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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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거리면서 트럭의 문을 열었다. 죽음의 공포가 전신을 감쌌다.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오고 손과 발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둥거렸다.
내 뒤에서 문을 박차고 뛰어나오는 남자의 발 소리가 들렸다. 열린 문 틈으로 윤희의 앙칼진 비명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발판에 다리를 간신히 올려놓고 운전석에 오르다가 차의 모서리에 오른쪽 팔을 부딪쳤다. 견딜 수 없는 통증과 충격이 전신에 퍼졌다. 이를 악물었다. 이빨 사이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차 문을 먼저 잠그고 자동차 키를 꽂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 미친 놈의 세상은 오른손잡이만을 위한 것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은 차량 핸들의 오른쪽에 위치한 자동차 키를 넣을 구멍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밖에서 그 남자가 장작개비로 차의 창문을 내리쳤다. 파동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키가 구멍속으로 들어갔다.
시동을 걸었다. “개 새끼 나와!” 그 남자가 두 번 세 번 유리창을 내리쳤다.
악셀을 힘껏 밟았다. 차는 그 남자를 스치며 앞으로 돌진했다.
다급한 마음에 내리막길을 미친듯이 달렸다.
“딩동” 차 안의 기름탱크에 기름이 바닥났다는 표시가 계기판에 들어왔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태평하게 이렇게 찾아 온 모자란 나의 잘못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산만 벗어나면, 큰 도로가에만 다다르면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불현듯, 마을 사람들은 나의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모두 예전에는 이장의 충복들 이었으며 이제는 윤희의 충실한 하인들일 것이었다. 이장가족의 적이 그들의 적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달려가야 그들의 소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려 눈으로 들어왔다. 어쩌다가 이마가 다친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기억을 더듬을 정신도 없었다. 피 때문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지만 닦아 낼 손도 없었다. 올라올때는 느끼지 못했던 도로의 불규칙한 표면 때문에 핸들이 마구 흔들렸다. 왼손으로 핸들을 거머쥐었다.
‘나는 죽지 않는다! 나는 죽지 않아!’ 입 밖으로 계속해서 되뇌었다.
‘여기서 이렇게 개죽음 당하진 않을거야. 절대!’ 이를 악물었다.
삼거리에 다다랐을 때였다.
누군가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차의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끝없는 공포가 몰아쳤다. 그 사이에 그들이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기 위해서 아래쪽의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음이 틀림 없었다. 이제 나는 꼼짝 없이 양쪽으로 포위된 것이 틀림 없었다.
“빵빵빵빵빵!” 상향등을 번쩍거리며 경적을 계속해서 울렸다. 밀어버리겠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향해 서 있었다.
뒤쪽 어디선가 언제라도 나를 쫒는 차량이 튀어나올 것이었다.
우물쭈물할 틈도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차로 그를 밀고 넘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막 악셀에 올려놓은 발에 힘을 주려는 순간이었다.
그 하얀 옷을 입은 남자의 얼굴이 가까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온 몸이 마비 된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전신에 차가운 소름이 돋았다. 공포가 극에 다다랐다.
틀림없는 태현이였다.
어렸을때의 모습이 아닌 서른이 되어가는 내 나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눈에 ‘그’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그렇게 무섭도록 굳은 얼굴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저승사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손에 꽉 쥐어진 커다란 곡괭이 끝에서 거무스름한 액체가 흘러내려서 땅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옆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개 한마리도 시야에 들어왔다.
캐시였다. 오래전에 쥐약을 먹고 내 눈앞에서 죽어가던 바로 그 개가, 혀를 길게 빼고 고개를 들고 빤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가 나를 데리러 왔구나’ 공포와 함께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래 이렇게 끝이구나.’ 땀으로 온몸이 뒤범벅이 된 상태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전율이 등줄기에서 번졌다.
그 순간 뒤의 어디 즈음에서 승용차 타이어의 ‘삐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웅크리고 앉아있던 캐시가 벌떡 일어났다. 태현이 두 손으로 곡괭이를 어깨위로 쳐 들었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듯한 모습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악셀을 밟으면서 나는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
온몸이 앞으로 쏠렸다. ‘쿵’ ‘쿵’ ‘쿵’ 잡초와 덤불이 가득한 언덕길 위를 세차게 흔들리면서 차가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왼손으로 핸들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나의 육체 스스로가 움직이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길이었을 듯한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태현이와 같이 웃으면서 걸어 올라왔던 예전의 그 언덕길을 나는 목숨을 걸고 찾아 내려가고 있었다. 차의 문짝이 나무에 부딪치고 움푹 패인 웅덩이를 지나면서 몸이 공중부양을 했다. 머리가 차의 천장에 부딪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무 사이로 불빛이 보였다. 도로 앞에 마트의 간판이 보이고 그 앞에서 경찰차를 세워놓고 차의 문에 기대어서 캔커피를 마시고 있는 두명의 경찰이 보였다.
도로에 진입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으려 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끼어든 내 차를 향해 상향등을 켜고 빵빵거렸다.
핸들을 급히 다시 왼쪽으로 꺾었다. 순간 눈앞에 기둥이 보였다. 피할 사이도 없었다.
‘꽝’
눈앞이 아득해졌다.
눈을 떴다.
희미한 빛 속에서 초췌한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손가락 끝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치 나의 몸이 사라진 듯 아무 느낌이 없었다.
흐릿한 그 속에서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난 어떻게 된 것일까. 죽은 것일까?
다시 눈을 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 지 알 수 없었다.
눈앞에 효식이의 얼굴이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짜식 살아났구나!” 그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웅웅거리면서 울렸다.
“여..여기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 목소리가 사람의 것인지 들짐승의 신음소리인지 순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병원이다 임마. 너 죽을 거 살아났어. 하늘이 도운거다.” 그가 나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담당의사랑 얘기중이야. 곧 오실거다.” 통증과 함께 윤희와 그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윤희가.....나를....”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공포로 온몸이 떨려왔다.
“윤희는 죽었어. 운전하던 남자는 지금 여기 같은 병원에 있는데 의식불명이래. 못 깨어날 듯 싶더라.”
“어떻게?” 여전히 죽음의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듯한 공포가 나를 감싸고 있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어젯밤에 저수지 둑길을 누가 깊이 파 놓았대. 과속으로 운전하다가 그걸 피한다는게 저수지 속으로 곤두박질 쳤나보더라. 저녁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는데, 누가 한밤중에 그 둑길을 그렇게 파 놓았는지....”
순간 커다란 곡괭이를 들고 있던 태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서늘한 표정이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가 나를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온것이 아니고 나를 구해주려고 했던 것일까?
“야! 나 결혼한다고 청첩장 돌리러 고향 온건데, 이게 무슨 일이냐 그래.”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쩝쩝 다셨다.
“그래도 너 살아나서 다행이다. 소식듣고 와서 너 죽는줄 알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줄 아냐?" 그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미소를 띠었다.
"초등학교때 너랑 나랑 제일 친했잖아. 그 이후에 계속 연락한것도 너 밖엔 없고...”
그랬었지...... 태현이만 빼고...
“너 깨어났으니 이제 경찰도 다시 오겠다.” 멍하던 눈을 그에게 돌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조서 작성한다고 너 깨어났는지 확인하러 몇번이나 왔었거든... 사고로 보고한다고 해도 네 진술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윤희가....날.....”
“윤희는 죽었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가 내 손을 슬며시 다시 잡았다.
“오늘 아침에 물에 빠진 시체를 건졌는데, 이마에 상처가 장난이 아니었대. 익사 아니었어도....”
“걔가 날....” 간신히 입을 벌려 그에게 호소하듯 한 눈빛으로 간신히 중얼거렸다.
“무슨일인지 몰라도 이제 다 끝났어.” 그가 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미 끝난일 일부러 더 키울 필요 없잖아. 경찰도 단순 사고로 종료하려고 한다는데....”
“너..나는 죽을 뻔...” 순간적인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그가 믿기 어려워서 고개를 억지로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설마 끔찍한 일을 꾸미려 했겠냐.”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마치 나를 달래는 듯 한 말투였다.
“이제 곧 한여름 휴가철이야.” 그가 나에게서 시선을 피하며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여기, 우리 고향 사람들, 여름 한 철 피서객 상대로 하는 장사로 일 년 먹고 살잖아. 일 크게 해서 소문 크게 나봤자, 어느 누구한테 이익 될 것 없잖아.”
어떻게, 친구라는 놈이 죽을뻔한 친구가 누워있는 병실에서 저런 말을 그렇게 쉽게, 내 앞에서 내뱉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경찰이 오면....” 간신히 화를 삭히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경찰이 오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낱낱이 밝히고 말 것이다. 그깢 땅 한 조각 때문에 살인을 하려고 했던 그녀의 그 잔인함을 말이다. 그녀의 범죄행위의 피해자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파 헤치면 또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탐욕의 희생자를 찾아내어야 한다. 누군지 모를 그를 위해서라도...
그래, 경찰이 오면 그 산 위 별장에서 어떤일이 있었는지 모두 낱낱이 토씨 하나 빼지않고 모두 다 말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의 머리속에 순간 누군가의 기억이 아프게 들어왔다.
기억해 낼 의도도 아니었는데, 김승현씨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
한밤중 술이 취해서 나를 찾은 그는 나를 부등켜 안고 그의 이마를 비벼댔다.
그의 흐느끼는 소리가 커피숍을 채웠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한 커플이 마치 동물원 원숭이 보듯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그런 그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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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그 의미 하나로만도 충분히 즐길 가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