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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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 좌석의 등받이에 기대고 앉아 마치 잠이 든 것 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제네시스의 느리고 흐느적 거리는 in too deep 이 흘러나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흐리고 무거운 날씨 속에서 음울한 필 콜린스의 목소리가 앞 좌석과 뒷 좌석을 오가고 종현은 그 노래에 맞춰서 낮게 흥얼거리다가 아는 가사 부분이 나오면 한두 마디를 따라 부르다가 또 다시 흥얼거리는 콧소리로 바뀌곤 했다.

 

 

다 왔어. 이제 일어나.”

 

잠깐 잠이 들었던 것인지, 그냥 몽롱한 상태였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멍한 채로 눈만 계속 감고 있었던 것인지 그 경계선이 구분이 되지 않는 모호한 어딘가를 떠다니다가 그의 목소리에 현실 세계로 돌아와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딘데?”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자다가 깬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한두번 슬며시 비비고는 그에게 얼굴을 돌렸다.

 

저녁 먹자고. 여기 예전에 한번 왔었는데 맛 괜찮더라.” 그가 말을 마치고 운전석의 문을 열고 내렸다. 나도 안전벨트를 풀고 그를 따라 내렸다.

 

설렁탕이나 갈비탕 괜찮지?” 그가 리모콘으로 차 문을 잠그면서 나를 바라보고는 주차장의 건물에 있는 설렁탕 전문 식당이라는 간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좋아. 그럼 난 설렁탕으로 할게.” 팔을 뻗어 느리게 기지개를 한번 펴면서 그가 가리키는 간판에 시선을 한번 준 다음 음식점 쪽으로 몸을 돌리는 나에게 그가 슬며시 다가와서 내 팔을 잡았다.

 

?” 나를 바라보면서 씨익 웃는 그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으이그! 이 사람아. 내가 어떻게 분위기 좀 잡아볼라고 그러는데 너랑 설렁탕집을 가겠냐? 저녁 먹을 곳은 저기다.”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실실 웃으면서 길 건너편의 2층을 가리켰다.

 

너무 비싼데 아냐?”

 

괜찮아. 그 정도는 번다.” 그가 나를 보고는 피식하고 다시 웃었다. “예약 해놨어. 가자.”

 

그가 앞장서서 잡고 있던 나의 팔을 끌었다.

 

 

 

깔끔하고 고급스런 이태리 풍의 음식점이었다. 자주 와봤던 듯 그는 익숙한 눈빛으로 메뉴를 훑어보고는 주문을 했다. 대부분이 도대체 재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상한 말의 음식이름이 메뉴판을 채우고 있었다.

 

그냥 내가 주문하는것 한번 먹어봐. 맛 괜찮아. 먹을만해. 한번 먹어봐.” 그가 메뉴판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서 웃었다.

 

고개를 끄덕해 보이고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두워지는 거리의 네온사인에 하나 둘씩 불이 들어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저녁 먹고 갈 데는 저기야.” 그가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의 한쪽 구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호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 듣겠냐? 좀 더 크게 해야지.” 그가 얼굴이 붉어져서는 조금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 스스로도 나의 목소리가 커졌던 것을 느끼는데다가 그의 당황해 하는 얼굴에 주변을 한번 슬쩍 돌아본 다음에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지금 시간이 몇신데 거기를.....”

 

아이고. 아저씨 오늘 무쟈게 오바하시네.” 그가 내 말을 자르면서 나를 보고 웃음지었다.

 

거기서 커피 마시자고.”

 

비쌀텐데.... 팁에 부가세도 따로 받을 테고...”

 

, 거기 무료 티켓이 생겨서....” 그가 물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면서 싱글거렸다.

 

 

 

널찍한 공간에 상큼한 플로럴 향이 은은하게 번지고 있는 호텔 카페에 들어섰다.

 

예전과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랬었다.

 

예전에 윤호와 여기에 왔을 때에도 똑같은 플로럴 향이 코를 자극했었고, 지금 내 앞에서 걸어가는 이 깔끔하게 잘 생긴 직원이 자리로 안내했었다. 실내 인테리어도 변한것이 없었고, 나도 그대로였다. 다른 점은 오로지 내 옆에서 웃고 있는 상대가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왜 하필 여기를...’ 속으로 혼자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여기라고? 그와 동거를 시작하기 전 일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와 같이 들락거렸던 호텔이 여기뿐이었던가? 아마 서울에 있는 호텔의 거의 대부분에 그와 나의 추억이 묻어 있을 듯 했다.

 

회사의 인바운드 쪽에서 넘어온 여분의 할인 된 호텔 바우처를 손에 넣었을 때에도, 그가 무슨 이벤트를 준비한답시고 둘이서 객기를 부리던 밤에도 우리는 슬그머니 호텔을 찾았었다.

 

모텔보다는 호텔이 남자 둘이서 들락거리는 것이 카운터의 직원이나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훨씬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었다.

 

어쨌든, 모텔의 작고 비좁은 엘리베이터에 어쩌다가 다른 남녀커플과 같이 타게 되었을 때 느끼던 그 불편함이 호텔에서는 해소되었다. 호텔의 널찍한 엘리베이터에서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비즈니스의 목적을 갖고 있는 척 할수도 있었고 혹은 쥐뿔도 없으면서도 무엇인가 내세울 수 있는 듯 한 허세까지 부려보면서 공연히 기분이 우쭐해지기도 했었다.

 

 

윤호는 호텔 카페안의 자리에 안내를 받고 나서 일단 좌석에 앉으면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느긋하게 등을 편안하게 뒤로 기대고 나를 보고 슬며시 웃으면서 다리를 벌리곤 했다.

 

, 너가 무슨 쩍벌남이냐? 다른 사람들 좀 보면서 신사처럼 앉아봐.”

 

? 내가 이렇게 앉아있으니까 흥분돼?” 키득거리면서 그는 슬쩍 나에게 윙크를 하고는 손을 펴고 슬며시 자신의 허벅지를 한번 쓰다듬곤 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얼굴에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항상 나를 슬며시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때에도 그는 마치 내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듯 해서 날 항상 불안하게 만들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해?”

 

초점이 잡히지 않은 흐리멍텅한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던 나를 보면서 종현이 인상을 한번 써 보였다.

 

, 그냥 갑자기 내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 지 생각 좀 해보느라고..” 슬며시 둘러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혹시 화가 나서 그런가 하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나를 보면서 그가 한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화장실 간다.” 말을 멈추더니 그가 내 등 뒤를 바라보았다.

 

오렌지 주스 두 잔이요.”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얌전하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가씨가 메뉴판을 들고 생긋 웃음을 짓고는 카운터 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다시 혼자가 된 내 앞의 의자에 윤호의 모습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나를 보면서 실실거리며 웃던 그가 표정을 바꾸어 반가워하는 얼굴로 내 뒤편을 향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 현준이형!”

 

그의 눈을 따라 나도 상체와 목을 돌려 뒤를 돌아 보았다.

 

한 남자가 윤호 만큼이나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윤호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좌석 사이의 공간을 헤집고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둘이 악수를 하면서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윤기있는 생머리를 앞으로 단정하게 빗어내려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 웃는 표정이 매력적이었다. 잘 생겼다. 형이라고는 불렀지만 기껏해야 윤호나 내 또래로 보였다. 도대체 누구일까. 그 둘이 여전히 잡고 있는 손을 보면서 그 남자와 윤호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불안함과 불편한 감정이 스며들어 왔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앉은 윤호의 얼굴은 여전히 밝게 웃는 표정이었다. 나를 보면서도 슬며시 그가 앉은 자리를 흘끔거렸다.

 

누군데?”

 

? .....” 그가 나의 눈과 마주치면서 겸연쩍은 듯 웃었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 ?” 슬며시 속이 꼬여서는 고개를 돌려 우리에게 뒷통수를 보이면서 앉아 있는 그 현준이라는 사람을 흘끗 보고는 다시 윤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 지금 질투하지?” 여전히 윤호는 실실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장난끼 가득한 미운 일곱 살 짜리가 짓는 얼굴표정이었다. 주먹을 들어서 냅다 한 대 패주고 싶었다.

 

으이그, 녀석 질투하기는... 나 너 밖에 없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날 못 믿냐?”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난해에 3개월 동안 런던 출장 갔을 때, 그때 거기서 만난 형이야.”

 

런던에서 게이클럽 자주 갔었나봐?” 한번 꼬인 내 속은 여간해서는 풀어지지 않았다.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계속해서 시니컬했다.

 

! 무슨 게...클럽은....” 내 말에 그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런던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알고 지내면서 어려울 때 돕자는 작은 모임에 그냥 들었던 거지.”

 

그럼 저 사람은 우리 커뮤니티 사람 아니겠네?”

 

, 사실 저 형도 우리랑 같긴 한데.” 그가 말을 슬쩍 얼버무리면서 이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정말. 그치만 아니라니까. 나하고 전혀 상관 없다니까. 저 형 따로 애인도 있다니까.” 그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 저기, 그 형 애인도 오잖아.” 윤호의 말에 슬며시 고개를 다시 그가 앉아있는 쪽으로 돌렸다. 스물대여섯 먹어보이는 어린 녀석 하나가 입이 귀에 걸린채로 헤벌레 해서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봤지?” 그가 이제 모든 것이 확인이 되고 자신은 결백하다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해져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너 말야.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이렇게 사람 의심하면 안되는 거야.” 그는 이제 미운 일곱 살에서 오만 방자한 일곱 살의 얼굴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가 저 형이라면 넌 쟤 처럼 귀여운 놈 놔두고 딴 놈에게 눈이 돌아가겠냐?”

 

, 그랬어?” 여전히 내 입에서 나오는 말투도 심술궂었다. “너 귀여운 타입 좋아했구나?”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귀여운 놈 찾아보지 왜 나랑 있는건데?”

 

그가 어이없다는 한숨을 쉬었다.

 

!”


?”

 

넌 거울도 안보냐?” 뜬금 없는 그의 질문에 당황스러워 졌다. 이 인간이 무슨 말을 꺼내려고 내 외모를 건드리려는지 슬그머니 화가 나려고 했다.

 

너가 쟤 보다 훨씬 더 귀엽거든?” 엉뚱한 그의 말에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저 형은 그냥 런던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 하고 같이 두세번 만나서 이런 저런 사는 얘기하면서 안면 익혔다가 나중에 자기 애인 선물 살 때 나도 같이 따라다니면서 네 생각하고 선물 산것 밖엔 없어. 그때 니 핑크빛 사선 들어간 티셔츠 사온거잖아. 그때 저 형은 자기 애인 구두샀구.”

 

알았어. 그래. 내가 속아줘야지 뭐 어쩌겠어.” 얼굴에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슬며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속아주긴 개뿔. . 일어나.”

 

?” 혹시 이번엔 그가 화가 났을까봐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여기 6층에 방 잡아놨어. 너 오늘 나 의심한 죄값 밤새 톡톡히 치룰거다.”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면서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났다. 픽 하고 웃으면서 나도 옆에 놓여있는 가방에 손을 뻗었다.

 

 


  

어어이!”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길래 주스도 안마시고 내가 왔는데도 눈도 안맞춰?”

 

, 정말 미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제 자리에 앉는 종현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생각한건데?”

 

아니야. 그냥 일땜에....”

 

혹시 나 때문에 바쁜데 그냥 나온거야?”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한 표정에 순진한 눈빛이었다. 이렇게 착한 그 앞에서 전 애인과의 추억을 곱씹으면서 앉아있던 내 자신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야. 미안해. 괜찮아. 주스 마시자.” 말을 마치고 슬그머니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주스잔으로 손을 뻗었다.

 

, 사실 오늘 여기 위에다가 방 잡아 놨는데....”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너가 마음에 안내키고 불편하면 뭐, 그냥 취소해도 되고...”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오히려 그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취소는 무슨... 나도 너하고 오늘밤 같이 있고 싶었어. 그래서 내가 아까 통화중에 그러자고 말 꺼낸거잖아.” 말을 마치고 여전히 순진한 표정으로 씨익 웃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 불편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하면서 이미 타인이 된 전애인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망설이는 내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라면 내 기억속의 지긋지긋한 를 충분히 지울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한번 나를 보고는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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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april" data-toggle="dropdown" title="bypass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bypass</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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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일일히 답글 달아주시는 감성도 센스있으시네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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