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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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을 통해서 이따금씩 휘익 하고 도깨비 같은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9월 말의 화창한 날씨였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부는 날이 아니더라도 집 앞의 좁고 구부러진 골목길을 따라서 가끔씩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 마냥 그렇게 바람이 불어와 골목의 잔해를 흡수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윤호의 강요에 못 이겨 그의 아파트로 들어갈 때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곳이었다.

 

잠시라도 내 눈 앞에 안 보이면 불안한 데 어떻게 하냐?” 달착지근하게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나의 귀를 간지럽혔다. 그와 동거를 하기 위해서 바로 이곳에서 짐을 꾸릴 때 마음에도 없는 불평을 하면서 투덜거리는 나를 보면서 그가 한 말이었다.

 

좁고 답답한 방안의 벽에 등을 기대고 창문 아래에 쪼그리고 앉았다.

 

열린 창문을 통해 재잘거리는 꼬마아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더러는 좁은 골목의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가고 더러는 우는 소리를 냈다가 다시 웃음소리로 바뀌고 한 놈은 악을 쓰고 또 다른 녀석은 엄살 섞인 비명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천에서 시흥으로 넘어가는 지역의 중간 정도에서 마치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구불거리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토굴속과 같이 어둡고 음침한 가게 하나가 나왔다. ‘미래슈퍼라는 낡은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구멍가게 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작고 허름한 곳이었다. 그 주위에 진을 치고 하루종일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지나서, 계절에 따라 봉숭아나 맨드라미 씀바귀 혹은 장다리 꽃이 피어나는 손바닥 만한 화단 하나를 끼고 돌아 들어가는 골목 입구의 낡은 집의 문간방에 나는 세를 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가 처음 찾아 왔을 때였다. 처음에 내가 정성스레 약도를 그려 줄 때에만 해도 마치 이미 한두번 와본것 마냥 내가 길눈이 얼마나 밝은데!’ 라면서 못 미더워하는 나에게 걱정을 단단히 붙들어 매라고 그는 말했었다.

 

 

그러던 그가 오겠다는 약속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더니 마침내 휴대폰이 울리고, 나의 귓속으로 그의 지치고 화가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 이런 그지같은 동네가 다 있어! 그리고 너는 도대체 무슨 약도를 이렇게 개발소발 그린거야?” 다짜고짜로 그는 휴대폰에 대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가 말해주는 곳을 대충 어림잡아 찾아 나섰을 때에 특징 없는 골목 한 가운데서 팔짱을 낀 채로 얼굴을 찌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가 보였다.

 

실실 웃으면서 다가오는 나를 보면서 그는 입을 열었다.

 

! 내가 절대로 길치는 아니야. 누구라도 이런 엉터리 약도를 가지고는 종로도 못 찾는다.” 그가 내 얼굴 앞에서 약도가 그려진 종이를 흔들더니 땅 바닥에 휙 하고 내던졌다.

 

소리를 내서 킥킥 거리며 허리를 굽혀 떨어진 그 종이를 줍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내 엉덩이를 툭 하고 쳤다.

 

너는 너 때문에 님이 개고생 하셨다는데 웃음이 나오냐?” 나를 보고 한번 험악한 인상을 써 보이더니 곧 얼굴을 펴고 피식 하고 웃었다.

 

근데 너가 나타나니까 여기가 갑자기 환하다. 런던보다 더 좋다.”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눈앞에서 웃고 있던 그가 순간 사라져버리고 갑자기 현실의 답답한 방안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가방 옆의 방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뜻밖에도 소현이었다.

 

윤호씨 보려고 잠깐 들렀다가 민환씨가 이사 나갔다는 말 듣고 인사차 전화 한 거예요.”

 

, .”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도 없었다. 그저 멍한 기분이었다.

 

멀리로 가셨다던데, 그래도 가끔 뵈면 좋겠어요. 좀 섭섭하네요.”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배어있었다.

 

.” 같이 있고 싶은 연인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있는 친구가 얼마나 그녀에게 불편한 존재였을지 짐작해 볼 필요도 없었다.

 

윤호씨 바꿔드릴까요? 지금 옆에 있는데....”

 

아뇨. 제가 좀 바빠서요. 나중에 뵙죠.” 그녀의 말에 당황해진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등을 벽에 대고 웅크리고 앉아서 멍하니 방안의 허공을 응시하는 나의 앞에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 주 일요일,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잡다한 것을 박스에 담고 있을 때 그는 시선을 거실에 켜져 있는 티비에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나도 그런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이것저것을 박스에 주워 넣으면서도 그에게 등을 보이려 노력했었다. 그런 침묵이 오히려 상처가 난 나의 심장을 지탱해 주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서로 무심한 표정으로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면서 보냈다.

 

마침내 꾸려진 박스 두 개를 경비실 앞에 내 놓고 마지막으로 작은 가방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래도 뭐라고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몸을 돌리려는데 그가 그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마치 달리는 듯, 혹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있는 듯 미끄러져 내게 다가왔다. 미처 내가 뭐라고 입을 열기 전에 그는 손을 뻗어 나를 끌어안고 코와 입술을 내 뺨에 대고는 얼얼할 정도로 눌러댔다.

 

나는 그냥 낡아빠진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침내 나에게서 얼굴을 떼고 내 눈을 들여다보는 그를 마주보았다.

 

붉어진 눈, 벌겋게 된 코와 뺨, 동공이 풀린 듯 한 몽롱한 눈동자, 경직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간다.”

 

그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입가에 희미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나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그가 고개를 슬며시 끄덕여 보였다.

 

... 너 밖에 없었어. 너 잊기 힘들거야. 그러니까 전화하지 말고 연락하지마.” 한숨이 밀려나왔다. “나 마지막으로 도와준다 생각하고.... 나 너 죽었다고 생각할거야.”

 

다시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어 얼굴이 벌개질 그런 말을 툭 내뱉었다. 그 순간 그에게 뭔가 작은 바늘이나 핀이라도 들고 찌르듯이 그렇게 그의 마음에 작은 상처나마 주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아픈지 그도 느끼길 바랬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어깨에 멘 가방을 다시 슬며시 똑바로 한 후에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그의 축축해진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이 보였다.

 

몸을 돌리면서 나는 가슴속에서 뜨겁게 뭉클거리는 불 덩어리 하나가 훅 하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한 지난 시간 동안 나는 그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버리고 타인을 택한 배신자는 아니었다.

나라면 겪지 않을 또 다른 상황속에서 또 하나의 희생자가 되어 가고 있는 그에게 나는 그렇게 냉정한 말을 내뱉으면서 돌아섰다.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 오면서 후회가 몰려왔다.

 

마지막으로 나를 떠나 보내야만 하는 그를 그렇게 잔인하고 모질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내 자신보다 그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해 왔던 나였다.

 

하지만 그가 나를 버렸다는 내 중심적인 사고에서 철저하게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를 잘라내는 내 자신이 보였다.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릴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하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면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멈추고 벽에 머리를 박고 연신 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일은 끝난 후였다. 이제는 그도 나도 남아있는 감정이 얼마나 있건, 얼마나 후회를 하건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부탁한 대로 그는 그 이후로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의 전화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명동의 끝자락에 있는 중앙우체국 근처에 있는 회사에서 회현역을 통해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4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회현역 승강장에서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건너편에서 상계역쪽으로 가는 지하철이 들어 올 때면 스쳐지나가는 객차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내 자신을 순간 인식하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멍한 상태에서도 그가 살고 있다는 그 하나만으로 상계라는 말이 어쩌다 스피커를 통해 울릴때면 토끼마냥 귀가 쫑긋해져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보잘 것 없고 추하게 느껴졌다.

 

 

일부러 멀리 돌아서 종각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운동 부족이었는데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는 얄팍한 생각을 하면서 씁쓸하게 혼자 웃었다.

 

그래도 시간은 나의 가슴을 조금씩 아물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인지 나도 모르게 출근 할때나 퇴근 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종각역으로 향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내게서 멀어졌다.

 

 

나를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소현이었다.

 

그녀는 소소한 일에도 나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윤호씨가 연락이 안되는 데 혹시 민환씨와 같이 있는 지’,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했는데 그 친구가 혹시 민환씨 인지부터 진공청소기 내부의 필터가 꽉 찼는데 새것은 어디에 두었는 지’ ‘거실의 전구가 나갔는데 여분의 전구를 어디에 두고 있는 지까지 세세한 것에도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귀찮은 티를 내지 않고 꼬박 꼬박 대답을 해 주었다. “제가 바빠서 이사 나온 후로는 윤호와 만난 적이 없네요.” “필터는 서재로 쓰는 방 책상의 맨 아랫 서랍의 씨디 보관함 밑에 있어요.” “전구는 다용도실의 맨 윗칸에 여유분 세 개가 있는데 한 개는 색이 조금 들어가 있는 거라서 보시고 골라서 쓰세요.”

 

그렇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한 것은 그녀도 또한 이런 세상의 희생자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질서, 규율, 풍습, 생활방식, 도덕, 그리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다수가 소수자에 가하는 구체화된 폭력의 메신저로서 그녀는 그와 나 사이에 나타났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그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녀와 함께 한다고 해서 내가 그녀에게 질투를 느낄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그냥 그렇게 세상이 그와 나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서 보내진 꼭두각시였다. 만일 내가 질투를 느껴야 하고 라이벌 의식을 느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의 마음속에 있는 나를 지우고 그 비어있는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어떤 사내놈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손가락으로 세는 그의 연애 상대에 꼽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녀와의 통화를 가능한 한 친절하게 받아주려고 한 이유였다.

 

 

 

십년과 같았던 9월과 10월이 지나고 11월에 접어든 어느 날 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한 후 퇴근 후에 광교쪽을 향해서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였다.

 

청소 좀 해 놓고 가려고 윤호씨 집에 들렀는데 온 김에 날씨도 쌀쌀해지고 그래서 보일러를 한번 작동해 보려고 그러는데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요.” 밝은 목소리였다.

 

윤호가 집에 없나요?”

 

, 있긴한데....” 말을 잇기 전 그녀의 멋쩍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에 물어봤었는데 건성으로 대답하더라구요. 복잡해서 이해하기가 힘들어서요. 민환씨는 자상해서 항상 자세히 일려주시기도 하고요.”

 

 

 

나도 처음 그의 집에 갔을 때 보일러 작동을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애를 먹었었다. 매뉴얼을 어디에선가 간신히 찾아서 작동법을 배우고 있을 때 그가 돌아왔었다.

 

뭐하는데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그래?”

 

보일러를 어떻게 돌리는 지 몰라서. 야 이 매뉴얼 안 보는게 낫겠다. 왜 이리 복잡한거야?”

 

난색을 표하는 나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얼굴에 빙글빙글 웃음을 띠고는 손으로 손쉽게 조작을 했다.

 

너 안 얼어 죽여.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할게.” 말을 끝내고 그는 다시한번 피식 웃음을 지은 다음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서 매뉴얼을 들여다 보는 나의 뒷통수를 당겨서 나의 이마에 키스했다.

 

귀여운 놈. 그래 그래 머리 싸매고 들여다 봐. 보다보면 알게되겠지.”

 

그를 돌아보면서 눈을 흘기는 나를 보고는 킬킬 거리면서 그는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귀에 바짝 붙이고 그녀에게 하나하나 작동법을 가르쳐 주면서 그랬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서 전화를 끊기 전 슬며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윤호는 잘 지내죠?”

 

, 뭐 여전하죠. 그런데 민환씨 그거 알아요?”

 

? 뭐요?”

 

민환씨가 윤호씨 집에서 나간 이후에 지금이 처음으로 윤호씨가 어떤지 물은거예요. 모르는 남이 보면 오해하겠어요. 친구 아니라고 할까봐.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실수가 있어요? 아니면 일부러 그런 척 하시는거예요?”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속사포 같이 나에게 말을 끊임없이 해 댔다. 그러는 그녀의 목소리 뒤로 갑자기 귀에 감기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모시러 가야 해. 이제 그만 전화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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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ormylife" data-toggle="dropdown" title="그리고함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그리고함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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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영혼들이다.
나, 그, 그리고 그녀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
온전히 시간뿐이라면 슬픈 일이다.

작가님은 이 소설이 반전이나 특별한 사건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 주변에, 혹은 내가 겪어봤을 그런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간다.
심심한 듯 하지만 삼삼하고
심연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의 파괴력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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