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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

 

"선생님 이거요."

 

신발을 신고 있는 정훈에게 윤선이가 손가락으로 마루끝에 놓여 있는 커다란 수박하나를 가리켰다.

 

"엄마가 선생님 가져가서 드시래요."

 

"이런것 까지 안주셔도 되는데...." 난처해하는 정훈을 올려다보면서 윤선이는 배시시 웃었다.

 

", 선생님한테서 과외받기 전에는 완전히 깡통이었어요. 선생님도 저 처음에 수업시작했을때 실력 아시잖아요. 선생님하고 수업한 다음부터 정말 일취월장 한거에요." 말을 멈추고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붉어진 얼굴에 미소를 띄었다.

 

"냉장고에 넣으실때 반을 미리 갈라서 넣으면 빨리 시원하게 된대요. 맛있게 드세요."

 

보기에도 큼직한 수박을 두손으로 들어서 가슴에 안았다.

 

밝게웃는 윤선이를 뒤로하고 그는 현관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이 수박을 정말 집에까지 들고 갈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어 가슴이 답답했다.

 

19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안에서도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물망으로 된 수박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끈 조차 없었다. 과외를 시작할 때 새벽한시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느냐는 윤선이의 어머님의 질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닐 거라고 대답을 한 적이 있었으므로 아마 수박끈까지는 준비를 안하신듯 했다.

 

막막한 기분 속에서도 정말 얼마만에 그의 손안에 쥐어진 과일이었는지... 수개월동안 과일이라고는 길가의 과일가게에 진열되어있는 것을 지나치면서 구경한 것이 전부였다.

 

그는 그렇게 가난했다.

 

 

겨우 아파트 입구에 나왔을 뿐인데 벌써 그의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셔츠가 등짝에 불쾌하게 달라붙어있었다. 손바닥으로 이마를 한번 슬쩍 훔치고는 정훈은 발치에 내려놓은 수박을 내려다보았다.

 

"차라리 한두푼이라도 돈으로 주실것이지...." 혼잣말로 그는 중얼거렸다.

 

슬며시 열어 본 휴대폰은 '새벽 한시 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빈몸으로 걸어서도 집에까지 한시간 반 거리였다.

 

 

가끔씩 지나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어린 표정으로 그와 그의 발치에 놓여있는 수박에 한번 눈길을 주고는 지나쳤다.

 

최소한 이만원이나 이만오천원은 주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은 정말 큼지막한 수박이었다.

 

"어쨌든 내꺼다." 그는 속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떻게든 집에까지 가져가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어깨에 멘 가방을 다시 바로잡고 두손으로 수박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어기적거리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지나자 길가에 있는 호프집에서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가득 모여 앉아서 붉은 티셔츠를 입고 모두 흥분된 모습으로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모습과 땀으로 뒤범벅되어 수박을 들고 어기적거리고 있는 자신이 순간 비교되어 그의 구질구질하고 초라한 현실에 역겨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돌려 앞을 향하고 당당한 듯 보이려고 했다. 무너지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고는 손깍지를 다시 반듯히 끼고 수박을 그의 품안에 끌어안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그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박을 내려놓고 쉬는 주기가 점점 빨라졌다.

 

이미 문이 닫힌 그럴듯한 한 대형음식점 앞의 벤치위에 수박을 내려놓고 서서 그는 파고드는 암담한 생각을 더 이상 떨칠수가 없었다.

 

길 건너편의 24시간 김밥전문점 앞에 아주머니 두분이 밖에 나와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뜻 수박을 들고가서 그들에게 싸게 팔겠다고 원하는 가격에 드리겠다고 들이대고 싶었다.

 

심한 갈증을 느끼면서 그는 아니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수박을 내리쳐 깨어버리고 먹을 만큼 먹고는 버리고 가고 싶었다.

 

정훈은 다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한시 삼십팔분이었다.

 

버스 첫차가 몇시에 운행을 시작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때까지 그 곳의 벤치에 버티고 앉아서 기다렸다가 첫차를 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가진 돈을 만져보았다.

 

꺼내서 확인을 할 필요도 없이 그는 이미 그 속에 얼마가 남아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천원짜리 두장에 백원짜리 동전 세개.

 

오늘은 이제 12시가 넘었으니 화요일이 된것이고 다음주 화요일에야 과외비를 받게 되니 꼬박 일주일을 이천 삼백원으로 버텨야만 했다.

 

그리고 또 한주가 지나면 그가 일하는 목장갑을 만드는 공장에서 월급이 나오겠지만 그 다음날로 그 월급은 고스란히 고향집으로 보내질 것이고 그는 또 한달을 이 과외비 20만원으로 버텨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한달에 15만원을 내는 허름한 변두리의 단독주택 한구석의 방 한칸에 들어사는 그는 이미 석달치의 월세가 밀려있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대형마트에서 가장 가격이 저렴한 마트의 피비상품 쌀을 구매하곤 했지만 재래시장 한켠에 있는 쌀집에서는 조금씩 쌀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그는 알게 되었다.

 

김치는 공장의 식당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한분이 그의 사정을 알고는 가끔씩 검은 비닐봉투에 조금씩 담아서 슬며시 건네주곤 하셔서 버틸수 있었다

공장에 취업한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늦은 점심으로 식당 아주머니 한분과 단 둘이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뜻 그가 털어놓은 신세타령을 들은 그 아주머니는 아들 같은 그에게 슬쩍슬쩍 그렇게 김치를 준비해서 건네준 것이었다.

 

사실, 그의 낡은 자전거는 이미 삼개월전에 쌀 몇 킬로와 라면 몇 봉지를 얻기 위해 근처의 중고상의 주인의 손으로 넘겨져 버린 후였다.

 

굶으면서 자전거를 타느니 당장은 배를 채우고 걸어다니겠다는 그 당시의 그의 계산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졌다는 비참함으로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지만 이제 겨우 스물 넷인 자신의 젊음이 너무 억울했고, 자신이 없어지면 고향에서 췌장암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버리는 것이라는 얄팍한 죄의식도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이렇게 버틴다면, 이를 악물고 버텨본다면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매달려 그는 계속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옆자리에 놓여있는 수박을 그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반으로 가르면 그가 중고상에서 만오천원주고 주워오다시피한 작은 냉장고 안에 반쪽은 대충 들어갈 듯 싶었다.

 

중고상점의 맨 구석에 버려지듯 굴러다니던 그 냉장고는 어떤 허름한 모텔에서 버려져서 그곳으로 온 듯했다. 냉장고 문을 열면 문짝의 맨 윗부분에 모텔의 이름이 흐릿하게 여전히 남아있었다.

 

 

한참을 쉬고 난 후였지만 그는 집에까지 그 수박을 들고 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건너편의 김밥집 아주머니들은 보이지 않았다. 손님을 맞아서 다시 들어가서 일하고 있는 듯 했다.

 

정훈은 길 양쪽을 둘러보았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수박을 들고 벤치 뒤에 있는 그 대형음식점 앞에 있는 작은 정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정원수 아래에 풀들이 제법 키가 크게 자라 있었다.

 

그는 수박을 들어 그 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 큼직한 수박은 완전히 그 속에서 가려지지 않았다. 그는 주위의 풀을 손으로 뜯어서 수박 위를 조심스럽게 덮었다.

 

 

집으로 걷다보면 오른쪽의 차도 위로는 새벽의 공기를 가르고 질주하는 차들의 그림자들로 어지럽지만 왼편으로는 커다란 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길을 따라 흐르고 그 끝자락 부터 작은 야산의 밑자락으로 연결되어 한밤중에는 코끝을 찌르는 풀냄새가 번졌다.

 

그 어두운 길을 터벅거리면서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는 두고오는 수박을 머릿속에서 지울수가 없었다.

 

몇개월을 맛없는 밥과 시큼한 김치로만 버텨오다시피한 그에게는 보기만 해도 예전에 먹어 본 그 시원한 수박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다음 날 다시 와서 가져가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이에 누군가가 발견하고 가져갈 것 같았다.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러다가 그런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공짜로 그에게 들어온 것이었다. 그냥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감사히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윤선이의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누구든지 그 수박을 발견해서 가져간 사람이 그 대신 맛있게 먹어주면 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게 생각을 해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까웠다.

 

갈증이 더해질 수록 그는 두고 온 그 수박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길 건너편에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휘청거리면서 걸어와서 맞은편 신호등 아래에 섰다.

 

술을 좀 한 듯 싶었다. 습관처럼 정훈은 휴대폰을 열어 보았다. 두시 십오분. 그는 멀거니 그렇게 휴대폰이 말해주는 시간을 보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자 정훈은 발을 옮겨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길 건너편의 남자도 정훈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 둘이 지나치는 사이 정훈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옆으로 지나치는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 양복입은 남자의 눈빛은 외로워보였다. 그러나 문득 그것은 그저 자신의 외로운 모습이 그의 눈에 비춰진 것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든 정훈은 그가 부러웠다. 최소한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에서 묶여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단쪽으로 향하는 큰 길로 접어들었다.

 

도로가 난 길 양쪽의 인도 바깥쪽으로는 밭과 농사를 짓지않고 묵혀놓은 땅의 반복이었다.

 

평상시에는 낮에도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는, 차량들만이 차지하고 있는 그런 도로였다. 그래도 인도도 널찍하고 키가 큰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는 그 길을 그는 익숙하게 걸었다. 가끔씩 얼굴과 팔뚝에 끈적한 거미줄이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마치 무대에서 판토마임을 하는 배우 마냥 손으로 얼굴과 팔을 비벼서 털어내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큰길이 거의 공단입구에 맞닿는 지점에서 작은 샛길로 꺾어들어가서 몇번을 구부러진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나서 그는 그의 셋방에 다다랐다.

 

정훈은 쪽문을 열고 안에서 플라스틱 호스의 끝을 붙잡고 밖으로 꺼낸 후, 그것과 연결된 수도꼭지를 손을 뻗어서 틀었다.

 

시원한 물이 호스를 통해서 그의 얼굴과 팔뚝에 쏟아졌다.

 

얼굴과 팔뚝에 뭍어있는 거미줄을 물로 닦아내면서 그는 자신의 피곤함과 슬픔, 그리고 무기력함도 같이 씻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가난도 물로 씻겨서 하수구를 통해서 모두 흘러가기를 바랬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서 그렇게 우울한 밤이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현준)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현준은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부서의 한 선배의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회사 동료들과 병원 영안실에서 소주몇잔을 마시면서 고스톱을 치다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구석에서 화투패를 돌리는 회사동료들에게 그 선배는 술과 먹을 것을 내왔고 부장의 예의상 하는 아버님에 관한 질문에 그는 희미하고 창백한 미소를 엷게 띈 채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매우 다정다감하셨어요.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형처럼 저에게 편안하게 대해주셨어요. 항상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우리 아들왔냐?' 하시면서 큰 웃음으로 절 맞이하셨어요."

 

 

여전히 횡단보도 앞에서 현준은 그 동료의 말을 다시한번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고인에 대한 예의상 차리는 인삿성 멘트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길건너에서 그 마냥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청년이 그의 몽롱한 눈에 들어왔다. 청년이라기에는 아직 어려보이는 풋풋한 20대 초반의 어린애로 보였다.

 

못해도 20대 후반은 되어야 청년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그는 생각했다.

 

흔한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는 휴대폰을 열고는 문자를 확인하는 듯 싶었다.

 

"한창 좋을 때지. 밤 늦도록 애인하고 문자도 주고 받고..."

 

그는 희미한 웃음을 한번 짓고는 신호등이 바뀌자 도로로 내려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둘의 거리가 점점 가까와지면서 현준은 희미한 빛 속에서 그 남자가 땀에 흠뻑 젖어있는 듯 보였고 그에게서 피곤한 기색이 느껴지는 듯 했다.

 

스치면서 지나가는 그 잠깐 동안에 눈이 마주치면서 현준은 그의 눈빛이 먹먹하다고 느꼈다.

 

의외였다. 그 나이 또래의 남자들은 길에서 혹시나 그와 눈이 마주칠때면 예외없이 도발적이거나 반항적인 눈빛을 보여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현준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맞은편 인도에 도착하여 뒤를 한번 돌아 보았을 때에는 그는 이미 건너편의 어두운 공원의 좁은 길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휘청거리는 다리를 옮기면서 방금 지나친 그 녀석은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엄격하다고 할까? 친절하고 상냥하다? 아님..... 폭력적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술이 취해 흐릿하게 보이는 번호를 힘껏 하나씩 눌러댔다.

 

마침내 현관문이 짜증을 내면서 열렸다는 신호를 그에게 보냈다.

 

현관문을 닫고 일단 집 안으로 들어오자 그는 조심스럽게 소리내지 않고 구두를 벗고 구석에 있는 그의 방으로 향했다.

 

양복 상의만 침대위에 던져 놓은 채 현준은 침대 끝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의 방은 그에게는 감옥이었다.

 

그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집이란, 또는 가족이란 그가 가장 가고 싶지 않은, 향하고 싶지 않은, 피하고 싶은 곳이었다.

 

 

강화도의 한적한 바닷가의 작은 동네에 살던 어린시절, 그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여덟살적 어느 날 밤, 그의 아버지가 술이 취해 들어와 엄마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냥 단순히 가정폭력이라는 단어로 연상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오늘 밤에 너를 패서 내손으로 죽여버리겠다는 살인의 의도를 그는 그 어린나이에도 느낄수 있었다.

 

한밤중 적막을 깨는 엄마의 비명소리에 옆집 아저씨와 아줌마가 속옷바람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 다음은 현준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치 술이 너무 취해서 필름이 끊기듯 그의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고 그가 기억하는 그 다음 장면은 그의 엄마가 마당에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두눈은 뒤집혀서 흰자위만 보이는 채로 입은 마치 바다의 게마냥 거품이 덩어리져서 부풀어 올라 입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옆집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어버린다고 바닷속으로 달려드는 걸 간신히 끌고 나왔어요."

 

공포에 휩싸인 현준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소리쳤다.

 

"엄마! 엄마아!!"

 

그러자 그 다음순간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어깨를 잡아채면서 외쳤다.

 

"시끄러! 입 다물어 이 새끼야!!"

 

 

일어나서 거울앞에 서서 넥타이를 천천히 풀면서 그는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언듯언듯 그의 아버지의 모습이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소름이 끼치는 적이 종종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머리에 기름을 발라 올백으로 넘겼다. 그는 머리를 드라이하고는 앞으로 내려 이마를 가렸다.

 

가끔씩 길어진 그의 앞 머리카락 끝이 그의 눈을 찌르거나 가릴때면 그는 묘한 희열감을 느끼곤 했다.

 

그는 천천히 발을 옮겨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고 아파트 단지내에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들을 내려다 보았다.

 

새벽순찰을 도는 경비아저씨의 모습이 개미처럼 내려다보였다.

 

예전에 어떤 뮤직비디오나 영화에서 처럼 그가 창문밖으로 몸을 던진다면 어느 재수없는 사람의 차 지붕위에 그의 몸이 큰 대자로 뻗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묘한 쾌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그는 새벽의 공허한 창 밖을 오랫동안 내려다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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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class="sv_wrap"> <a href="https://ivancity.com/bbs/profile.php?mb_id=april" data-toggle="dropdown" title="bypass 자기소개" target="_blank" rel="nofollow" onclick="return false;"> bypass</a> <ul class="sv dropdown-menu" role="menu"> <li><a hre님의 댓글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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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해요.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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