도 태풍이 다가오는 와중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아버지는 나중에 인천으로 이송되기는 했지만 의식 불명인 상태였다.

 

 

 

 

 

게다가 하필 그 때에 나는 또 다른 이유로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5년 동안을 사귀던 김승현 대리와 헤어지게 된 직후, 술로 만취한 며칠을 보내고 있었다. 휴대폰은 어딘가에서 분실 되었고, 나의 기억도 뿌연 안개속으로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친구의 집에서 아침에 눈을 떴다.

 

그래도 먹고 살겠다고 출근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 입으려고 서둘러 택시를 탔다.

 

 

 

 

고모네 연립주택의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가기 위해서 옥외 계단을 간신히 올라가던 중이었다. 여차하면 언제라도 한순간 위 속에 있던 모든 것을 토해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빠!”

 

무거운 머리를 간신히 들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계단 위쪽을 바라보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촌동생이었다.

 

밤새 어디있다가 이제 오는거야! 삼촌이 지금 병원에서 돌아가신대!”

 

? 누구?” 여전히 몽롱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나에게 그녀가 악을 썼다.

 

오빠 아버지! 지금 병원에 계신다구! 위독하시대!”

 

    

 

 

병원 입구 한쪽의 흡연구역 에서 나는 줄담배를 피웠다.

 

여전히 숙취로 인해서 머릿속은 몽롱한 상태였다.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조차 없었다.

 

담배를 쥔 손가락은 알콜중독자의 그것 마냥 떨고 있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병실에 들어가서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일이 벌어진 지 십 오년여가 흘러 갔지만 한시도 내 뇌리에는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망령이 떨어져 나간 적이 없었다. 그것도 초등학교 시절 제일 좋아했던 녀석의 한 가족을 불 속에 넣어버린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수 있을까.

 

  

 

다섯 개가 남아있던 중에 마지막 한가피에 불을 붙이면서 빈 담배갑을 손아귀에 힘을 주어 일그러뜨리고 있을 때였다.

 

에이그, 이놈아. 니가 인간이냐? 나쁜새끼야!”

 

몸을 돌렸다. 어머니가 다가오고 계셨다. 병원 근처 마트에라도 다녀오시는 중이었던 듯, 손에 무엇인가 담긴 비닐 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이 새끼야. 니가 사람새끼냐?” 어머니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비닐이 땅에 닿는 순간 유리병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너 같은 걸 자식이라고 키운다고 그 고생을 하다니, 이 나쁜 자식아!” 주위의 사람들이 어머니와 나의 주변에 모여들어 구경이라도 난 듯,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가슴과 어깨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던 어머니가 마침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병실 안의 아버지가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에 서서 흐릿하게 먼지가 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너는! 왜 끝까지 그 모양이냐.” 병실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계신 어머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등을 향해 쏘아 붙이셨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 속의 비교할 수 없는 분노와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도대체! 너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니? 우리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꼼짝않고 그렇게 서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고,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키웠는데! ! 아버지 봐봐! 평생 제대로 된 옷하나 사 입고 사신 적 있으신 줄 아니?”

 

맞은편 건물 위의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었다. 양털처럼 부드러울 듯 싶었다.

 

 

다른 집 애들, 중학교, 고등학교 간다고 다 뭍으로 간 다음에도, 방학 때 되면 꼬박꼬박 찾아와서 일손도 돕고 그랬어도 너 한번이라도 온 적 있었니?” 말씀 중에 목이 타셨는지 음료수 병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는 반에서 몇 등하네, 누구는 전교에서 몇 등하네 하면서 자랑질 하는데도 너는 공부도 꼴찌면서 툭하면 학교에서 쌈질하고 말썽 피웠다고 늬 고모가 전화에다 대고 늬 아버지에게 하소연 하고 그랬다.” 말을 멈추고 어머니가 한숨을 쉬셨다.

 

그래도 늬 아버지는 니가 제일 잘난 아들이라고 그랬어, 이눔아! 너땜에 산다고 그랬다고 이 새끼야! 나중에는 네가 제일 잘 나갈거라고 두고 보라고 그랬다고 이 자식아!” 말씀을 계속하시기 전에 다시한번 어머니는 한숨을 크게 쉬셨다.

 

오월 초면 이웃집 효식이는 지 부모한테 카네이션이라도 꼬박꼬박 보내더라! 나는 그렇다 쳐도 너, 늬 아버지한테는 뭐한게 있냐 이 자식아! 너 집 떠나서 아직까지 학교 다닐 때 달랑 편지한 통! 그거 밖에 한 게 더 있냐?”

 

편지라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아니라고 해도, 그와 사귀는 5년 동안에도 문자를 제외한 편지라는 것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내 자신이 편지를 쓰는 방법이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머리말이 친애하는... 으로 시작하던가? 아니면 안녕하세요... 인가?

    

너 군대 갔다오고 취직했다는 소리 들었을 때 늬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니? 그것도 니가 전화로 말해준것도 아니고, 늬 고모가 그러더라. 너 취직해서 회사 다닌다고! 너 취직한것도 니 입으로 말 안하고 딴 사람한테 듣게 그렇게 늬 아버지가 너에게 잘못했니? 이 개-새끼야!” 어머니가 감정에 북받쳤는지 헉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낮은 소리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밖은 단순해 보였다. 위에는 푸른 하늘에 구름 몇 점. 아래는 땅에 건물 몇 개. 그 사이로 지나가는 차량 몇 개. 몇몇 년 놈들.....

 

어쩌다가 내 인생은 이렇게 비뚤어졌을까. 왜 나는 이런 모습으로 여기에 이렇게 서 있어야 하는 걸까. 남들은 1,2,3,4,5,6 을 마음속에 넣어 놓고 있을 때 왜 나는 5,8,2,7,1을 만나야 할까. 왜 나의 삶은 이렇게 뒤죽박죽일까.

 

, 그 다음에 거래처 손님이라고 고향에 데리고 온 다음에 다시 돌아갈 때, 배 못탔다고 이장탓이라고 부두에서 난리를 폈다면서!” 감정이 격해지신 듯 어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다음에 어땠는지 아니? 술 취하면 툭 하면 이장님 우리집 오셔서 평생을 고향을 위해서 몸을 바쳤는데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망발을 할 수가 있느냐면서 얼마나 난리를 치신 줄 아니? 마을 사람들 앞에서 여러 가지로 늬 아버지 망신을 주고! 그 양반 지난 겨울에 술에 취해서 밤길에 쓰러져서 돌아가셨지만.....”

 

그래요. 어머님이 존경해 마지않는 그 훌륭하신 이장님. 잘 길들여진 노예를 많이 두신 그 대단하신 이장님.

 

그래도 이장님이 돌아가시기 두 세달 전부터는 늬 아버지에게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셨더라. 상냥하게 인사도 받아주시고 자주 오셔서 물건도 많이 사주시고 늬 아버지와 술도 가끔 드시고....”

 

저 세상 가기 전엔 안 하던 미친짓도 한다던데 그래서 그랬나보죠.

 

 

 

 

오늘 밤을 못 넘기실 것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통보를 받은 후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것 같은 어머니를 병원에 들렀던 고모가 병실 밖으로 잠시 모시고 나가고, 나는 조용히 아버지 옆의 의자에 앉아서 잠든 것 같은 아버지의 주름살이 가득하고 검게 그을린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버지....” 작은 목소리로 불러보았다.

 

의도하지 않았던 눈물이 솟아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위에 나의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아버지... 이제 가시면 태현이네 가족을 어떻게 보실건가요.” 눈물이 참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저 세상에서 그들의 원망을 어떻게 감당하실 건가요. 아버지이...”

 

슬며시 두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눈을 감았다.

 

태현아! 태현이 부모님! 제발 아버지좀 용서해 주세요. 제발.....” 꺼억 하고 흐느낌이 솟구쳐 올라왔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님..... .. 거기 계신 아무나..... 제발 아버지를.......”

 

얼굴을 침대 시트에 묻었다.

 

태현이 부모님....우리 아버지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가 한 일의 반은 제가 받을께요.    제가 가게 되면 벌의 반은 제게 내려주세요. 제발.....”

 

눈을 감으면 세상이 까매지는 것처럼 어두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처럼 아버지의 손을 이렇게 꽉 쥐고 아버지가 가는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저 세상의 끝까지 따라가서 태현이의 가족들 앞에서 아버지와 함께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싶었다. 그들의 마음이 풀릴때까지 낫으로 내 등을 찍어도 좋고, 불속으로 날 내던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못난 아들 때문에 그런 일을 하게 된 아버지를 위해서 나도 똑같이 아버지의 벌을 나눠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손을 꼭 쥐고 있었는데도 아버지는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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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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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인물에 고스란히 빙의된 작가님의 필력에 다시금 감탄을 하면서
한숨에 읽었다.
바둑에서 수를 가장 잘 읽는 사람이 실제로 두는 분이라고 하는데
'그겨울'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훈수를 하고 싶은 맘은 1도 없어진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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