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숲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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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가 입원해 있는 병원의 길 건너편에 위치한 카페에 벌써 몇 시간을 멍하게 앉아 있었다.

 

 

 

소현과 통화를 한 후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 셋의 운명이 마치 새끼가 꼬이듯 서로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우리 셋 중 어느 누구도 의도적으로 이렇게 만들기를 원하지도 않았지만 서로를 옥죄는 상황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소현이 세진의 존재를, 아니 나의 존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윤호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병원앞까지 와버렸다. 하지만 머리 한구석에서는 윤호는 이 사실을 알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병원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그이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야, 최소한 그에게 혹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그 자신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병원에 누운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자신만의 자괴감에 빠져서 더 고통스럽게 되지는 않을까. 오히려 그에게 소현과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 그와 소현 사이의 관계만 악화시켜 내 스스로 그들의 관계를 파멸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창밖에서 그가 누워있을 병원을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 있다보니, 슬며시 그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벌써 얼마동안, 그리고 앞으로 더 얼마나 그렇게 침대에서만 구속된 생활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그가 얼마나 다쳤는지, 앞으로 얼마나 병원에 있어야 하는 지, 그렇게 누워있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묻지도 않았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병원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의 가족과 지인들이 모두 잠재적인 공포의 대상들로 느껴지고 그럼으로 인해서 그렇게 누워있던 그의 앞에서도 비겁하고 초라하게 행동하지 않았던가.

 

 

 

윤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를 보고 미소짓는 그 순간 하나하나를 마치 카메라로 찍듯, 내 마음속에 담아서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맹세하던 그런 유치한 사랑의 시를 써대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존재는 내 마음속에서 나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를 보고 싶다는 그리움이 점점 더 크게 피어나와 나의 두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곤 나의 등을 떠밀었다.

 

 

병원의 한쪽에 있는 흡연구역을 지나다가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렸다. 서현이었다. 담배를 피워물고 통화중이었던 듯한 그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해 보였다.

 

윤호 보려고?”

 

.” 내 대답에 그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가족들 방금 있다가 돌아갔다. 간병인만 같이 있을거야.” 말을 마치고 다시 몸을 돌리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면서 다른 손으로 나에게 가보라는 신호를 했다.

 

 

 

슬며시 문을 열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침대에는 할아버지 한분이 누워서 잠이 든 듯 보였다. 보호자도 옆의 의자에 앉아서 침대에 얼굴을 묻고는 낮은 코를 골며 잠에 취해 있었다.

 

 

윤호는 반듯이 누워서 눈을 감고 있었다.

 

손을 뻗어서 슬며시 그의 손을 만졌다. 그가 눈을 뜨고는 나를 올려다 보았다.

 

간병인은?" 평범한 병원 방문객 처럼 그렇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의미없이 물었다.

 

딸이 찾아와서 잠시 자리 비웠다.” 그가 느릿하게 말하고는 시선을 나에게서 돌려 천장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곧 다시 내 얼굴로 돌렸다.

 

언제 퇴원해?” 목에 무언가 걸린 듯 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삼주정도 더 있으면 퇴원해. 뭐 금방이지.” 그가 말을 마치고 피식 웃어보였다.

 

웃음이 나오냐?” 기가막히다는 듯 물었다.

 

, 웃고 있잖아.” 그가 대답했다.

 

내가?”

 

너 웃는거 정말 오랜만에 본다.” 그가 말을 마치더니 얼굴이 붉어졌다.

 

그의 손을 잡고 엄지로 그의 손등을 슬며시 문질렀다.

 

너 말라 보인다. 잘 좀 먹지.”

 

하루종일 누워있으면 소화 안 돼. 또 많이 먹으면 많이 나와. 간병인, 내 대소변 다 받아내는데 그거 큰일이지.” 그가 대답했다.

 

내가 있었으면.......” 언뜻 말을 꺼내고는 황급히 입들 다물었다. 나는 그의 현재의 사람이 아니다. 과거에 속해 있을 뿐이다. 괜히 쓸데없이 오버해서 분위기 불편하게 만들 필요 없다.

 

그러게.....” 그가 답하고는 잡고 있는 내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다.

 

 

마치, 그렇게 내가 그의 집을 나온 후부터 아직까지의 떨어져 있던 빈 시간이 우리 둘 사이에서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듯, 그에 대한 옛 감정이 솟아나오며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북받쳐 올라 목이 메면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이렇게 그를 사랑했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그의 얼굴은 항상 이랬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그 동안에 그렇게 큰 폭풍이 지나 갔음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와 나는 마치 여전히 연인인 듯, 그렇게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모든 예전의 감정이 밀어닥쳐와 나의 가슴을 다시 채웠다. 이렇게 아무리 나의 감정을 누르고 지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고 있었노라고....

 

 

혹시 무슨 일 있는거야?‘ 그가 나를 올려다보면서 넌지시 물었다. 여전히 그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져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걱정이 배어있었다.

 

이런 그에게 절대로 그녀의 이야기를 꺼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용기를 낼 차례였다. 어떻게든 그녀와의 일은 내가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 이런 편안한 미소가 남아 있을 수 있도록 무언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이제 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아니, 그냥.....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마음속에 다시 죄책감이 밀려왔다.

 

종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청주로 내려가는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에 오르기 전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끌어안았다.

 

왜 그래, 사람들이 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손을 그의 뒤로 돌려 그의 등을 슬며서 어루만졌다.

 

, 이 세상에 너밖에 없어.”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성큼성큼 버스에 올랐었다.

 

 

 

가운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윤호와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상처받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내왔을 소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도대체 내가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타인의 삶에 끼어들어 괴롭히는 것은 윤호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했었다. 잔인하고 불쾌하며,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일이라고 그들을 경멸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렇게 말해왔던 나는 종현과 소현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주머니에서 슬며서 전화를 꺼냈다.

 

안녕하세요?” 소현의 먹먹한 목소리가 들여왔다.

 

, 소현씨. 혹시 오늘 시간 되시나요?” 그녀에게 물었다.

 

나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있을 그녀에게 전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얼마만큼은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가 설령 나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과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그것은 또한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몫이었다.

 

, 어디로 갈까요?” 갑작스럽게 반기는 그녀의 목소리가 내 귓속에 울렸다.

 

 

 

이번에도, 그녀는 약속시간 보다 먼저 카페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눈가에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하면서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저한테만 그러시는거예요?” 그녀가 다시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 그녀의 질문의 의미를 몰라 그녀에게 되물었다.

 

항상 너무 예의 차리시는 것 같아요. 너무 인사를 깍듯하게 하시잖아요.” 말을 마치고 다시 그녀가 웃음지었다.

 

직업병입니다. 고객들만 상대하다보니...” 겸연쩍게 그녀를 보고 웃어보였다.

 

 

 

주문한 커피가 도착하고, 내가 한 모금 목에 넘길 때까지 그녀는 시종일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는 내가 입을 열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아마 내 얼굴을 보자마자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는지..... 그것을 잘 알면서도 내 입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 여전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벌리려고 용기를 입 주위에 불어넣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도 그녀는 나를 몰아세우지 않았다.

 

여기 커피는 여전한 것 같아요. 이름 있는 브랜드 커피보다 훨씬 나아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안쓰러움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아니면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내면의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런던에서 윤호랑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내가 입을 다시 떼자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윤호랑 사귄 사람이 아니예요.” 그녀는 표정의 변화 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냥 윤호가 런던에서 있는 몇 개월 동안 지내면서 우연히 알게 되었나봐요. 같은 한국인이라서....”

 

.....” 그녀가 고개를 슬며시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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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formylife" data-toggle="dropdown" title="그리고함께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그리고함께</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님의 댓글

  • <spa…
  • 작성일
상처받은 영혼들의 성장소설 느낌이다.
풋풋함은 없을지라도
인간 본연의 심성을 잔잔하게 건드리면서
이쪽 세계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그런 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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