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남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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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힘들지? 그래도, 너 뿐만 아니라 모두 힘든 시기야.” 아버지가 말을 멈추시고 손에 쥐셨던 수저를 식탁위에 내려놓으셨다.


“아빠가 좀 능력이 있다면 이럴 때 좀 도와줄텐데. 미안하구나.” 말을 마치시고 아버지는 입맛을 쩝쩝 다시셨다. 


“그렇게 많이 힘드니?” 어머니가 물이 담긴 컵을 아버지의 밥그릇 옆에 내려놓으시고는 앉으셨다.


“그럼, 많이 힘들지. 지금은 우리가 대학 졸업하고 취업하던 때하고는 시대가 달라졌으니까.” 아버지가 컵을 들어 한 모금 넘기셨다.


“뭐 그래도 넌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 아버지에게서 나의 얼굴로 시선을 돌리시면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이 다음이 문제지. 나이 들어서 계속 지금 일을 할 수도 없고.....” 아버지가 컵을 내려놓으셨다.


“좀 있으면 금방 결혼도 해야하고 그러면 한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데.” 


“그래도, 얘 하나 들어가서 일할 회사 하나 없을라구요. 널린게 회산데....”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씀하셨다.


“휴우..” 한숨을 쉬시면서 아버지가 식탁에서 일어나셨다.


“그래도 어떻게는 산다. 알지?” 여전히 수저를 들고 멍하게 앉아 있는 나를 향해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형이나, 누나도 지들 앞가림 하고 살잖냐. 너도 그렇게 할 거야. 그리고 아버지 엄마도 있잖냐. 우리가 뭐 허수아비냐? 너 하나 못 밀어주겠냐? 우리 믿고 열심히 해봐. 뭐든지 하고 싶은거 생각 많이 해보고.” 말씀을 마치시고 아버지는 다시 한번 ‘어험’ 하고 헛기침을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토요일이었다.


주형이의 성화에 못 이겨 팀장에게 힘들게 주말에 맞춰서 한번 휴일을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면서도 그는 나의 근무 날짜를 바꿔주었다. 아무 불평 없이 묵묵히 근무해온 나의 요청을 ‘안된다’고 거절하기 힘들었을 듯했다. 주말에 근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는 다시 내 대신 대타를 정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을 나왔다.



부모를 잘 만나 대학 졸업 후, 아버지 사업체에서 후계자로 실무를 배우고 있는 주환이와 인서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대학을 졸업하고 클리오네라는 영국 런던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대기업에 입사해서 근무중인 주형이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 커플은 주환이의 고급스런 외제차의 앞자리에 앉아서 핑크빛 미래에 대해서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있었다. 그래 이럴수도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손을 뻗는다고 해도 건드릴 수도 없는 꿈같은 장면은 그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현실의 한 조각인 것이었다. 


이삼만원대의 중저가 브랜드의 셔츠를 내가 고르는 것처럼 그들은 백화점의 고급 브랜드를 기웃거리고 또한 내가 직원 구내식당을 가듯이 가격과 상관없이 맛집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적당히 식사를 하고 해외 여행을 마치 옆집 드나들듯 하는 그들과 나의 삶의 반경은 절대로 겹칠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게 배경이 다르고, 사는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그들과 내가 이렇게 ‘친구’ 라는 타이틀로 한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그저 우리 셋 모두 ‘게이’ 라는 성정체성 밖에 공통점이라는 것을 발견 할 수 없었다.


그런 이질감 속에서 그들과 하루를 보낸 후, 나는 설명할 수 없는 피곤함과 무기력으로 저녁에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저녁도 같이 하자는 것을 피곤하다고 한사코 거절을 하고 집에 와서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참지 못하고는 삶의 무게와 미래의 불확실함으로 인해서 두려운 내색을 해보이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아버지 말대로 어떻게든 버텨내고 미래에서도 이 사회 안에서 내 자신도 그럴듯한 자리 하나는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희망이라는 녀석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부팅중인 모니터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내 나이에 어떻게 했을까?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오히려 살아가기는 나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다행하게 아저씨도 나와 같은 나이의 시기를 잘 버텨내고 넘길 수 있었을까? 그때 그가 힘들었을때 그의 곁에 누가 있었을까? 누가 그의 손을 잡아주려고 곁에서 그를 지켜봐주고 있었을까?






그와의 관계가 많이 느긋해 진 후였다.


입 밖으로 서로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연인 사이가 된 듯, 그렇게 그와의 관계가 8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동안 서로의 사소한 삶의 단편들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갈수록 그는 나의 삶 속으로 한발자국씩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타인이었다.


그렇게 다른 한편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그였는지, 아니면 여전히 원나잇을 부르짖으며 자유로운 관계를 추구하던 나였는지 알수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나의 손에서 빠져나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타인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얼마만큼 나의 마음속에서 해소된 후, 나는 그에게 또 다른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은 누군가를 마음에 두게 되면 점점 더 만족을 모르고 상대에 대해서 계속해서 또 다른 것들을 탐하고 싶어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는 여전히 미스테리한 존재 였다. 


딱히 그가 대단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사십이 되도록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삶은 평범한 독신의 40대 게이남성이라고 하기에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많이 있었다. 


그가 멀지도 않은 같은 인천에 그의 집과 가족을 두고 혼자 그렇게 나와서 원룸생활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삶의 발자취를 그와 나란히 탐험한다는 것이 그와의 진정한 연인이 되는 것이며 그를 더 잘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전히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나의 질문에 웃음으로 철벽을 치고 막아버리는 그의 삶에 더욱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어느 금요일 저녁, 그렇게 그의 집을 찾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주말이 시작되는 밤이니 같이 하룻밤을 같이 있고 싶다는 의도로 받아들이고 지나갔겠지만, 나는 그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의 탐험을 시작하는 원정대의 일원이 된 느낌이었다. 마치 신화속의 오디세우스가 된 듯이 마음속에 스릴까지 느끼면서, 부평역에 있는 마트에 들러, 배와 선원들 대신에 소주 8병과 간편식으로 만들어진 매운탕을 담은 비닐봉투를 들고 그의 집으로 진격을 했다.


“이건 다 뭐냐?” 그의 방바닥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나의 늠름한 무기들, 소주 8병을 내려다 보면서 그가 물었다.


“무기.....가 아니고 오랜만에 아저씨하고 같이 한잔 하고 싶어서요.” 걸맞지도 않게도 내 자신이 오디세우스가 된 듯이 그렇게 의기양양해 있다가 말이 잘못 튀어나왔다.


“뭐?” 그가 나의 말에 피식 하고 웃었다.


“야! 너 혹시...” 그가 말을 멈추고 나를 빤히보았다. 그의 입에 번지는 미소속에 터무니 없다는 실소가 감추어져 있었다.


“뭐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의 얼굴을 한번 보고는 싱크대 옆에 올려져 있는 냄비를 집어 그 안에 매운탕 재료를 쏟아부었다. 


“너, 혹시라도 무슨.....에스엠이나 그런 거 바라는 거라면 번지수 완전히 잘못 찾아온거다.” 그가 가스렌지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불을 켜는 나의 등에 대고 말했다.


“저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씀을....” 나는 그를 보고 정색을 했다.


“채찍이라면 몰라도, 소주병을 어디다 쓰게요?” 그가 나의 말에 다시 한번 피식 하고 웃었다.




그의 눈이 쳐지고 표정에 웃음이 많아졌다. 


바로 그가 술에 취했다는 신호였다. 말이 조금씩 더 느려지고 목소리는 부드러워졌다. 


평상시에는 손을 들어 그에게 가까이 가면 ‘왜 이래?’ 라고 말할 그가,  손등으로 그의 턱 끝을 슬며시 비비는 나의 행동에 그저 씨익 웃기만 했다.


“아저씨.”


“왜?” 그가 나의 말에 느긋한 웃음을 지으면서 물었다.


“아저씬 내 나이 때엔 어땠어요?”


“뭐. 다 똑같지 뭐.” 그가 여전히 실실거리면서 느릿하게 말했다.


“그런 그렇고, 너 이렇게 툭하면 여기서 자고 가고 외박해도 부모님 뭐라고 말씀 안하시냐?” 그가 손을 들어 나의 코를 슬며시 누르면서 물었다.


“엄마는 막 잔소리하시는데 아빠는 사고만 치지 말고 다니라고 하세요.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빠가 감당할 수 있는 일만 저지르라고요.” 말을 마치고 그의 손을 잡아 그의 엄지를 내 입안에 넣고 슬며시 혀로 핥고는 ‘쪼옥’ 하고 빨았다.


“좋은 부모님이시네. 좋겠다. ” 그가 그런 나를 보고는 슬며시 내 뺨을 어루만졌다.




“아저씨의 아버지는 어땠어요?”  시간을 두고 지나가는 말투로 그에게 슬쩍 물었다.


“왜? 그건 왜 물어?” 그가 물었다.


“그냥요. 궁금해요. 아저씨에 대해서 모두 다.....” 조금 굳어지는 그의 표정을 느꼈지만, 이미 시작한 질문을 다시 없던 일로 하기는 싫었다.


“정말 알고 싶니?” 그가 다시 물었다.


“네. 아저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싶어요.” 슬며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그런 나를 보고는 그가 굳어졌던 표정을 풀고 픽 하고 웃었다.


“그래.... 그럼 말해줄게... 그 대신 도망가면 안돼?” 그가 말을 마치고 나지막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소주잔을 들고는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여객선으로 한시간 정도 가야하는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그가 태어날 때만 해도 그 섬 안에서는 그래도 상당한 부잣집이었다. 그 옛날, 섬에서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예전 사람들이 말하는, 먹을 식량이 떨어지는 보릿고개에도 그의 집에서는 먹을 것을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이웃집의 가족이 먹을 것이 없어 야산이나 들판에서 캐어 온 무릇이나 둥굴레의 뿌리를 삶아서 간신히 연명하는 동안 호랑이 시어머니 몰래 쌀을 조금 갖다 주곤 했다. 


그런 집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주색잡기에만 빠져서 그 많던 땅들을 노름에 탕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말리는 그의 어머니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술에 취한 그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취하면 부모도 아내도 몰라보고 집안 살림을 던져서 부수었고 그런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그 섬에는 모든 다른 가정은 평범하고 조용했지만, 유달리 그의 아버지 형제만 그렇게 폭력적이었다.


유씨 성을 가진 아저씨의 아버지와 건넌 마을에 살고 있는  그의 작은 아버지는, 형제는 닮는다고 많은 면에서 둘이 닮아 있었지만, 형만한 아우 없다고, 그의 아버지가 동생에 비해서 성격이 훨씬 더 포악했다.


그가 기억하는 그의 어린시절이란 구타를 하는 아버지와 마당에 쓰러져서 정신을 잃고 있는 어머니에 관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한겨울, 마을 아이들이 모두 꽁꽁 얼어붙은 논에 모여 썰매를 타고 놀다가, 집집마다 굴뚝에서 저녁을 짓는 연기가 오르기 시작할 무렵에 하나 둘씩 각자의 집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는 끝끝내 남아서 어두운 논에서 손을 호호 불면서 썰매위에 앉아 있곤 했다.


그렇게 그에겐 어렸을 때부터 ‘집’ 혹은 ‘가정’ 이란 ‘공포’의 장소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에 갈때마다 두려웠다고 했다.


그가 학교에서 있는 동안에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에 의해서 맞아 죽거나, 아니면 버티지 못하고 숨어 있다가 배를 타고 뭍으로 도망을 가는 생각에 하루종일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섯 살 적에 그는 그보다 다섯 살이 많은 누나를 따라서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매일 학교에 가서 1학년 교실의 맨 뒤에서, 남아 있는 빈자리에 책이나 필기구도 없이 청강생으로 앉아 있던 그는, 자신보다 두 살 더 많은 아이들 보다 먼저 한글을 읽기, 쓰기를 터득하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똘똘하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정말로 그 어린나이에 공부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를 가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공포스러운 집을 피해 학교로 피신을 한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 그의 아버지는 어떤 일로 인천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리고 섬의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의 어머니는 이웃집에서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평상시에는 집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어머니는 오랜만에 그 아주머니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돌아올 것이라는 날짜보다 하루 먼저 섬으로 아버지가 돌아와 집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것이 어머니의 실수였다.


술에 취한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물었다. ‘늬 엄마가 나 뭍에 나갔을 때도 이렇게 마실을 갔었냐’고.... 어린 그는 헤어날 수 없는 공포속에서 입도 떼지 못한 채 고개만 저었을 뿐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집에 오자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서 아버지는 '건우가 그러는데 니년이 매일 저녁 그렇게 마실다녔다고 말했다'고 소리질렀다. 어떤 놈팽이를 만나러 바람이나서 밖으로 나돌아다니냐는 말을 내뱉으면서 어린 그의 앞에서 그의 아버지는 그녀를 실신할 때까지 두들겨 팼다. 


비명을 지르면서 울고 있는 그는 이미 정신이 나가 있는 그의 아버지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공포의 집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자신도 없는 집에서 그의 어머니가 혼자 하루가 멀다하고 폭행당할 것이 걱정이 되었지만, 본인 스스로도 아무 힘도 없으면서 그런 상황속에서 버티기 힘들었던 그는 지옥에서 벗어나는 기분이었다.


그의 누나 둘과 자취를 시작했지만, 툭하면 올라오는 아버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아들과 딸의 앞에서 그는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은 물론 욕지거리를 내 뱉으면서 자식들 앞에서 밥상을 뒤엎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방바닥에 엎어진 밥알을 밥사발 안에 담았고 걸*레를 짜서 엎어진 국을 닦아 냈다. 



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아버지는 섬에 있던 모든 논과 밭을 팔았다. 그리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당장 할 일이 없었지만, 무슨일이든 할 수 있겠지 라는 모호한 희망을 가지고 올라왔을 것이었다. 그리고 대대로 내려오던 알짜배기 땅을 판, 꽤 되는 돈을 그의 아버지는 가지고 있었으니 별 걱정을 하지도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천에 올라온 후, 특별한 직업이 없었던 그의 아버지는 다시 술로 매일매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송림동의 자그마한 단독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에서 매일 밤 쩌렁쩌렁하는 그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여전히,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그가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이에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맞아 죽거나 도망을 갔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젖어 살았다. 이미 모든 일이 지난 지금에는, 그러든 말든,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학교나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서 잠만 자고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든 일이 끝난 후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그가 매일 저녁 학교에서 돌아와서 하는 일은 술이 취해 그의 어머니의 머리채를 손아귀에 쥐고 동네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욕을 해대는 아버지를 말리지 못하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가까운 파출소에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자신의 집전화번호보다 더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파출소 전화번호였다. 그리고 그 전화를 받은 순경은 “또 너냐?” 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가정내의 폭행은 극히 가정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경찰들도 와서 “그러지마세요.‘ 라고 그런 아버지를 말리는 척하면서 조금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는 것이 끝이었다.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던 그의 아버지의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마침내 그의 어머니는 도망을 가벼렸다. 



이미 그의 큰 누나도 집을 나가버렸고, 작은 누나는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집에 붙어 있게 되었다. 폭행할 아내가 사라진 그의 아버지는 이제 그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폭언으로 시작되었다. 


‘집나간 늬 에미는 x팔러 다닌다‘ 고 그의 아버지는 그와 그의 누나에게 욕을 해 댔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버텼다.


기독교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옥상에서 올라갔다가 내려 왔다 그리고 그와 그의 누나에게 말했다. ‘기도를 하는데 천사가 나타났는데 삼개월안에 너희들 모두 망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다’ 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던 그의 아버지는 마침내 그에게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를 대문에서 맞이하던 그의 아버지가 마치 ‘묻지마 폭행’ 을 하듯 그에게 주먹세례를 가하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번개가 치듯 그렇게 방어할 겨를도 없던 그는 온 집안에 핏자국을 쏟아내고는 쓰러졌다. 그래도 그의 아버지는 분에 풀리지 않아 그에게 악을 썼다. ‘늬 누나 오면 내가 칼로 찔러 죽여버리겠다’고....


그의 아버지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는 골목길 밖으로 나와 그의 누나가 퇴근하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피투성이인 채로 자신을 기다리던 누나는 그를 데리고 그의 어머니가 묵고 있던 단칸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누나에게 묵고 있는 곳을 알려주었지만, 그에게는 말해주지 않았다. 


가끔씩 그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그가 어렸을때 ‘자신이 마실갔던 것을 건호가 아버지에게 일러서 자신이 그렇게 죽도록 맞았다’ 고 말하곤 했다. 심지어 그가 있는 자리에서도 어머니는 타인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입을 닫아버린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에게는 그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자신의 말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그의 아버지를 거의 볼 일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집을 제외한 모든 재산을 손에 쥐고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이혼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가 그의 아버지를 본 것은 그가 스물일곱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가 병원에서 뇌사상태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였다. 그의 작은 아버지가족이 그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연락을 한 듯했다. 


영안실에서 그는 태연한 얼굴로 문상을 온 손님을 받았다.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사촌동생이 ‘어이어이’ 하면서 곡소리를 낼 때에도 그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렇게 그는 그의 아버지와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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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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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지난한 과거의 흔적을 몇 장의 사진으로 보는 듯했다.
서사의 구조상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삶이 행복해지는 과정임을 안다.
오늘 편은 그 과정에서 아저씨란 인물을
주인공과 함께 이해하는 시간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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